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리집 강아지 구미호는 9살입니다. 사람 나이로 따지자면 노년의 나이지요. 하지만 이 철딱서니가 자신은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에너지가 차고 넘쳐 주체를 못하지요.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너무 좋아 반쯤 죽는 것이 우리 구미호입니다.
96년 여름, 부모님이 휴가를 가신 동안, 큰 동생의 여자친구가 집에 들렸지요, 이제 막 2개월이 좀 지난 강아지를 안고 말이예요. 서울에서 동생과 자취를 하던 그 여자친구,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 큰 올케는 우리 동생이 사준 강아지를 저희 집에 며칠 맡기고 당시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댁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지요. 전 워낙 동물을 싫어했지만 눈앞에서 이쁜 짓을 하는 강아지 구미호에 홀딱 마음을 뺏기고 말았어요. 저희 부모님이 휴가에서 돌아오시자, 강아지를 싫어하셨던 아버지가 당장 가져다 주라고 호통을 치셨고, 어머니도 동물을 싫어하셨던 터라 기겁을 하셨지만, 식구가 되려고 그랬는지 퇴근해서 집에 오시는 아버지를 먼저 맞이하는 구미호, 어머니 무릎에 올라 앉아야 잠이 드는 구미호를 우리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리고 몇개월 안되어서 큰동생은 그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본의 아니게 구미호를 떠맡아 기르게 되고 말았지요. 우리 부모님이 자기 부모님이라고 믿고, 저와 제 동생들을 언니와 오빠들로 믿고 무럭무럭 자란 구미호는 97년 12월 30일, 6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지극한 모성애를 보여주어서 모든 식구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답니다.
그러던 우리 강아지 구미호는 제가 미국으로 오기 전날 짐을 싸던 트렁크 안에 들어가 앉아 슬픈 눈으로 끙끙 거리면서 나오려고 하지 않아 가슴을 아프게 했어요. 제가 미국에 온 뒤, 막내동생까지 결혼을 해서 조카가 셋이나 생겼는데,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전화를 할 때마다 구미호가 아이들에게 샘을 많이 낸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죠. 그리고 결국에는 방바닥에 떨어져 있던 구미호의 먹을 것을 조카 하나가 집으려고 덤벼들다가 꽉 물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지요.
그런 저런 이유로 해서 구미호는 99년 8월, 혼자사는 언니인 저에게 보내졌어요. 공항에서 구미호를 떠나보내고 우리 어머니는 마구 우시다가 결국 며칠 자리에 누우시는(?) 슬픔을 겪으셨고, 아버지는 미호가 잘 도착했는지 그 비싼 국제전화를 몇번씩이나 하셨지요. 원래 무뚝뚝하신 우리 아버지는 미국에 홀홀단신으로 있는 고명딸인 저에게는 그리 전화도 자주 하시지 않았는데...
미국에 와서 구미호는 늦은 감은 있었지만, 개훈련 학교에도 다니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곳저곳 산책도 다니고, 목장에 있는 말도 구경하고, 동네에 불쑥 나타난 사슴들을 보고 기겁도 하고, 다람쥐 쫓아 다니라, 두더쥐 찾느라 땅에 코를 박고 다니랴 정말 바빴지요. 그리고 어디에든지 데리고 다녔어요. 심지어는 결혼전 산호세에 있는 시댁에 인사드리러 갈 때에도 데리고 갔어요.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 갖혀서 평생을 살았던 구미호는 미국와서 참 희한한 경험을 많이 했지요. 자기 몸집보다 더 큰 기러기를 보고 제 뒤로 숨고, 캄캄한 밤에는 무서워 밖에도 나가지 못하던 구미호. 우리 어머니는 가끔 구미호의 안부를 묻는 동네 사람들이나, 친지들에게 말씀하셨지요. "우리 구미호는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니까.
혼자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갔지, 그곳에서 학교(개훈련 학교)도 다녔지. 이젠 한국말로 하면 잘 못알아 듣는데..." 그렇게 구미호는 딴사람, 아니 딴 강아지가 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전 자식 하나를 데리고 재가를 하듯, 구미호를 데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전부터 덩치 크고 시커먼 우리 남편(알라딘에 나오는 요정의 램프 지니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머리 박박 민것까지...)을 어려워 하던 구미호는 결혼하고 나서는 저의 말보다 남편 말을 더 잘들었지요.
보배가 태어나서는 좀 걱정을 했지만, 구미호는 아기가 울때마다 자기 다떨어진 곰인형도 옆에 가져다 주고, 자기가 제일 아끼는 먹다남은 뼈다귀도 가져다 주고 했는데... 2년전, 그러니까 보배가 첫돌을 넘기고 얼마되지 않았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보배는 하루 종일 구미호를 따라다녔습니다. 구미호는 저랑 놀고 싶어서 제 옆에 자기 수건도 가져다가 놓고, 침이 묻은 곰인형도 가지고 와서 던지고 달려가 물어오는 놀이를 하려고 제 손을 박박 긁기도 했지요. 그런데 보배는 그것에 아랑곳 없이 미호 수염좀 잡아 당겨 보려고 헤헤헤 하면서 졸졸졸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배가 잠깐 바닥에 옆으로 누워 있었는데 글쎄... 구미호가 보배의 등에다가 쉬를 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순간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야-----------------! 구미호-------!"하고 외쳤고, 때는 이미 늦어버렸지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니 혹시 등 뒤의 뜨끈뜨끈한 느낌이 좋았는지 깔깔 거리며 웃기까지 하는 보배의 옷을 홀딱 벗겨서 침대에 누이고, 잡지를 말아들고 구미호를 향해 미친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겨들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가 잘못했을 경우엔 종이를 말아서 입을 톡톡 때리라고 했지만, 저는 톡톡이 아니라 펑펑 때리고 말았지요. 구미호는 너무 무서워서 보배의 침대 밑으로 들어가 숨었고, 고래고래 나오라고 소리 지르는 제가 너무 무서워 거의 포복 자세로 기어나오며 벌벌 떨었습니다.
카펫을 청소하는 동안에도 전 계속해서 "미호야! 대체 뭐하는 짓이야, 이게!"하며 소리를 질렀는데, 홀딱 벗기 좋아하는 우리 보배는 저보다 더 큰 목소리로 자기 침대 난간을 붙들고 구미호를 향해 "야-! 야-!"하면서 좋아서 난리더군요. 아마 "미호야!" 이 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구미호는 그 벌로 그날밤 거실 자기 자리에서 자지 못하고, 이불까지 밖에 내동이쳐지는 바람에 현관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밤을 지새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제 눈치만 살살 보면서, 자기가 오줌싼 근처는 휘-잉 하니 돌아서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배가 3살.
보배는 구미호를 형제인양 대합니다.
구미호가 자기 등에다 오줌싼 일은 모르나봅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혹 새로 장난감을 사가지고 들어 온 날은 보배가 신이나서 집으로 뛰어들어오자마자 구미호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장난감 포장을 구미호의 코앞에 가져다 대고 뭐라뭐라 설명을 합니다. 가끔 제가 개밥 주는 것을 잊고 있으면 보배는 난리가 납니다. 늦게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는 미호에게 이리저리 위로의 말도 잊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구멍난 울타리 밑으로 집을 가출한 구미호를 찾아다니느라 제가 울고불고 할 때, 우리 보배도 따라서 엉엉 울며 동네방네 "미호--! 미호---!"를 애타게 부르며 다녔습니다.
늦은 나이지만, 더 늦기 전에 딸 하나 더 낳고 싶어하는 저에게 우리 신랑은 그럽니다. "우리 딸 있잖아, 구미호!"
어제부터 보배가 저에게 묻습니다.
"Mummy, you love Daddy?" "Yes"
"Mummy, you love 미호?" "Yes!"
"Mummy, you love 보배?" "Of course!"
보배는 활짝 웃습니다, "보배 loves everybody!"
그리고는 보배가 제일 좋아하는 토마스 트레인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미호의 코앞에 들이댑니다, "Do you want to play with me, 미호?"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다보니 우리집의 두 똥강아지들 얘기를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사진은 작년 봄 뒷마당에서 찍은 것이예요)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구미호와 보배
보배엄마 |
조회수 : 1,479 |
추천수 : 8
작성일 : 2005-10-19 15: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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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야!!!! 고~~옴
'05.10.19 4:37 PMㅎㅎㅎ 제 귓가에 mummy하는 보배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리는듯 해요. 구미호~~이름 어느분이 지으셨는지 참 잘지으셨네요. 구미호, 보배 둘다 넘넘 귀여워요..
2. 지우엄마
'05.10.20 12:32 AM그냥 보기만해도 사이가 좋아보이네요
파릇파릇한 잔디가 넘 이쁘구요3. Ellie
'05.10.20 7:23 AM너무 재미있고 가슴 따뜻해 지는 글이에요.
저도 우리 막둥이 보고 싶어요~
우리 막둥이는 저 아플때 밥도 안먹고 옆에 앉아 있었는데... ㅡ.ㅜ4. 아티샤
'05.10.20 10:52 AM7개월 아기때문에 힘들어 기운 빼고 있었는데
이글 보고 다시 기운충전!!
보배 엄마 고맙습니다~
미호와 보배 넘 예뻐요~5. 강아지똥
'05.10.20 11:56 AMㅠ.ㅠ
6. 름름
'05.10.20 12:10 PM코 끝이 찡하네요 ㅠㅠ
7. 오아시스
'05.10.20 3:01 PM미호야~~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라~~
보배도 이쁘구 건강하게 쑥쑥 자라거라~~^^8. 강두선
'05.10.20 9:27 PM참 좋은 인연이군요. ^^
9. 작은애
'05.10.20 9:41 PM저는 개를 좋아하지만 저희 시댁식구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집도 좁고 마당도 없고 아이는 둘이나 저는 일도 하는지라 감히 키울 엄두도 못내고 있답니다
전 강아지 오랫도록 키우신분 정말 존경스러워요
언젠가 남편에게 나중에 강아지 한마리 키우자고 얘기하지만 글쎄요
한 이십년 최면걸면 나중에 아이들 다 크면 되지 않을까요?10. 테라코타
'05.10.24 6:30 PM드라마 같은 따뜻한 내용이라서 행복하네요^^
고로 저도 행복합니다.11. 봄
'05.10.25 7:50 PM미국갈때 어덯게 갔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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