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이 한 권의 책-거침없는 그리움

| 조회수 : 1,483 | 추천수 : 13
작성일 : 2005-10-07 01:46:12


오늘 사서 오늘 하루 동안에 다 읽어버리고 아쉬움이 남아서

그 책속에 소개된 그림과 화가들을 찾아보다가 쓴 글입니다.

오주석님이 김홍도의 마상청앵도에 대해서 쓴 글을 검색해서 찾았거든요.

함께 보실래요?




책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어서

마치 연애소설 제목같은 느낌이 드는

거침없는 그리움은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의 바로 그 저자가 새로 쓴

에세이집입니다.

오늘 서점에 갔다가 이 책과

영화,그림 속을 걷고 싶다

이렇게 두 권을 사들고 왔는데

오늘 거침없는 그리움을 다 읽고 말았네요.

조금씩 아껴서 보려던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그림에 끌려서

다른 한 편 이야기에 끌려서

마지막 책장을 닫을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늦은 밤인데도

그림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 와중에서 만난 오주석님의 글을 혼자 보기

아까워서 복사해서 올려놓습니다.





나그네가 문득 섰다. 앞다린 우뚝한데 뒷다리가 아직 어정쩡한 말을 보니 막 고삐를 당겼다. 무언가? 선비는 순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구종 아이도 덩달아 시선을 옮긴다. 고요한 봄날의 정적 속에 “삣! 삐요꼬 삐요!” 환하게 퍼지는 소리가 지척간 버들잎 사이에서 들린다. 온몸에 황금빛이 선명한 꾀꼬리 한 쌍! 가만히 숨죽인 선비는 ‘말 위에서 꾀꼬리의 갖은 소리 굴림을 듣는다(馬上聽鶯)'. 참 맑고 반가운 음성, 생각 밖의 곱고 앙증맞은 자태. 저 꾀꼬리에 앗겨 일순간 멍해진 선비 마음은 마치 그 뒤편 망망한 여백인 양 아득하다. 시(詩) 한 수의 흥이 솟는다.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시 짓는 선비 술상 위에다 귤 한 쌍을 올려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 실버들 물가를 오고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 봄 강에 고운 깁을 짜 놓았구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이 한시는 김홍도가 지은 것이 틀림없다. 꾀꼬리의 절묘한 가락이 꽃 아래 여인이 부는 생황의 봄 노래가 되고, 황홀한 자태는 아찔해 술기운 오른 시인의 주황빛 귤 안주가 되었다. 그리고 버들가지 사이로 오르내리는 움직임을 열심히 따르다보니, 지금 촉촉이 강가를 적신 보슬비의 주인공이 결국은 꾀꼬리임을 알았다. 시는 그림 그대로요, 그림은 한 편의 시가 아닌가?① 북송의 소동파는 왕유(王惟 )의 그림을 일컬어“남전(왕유의 호)의 그림에는 시가 들어 있고 시 속에는 그림이 들어 있다”고 했다. 왕유의 진작은 남아 있지 않으나, 소동파의 이 말은 그대로 동양 문인화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미학적 기준이 되었다.
그랬구나! 저 텅 빈 여백은, 이 봄날의 아슴푸레한 안개와 보일 듯 말 듯한 실비는 모두 꾀꼬리 네가 짜서 드리운 고운 깁이었구나! 나그네는 지금 봄비를 맞고 있다. 꾀꼬리 음성에 마냥 취한 탓에 속옷 젖는 줄도 모르고 있을 뿐…. 호젓한 시골길 푸나무가 흐릿한 것도, 꽃 이파리를 흩뿌린 듯 툭툭 쳐낸 버들잎 사이로 가늘고 긴 실가지를 굳이 그려내지 않은 것도, 모두가 흐는한 봄비 속의 정경인 까닭이었다. 하지만 저 꾀꼬리인지 병아리인지 알 수 없게 대충 그린 익살스런 새 모습하며, 범범하니 쓱쓱 그어대 마치 흘러내린 술 자국처럼 넉살좋게 마감한 버드나무 둥치는 아무래도 좀 지나친 듯싶다. 이건 어쩐 일일까?
엔 누룩 냄새가 풍긴다! 글씨를 보라. 벌써 몇 잔 술이 돌아서 필체가 느슨하면서도 호방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큼직한 내면의 감각이 살아났다. 이따금씩 짙고 큰 글씨들이 운율적으로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행을 건너뛰어 사선으로 연결되었다. 아래쪽 길은 삼중의 빗금으로 구성되었고, 버들가지와 선비의 시선 역시 비스듬히 이어지므로 저 멀리 막막한 여백 건너 메아리처럼 울리도록 써낸 것이다. 구도는 더욱 기막히다. 무심코 화폭 가운데 눈을 두고 작품을 감상하자면, 우리는 기품 있게 고개를 쳐든 점잖은 선비와 눈길이 저절로 마주친다. 온화한 선비의 표정을 보며 우리는 봄이, 영원한 봄이 그 안에 깃들여 있음을 본다.


  


  
문인화란 무엇인가? ― 김홍도의 선비 그림 비밀 찾기  

·김홍도는 선비인가 : 문인화란 선비의 그림이다. 사람들은 대개 김홍도를 화원(畵員), 즉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린 전문 화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 그는 여느 선비 못지 않게 풍부한 교양을 쌓은 인물이었다. 우선 의 형식을 보자. 그림 내용과 똑 떨어지게 지어낸 저 놀라운 감각의 한시는 바로 그의 작품이다. 또 글씨를 보라. 유려하면서도 교태가 없는 천진스러운 서예 역시 그의 솜씨다. 시와 글씨는 그림 자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가히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②의 세계, 문인화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 ②시·서·화를 모두 빼어나게 잘 하는 이를 일러 ‘삼절’이라 했다. 소동파는 삼절의 전범이었고, 삼절은 군자, 즉 성리학적 인격의 완성과 나란한 선비들의 이상이었다.김홍도는 화원으로 출발했지만 실제 사대부(士大夫)라 자부할 만한 삶의 경력도 쌓았다. 만년에 현감 벼슬을 역임한 것이다.

‥그림에서 무엇을 보는가 : 문인화 하면 사람들은 흔히 점잖은 남종(南宗) 산수화나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부터 떠올린다. 그것들은 흔히 수묵으로만 그렸거나 혹은 옅은 채색을 곁들인 수묵 담채화(淡彩畵)인 경우가 많다. 산수나 사군자가 문인화를 대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꽃과 새를, 인물을 그린 문인화가 없지 않고, 또 화려하게 채색을 쓴 작품이라 해서 문인화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재, 기법 같은 형식이 아니라 화가의 정신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무엇을 느끼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인화에서 무엇을 보는가? 작가를 본다. 한 인간을 본다. 소재가 소나무건, 대나무건, 꽃과 새, 심지어는 소나 말, 그리고 거창한 산수라 할지라도 화폭 속의 사물은 그저 보이는 외양의 사물에 그치지 않는다. 언제나 작가 그 사람만의 독특한 내면 풍경으로 환원되는 까닭이다.

…선비의 얼굴, 선비의 일상 : 김홍도는 에 자신을 그렸다. 반듯한 얼굴, 총명한 눈빛, 당비파를 연주하는 앞쪽에 생황까지 놓여 있어 음악을 극히 애호했던 일상이 엿보인다.―또 다른 자화상 에서는 정악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주변에 문방사우(文房四友)와 서책, 완상용 자기와 청동기, 술 든 호리병과 옛 시인이 시(詩)를 썼다가 그냥 개울물에 띄워버렸다는 파초 잎 등이 있어 화가의 인물 됨됨이를 말해 준다. 구석에 놓인 칼은 삿된 것을 멀리하는 정기(正氣)를 상징한다. 사방관을 썼으니 예(禮)를 아는 선비로되 드러난 맨발로 초탈한 심사를 엿보게 하니, 그 마음은 단번에 쓱쓱 그어 댄 화폭 속 윤곽선과 꼭 닮았다. 거리낌없는 붓질, 그러나 고도로 훈련된 서법의 필선이다.“종이 창에 흙벽 바르고 이 몸 다할 때까지 벼슬 없는 선비로 살며 시가(詩歌)나 읊조리련다. 단원(紙窓土壁 終身布衣 嘯 其中 檀園)”이라는 화제(畵題) 역시 속을 후련하게 씻어낼 듯한 필세(筆勢)를 보여 준다.

‥‥내면의 소리, 내면의 풍경 : 예로부터 문인화를 감상할 때면 매양 작가의 인품을 함께 거론하기 마련이었다. 그림 한 점을 보고서 어떻게 화가의 인품을 평가할 수 있는가?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 홀로 거문고를 뜯는 선비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문인화란 그저 가슴속 정을 풀어헤쳐 본 것이지 원래 누군가 남이 보라고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술 마시고 그린 그림은 비 오는 날 낮게 잦아드는 정악 거문고 소리와 꼭 같다. 자신만의 내밀한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하고 순수하다. 문인화의 표현이란 차라리 모자랄지언정 넘치는 것이 될 수 없다. 차라리 어눌할지언정 웅변적일 수가 없다. 문인화는 사고 팔지 못한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두런거리는 혼잣말이다. 문인화에서는 미태(媚態)가 떠도는 점을 가장 꺼린다. 예쁘게 꾸밈이란 거짓인 까닭이다. 이런 문인화를 보고서 인간의 품성을 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에게 성실한 그림 : 는 텅 비었다. 선비와 아이만 바늘처럼 가는 붓질로 그렸을 뿐 주변 사물과 정경은 너그럽게 펼쳐졌고 무(無)로 환원된 배경은 희붐한 봄비 속에 아스라하다. 화폭 삼분의 이가 여백이다. 유(有)는 무의 표면을 겨우 떠돈다. 늙은 그림이다. 사위는 고요해서 꾀꼬리 소리 아득히 들릴 듯한데, 고즈넉히 다가오는 것은 오히려 적막감이다. 비가 오지만 화가는 빗방울을 그리지 않았다. 버들가지 선조차 없다. 그래도 S자로 굽이치는 잔가지에는 봄빛이 떠돈다. 형상을 극소화하고 상상은 극대화함으로써 감상 행위가 살아 숨쉬게 한다. 그러므로 는 한 편의 시다. 문인화에선 감상자가 먼저 작품에 다가가서 화가를 만나야 한다. 화가는 자신에겐 성실하지만 보는 이에게 친절하지 않다. 말 앞다리 포개진 곳에 단원은 보일 듯 말 듯 실낱같이 가는 선 두 개를 덧 그렸다. 심드렁한 표정의 말, 이런 미물의 무릎 위에도 정 많은 화가의 시선은 머물고 있다. 단원은 취중이지만 맑게 깨어 있다. 꾀꼬리 가락에 넋을 앗긴 선비, 그 표정은 담담하고 온화하다. 물 흐르듯 마음이 평온해 과장은 어디에도 없고 표현은 중용을 잃지 않았다. 버드나무 둥치 엉성한 듯한 윤곽선에도 붓의 중심은 바로 서 있다.

……깊은 마음, 간결한 표현 : 저 선비는 김홍도다. 의 늙은 소나무가 추사 김정희, 의 폭설에 짓눌린 소나무가 능호관 이인상, 아지랑이 어린 단아한 자태의 가 자하 신위 자신인 것과 마찬가지다. 속의 단원과 비교해보면 수염 모양까지 꼭 같은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를 보고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黃鳥歌)를 연상할 수 있다. “펄펄 나는 꾀꼬리는 / 암수가 정다운데 / 외로운 이 내 몸은 / 뉘와 함께 돌아가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봄 꾀꼬리 소리에 젊은 남녀의 연정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보는 이의 자유일 뿐. 나는 또 저 선비 옷자락의 칼칼하게 모가 선 매무새를 보면서 선비 아내가 얼마나 정갈한 사람인가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역시 상상일 뿐이다. 어쩌면 이 무렵 노년의 김홍도는 그 부인을 먼저 앞세웠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에는 이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오랜 삶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늘 그렇게 찾아오는 봄이 있고, 앳된 신록의 자연이 있고, 보슬비 속 꾀꼬리, 그것에 새삼스럽게 경이로움을 느끼는 한 인간이 있다. 화폭에 떠도는 점잖은 기운(氣韻), 마음은 깊지만 간결한 표현, 이렇게 단원은 자신의 가슴속을 스쳐간 한 순간의 정을 그렸다. 개성을 조금도 내세우지 않았지만 더 거대한 개성으로 영원성에 근접한 조형 세계, 이런 그림을 나는 문인화라 생각한다.

…‥‥삶의 진실 : 는 풍속화다. 하지만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한 선비의 내밀한 삶을 드러낸 문인화다.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眞景時代)에는 이른바 선비의 문인화조차 이처럼 고답적이지 않고, 삶의 진실에 가까웠으며 솔직하고 건강했다. 문화의 중심에 늘 우리 자신이 존재했었다.
  
      


      
  오주석 |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코리아 헤럴드 문화부 기자를 거쳐,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12년 간 학예연구원을 지냈다. 지금은 연세대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 지은 책으로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단원 김홍도』(1998년 문화부 선정 우수 학술 도서) 외 여러 권이 있다.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2852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1 도도/道導 2024.11.29 331 0
    22851 눈이 엄청 내린 아침, 운전하다가 5 ll 2024.11.28 769 0
    22850 눈이 오면 달리고 싶다 2 도도/道導 2024.11.28 380 0
    22849 첫눈이 너무 격정적이네요 5 시월생 2024.11.27 827 0
    22848 2024년 첫눈입니다 2 308동 2024.11.27 611 0
    22847 거북이의 퇴근길 4 도도/道導 2024.11.26 596 0
    22846 홍시감 하나. 8 레벨쎄븐 2024.11.25 743 0
    22845 차 안에서 보는 시네마 2 도도/道導 2024.11.24 566 0
    22844 아기손 만큼이나 예쁜 2 도도/道導 2024.11.23 799 0
    22843 3천원으로 찜기뚜껑이요! 7 오마이캐빈 2024.11.23 1,608 0
    22842 대상 무말랭이 8 메이그린 2024.11.21 1,242 0
    22841 금방석 은방석 흙방석 보시고 가실게요 6 토토즐 2024.11.21 1,275 0
    22840 보이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2 도도/道導 2024.11.21 361 0
    22839 시장옷 ㅡ마넌 28 호후 2024.11.20 8,706 0
    22838 섬이 열리면 3 도도/道導 2024.11.19 607 0
    22837 ..... 3 꽃놀이만땅 2024.11.18 1,403 0
    22836 민들레 국수와 톡 내용입니다 김장 관련 4 유지니맘 2024.11.17 1,809 4
    22835 사람이 참 대단합니다. 4 도도/道導 2024.11.16 772 0
    22834 11월 꽃자랑해요 2 마음 2024.11.16 676 0
    22833 목걸이좀 봐주세요.. ㅜㅜ 1 olive。 2024.11.15 1,241 0
    22832 은행 자산이 이정도는 6 도도/道導 2024.11.14 1,249 0
    22831 특검 거부한 자가 범인이다 2 아이루77 2024.11.14 315 2
    22830 새로산 바지주머니에 이런게 들어있는데 뭘까요? 4 스폰지밥 2024.11.13 3,349 0
    22829 최종 단계 활성화: EBS 경보! 군대가 대량 체포, 전 세계 .. 허연시인 2024.11.13 368 0
    22828 비관은 없다 2 도도/道導 2024.11.13 375 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