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한 책이 나오자 아이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바로 공부가 즐겁다고요? 였지요.
그래,공부가 정말 즐겁지 않니? 아,선생님은 사오정이에요.
사오정이거나 말거나 그래도 즐거운 것은 사실이지.
그리곤 왜 즐거운 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어떤 경우는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생기기도 하더군요.
오늘 아침 조용한 시간에 마루에서 차가운 기운이 있는 바닥에 엎드려
김대진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읽었던 옛 공부의 즐거움
그 책이 제겐 차가운 샘물같아서 한 번에 읽지 않고
읽은 글을 다시 읽고 다시 한 꼭지 읽는 식으로
아끼는 과자처럼 맛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글의 큰 세 장의 제목이 하나는 옛그림속을 거닐다
다른 하나는 옛사람 사이에서 노닐다, 마지막 하나는 옛글의 향기에 취하다인데요
옛 사람 사이에서 노닐다의 첫 장이 바로 연암의 시대를 꿈꾸다이지요.
자신이 살고 싶은 시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시대
연암과 다산과 추사가 살았던 시대로 가고 싶다고
아,나랑 생각이 이렇게 똑 같은 사람이 있구나 공연히 마음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옛 글의 향기에 취하다에서는 마음을 사로잡은 한 구절이란 글이 가장 먼저 나오는데
여기서는 채근담의 한 구절과 황지우의 시 한 편을 연결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군요.
그런데 이 사람이 경제부 기자가 맞아? 할 정도로 고전을 읽어내는 마음자락이나
솜씨가 일품입니다.
아마 그가 고전학자였더라면 제 마음의 울림이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황지우의 시 그리움2를 찾으러 들어왔다가 그 시는 못 찾고
다른 시들을 읽었습니다.
일 포스티노 /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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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 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비 개인 여름 아침
김광섭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마음에 향기를 가득하게 해 준 글을 읽은 날 아침
대나무 그림을 찾아서 보게 되는군요.



묵죽하면 유덕장의 묵죽이 떠올라 찾아보니 마침 올라와 있는 작품이 있네요.


정조 시대의 옛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에 산다면 좋겠다는 말을 하자
함께 있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말을 받습니다.
꼭 그 시절로 돌아갈 필요가 뭐가 있는가?
우리가 모여서 하는 공부가 바로 그런 시절을 만들면 되는 것이지
앗,소리가 절로 나는 명언이네요.
그 뒤로 가끔 그 말을 생각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시절을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음을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해도
갖고 있는 최대한을 부어서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를 모아 양질의 전환법칙을 이루는 것
그 자리에서 만족하지 않고
다시 또 다른 걸음을 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