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는 씨디중에 베토벤 교향곡 전 곡을 녹음한 것이 있어요. 요즘 이상하게 베토벤 듣는 시간이 늘어나서
오늘 아침에 2번, 7번이 들어 있는 씨디를 걸어놓고 듣고 있는 중입니다. 7번은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서 여러 차례
듣다보니 익숙해져서 몸이 곡의 흐름에 저절로 녹아들어가지만 2번은 상당히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비오는 월요일 아침, 묘한 매력을 느끼면서 첫 선 보는 사람처럼 곡과 인사하게 되네요.
지난 수요일 드가를 영어책으로 읽은 여학생 덕분에 드가를 보던 날은 초기작을 주로 만났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오랫만에 간 예술의 전당에서 본 발레 오네긴, 프쉬킨의 에프게니 오네긴을 발레로 만든 작품인데요
발레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이렇게 어긋난 시기의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다니, 무대 장치만으로도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표현하고, 오케스트라가 찐빵의 앙꼬 역할을 실감나게 해주다니, 발레리나, 빌레리노들의
연습량은 어느 정도일까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표현으로 사람은 어디까지 표현이 가능한 존재인가 새삼
돌아보게 하던 시간이 생각나네요.
everymonth가 아직 혜화동에서 만나던 시절, 켈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가 일년에 50번이 넘게 음악회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 저는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휴일이 거의 없이 아이들과 수업을 하던 저는
(일년에 한 차례 여행을 가는 것을 제외하면) 음악을 좋아하고 음반을 매일 듣기는 했지만 음악회에 갈 기회는
없었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함께 가도 되나요? 하고 물었고 흔쾌히 좋다는 대답을 듣고는
금요일 하루를 쉬는 날로 만들어 6년이 넘게 별 일 없으면 금요일 음악회에 그녀와 동반해서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겐 빛나는 날들이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시간 처음에는 하루 동안 밖에 있으면서
이런 저런 일들에 몰두했기때문에 공연장에 앉은 순간 피로가 몰려와서 잠깐 졸지만 조금 지나면 몸속에 음악이
스며들어와 점점 잠이 깨고 마지막에는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던
날들
음악회에 다녀오고 나면 집에 있는 음반을 뒤적여서 그 곡 혹은 그 작곡가의 연주를 일주일 동안 듣거나
곡을 찾는 과정에서 그동안 소홀히 하던 음반을 다시 듣는 시간도 마련하곤 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음악회 자체보다
after로 인해 더 풍성한 한 주일을 보내곤 했었지요. 그 과정에서 연주만이 아니라 오페라, 연극, 그리고 발레를
이렇게 분야를 하나 하나 넓히기도 하고 오페라를 영화로 만는 메트 오페라 공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 일산에서 금요일 고전읽기를 시작하기 전 가장 망설였던 것이 바로 음악회는 어찌 할 것인가였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면 몇 년 동안은 음악회를 접고 고전읽기에 더 큰 에너지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곤 켈리님에게 2년간은 음악회에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요.그런데 문제는
고전읽기가 제게 큰 자극이 됨에도 불구하고 금요일에 느끼는 허전함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묘한 느낌이더라고요.
그렇다면 하고 머리를 짜낸 것이 1.3 주는 일산에서 2,4주는 강남에서 금요일을 보내는 것으로 하자,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서 처음 간 것이 오네긴, 그 날, 지하철안에서 켈리님 수첩을 보면서 머리 맞대고
앞으로 무슨 음악회가 있는지 어떤 공연에 갈 수 있는지 미리 맛보기를 끝냈습니다. 마치 막혔던 둑이
흘러넘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먹는 것은 좋아해도 요리를 잘 못 하는 사람이 요리 싸이트에 글을 쓰기 시작한 묘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공부를 시작한지 8년이 지났습니다. 8년째 되는 날이 바로 오네긴 본 날이더라고요. 요즘
정신없이 바빠서 기억을 못했었는데 마침 머라여님이 기억하고 있다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4주 금요일 음악회 대신 저녁에 모여서 조촐한 파티를 하자고 했습니다. 8년 어찌 보면 참 긴 시간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만남이 이어져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어지겠지요?
도대체 그 긴 시간동안 만나서 무엇을 읽고 있는지 궁금한 분들은 네이버 카페 everymonth에 접속하시면
우리들이 무엇을 공부하면서 삶의 순간을 즐기고 함께 하는지 보실 수 있답니다. 물론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요.
베토벤과 드가, 그리고 오네긴, everymonth의 생일, 켈리님과의 음악회,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로 엮여서
비오는 월요일 아침,소리속에서 어울려 제 인생의 교향곡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