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덕수궁에 다녀왔습니다.
집에 와서 harmony님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 전에는 무엇을 읽었나 싶게
생생하게 읽히네요.그러니 우리가 경험하기 전의 독서란 어찌보면 상당히 피상적인 글읽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몸을 생각해서 그냥 버스를 타고 한없이 자면서 갔지요.
일찍 도착하여 늘 그냥 지나치던 덕수궁을 거닐었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석조전뒤에 호젓한 숲길 (숲이라고 하기엔 작은 규모이지만 아마
이 길을 고종황제도 거닐었을까 그런 상상을 하기도 하면서) 이 나오네요.
들고 간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을 한동안 새소리와 더불어 읽었습니다.
열한시가 다 되어가자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도심 한 복판에서
고즈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곤 들어가서 4곳의 방을 두 번씩 돌아다니면서 보았지요.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의 다른 느낌에 주목하면서..
마침 덕수궁에서 홈페이지를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들어와서 다시 보는 중입니다.
www.deoksugung.com에 들어가시면 전시를 직접 못 가보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고 전시회에 가기 전에 미리 보는 효과,다녀와서 다시 보는 효과를
다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만난 화가는 페르낭 레제였습니다.
페르낭 레제, 담배 피우는 사람, 1911,64.9x49.5
레제, 페르낭 Leger, Fernand
1881년 프랑스 노르망디 아르장탕 출생-1955 프랑스 사망
화가이면서 건축가이기도 했던 레제는 1차 세계대전에 프랑스
군인으로 참전했다. 전쟁이란 공포스러운 것이나 레제는 참전했던 시기를
통해서 오히려 평범한 많은 사람들을 알 수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회고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서 레제는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이미지들을 이용해
현대 생활의 여러 모습들을 그려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완전한 추상은 아니지만 항상 현대미술의 최첨단의 성과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왔다.
1905년경의 레제의 초기 작품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1907년에는 브라크의 작품을 보았고, 이외에 세잔, 피카소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레제는 자신만의 독창적 양식을 발전시켰지만 여기에는 구성과 구조를
핵심적인 것으로 여기는 큐비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레제는 색채를 고유의 실제를 가지고 감정적인 의미를 지닌 시각적 요소라고
생각했다. 1911년부터 그의 작품은 더욱 추상적으로 변화했고 색채는 삼원색에
검정과 흰색을 더한 색만으로 제한하여 사용했다.
레제의 초기 작품은 색채와 형태를 대조시키는 특징을 보인다.
그의 화면에서는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 둥근 형태와 사각의 모양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1차 대전을 경험하면서 레제는 기계적 사물의 시각적 아름다움,
"금속의 표면에 반사된 햇살의 마법"에 눈을 떴다.
레제는 1931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2차대전 동안에는 뉴욕에 거주했지만
전후에는 파리로 되돌아왔다. 유화, 구아슈, 석판화, 책의 삽화와 프레스코 벽화
제작 외에도 레제는 발레 의상과 극장 무대를 디자인했다.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 1923-24년에는 만 레이와 더불어 최초의 추상 영화
'기계의 발레Le Ballet mecanique'을 제작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다름 아닌
기계와 같은 사물들이 발레를 추는 무용수와 배우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 다음이 몬드리안인데요 완전 추상으로 가기 이전의 작품입니다.
피에트 몬드리안, 회화 lll,타원형 구성(나무), 1913,94x78
몬드리안, 피에트 Mondrian, Piet
1872년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출생-1944년 미국 뉴욕 사망.
몬드리안의 초기 화풍은 인상주의 양식을 보여주며,
이후 암스테르담 시기(1892-1911)과 파리 시기(1912-1914)를 거치면서
상징주의와 야수주의,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형태는
더 조직적으로 변화하고 색채는 밝아지게 되었다. 1차대전 중에는
네덜란드에 머물렀는데, 1915년 이곳에서 최초로 추상에 상당히 가까워진
작품을 그렸다. () 바다를 추상화한
이 시기의 작품은 흰색과 검정이 주조를 이루는 기하학적 분할 화면을
보여준다. 몬드리안은 1917년 반 뒤스뷔르흐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아방가르드 예술가 단체인 '데 스틸(De Stijl)' 에 참여하였다.
이들이 발행한 동명의 정기간행물에는 몬드리안을 비롯해 반 데어 레크,
건축가 오우드, 얀 빌스, 반 토프 등의 글이 실렸고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미술적 형식을 추구하도록 자극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Theosophy)에
강한 영향을 받아, 신플라톤주의의 ‘순수한 이미지’가 가진 정신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관한 이론적인 글을 쓴 바 있다.
완전한 추상미술은 기하학적인 형태, 직선과 삼원색의 요소들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이루어진 구성은 진실함, 순수성, 단순함과 대조적인 것들의
조화라는 특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8년부터 몬드리안은 검은 색의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캔버스를 나누고
적, 황, 청의 삼원색과 백, 흑, 회색의 무채색만을 이용한 엄격한 양식의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40년 이후 몬드리안은 뉴욕에 거주했다.
뉴욕의 활기 넘치는 도시 가운데서 작가는 기존의 조심스럽게 조율된 엄격한
추상양식을 작은 색면과 리드미컬한 격자 패턴의 회화로 변화시켰다.
(1943)과
(1944)가 그러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는 추상적 구성을 이용해 현대적 메트로폴리스의 리듬과
에너지가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를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지난 번에 덕수궁에 다녀온 하모니님의 글에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가 있길래
그 그림을 만날 수 있나 보다고 기대하고 갔는데 그 작품은 없더군요.
아쉽게도.
그래도 언젠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요?
일층 첫 전시실에서 만난 프랭크 스텔라입니다.
미술사 책에서만 만나다 실제 그림을 보아서 그런지 참 반갑더군요.
그 곳에서 만난 그림들과 설명을 다 읽자면 또 잠을 설치게 될까봐
우선 제 기억에 강하게 남은 작품들 위주로 보고 있는 중입니다.
프랭크 스텔라, 레 쟁드 갈랑트, 1967, 160x320
스텔라, 프랭크 Stella, Frank
1936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 몰던 출생
1958년에서 60년까지 제작된 스텔라의 검정색과 회색의 회화는 미니멀 아트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에서 환영주의적 형태는 모두 추방되고 캔버스는
다만 규칙적으로 평행한 선으로 덮인 하나의 표면에 불과할 뿐이다.
회색 회화에서 스텔라는 알루미늄 페인트로 칠해진 띠를 그렸는데,
이 띠는 캔버스 안에서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 끝에서 문자그대로
'열려진' 상태로 남겨진다. 색띠의 사이는 칠이 되지 않은 일종의 홈이다.
사각의 캔버스 형태를 벗어난 "세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는 이러한
색선의 패턴 구조에 토대를 두고 형태가 결정된다. 회화의 두께 또한 전체적인
구성의 기초가 되는 요소인데 보통 색띠의 너비와 똑같이 만든다.
스텔라는 회화란 하나의 구체적이고 동일한 평면이어야 할 뿐, 환영주의를
추구하거나 개인적인 표현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신이 보는 것은 다름 아닌 눈앞에 보는 바로 그것일 뿐이다.
(What you see is what you see)" 라고 언급한 바 있다.
1964년의 은 하나의 특정 색채가 도포된 L, T, U 자 형태와
V자와 다각형태가 조합된 형태를 반복해서 제작한 것이다. 1966년 이후에는
원형과 사각형 모양이 색띠에 결합되었다. 1970년부터는 스텔라는 평평한
표면을 버렸고, 이제까지 평면으로 고수했던 표면에서 공간 속으로 돌출해 나와
부조와 같은 회화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발연섬유판(masonite)이나 하드보드위에
그려졌지만 74년부터는 알루미늄과 강철이 이용되면서 자유롭게 바로크적인
형태의 패턴이나 뿌리기 기법을 시도했다. 어떤 것은 벽으로부터 떼어내 조각처럼
바닥위에 세워두기도 했지만 작가는 이것을 회화라고 불렀다.
카라바치오의 회화에서 환영적 방식으로 얻어냈던 표현적이고 드라마틱한 성격을
스텔라는 추상을 통해서 추구했고 그 귀결점은 삼차원적인 조각이었던 셈이다.
도널드 저드입니다.
처음 그의 작품앞에 섰을 때의 당혹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현대미술과의 만남은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것도 미술이라고 할 수 있나?
그래서 닥치는대로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고 조금씩 보이는 재미에
현대미술을 보러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좋아하는 작품들도 많이 생겼고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현대란 지금 동시대라기 보다는 미술사에 나온 현대라고 할 수 있더군요.
2층에서 본 작품들에 대해선 아직도 소화불량이라고 해야 할까요?
도널드 저드, 무제, 1980,291x68.5x61
저드, 도널드 Judd, Donald
1928년 미국 미주리주 익셀시어 스프링스 출생- 1994년 미국 뉴욕 사망.
저드는 추상표현주의가 뉴욕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었던 195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하였으며, 1960년대 초에는 최초의 삼차원적
'오브제' 작품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또한 올덴버그, 모리스, 챔벌레인, 스텔라,
플래빈과 같은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미술비평을 저술하기도 했다.
1964년의 "특수한 오브제Specific Object"라는 제하의 유명한 글에서,
후에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불리울 작품에 대한 개념들을 요약해냈다.
작가에게 있어서 미술작품은 회화 혹은 조각이라는 기존 장르의 하나가 아니라,
자체의 내적 논리와 구조를 지닌 ‘오브제object’여야 했다. 현대의 미술작품은
일체의 상징주의, 개인적 감정이나 형이상학적 명상을 제거해야 하며, 회화에
있어서는 환영주의(Illusionism)와 손 작업이 가져올 흔적마저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드는 1963년 자신의 삼차원적 구조물에 '특수한 오브제'의 성격을 부여한 상자 형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조각' 아닌 조각은 기능이 부재한 미(美)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미술로서 인지될 수 있었다. 작가가 선호한 재료는 번쩍이는 재질의 철강,
알루미늄, 플렉시글라스와 같은 차가운 산업적 재료들이었지만 1972년 이후에는 합판
같은 비교적 부드럽고 따뜻한 재질을 사용했다. 작가는 이러한 재료로 만든 기하학적
형태들을 독립적으로 혹은 여러개를 연속시켜 작품을 구성했다.
형태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구성하는 저드의 방식은 색채의 사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생애 마지막 15년간에 제작한 작품들은 색면의 패치워크처럼 조합해낸 금속 구성물이었다.
저드는 현대미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이다.
회의적 경험주의의 성향으로 인해 작가가 믿었던 것은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이었다.
1983년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바 있다.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가치가 붕괴되고 있다. 거대한 철학체계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2번째 전시장에서 만난 표현주의 그림들
저는 두 번째 전시장이 가장 인상적이고 즐겁게 본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야불렌스키인데요 실제 작품과 여기에 올라온 작품의 색감이 상당히 다른 느낌이네요.
블라맹크입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샤투근처의 마을, 1906, 60.5x73.5
드 블라맹크, 모리스 De Vlaminck, Maurice
1876년 프랑스 파리 출생-1958년 프랑스 뤼에유 라 가데리에르 사망
블라맹크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자전거 경주 선수였으며 바이올린 연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에게 전업화가로 나서라고 격려했던 이는 화가
드랭(Derain)이었으며, 이후 블라맹크는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다.
르네상스와 고전적인 '보자르(Beaux-Arts)'적 전통을 경멸하고 거부했던
그의 그림에는 1900년경 이미 거친 색채와 요동치는 붓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1901년 반 고흐의 전시를 본 후 더욱 표현적인 성격으로 발전했다.
그는 이 전시에서 만난 마티스 및 야수주의 화가들과 더불어 1905년 살롱 도톤느에
참가했으며, 칸딘스키는 블라맹크를 뮌헨에 초대한 바 있다.
1912년에는 런던에서 후기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야수주의 시기의 블라맹크는 마티스나 드랭과 달리 튜브에서 물감을 곧바로 짜
발랐다. 그래서 색채는 더욱 강렬하며, 두텁고 거친 붓터치는 형태나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비정형의 열정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블라맹크는 이전의
미술에서 그려졌던 모든 것을 지우고 싶어했으며 오로지 순수한 자신의 감정만을
그리려 했다. 1906년에는 세잔에 흥미를 가졌고 곧이어 큐비즘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파리 화단에 원시 미술을 도입하려 했다. 이후 그의 밝은 색채는 음울해졌고,
그림은 좀더 전통적인 양상을 띠었다. 그는 파리에서 벗어나 반 고흐가 살았던
오베르(Auvers)로 이주했고 후에는 베르뇌이유(Verneuil)로 옮겼다.
회화 이외에 블라맹크는 시와 산문을 쓰기도 했고, 무대배경을 그리기도 했으며
타피스트리 만화 디자인과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드 쿠닝의 이 작품을 본 것도 의외의 소득이었습니다.전혀 예상치 못한 그림을 만나는 일의
즐거움이란 ..
월럼 드쿠닝, 몬토크 IV, 1969, 153x123
드 쿠닝, 윌럼 Willem de Kooning
19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생
윌럼 드 쿠닝은 1926년 미국으로 이주했고,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추상표현주의의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드 쿠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화를 그리는 과정의 육체적인 측면이었다. 그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빠른 붓질로
물감을 반복하여 겹쳐 바름으로써 격렬한 운동감이 가득한 화면을 창조했다.
드 쿠닝에게 영감을 준 최초의 것은 활기 넘치는 거대도시 뉴욕이었다.
1963년 롱아일랜드로 이주한 후에는 사막과 해변, 바다와 청명한 태양광선이
가득한 새로운 자연 환경을 만났고 이는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부터 70년대의 작품에는 특유의 표현적인 붓질과 밝은 색채로부터
롱 아일랜드 해변의 빛과 기후가 강하게 연상된다. 1977년의
(Untitled Ⅷ)과 같은 작품에서는 때로
물고기나 작은 배와 같은 구상적 요소도 찾아볼 수 있다. (1963)은 시인 호머를
참고한 제목이다. 호머는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을 태양이 그녀의 긴 핑크빛
손가락으로 지구를 쓰다듬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라우스 포인트는 롱아일랜드에 있는
반도의 이름이다. 회화 분야 외에도 드 쿠닝은 일련의 드로잉과 조각을 제작했다.
로스코의 작품도 한 점 걸려 있더군요.
재미있는 일은 오늘 아이들이 견학을 많이 왔는데
일곱명 정도를 한 조로 하여 덕수궁 미술관에서 견습중인 미술관 도슨트들이 아이들에게
아주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는 중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정말 기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그림을 보고 있더군요,저는 그 장면이 좋아서 어떤 경우에는 뒤따라다니면서 보기도 했습니다.
아주 희망적인 느낌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마크 로스코, 무제, 1962, 150x137
로스코, 마크 Rothko, Mark
1903년 라트비아 드빈스크 출생-1970년 미국 뉴욕 사망
로스코는 1947년부터 자신의 독특한 양식을 담은 대형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들은 한 두개의 색면 사각형으로 구성되는데, 배경과의 경계가 모호하게
처리되어서 사각형은 마치 공간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효과는
색채가 대조를 이룰 경우에는 강하게 나타나지만 색채 대조가 약할 때는 공간적
깊이감이 상실되어 사라진다.
이처럼 로스코의 작품에서 중심적 요소는 바로 색채이고, 이런 이유로 로스코는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이나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과 더불어
색면회화(Colorfield Painting)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로스코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색채가 만들어내는 효과에 명상적으로 몰두하게
되면서 회화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갖게 된다. 로스코는 회화를 통해서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들(fundamental emotions)'을 불러일으키길 원했다.
관람객의 감정을 깊숙이 동요시키면서 화면의 색면은 정의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진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의 '배우'들은 로스코가 언급한 바 화면에서
부유하는 색면들인 셈이다.
남관과 서세옥 그리고 팽크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게 걸어놓았던데
이 싸이트에서는 나와 있지 않네요.
서세옥의 그림앞에서 아이들이 소리지릅니다,사람이다,
그래,맞아 사람이지? 설명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이층으로 올라갔지요.
서 있는 미술관이란 책에서 만난 올덴버그란 예술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화가라고 칭하기가 어려운 것이 요즘의 미술경향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서요) 오늘 만났습니다.
올덴버그, 클래스 Oldenburg, Claes
1929년 덴마크 스톡홀름 출생
올덴버그는 1956년 뉴욕에 정착했고 앨런 캐프로우(Allen Kapow), 짐 다인(Jim Dine),
사마라스(Samaras)등 해프닝과 환경미술(environment) 작가들을 만났다.
1959년과 62년에는 신문, 넝마, 나무 등 거리에서 수집한 물건을 이용한 콜라주와
아상블라주를 제작했다. 1961년에는 그의 첫 번째 환경미술인 을
열었는데, 이것은 작가의 스튜디오를 상점으로 개조해서 유혹적으로 번쩍이는 음식과
옷 모양의 채색 석고 모형들을 전시한 것이다. 1962년에는 최초의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을 시도했는데 이것은 햄버거, 사다리, 드럼, 타자기등의
일상의 실용적 물건을 대형의 천으로 만든 조각이다. 익숙한 물건들을 전혀 다른 재료와
크기, 용도의 물건으로 변화시켜버리면 관객은 매우 낯설어 하면서도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올덴버그의 작품은 팝 아트와 연관성을 가진다.
1963년에 제작한 은 키치적인 재료와 색채를 이용해서 실제 크기의
침실을 설치한 것이다. 이 작품의 현실 재현적인 양상은 후에 에드워드 키엔홀츠
(Edard Kienholz)가 채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외에 작가의 작품 대부분은
일상의 물건들의 형식과 재료를 변화시켜 낯설고 기이한 느낌을 주도록 거대한
크기로 만든 방식의 조각들로, 대형 립스틱이나 자유의 여신상을 대신한 송풍기,
모종삽 등을 소재로 삼았다.
이러한 조각들은 1980년대에는 부인(Coosje van Bruggen)과 더불어 제작되었다.
작품은 모두다 제작되지는 않았고, 구상적 제안만으로 남은 것도 많다.
인상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서있는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이 더 오래 남는군요.
키스 해링의 작품도 한 점 만났습니다.
그림을 한참 보고 있는 중에 막 학교에서 딸이 도착했습니다.
컴퓨터를 쓰고 싶어할 것 같으니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보아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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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artmania
'05.6.15 9:42 AM역시~
선생님의 글과 함께 다시보니, 전시를 보았던 것이
더욱 생생해집니다.
저는 이제 방학이여요^^
하루만 푹 쉬고, 성적처리 들어가야죠...
시간강사의 비애가 학기말에 느껴져요 ㅎㅎ2. blue violet
'05.6.15 9:18 PM저도 그자리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듯 하네요.
즐겁고 좋은 시간 같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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