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정호승님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 하나로
그 전시를 보고 싶었는데 결국 시간이 지나버리고
어제 밤 artmania님이 올려 놓은 그림으로 처음 상면을 하게 된 화가인데요
새벽에 일어나서 오랫만에 말끔한 몸과 마음으로
음악을 걸어놓고 그림을 찾아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림이 아주 독특하여 마치 선불교의 현장에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거의 열흘간 매일 한가지 일을 하느라 다른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기 어려운
희안한 경험을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대사도 많아서 많이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가장 아쉬운 점은 어떤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서 다루면서도
그 시대에 대해서 좀 더 깊이있게 보여주는 힘이 모자랐다는 점이지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이들과 역사교실에서 만나서 할 이야기가 상당히 많아졌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습니다.
망이,망소이의 난,만적의 난을 이야기하면서
신분제도라는 것의 무서움에 대한 예를 바로 대장금을 통해 이야기하니
이미 그 드라마를 본 아이들은 아주 즐거운 반응을 보이더군요.
선생님,토지는요?
해신은요?
이순신은요?
다른 것은 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러게,토지는 디브이디로 나오면 보고 싶구나.



관례대로 사는 것과 관례를 깨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
그 사이의 다양한 인생이 있겠지요?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나,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 한 주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마에 관한 소설을 읽던 중 만난 아름다운 대목이 있습니다.
의주에 사는 한 역관의 이야기인데요
자신이 중국에 다니면서 구한 귀한 책들을 혼자만 읽기 아깝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서고를 개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제마가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중 어느 날 의주에 갔는데
그 곳의 분위기가 다른 곳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집에 가서 하인에게 물어보지요.
이 곳이 무엇하는 곳인가라고요.
그러자 하인은 모르고 오셨느냐고
이곳은 누구라도 들어와서 책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책을 보러 온다고요.
그 곳에 들어가보니 이제마가 구할 수 없었던 많은 책이 있었고
한 달여를 기숙하면서 결국 그 곳에서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는 책을 저술하게 되는 사연이라...



새벽에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정호승의 시를 읽고 싶어집니다.
이동원의 노래로도 널리 알려진 봄길이란 시가 있지요.
의주의 오래 전에 살았던 이름 모르는 그 역관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봅니다.
정 호 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