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의 유두커지듯 불룩해지고 있는 두릅이 그리 신기할 수가 없다.
산골에는 두릅이 여러 곳에 터를 잡고 있다.
터마다 시간차를 보이니 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음을 나날이 확인하고 산다.
이번 주말에 손님이 온다.
몇 개라도 맛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며칠째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니 산골부부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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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큰언니, 큰언니의 늦새끼와 네째 언니가 산골을 찾았다.
엄마 칠순 때 조카가 디지탈 카메라를 샀다기에 산골남자가 꼬치 꼬치 묻고 만지작거리니 언니들이 안타까웠나보다.
이번에 오면서 디지탈 카메라를 선물로 안겼다.
시간이 여의치 않은 네째 언니가 처음으로 산골을 찾는거라 며칠 전부터 신경이 쓰였다.
네째 언니를 끝으로 '철부지들의 산골행' 심사를 마치는 거다.
'여리디 여린 네째 언니, 나로 인해 다른 언니들의 수순처럼 또 얼마나 마음아파할까'하는 생각에 내 마음이 미리 바닥을 기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괜찮다고 해도 언니들과는 세대 차이도 있고 해서인지 부정적인 감정에 치우치는가보다.
시원찮은 운전솜씨로 차를 가져오겠다기에 밤기차로 오라고 뜯어말렸다.
새벽 4시 27분에 도착하는 새벽기차로 왔으니 산골 주위 구경을 할 수 없었던 네째 언니는 오두막에 가슴이 내려앉는 모양인데 속깊은 언니 표현을 아낀다.
이런 저런 얘기에 날은 제 시간에 밝아왔다.
잠 한숨 안잔 언니, 산골둘러 본다고 나선다.
집 입구로 내려가 산골로 들어오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세 다랑의 논을 지나, 오두막 지나, 고추밭 순으로 검사를 받았다.
여기 저기 분포되어 있는 두릅 숲과 오갈피 밭도 언니의 눈길을 받았다.
더 올라가면 폐가가 하나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아 집이 많이 망가졌다.
"이 집은 위치가 아주 좋으니 빠른 시일 내에 고치는 것이 좋겠구나"
언니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 그래도 긍정적인 말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죄인처럼 뒤따라가며 모기만한 소리로 설명하던 산골동생의 목소리에 기가 살기 시작한다.
" 언니, 저건 모과나무야. 이건 옻나무와 뽕나무구"
그리고 야콘밭으로 올라가다 불난 산을 보더니 또 말이 없다.
"네가 그리 맘고생하는 동안 언닌 귀로만 상황을 들었구나. 막내야, 미안해."
또 풀이 죽는다.
" 언니, 야콘밭이야. 야콘 캘 때 무지 무지 뿌듯했어. 그 맘 언닌 모를걸."
너무 오버했나보다.
그 호들갑으론 언니의 슬픈 그림자를 덮지 못했다.
큰언니는 몇 번 와서인지 덤덤한데 여린 네째 언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늘에 토해댄다.
산골을 다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진달래가 가재는 게편이라고 편을 들며 언니의 마음을 녹이려든다.
" 이 산이 너희가 이번에 산 산이니? 정말 잘했구나. 진달래가 이리 예쁜지 첨 알았네."
언니가 한 가지만 묻는단다.
"막내야, 지금 너 후회 안하니?"
"언니, 내 말 잘들어. 도시에서 채점하고, 원고보고, 과외하고 가끔 강의가고 하는 일이 더 쉽고 고상했지. 이곳에서의 일은 몸이 힘들어. 도시에서는 욕심을 키우며 살았지만, 산골에서는 꿈을 키우며 살아. 욕심은 화를 부르지만 꿈은 마음의 평화를 덤으로 주지. 언니라면 후회하겠어?"
속깊은 언니의 얼굴에 진달래처럼 화색이 돈다.
"언니,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든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라 생각해."
그 날은 제법 그럴듯한 얘기도 내 입에서 술술 잘 나왔다.
"고통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야. 도시에서보다 특이한 고통이 많지. 그러나 도시에서건 산골에서건 고통은 산 자의 몸값이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중후한 여자, 나이값하는 여자가 되는 거라 믿어. 난 산골여자답게 '넉넉하게 늙고 싶어."
그렇다.
'주어진 가난은 극복해야 할 과제지만,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이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등골이 따사로워진다.
"막내야! 너와 아제가 너무 대단해 보이구 자랑스럽구나. 오두막도 생각보다는 '전설의 고향세트장' 같지는 않네.
좀 고치든, 새로 짓든 효율적인 방법을 같이 연구해 보자."
난 대기업 면접에 합격한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처형, 지금부터 캠프 화이어가 시작됩니다. 산골에 오시면 무조건 산골스케쥴에 따르셔야 합니다."
초보농사꾼 또 분위기 띄우기 시작한다.
나무도 나르기 전에 별과 달이 먼저와 성냥을 지피려 한다.
나무가 타고 분당에서 산 길거리표 댄스음악이 산골에 울리고 깨알 전구가 조명을 담당한다.
산골불을 다 끄고 너나 없이 몸을 흔든다.
분당 큰언니의 늦새끼가 그 육중한 몸으로 이모부와 댄스경연대회를 벌이고 산골 들러리들은 제 기분에 취해 막춤을 춰댄다.
"막내야! 저 테이프 어디서 샀니?"
"분당 큰언니네 가다 길거리에서 첨으로 댄스곡 산거야. 애들 땜에."
"나도 하나 사봐야겠다. 재밌네."
"언니, 배씨 일가 중 나 하나만 망가져야지 언니까지?"
웃는 언니의 얼굴이 박속 같다.
"언니, 난 꿈이 있어. 이 세상 소풍나왔다 갈 때 그래도 신에게 나 이렇게 착한 일했다고 한 가지는 말하며 아부해야 하잖아.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농사짓고 새로운 일 구상하고 있는거야."
큰언니는 숯불에 감자를 구워 막춤으로 소모된 동생들의 몸보신을 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악을 써도 누구 하나 시끄럽다 할 이 없는 이 깊은 산골 오두막에 산골여주인과 큰언니 늦새끼의 공포의 살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에 다람쥐도 깨고, 까마귀도 깨어 뒤척인다.
철없이 잘 노는 막내 동생이 무지 예뻐보인단다. 울 언니가.
내가 그지 없이 좋아하는 울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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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막내야, 언니 이번 토요일에 또 갈거야. 아는 부부가 너희 얘기했더니 꼭 가서 만나보고 싶다네? 언닌 너와 아제를 믿어."
격앙된 목소리에서 백합향기가 새어나온다.
네째 언니를 끝으로 언니들에게 산골의 모든 것을 보여줬으니 이제 꿈이루어가는 소리를 들려주기만 하면 된다.
토요일에 언니오면 달래도 캐고 두릅도 따야지.....
툇마루에 앉았다.
어제 시끄러워 못잤다며 오늘은 좀 조용히 자란다. 다람쥐와 까마귀 부부가.
"알았다. 알았어."
진달래처름 고운 울 언니를 떠올리며 2002년 4월 8일에
산골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