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음악 플레이 하시고.
http://www.youtube.com/watch?v=8WLIDa9U9Ug
장한나,하이든 첼로협주곡 1번
작년엔 설날 다음날 이였으니 딱 1년만이네.
수유리 전철역 방향서 바라본 북한산~~~
우로부터 인수봉,백운대,만경대,,,합하여 삼각산.
우이동 계곡 출발~~
인수봉이 보이고.
백운산장 바로 아래~
볼 때마다 경외로워.
포탄을 세워놓았나, 범종을 엎어놓았나???
영하 15도,,인수봉(200미터)에선 클라이밍이~~~
백운대(836) 정상~~
늘 백운대 정상에 서면,
'싸~'해지며 발검음 또한 가벼워지는 데 바로 저 걸작 때문.
삼국시대엔 북한산을 부아악(負兒嶽)이라했는데 저 인수봉이 애를 업고있는 형상이기에.
김부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아들인 비류·온조 형제가 졸본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산(漢山,북한산 옛이름)에 이른 후,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하여 부아악(負兒岳)에 올랐다/
그러니 북한산의 첫 이름은 부아악.
왼쪽이 만경대,가운데가 노적봉,,,멀리 문수봉,나한봉,나월봉 등등.
멀리 한강~~
수리산,불암산도~~
도봉산도,,,너머로 의정부.
왼쪽으로 일영, 송추,장흥유원지~~
고양,양주 사람들은 앞골짜기를 지나 하루재를 넘어 우이동을 오갔다는,,,한나절 걸려서 하루재.
백운대 정상서 하산들~
백운대~만경대 사이 위문 너머로 짓푸른 하늘이~~
창공에 스틱 한번 그으면 쨍~하고 폭싹 내려앉을듯.
산성 주능선 따라 하산 중 백운대 모습~~
백운대를 가장 백운대답게 볼수있는 곳.
정상 태극기도 보이고~~
나는 가고,사람들은 오고~~
만경대 정상을 우러르니 심해가~~
용암문~~
예전에 저 문을 관리하던 용암사가 인근에 있어서.
저 문을 나서면 도선사 거쳐 우이동으로.
암문(暗門)이란 말 그대로 비상시 출입구.
석축 프레임 사이로 수락산이~~
용암사터에서 북한산 계곡 따라 고양시 쪽으로 하산~~
길가로 부도가 보이고~~
중흥사 등등 계곡 따라 많은 절터들이~~
왠 비석군(群)수십기가??
비스듬히 누운 암반에 비석들이 즐비하게.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대장격인 총융사(摠戎使) 의 재임시 선정을 기리기는 공덕비.
암벽에 새겨진 것을 포함해 모두 23여기.
저 비석 주인공은 총융사 김공~~~~
계곡변엔 주춧돌이, 저건 뭐지??
6미터 수직 절벽 위에 위치한 산영루(山暎樓) 주춧돌들.
북한산 주 계곡인 이곳 북한산계곡의 풍광이 좋아 1711년 북한산성이 축조되기 이전 부터 시인묵객이 자주.
시회도 빈번히,,,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이 이곳을 찾아 시를 남겼고.
그 산영루는 사라지고 정자 주춧돌만 저리 덩그라니.
"돌길 끝나는 곳 우뚝 솟은 누각에 오르니
겨드랑이에 날개 달면 신선될 것같구나.
산 울리는 종소리에 가을날은 저물고
단풍잎 떠가는 골 물소리도 차갑구나."
-다산 정약용-
1920년대 모습~~
한말,일제 때 1차로 황폐화되고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 주둔지로 유엔군 폭격으로.
김시습은 산영루에 올라 하루 종일 시를 쓴 후 저 계곡물에 띄워 보냈으니.
그러던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에 이곳 북한산 중흥사를 떠나 방랑길에 올랐고.
노적사 입구~~
노적봉 밑에 있기에 노적사.
북한산 이해는 북한산성 이해에서 출발.
북한산 이름도 북한산성에서,,,,이전엔 삼각산,,그 이전엔 횡산,,,더 이전엔 부아악.
그리고 북한산성은 1711년 축성시 책임자였던 성능 스님이 남긴 북한지(誌)를 보면.
중성문(中城門)~~~
북한산성 내에 다시 쌓은 重城(중성)으로 북한산성에서 가장 취약한 대서문 방면의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
안쪽에 쌓은 내성(內城)으로 숙종이 친이 이곳에 들러 명을.
중성은 저 노적봉까지 이어지고.
옛 중성문 사진~~
축성 당시엔 계곡 위로 수문도 있었다는.
그리고 2백살은 족이 될듯한 저 산사나무~~
꽃피는 봄날이면 흰 꽃들로 장관일듯,,,,그땐 꼭 가보고싶어라.
그리고 좌측으로 작은 암문이~~~
이 암문은 성내 망자가 나가던 길로 시구문이라~~
그러니 중성문을 지나거든 대문을 이용하시길.
혹 시구문을 통과할 때는 이리 소금뿌리기 언사 한마디를.
" 귀신 환생이요!! "
노적봉~~
노적가리를 쌓은듯해서.
중성문 문루에서 서서~~
해거름이라 발길들을 재촉하고.
거의 다왔네~
보리사가 된 등운각(登雲閣)
원래 등운각은 1957년 이승만을 맞이하기 위해 지은 영빈각이였으니 지금은 절로.
이승만은 도미 후 장로가 되었지만 실은 북한산 불가의 아들.
어머니가 문수봉 아래 문수사에서 백일 기도로.
그리고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집회 후 수배되자 북한산 원효봉 아래 상운사에 도피.
이런 연으로 대통령 된 후 이곳을 들른듯.
그런 그였지만 이후 불교탄압의 역군으로 거듭났으니....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리)~~~~~~~~(북한산성은 고양시 관활)
하산객들의 회포처로 즐비했던 식당들은 정비로 최근 다 사라졌고.
식당들은 아랫 북한산 초등학교 옆 집단이주지구로 이전.
원래 이곳은 북한산성 축성시 부터 형성된 사하존에 기지촌.
산성축성 일꾼이나 군인들의 처자권속들이 모여들며 북한리라는 마을이.
아마 이보다 훨씬 이전 부터일지도.
백제가 하남 위례성을 수도를 삼은 후 북방 전지기지로 북한산성을 쌓았으니.
고려 현종 때는 거란군 침입으로 왕건 시신을 가져와 이곳에 임시로.
최영의 요동정벌군 주둔도 이곳.
우측으로 식당 터에 북한산 기념관이 화장실처럼 보이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 모양.
대서문~~
북한산성 정문임.
이승만이 편액을.
구파발 행 버스 정류장서 되돌아보니~~
우측부터 노적봉,만경대,백운대,,,,,그리고 앞은 원효봉.
갈 때마다 새로운 걸 보여주는 너, 북한산!!
담에 또 보자구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