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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견문록 - 2002.04.20
강두선 |
조회수 : 1,385 |
추천수 : 52
작성일 : 2005-10-11 16:04:47
몇 년 전,
청계천 재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쓴 글 입니다.
요즘 새 모습으로 탈바꿈한 청계천을 보고 옛글을 뒤져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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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20
< 황학동 견문록 >
토요일 오후.
모두다 퇴근한 빈 사무실.
창 밖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그냥 집으로 퇴근하기엔 웬지 아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었을 할까... 어디를 갈까...
그때 언듯 떠오르는 생각. 그래, 바로 그거야, 거기를 가보자.
황학동 벼룩시장.
평소 황학동 벼룩시장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오늘 마침 딱 걸렸습니다.
황학동은 회사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황학동으로 향했습니다.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디지탈 카메라를 어께에 둘러메고서...
신당동에서 황학동으로 접어드는 곳에는 옷가지와 가방, 신발들을 주로 팔더군요.
무조건 하나에 3천원이라는 옷가지더미에서 잠바를 이것 저것 들쳐보다
괜히 씰데없는거 샀다고 야단칠 집사람 생각에 슬그머니 내려 놓고 발길을 옮겼지요.
멋지게 생긴 가죽 손가방도 있더군요.
가상자리에 먼지가 뽀얗고 곰팡이까지 피었지만 잘 닦기만 하면
멀쩡하게 잘 쓸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이리 저리 둘쳐보자 주인 아저씨가 선심쓰듯 말합니다.
"만오천원 받아야 하는데 특벼리 만원만 주고 사져가여~"
잠시 망설이다 또다시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슬그머니 내려놓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몇발자국 걸어가다 보니 재미있는것이 눈에 뜨이더군요.
이 사진 자세히 보세요.
사진 중간쯤에 있는 시계와 그 위의 모형 대포 위에 있는 어떤 남자의 사진이 보이지요?
그게 무었인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0군단 00소속 000장군 진급 기념패이더군요.
장군 진급이면 하늘의 별을 딴것처럼 당사자 개인이나 가족의 대단한 경사이고
그것에 대한 기념패 일텐데 그것이 어떤 사연으로 돌고 돌아 이곳 벼룩 시장에
나와 앉아 있는지 묘한 느낌이 들더군요.
저 기념패도 한때는 호화로는 케이스에 담겨 멋진 장식장 안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을테지요.
벼룩시장은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만 많은것이 아니라 나이 많이 드신,
인생의 황혼을 지내시는 분들도 많으시더군요.
요즘처럼 매일같이 새로운 물건들이 넘치고 온통 젊은이들 위주로 굴러가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들의선배님들은 이곳 벼룩시장에서 옛향수와 동지애를 느끼시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핏 보면 도데체 물건을 팔기 위해 늘어 놓은것인지
아니면 쓰레기를 쌓아 놓은것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대부분 사용하지 않던 물건을 내다 버리거나 아니면 재활용 쓰래기로
버린것들을 주워다가 파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헐값으로 팔지는 않는것 같았습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저의 외모를 얼핏 살핀 후 가격을 말 하는데 결코 호락호락
싸게 말하지는 않더군요.
황학동에는 파는 물건만 낡은것은 아닙니다.
이곳은 서울시의 가장 심각한 재개발 지구중에 하나이지요.
저기 보이는 저 건물은 사진에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과연
저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낡고 허름 하더군요.
서울 중에서도 사대문 한복판 안에 저렇게 다 쓰러져 가는 낡은 건물이 크게 자라잡고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베란다를 살펴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것 같은 집도 있지만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역력한 곳도 많던데 이런곳에서 살려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이곳도 얼마 안있어 재개발을 할거라던데...
그렇게 되면 벼룩시장과 이곳을 근거로 생계를 꾸리는 이들은 어디로 갈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낡은 책들을 팔고 있는곳에 눈이 갔습니다.
20여년 전만해도 청계청 7가 8가는 원래부터 중고책방들이 많았지요.
고등학교시절, 학년이 바뀌면 어려운 살림에 참고서 살 돈이 모자라 중고책방을
많이들 찾았었지요. 요즘도 중고 책방이 있기야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이 사진좀 자세히 보십시요.
도데체 중고책방에서 조차도 팔것 같지 않은 것을 이곳에서는 버젓이 팔려고 내놨더군요.
'1972년 여성동아','1974년 주부생활' 그것도 너덜너덜 떨어진 잡지를 누가 살까요?
하긴 누군가 살지도 모르겠군요.
요즘 복고풍의 카페들이 유행이라던데 그런곳에서 소품으로 30년 전의 잡지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지요. 그런 소품에서 옛날의 향수를 느낄수도 있을테니까요.
옛날의 향수를 느낄만한것이 낡은 책 옆에 또 있더군요.
이게 무었인지 아십니까? 자세히 보세요...
바로 쥐덧입니다.
어린시절 정기적으로 쥐잡는 날 행사를 했던것을 기억하시지요?
그날은 읍사무소에서 쥐약을 나눠주고 온 동네 여기 저기 에 쥐덧을 놓고 한바탕
쥐잡이 행사가 요란했었지요. 저도 집에서 쥐덧으로 쥐를 잡았던적이 있었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으으~이~~ 소름이끼칩니다. 하하~
그런 생각하며 카메라로 살짝 사진을 찍는데 주인 아줌마가 남의 물건 사진을
왜 찍나며 화를 내더군요.
참 내~ 쥐덧 사진 하나 찍은걸 뭐라 그러긴...
화내는 아줌마 얼굴을 보니 생쥐와 비슷하게 생겼더군요. 하하~
황학동엔 여러가지 잡동사니 골동품도 즐비하더이다.
골동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여러가지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했습니다.
나막신, 목 기러기, 황소 방울, 향로, 돋보기 집, 부지깽이, 숯불다리미 요강 등등...
하나하나마다 오랜세월 누군가의 손에잡혀 요긴하게 쓰여졌을 물건들인데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본래의 용도와 달리 장식용으로 팔려가길 기다리는 모습을
보노라니 애잔한 슬픔이 밀려오더이다.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우리의 약장사 아저씨.
오늘은 만병통치약이 아닌 광약을 팔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누렇게 녹슨 놋쇠 조각들을 슥슥~ 문지르며 번쩍번쩍 광을냈지만
사람들은 별 관심없이 힐끔 쳐다보곤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흥을 돋우느라 목에 핏줄을 세우더군요.
녹슨 놋쇠조각 광내는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갑자기 출출해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서 식사를 했을지가 궁금하네요.
벌써 6시가 다 되가는걸 보니 그동안 4시간 꼬박 걸어다닌 셈입니다.
다리도 뻐근하게 아파와서 어디서건 앉고싶어 둘러보니 포장마차 국수집 눈에 띄였습니다.
낡은 건물의 계단 아래 틈바구니에 간이로 만든 포장마차.
그래도 이곳에서 17년 전통이라니 대단하지요?
멸치국물에 말은 국수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포장을 들치고 들어서자 의외서 사람이 없고 어떤 아저씨 혼자서 벽을 향해 앉아
외롭게 국수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아저씨의 어께가 몹시도 피곤해 보이더군요.
저 아저씨는 이곳에 어떤 일로 오셨을까요?
저처럼 기웃거리며 구경하러 오셨는지 아니면 어떤 절실한 일을 보러 오셨는지...
국수는 한그릇에 이천원이랍니다.
저도 선불 이천원을 내고 국수 한그릇을 시켰습니다.
아픈 다리도 쉴겸...천천히 먹었지요.
단무지 한조각과 멸치국물로 말아준 국수를 맛있게 후루룩 국물까지 다 마셨습니다.
17년 전통 답게 맛있는 국수였습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야할 시간입니다.
전철을 타기 위해 동대문 운동장 쪽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지요.
불과 10여분을 걸으니 황학동 벼룩 시장과 젼혀 다른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지더이다.
1960년대에서 단숨에 2002년으로 세월이 바뀐느낌이었습니다.
잠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듯한...
이곳이 젊은이들의 의류 쇼핑 천국이자 매일밤 불야성을 이루며
전국에서 의류상들이 모이는 곳이라지요?
이렇게 가까운곳에 두개의 세대가 함께 공존 한다는것도 묘한 느낌이군요.
이곳 새벽시장도 또 하나의 볼거리라던데 언제 아내와 함께 새벽에 다시한번
와 봐야겠습니다.
이곳까지 온 김에 기념으로 저도 사진 한장 찍어야겠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찍어달라기 쑥스러워 그냥 제가 찍기로 했습니다.
카메라 거꾸로 들고 랜즈를 저의 얼굴로 향하여 찰칵~!
이런...
그런데 얼굴이 잘리고 말았군요.
사진도 참 바보같이 찍었지요?
그래도 얼굴의 삼분의 일은 나왔으니다행입니다. 하하~
다리가 너무 아픕니다.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한 허약한 몸인지 반성을했습니다.
그때 길가에 즐비한 노점상 중에 눈에 띄는것이 있었습니다.
리어커 위에 하나 가득 한 열대 야자 코코넛. 평소 코코넛 열매 안에 있는 과수를
마시는 모습이 신기했었는데 막상 눈 앞에 보이자 저의 호기심이 쫑긋 했지요.
"자~ 막파라여~ 막파라~ 한개 처눤~"
리어커 아줌마의 쉰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에 잠시 망설이다 지갑을 열어
삼천원을 꺼냈습니다.
주이와 진이 그리고 아내. 다들 얼마나 신기해 할까요?
모두들 바삐 어디론지 흘러가는 인파에 섞여 코코넛 담은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습니다.
도착한 전철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내려 전철 안은 한산하더군요
운 좋게도 자리가 나서 얼른 앉았았지요.
자리에 앉자 몸이 나른하고 졸음이 옵니다.
건너편에 앉은 저들도 무척이나 피곤한 모양이네요.
연인인듯한 저들은 무슨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는걸까요?
발 아래 놓은 검은 비닐봉지를 발로 고정 시키며 코코넛 보며 신기해 할 진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집까지 거의 한 시간을 더 가야 할테니 가방에서 읽던 책을 꺼내 펼쳐봅니다.
그러나 글은 안 보이고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
이래서 또 하루가 저물어 가는군요.
----강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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