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읽기 네 번째 날인 금요일,마침 3주째라 밤 8시 수업이외에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날, 일년만에 만나는
은유씨와의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라서 시간을 잘 쪼개서 오전에 읽고 정리할 것, 낮에 신촌에서 노는 시간, 돌아오면서 신촌의 알라딘 중고 서적에 들를 시간, 돌아와서 미진한 부분 정리 마무리하기, 이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 일찍 잠이 깨서 그동안 구해놓고도 제대로 읽지 못한 카톨릭 교회의 역사를 읽기 시작했지요. 한스 큉의 책인데요
처음 구해서 서너쪽 읽다가 미루어둔 책인데 이번에는 필요에 의해서 읽은 덕분일까요? 술술 읽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역시 구체적인 필요가 동력이 되는구나를 절실히 느낀 날이었지요. 제겐 중세에 관한 글읽기가 불편한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양 중세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 전제인 신에 대한 공명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글읽기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런데 천 년의 역사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전제를 내 믿음과는 별도로 일단 긍정하고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이렇게 마음이 바뀌어 몰입하게 되는 것을 보면 생각을 바꾼다는 것의 힘이
이다지도 큰 것일까 놀랍기 그지 없더군요. 덕분에 금요일 보충설명자료를 만들고 그 다음에 테트라르키아, 즉
4분통치시대에서 일인통치시대로 가는 시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에서 콘스탄티누스에 이르기까지 정리를 하다보니 벌써 나가야 할 시간,
은유씨와의 인연은 오래 전 정독도서관에서 초청한 고병권선생과의 만남에서 비롯합니다. 정독도서관 철학모임에
도서관측이 지원금을 주는 덕분에 초청한 선생의 강의를 듣고 밥을 먹는 자리에서 곧 수유너머에서 자본론 강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늘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시도할 수 없었던 수유너머의 강좌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수업시간을 다시 조정을 했지요. 그리고 강의 신청을 했습니다. 그 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같은 조도
아니어서 얼굴만 스치고 지나는 정도였습니다. 자본론 공부가 끝나고 이어진 스피노자와 니체 읽기에서 드디어
그녀와 제대로 만났다고 할까요?
제대로라고까지 말하긴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역시 인사만 하는 사이에서
말을 나누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 사이가 되었고 수업이 끝나서 수유너머에 못 가게 되었을 때 밖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답니다. 그래서 약속을 잡고 광화문에서 만나게 된 어느 날, 그녀가 급하게 바꾼 약속장소가 바로
길담서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서원에서 받은 느낌이 강렬해서 길담의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불어
공부와의 인연이 닿았다는 것, 그러고 보면 새로운 길은 문득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파생되는 것이로구나
새삼 느끼게 되네요.
그녀는 그 뒤 수유너머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인데요 특히 시를 읽고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으로 글을 풀어가는 것이 놀라워서 저는 그녀의 열혈 독자가 되었답니다.
일년만에 만난 그녀와 시간의 공백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다섯시가 다 되어 가네요.
행복한 왕자의 아이들에게 인터뷰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관찰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 인터뷰에 관한 것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방학동안 실제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그런 재능기부 강의를 부탁했었는데 어제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날짜를 잡기도 했지요.
서점에 가야 해서 다섯시에는 일어나야 할 것 같아서 아쉽더군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그래도 역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워서 들른 자리, 역시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하네요. 그 중에서
두 권은 들고 나머지는 택배를 부탁하고 돌아오는 길, 아뿔사 정리하는 것 하나는 그냥 날라가버렸네 . 그래도
그것은 스스로 부과한 것이지 수업의 진도에서 준비를 못한 것은 아니니 마음 가볍게 먹자 싶었습니다.
로마사, 이번 금요일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에서 콘스탄티누스 그리고 그 이후의 테오도시우스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그 과정에서 기독교가 합법화되고 서양 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그리고 수도를 옮기고 나서
로마는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요.
저로서는 앞으로 한동안 익숙하지 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는 어려운 시기가 오고 있네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검색어를 넣어서 책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한스 큉에 이어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고백록, 신곡,그리고 장미의이름 이렇게 세 권의 책이 기다리고 있는 중세
천년의 기간을 이해하는 기본 텍스트로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서요.
오래 전에 읽은 자크 르 고프의 중세 문명과 중세의 지식인들, 그 중에서도 중세 문명의 경우
게르만의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느끼고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갔던 것을 이번에는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네요.
로마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역시 제 마음은 미리 달려나가서 앞으로 할 것에 가있는 것을 보니 사람의 성질은
그다지 바뀌지 않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