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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의 바다로 들어가는 길
intotheself |
조회수 : 939 |
추천수 : 14
작성일 : 2005-10-17 14:08:48
오래 전에 쓴 글을 다시 읽을 때
언제 내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었나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아서 당황하는 적이 가끔 있습니다.
요즘처럼 순간적으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아니면 오래 된 책을 다시 마치 새 책처럼 읽으면서 당황하는 때라
더 그런지도 모르지요.
철학에 대해서 나는 그 분야는 몰라,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어
이렇게 출입금지 팻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그런 사람들에게 슬그머니 그 빗장을 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올려 놓습니다.
>서양사의 바다로 들어가는 길
>
>
>철학이란 말을 들으면 보통 친숙함보다는 어렵다, 골치 아프다, 내겐 너무 어렵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은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한 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은 가치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고 그것이 깊이 생각하는 힘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지요. 나는 너무나 골치가 아프다고 회피하는 문제들이 언젠가는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내게 주목하라고 요구하는 시점이 되었을 때, 비로소 철학은 우리가 도망다닐 분야가 아니라 자주 고민하고 시간을 내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코드로 주목할 분야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
>이번 일년동안 여럿이 모여 서양문명의 역사를 읽고 있습니다. 그 때 제가 혼자 세운 계획이 한 가지 있는데 책의 목차에 맞추어 이름만 듣고 흘려버린 것들을 찾아서 읽어나가자는 것이었지요.
>고대사부터 그렇게 읽고 있으니 마치 저 혼자 대학교에 다시 다니는 기분을 느낍니다. 고대 문명의 경우 자료가 없다고 밀쳐두었던 분야인데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의외로 많은 자료가 있더군요.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대영박물관의 싸이트에 들어가 고대문명분야를 찾아 본 일입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글이 많아서 우선 영어가 쉽고 사진자료가 풍부하여 어떤 시기의 어떤 나라를 찾아도 주목할 만한 기록이 많았습니다.
>런던박물관의 싸이트에 가 보니 런던의 시기별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지배하의 런던의 경우에는 그 시기의 건축과 무기, 군인의 복장에 대한 것들이 나와 있어 영국사 초기를 아는 자료가 되더군요. 아이들과 읽는 영국사에 이런 것을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좀 덜 바쁘다면 참 다양한 수업이 가능하겠다, 인터넷을 교육에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
>페르시아라는 나라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알렉산드로스대왕을 다룬 소설을 읽으면서입니다. 그 작품은 알렉산드로스를 주인공으로 다룬 것이라 페르시아는 상대적으로 스쳐가는 역사로 기록되었지만 저는 이상하게 상대화된 페르시아가 아니라 그 나라를 정식으로 다룬 글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 마음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어느 날 서점에 가보니 키루스2세란 제목의 소설이 나와 있었습니다. 사실 고대사의 많은 기록이 있겠지만 그것이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을 따름인 얼마나 귀한 자료가 많을까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뒤집어 생각해보면 제가 젊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서점에 나오는 책들은 얼마나 다양하고 사진이랑 그림도 풍부하고 선명한 책이 많은지 놀랄 지경이긴 합니다. 그러니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새롭고 의미있는 책들을 찾아 읽고 소개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도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는 한 방법이 아닌가 싶어요.
>
>이렇게 시기마다 찾아 읽다가 보니 드디어 그리스에 왔습니다. 그리스는 서양문명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헬레니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이지요. 지금은 옛날의 영광을 잃어버린 나라이지만 그 나라가 서양문명의 기둥을 형성한 탓에 지금도 많이 연구되는 나라이지요.
>전 시기의 그리스가 아니라 주로 고전기라고 하는 기원전 5, 6세기가 중심이긴 하나 어떻게 문명이 태동되어 발전했으며 어떤 경로를 거쳐 멸망에 이르게 되었나 하는 것을 전반적으로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여러가지 자료를 읽고 있던 중 재미있는 책을 두 권 발견하였습니다.
>한 권은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것인데 원제목은 PERSPECTIVES IN WESTERN CIVILIZATION입니다. 역사에 관련된 좋은 책을 많이 펴내는 푸른 역사에서 낸 것인데 서양사 깊이읽기1이란 부제를 달고 있군요. 돈키호테 이후는 출간되었는지 아직 확인을 못 해 본 상태입니다.
>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을 모아서 편집한 형태의 책인데 이 책의 특징은 오히려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를 잘 아는 덕택인지 상당히 자세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글이 소설 읽듯이 잘 읽힌다는 것입니다. 서양사에 대한 개괄서를 읽고 무엇인가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책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지요.
>
>이 글을 시작하면서 철학에 관해 이야기했지요. 그러다 글이 삼천포로 빠진 셈인데 정작 소개하려던 책이 바로 그리스 로마 철학기행입니다.
>요즘 이상할 정도로 기행이란 제목의 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학기행, 역사기행, 음악기행,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프랑스의 성만을 다룬 기행, 심지어는 삼국지의 현장을 찾아서 다닌 중국기행도 나옵니다. 아니면 프랑스의 파리만을 대상으로 구석구석 누비고 다닌 것을 글로 쓴 사람도 있더군요.
>이번에 제가 읽은 그리스 로마 철학기행은 독일 부퍼탈 대학의 철학 교수인 클라우스 헬트가 서구 철학의 기원을 찾아서 다니면서 일반인에게 철학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부는 밀레토스에서 펠라까지, 2부는 페르가몬에서 이스탄불까지를 갔는데 처음 간 곳이 밀레토스인것은 우리가 흔히 탈레스는 물 이런 공식으로 외었던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탈레스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 곳에 가자마자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밀레토스의 지형을 설명하고 그 시기 그 곳이 어떤 상황이었나, 왜 그 시기에 하필 그 곳에서 밀레토스 학파라고 불릴만한 철학사조가 가능하게 되었나 하는 것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앗, 철학책 어려워 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좋은 책이고 철학이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어떤 시기에 어떤 필요에 의해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내겐 어떤 의미가 있나를 되짚어 보는 소중한 책읽기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밀레토스가 철학의 탄생지라면 그 다음에는 에페수스로 갑니다. 에페수스는 성서에서 에베소서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바로 그 곳이기도 합니다. 그 곳에서는 현대 사상에 영향을 많이 끼친 헤라클레이토스를 만납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만물은 유전한다, 한 번 들어간 강물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들은 기억은 있을 것 같군요.
>
>그 다음에는 벨리아와 패스툼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파르메니데스와 형이상학의 발생을 읽게 됩니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인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플라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고 철학사의 두 조류중의 하나의 기원이 되기도 하더군요.
>
>아그리젠토에 가면 우리가 원자론이라고 알고 있는 원소에 관한 사상을 만나게 됩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배운 사원소설이 어렴풋이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
>그 다음에는 델포이로 갑니다. 그리스 신화의 다신과 유일신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리스인들이 다신을 믿었지만 각 신에 대해 거의 유일신적인 특성을 부여했다는 점과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그리스인들과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의 거리에 대한 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실제로 어느 정도였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가 아는 그리스라는 것은 피상적인 이해에 그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각 신이 의미하는 것은 내세를 믿지 않던 그리스인이 생각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에 대한 바람을 신에게 투영한 것이라고 한 해석도 제게는 중요한 지적이었습니다.
>
>그 다음에는 올림피아를 거쳐 철학과 비극의 관계를 다룬 에피다우로스입니다. 이 곳은 최초의 야외극장이지요.
>저는 대학원 첫 학기에 처음 그리스 비극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너무나 비극적인 그 세계가 잘 이해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지요. 그저 수업으로 듣고 너무나 강렬하지만 비현실적인 세계라는 느낌을 받았고 잊혀지지 않는 것은 막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교수가 문학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전공을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공부를 하다가 좀 더 인생의 경험을 쌓은 나이인 40살이 넘고 나서 하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던 점입니다.
>그 때는 그저 스치고 지난 말인데 요즘 작품을 읽으면서 그 때의 그 이야기를 가끔 생각합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이런 작품들을 다시 제대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어떤 평론가는 자신이 어떤 작품을 평론할 자유도 있지만 어떤 작품은 다루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숱한 작품을 비평했지만 햄릿만은 손을 대지 않고 있다는 말을 쓰기도 했더군요.
>제게도 마치 손대지 못하는 성역처럼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좀 더 인생을 살고 나서 다시 읽고 싶은 글들이 있으니 꼭 비밀창고에 남몰래 저장한 보물을 갖고 있는 심정이라고 할까요?
>
>그 다음에는 시라쿠사에 가서 플라톤과 소피스트의 논쟁을 다룹니다. 시라쿠사는 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섬인데 이 곳이 제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한니발을 다룬 소설 속에 이 지역이 너무 자주 나온 곳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
>마라톤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철학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 이 장이 철학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귀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두 사람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피상적인 경우가 많아서 서양 철학의 양대 산맥이다라는 정도이기가 쉬운데 단순히 철학만이 아니라 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정치적인 인간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
>그 다음에는 아테네를 두 장으로 나누어 고대의 시장과 현대의 시장의 차이를 설명한 다음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교육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윤리학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지난 번에 처음 이 책을 샀을 때는 죽 읽고 그냥 책꽂이에 꽃아두었는데 이번에 새로 시기마다 다시 보충할 셈으로 책을 읽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읽었다고 생각한 책을 다시 읽는데도 너무나 새롭고 다시 읽는 책에서 느끼는 새로움이 참 크다는 점입니다. 지난 번에는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고요.
>서양 철학은 결국 이 세상만이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에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존재하는가 하는 존재론을 다룬 것과 지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다룬 인식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다룬 윤리철학이 기본을 이루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떤 배경에서 어떤 철학자가 그런 주장을 했고 그가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누구의 영향이며 어떻게 그 영향을 넘어서게 되었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독서가 되었습니다.
>
>세계관의 차이는 똑 같은 현상을 보는 것도 다르게 해석하도록 만들지요. 그러니 철학에서 알게 되는 그런 문제가 그저 머리 속의 유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철학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
>그리스 로마 철학은 2부로 되어있으나 저는 지금 그리스 시대를 통과하느라 1부만 다시 집중적으로 읽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것이 꼭 서양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나라, 혹은 어떤 시기를 정해서 다양한 분야의 글이나 화보를 보는 일이 있다면 색다른 글읽기가 되지 않을까 하여 제가 시도하고 있는 서양사 읽기를 소개했습니다.
>건축사여도 좋고 종교의 역사라도 좋고 미술사나 음악사, 경제사라도 좋습니다. 읽다보면 거의 모든 것이 하나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가 아니라 모든 길이 모여 역사가 되고 역사에서 여러 갈래의 길이 나누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재미가 있거든요. 열기만 하면 펼쳐지는 다채로운 세상이 있다는 점에서 책은 말 그대로 보물창고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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