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과 야수파의 그림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지요. 그래도 제겐 상당히 오랜 기간 일요일 아침이면
야수파에 관한 글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두 주 정도면 끝날 숙제이긴 하지만요.
지난 해 여름 프랑스로 유학간 딸을 만날 겸 여행도 할 겸 떠난 혜정씨가 책방에서 구해 온 여러 권의 책 중에
바로 abc문고의 야수파가 있었지요. 다른 동화책에 비하면 상당히 어려워서 과연 우리가 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그런 책을 여럿이서 함께 읽는다는 이유 하나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과연 구한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읽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책인데 드디어 2번 정도 더 읽으면
마지막까지 보게 되는군요. 문제는 전체를 스스로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맡은 분량만을 간신히 예습해가서 틀린 부분 모르는 부분은
잘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읽었다는 것인데 거기까지가 능력이니까 하고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어제 밤 내가 맡은 부분을 복사해서 집에서 제대로 읽어보려고 준비하던 중 기특한 생각을 했지요. 조금 더 복사해서 이번에는
두 사람몫을 번역해보자고, 만약 실패해도 (책이 무거워서 내 부분만 복사해서 들고 다니므로, 복사물이 없으면 아예 시도도
못 할 것 같으니 조금 더 하는 마음으로 복사한 것이지요 ) 아직은 거기까지야 하고 위로를 삼을 작정이었는데 오늘 아침
마음을 먹고 시작한 번역이 두 사람분까지 해결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별 것도 아닌 일에 의미부여하는 과도한 소란이지만
제겐 참 놀라운 사건이었답니다.
자축하는 의미로 오랫만에 자주 가던 인터넷 싸이트에 들어가서 야수파의 그림을 실컷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책에서 자주 만나던 이름,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이제는 익숙하게 된 까무엥이란 화가의 그림을 골라서 함께 보려고요.
내게 아킬레스건인 부분을 최대한의 노력으로 끌어올리는 방식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잘 할 수 있게 그리고 그것을 혼자만이
아니라 더불어 즐길 수 있게 사는 방법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절이 오래 지속되었지요. 그런데 못 하는 것들에 대해서 노력하는 일의
지난함은 스스로를 과도하게 스트레스로 몰아넣어서 이것은 곤란한 것 아닌가,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이렇게 괴롭게 살아도 되나
마음을 바꾸고는 하고 싶고 조금은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집중해서 살고 있는 요즘 , 자책감없이 사는 하루 하루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물론 마음 한 구석에서 이래도 되나, 조금 더 노력해보는 것이 어때? 하는 속삭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요
월요일 불어 모임이 1,2,3 부까지 가게 되어서 불어, 점심 먹고 스페인어 그리고 로스코가 생전에 쓴 에세이를 아들이 묶어낸
책 한 권 (영어로 ) 함께 읽기로 했지요. 재미있는 것은 야수파 책을 구해온 혜정씨, 로스코의 책을 구해서 우리에게 소개한
미야님은 풀 타임으로 직업이 생겨서 함께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덕분에 좋은 책을 읽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살아가는 일에서 꼭 열매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따는 것은 아니네 하는 점이로군요.
그것이 어쩌면 사는 일의 묘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요일 아침 자축하는 시간을 혼자서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