부르크하르트 읽기 4번째 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 온다는 연락이 카톡에 가득합니다 .과연 몇 명이나 모일까
싶었는데 전부 6명이 모여서 수업을 시작했지요. 처음 이 책을 읽자고 했을 때는 당연히 르네상스를 다룬 책이니
그림에 관한 것, 조각, 건축에 관한 것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러면서 다른 이야기들을 주로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겐 참 새로운 시간이었습니다 . 금요일 낮 시간
점심 약속을 제외하곤 나머지 시간을 마지막 5.6부 읽다가 읽기 지치면 옆에 둔 일본역사를 영어로 쓴 글로이야기
한 꼭지씩 번걸아가면서 읽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면 속도가 빨라서 한 번씩 쉬고 싶은 때
아직 일본어 실력이 모자라 일본어로 글을 즐길 수 없으니 그 때 영어로 된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쉬어 주는 것이
제 나름의 효율적인 독서가 되고 있는 셈이거든요.
수업이 시작되고 집중에서 이야기를 해도 역시 마지막까지 다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책을 끝내고 내년에는 새로운 책을 하기로 해서 나머지는 기회가 되는대로 각자 더 읽기로 하고
돌아가면서 한 해의 마무리를 했지요. 일종의 송년회가 된 셈인데 이 이야기가 길어져서 평소보다 늦은 11시 20분에
자리를 떠났으니 after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012년 제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함으로써 이런 모임이 가능하게 했던 혜숙씨,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함께 하자고 권했을 때 거절당했으면 아마 이런 모임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런 망설임이 있었는가
놀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고 프리렌서 기질이 몸에 밴 내가 일정시간에 모여서 일년간 이런 공부를 했다는 것이
변화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전혀 읽지 못했을 책, 끝까지 읽으려고 시간나는대로 노력했고
처음에는 고전이라고 해서 읽었더니 이게 뭐야? 실망했지만 미사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건조할 수도 있는 공간에 차와 먹을 것으로 늘 풍성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그녀는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기도 하고
역할로 삼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힘도 생겼고 새로운
외국어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노라고 합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집에서 엄마 공부하러 간다고 나올 수 있게
된 그녀는 가족이 받아들여주는 그런 점에도 놀랍다는 말을 하더군요.
몇달 전부터 인생에서 의미란 무엇인가 과연 그런 것이 있는가 고민하고 있다는 또 다른 그녀, 그녀의 이야기에
마음이 확 와 닿았습니다. 과연 처음부터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오히려 저는 더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더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살아오던 중이라서요. 지난 한 주 몸이 여러
곳 탈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던 순간의 아찔함, 그리고 앞으로 삶의 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간이 생각나기도 했지요. 여러 사람이 각자 그녀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보태기도 했습니다.
모임에 최근에 참석한 그녀,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을 때 전달력이 좋아서 사람들의 귀에 확
들어오게 하더라고요. 그 점을 칭찬하니 반가워하면서 사실은 속으로 많이 떨린다고 하는 겁니다. 떨려요?
자신이 정말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일까 싶어서라고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책을 읽고 와서 잘 모르더라도
발제자가 하는 말을 듣고 나면 그 말이 오히려 귀에 확 닿고 생활에서도 그 말이 하나의 지침이 되는 경우가 있노라고요. 산을 좋아하는 그녀의 산에서의 경험을 빗댄 이야기가 제겐 울림이 더 컸습니다.
저는 일년동안 많은 책을 읽었지만 단테의 신곡을 강의한 일본인 저자의 글에서 강한 도전을 받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 만난 신곡을 평속 마음에 두고 공부하고 자신의 전공과 더불어 숙성시켜서 70이 넘은 나이에
대중과 더불어 강의로 만난 사람, 그것을 시간마다 다르게 풀어내는 능력과 수업을 마칠 때마다 질의 응답에서
어떤 문제가 나와도 자기 나름대로의 답이 튀어나오는 것에 놀랐던 것이지요. 그리고 시간마다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읽어가는 수업방식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중 강의에서 이런 것이 가능하다니 이 대중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고요.
어려웠던 것은 고백록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였지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제겐
이런 감정의 변화와 고양이 이해되지 않아서 하나의 텍스트로만 대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중심인 서양 중세사를 읽고 있노라면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서 무엇인가를 창조하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부럽기도
하고 가끔은 무섭기도 하고, 가끔은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으니 이 마음은 또 무엇일꼬
그것이 궁금해지기도 하더라고요.
2014년 원래 계획대로라면 1월부터 시작해야 맞지만 제게 개인적인 사정으로 꼭 써야 할 원고가 생겨서
아무래도 널널하게 하루를 써야 하는 날이 필요해졌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1.2월은 좋은 동영상을 함께 보고
3월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 중세의 가을이 궁금하니 한 권 더 읽고 그 다음에는 쉐익스피어 4대 비극과
꼭 읽고 싶은 역사극을 골라서 읽은 다음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고 추천의 변을 말하면 취합해서 리스트를
짜기로 하고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파우스트는 꼭 읽어보고 싶다, 적과 흙을 읽고 싶다, 니체는 어떤가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왔지요. 어떤 책들로 리스트가 짜여질지 궁금하네요. 그것은 내년 초반에 정해질 것 같고
이렇게 함께 보낸 일년, 참 힘들지만 아름다운 일년이었다고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그런 금요일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