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원 수업의 그리스 비극시간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필수 과목이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지만 왜 이 작품이 그렇게도 인구에 회자되는 것인지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지요. 담당교수는 미국에서 박사를 막 마치고 돌아온 여선생님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이
과연 젊은 나이에 이해가능한 일인가 회의적이다,오히려 삶을 더 살고 나서 인생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서
괴로운 시기에 문학을 접하는 것이 더 와 닿는 것이 많을 것이다, 너희들 나이에 그리스비극이 쉽게 이해된다는 것이
무리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아주 오래 남아 있었지요.
학교를 떠나고 오랫동안 여러가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을 읽는 것을 피했던 것은 계속 하지못한 공부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싶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고 어느 정도 마음 정리도 되고함께 할 사람들도 모여서 고전읽기를 시작한 2013년. 제 안에서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하네요.
소포클레스 전집을 구해서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그리고 소포클레스가 만년에 쓴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이렇게
세 작품만 읽고는 밀쳐 놓았던 전집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오늘 소포클레스 작품을 읽는 모임이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 작품을 다 읽는 것 아니었는가 묻는 최숙자씨의 질문에 그렇구나 이왕이면 이 기회에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보자 싶어서 어제 하루 날을 잡아서 시간나는대로 읽었습니다.
기분좋게 느낀 것은 호메로스를 제대로 완역본으로 읽은 것이 소포클레스의 작품을 읽는데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느낀 점,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인물들을 세익스피어의 작품속의 인물과 겹쳐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 2주째 금요일은 강남의 건축사 모임,심리학 모임에 이어 잠깐 교보문고에 들러 무슨 책이 나왔나 살피고는
바로 나와서 지하철 타고 먼 길을 와야 하고, 저녁에 집에 잠시 들어올 여유도 없이 바로 고전읽기 모임에 가야 하는
상당히 빠듯한 하루였습니다.
참 묘한 일은 그동안 서점에서 이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도 선뜻 사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서가를 뒤적이다가
목차를 읽어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첫 장에서 앗, 오늘 밤에 공부할 내용의 배경 지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네
그렇다면 하고 바로 마음을 정하고 책을 구입했습니다. 덕분에 지하철에서 눈을 붙이려던 계획은 날라가고
지하철이 갑자기 도서관이 되고 말았지요.
일산에 도착해서 행복한 왕자에 도착한 것이 7시 45분, 부랴부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내용을 돌려보려고 카피를
하는데 판형이 달라서 애를 먹던 중 수빈샘이 오셔서 대신 수고를 해주었지요. 아 언제나 기계를 잘 다룰 수 있으려나 한심한 일이지만 자책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다음 번에는 크기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 더 배워야
할 것 같네요.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저는 이번에 소포클레스 작품을 읽으면서 이것은 기본적으로 묵독을 위한 것이 아니고
무대에서 보아야 제대로 진가를 알 수 있을 것같다는 점,그래서 연극을 보러 가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점, 그리고
다음 작품에서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골라서 대사를 직접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인물중에 어떤 캐릭터에 대해서 공감을 하는가의 문제, 과연 이 비극을 다 읽고 나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는가의 문제, 안티고네를 비롯한 오이디푸스의 자식들이 느꼈을 고통을 소재로 현대적인 의미의
재해석을 한 작품이 나온다면? 다 살아보기 전에는 행복을 논할 수 있는가라는대사를 잘 못 읽고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읽었다가 이번에 보니 행복을 논할 수 있는가 였지만 기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같은이야기 아닌가
느꼈다는 이야기, 작품을 읽어도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별로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이야기, 운명과
의지의 문제에서 자꾸 운명쪽으로 마음이 쏠린다는 이야기 , 어느 시기 이후 무신론으로 기울어졌지만 대사를 자꾸
읽다보니 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는 이야기, 순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 딸들과 작별할 때
오이디푸스가 한 말에 감동을 느꼈다는 멤버와 그것에 대해서 화가 났다는 멤버의 의견의 차이, 운명이 있다 하더라도
비켜라 하고 앞으로 나갈 것 같다는 사람과 내 앞에 닥친 일들에 대해서 서랍속에 차곡차곡 가두어 두고 앞으로
나가는 삶을 살아갈 힘을 비축한다는 의견에 이르리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 처음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서 장벽이 많이 허물어진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을 읽고 이야기하는 일에 정답이 따로 있을리 없으니 수학문제처럼 답을 구하러 오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자신이 줄치면서 읽은 구절을 말하자 나는 같은 대목의 바로 그 아래에 밑줄을 그었다고 이어서 읽기도 하고
같은 대목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기도 하는 이런 시간, 함께 할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오늘 새롭게 함께 한 유은씨, 그리고 장문희씨, 환영합니다. 고전읽기를 통해서 무엇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요.
각자 살아가는 일에서 고전을 읽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될지도 각각 다르겠지요?
그래도 한 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고 만나는 약속이 있다는 것, 하루가 빡빡한 약속의 연속이었어도 다 끝나고
남은 사람들과 다시 새롭게 이야기를 해도 피곤하지 않은 날이 되었다는 것, 집에 와서도 오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하루였습니다.
함께 한 화가는 터너, 음악은 프란츠 리스트였습니다.고전 읽기 시간에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제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전달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말을 고르기 어려운것들은 백지로 남겨두었습니다. 다양한 리플로 수업시간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는 이야기들이 오고 가면 더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