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오랫만에 신곡의 이탈리아어를 오디오로 듣고 있습니다. 이런 자료를 올려놓고 모두가 공유하도록 하는
이런 시스템이 생겼다는 것은 제게 단비처럼 느껴지네요. 덕분에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읽는 중에 여러 번 그저 틀어놓고 귀를 적시곤 했는데 몰라도 여러 차례 그렇게 하다보니 한국어로 읽은 내용으로 추측을 하면서 그 시간을 낯선 언어로 즐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주부터는 장미의 이름을 읽게 되므로 신곡을 다시 듣게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래서 어쩌면 영원히, 아니면 당분간 이 소리와는 이별이라고 생각하니 더 깊은
관심으로 듣게 되는지도 몰라요.
하루 하루 읽어야 할 책이 있지요. 읽고 싶은 책말고도 그 다음 날 수업을 위해서, 아이들과의 수업을 위해서
이렇게 그 날 그 날의 필요에 의한 책을 읽다보면 금요일 밤 수업에 필요한 책 읽기 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아서
그 수업이 있는 날 하루는 점심 약속을 제외한 전 시간을 금요일 밤의 수업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눈상태가 부실해서 하루 종일 글을 읽는 것은 무리라서 중간에 눈감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피로가 풀리면 독서로 몰입, 이런 하루 종일의 몰입이 주는 묘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네요.
한 달에 두 번이지만 이런 집중을 통해 제가 매일 매일 보내고 있는 하루의 번잡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요.
누구나 이름은 들었지만 사실은 읽지 못한 책, 읽다가 만 책, 읽으려고 마음을 먹지만 언제 읽을 지 알 수 없는 책
그럼에도 계속 고전이라고 칭송되면서 소개되는 책이라고 고전에 대해서 떠도는 말들이 있지요. 제게도 역시 고전은
읽고는 싶지만 과연 읽을 수 있을까,. 그것이 지금의 내게 과연 지침이 되는 책일까 그러니 현재를 제대로 설명하는
책들을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권의 책을 선물받고 그로 인해 이어지는 항연, 가끔 생각을 합니다. 나를 바꾼 한 권의 책 이런 수사가
단순한 말치레가 아니고 실제로 가능한 일이로구나하고요. 그 책 자체가 저를 바꾸었다기 보다 그로 인해서 시작된
'
일련의 변화가 저를 바꾸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요.
신곡을 처음 읽을 때는 지옥이 읽는 맛이 제일 좋았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러다가 천국을 읽으면서 어렵고
불편하긴 하지만 사실 단테는 천국에 가장 공을 들인 것인가, 아니면 당대의 우주관을 받아들여서 그 나름의
상상력을 더해서, 그리고 당대의 신학사상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을 나름으로 소화해서 그 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공들여 넣은 것은 오히려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국을 그냥 읽고 있을 때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그동안 사두고 못 읽었던 중세의 우주에 관한 글, 그리고
중세의 지식인에 대한 글들을 보조 자료로 읽으면서 천국을 읽는 일에 탄력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오래 전 신곡에
대해서 쓴 글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읽어보았지요. 그랬더니 신곡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읽은 글과
이미 어느 정도 읽은 다음 그 글에 대해서 제가 반응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져 재미있더라고요.
금요일 8시, 그런데 그동안의 모임중에서 가장 적은 인원이 모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신곡의 문턱이 너무 높았나
싶었지만 그렇게 적은 수가 모이니까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기가 더 쉬운 면도 있어서 한가지로 재단하기 어려운
것을 느꼈지요.
천주교에서 배우는 교리와 너무 달라서 읽기 어려웠다는 견해, 내가 생각하던 천국과 너무 다르더라는 견해,
단테가 천재가 아닌가 느꼈다는 의견, 지옥은 너무 재미있었지만 연옥과 천국은 읽기 어려웠다는 의견, 오늘
장미의 이름을 하는 줄 알고 처음 참여했는데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신곡에 대한 이야기를 듣겠는가 재미있었고
다음에도 참석하겠다는 신참자도 생겼고요. 이상하게 천국편은 읽히지 않아 단테 신곡 강의만 읽었는데 그 책이
아주 도움이 되었다는 멤버도 있었습니다.
물론 한 번 읽고 신곡을 읽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방대한 주석이 필요한 책이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도 되지
않지요. 그렇지만 3권으로 나뉜 열린 책들의 신곡을 읽으면서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과연 다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일인가 의심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 공통적인 것에 주목하면서
내가 통과하고 있는 인생의 시기 시기에 나를 가장 괴롭히는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무슨 인생을 살고 있고
어떤 인생에 매혹되는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내가 통과하는 인생의 시기에서 지옥이라고 느끼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신곡을 만난
가장 중요한 성과가 아닐까 싶네요.
2년간의 고전읽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한 번 이 책을 새로운 눈으로 읽게 될 기회가 올까요? 아마 온다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그 때 나는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당황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