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책 내용을 뒤적여보니 독일에서 활동하는 무용가 강수진의 일대기더군요.
그녀의 춤에 반해서 그 이후 어디나 쫓아다니며 춤을 보았던 월간 객석의 기자가
마음을 다해서 쓴 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제 마음속이 복잡하여 조금 단순하게 읽을거리로 빌린 책이었는데
어라, 갈수록 한 인간을 만나고 예술의 정수를 만나는 경험에다가 덧붙여
그녀가 우리 근대회화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구본웅의 외손녀라는 것을 알게도 되었지요.
도서관에서 틈틈이 읽다보니 거진 반이상을 보게 되었는데
오늘 마저 보려고 책은 두고 왔습니다.
구본웅 하면 이상의 친구여서 친구의 초상을 그린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알고 있었는데
왜 그를 한국의 로트렉이라고 하는지
그가 미술사조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의 피가 외손녀들에게 어떻게 전수되었는지 등등에 대해서
살펴 보는 중이지요.

그는 두살에 생모을 여의고 돌보아주던 사람의 부주의로 땅에 떨어져 척추 장애로
일생을 고생하며 살았더군요.
신체적인 장애로 원하던 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진학한 중학교의 선생님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림을 그리도록 격려해 주었다고 하는군요.
사람의 일생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자신안에 숨겨진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알아보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겠지요.
그것을 연마하고 꽃피우는 과정의 어려움과 기쁨을 강수진의 인생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어린 나이에 모로코에서 그 다음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극장에서.


여인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한국에 표현주의를 도입한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로
손꼽힌다고 하는군요.

친구의 초상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시인 이상의 초상입니다.
신체적인 고민과 시대의 암울함이 겹쳐서 이중으로 마음 고생을 했을 그는
실기뿐만 아니라 이론으로도 미술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하네요.
표현주의는 독일에서 발생한 미술사조인데
그 때 독일의 정치적인 상황에 연관해서 보면 나치즘의 발흥속에서
예술가들이 느꼈을 고뇌와 답답함이 손에 만져질 듯 합니다.

구본웅의 그림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표현주의의 그림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1931년에 그려진 베를린 거리입니다.

가끔씩 마음속이 너무 소란스럽거나 고통스러울 때 공상을 하는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 속의 이런 마음이 겉으로 투명하게 드러나서
사람들이 서로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부끄러워서 살기가 어려울텐데
그나마 속으로만 부글거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라고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다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군요.

표현주의 화가의 그림은 우리가 알고 있으나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에 직면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그림들이 아닐까요?

그림을 보고 있는 중에 일요일 오전의 공부를 다 마친 아들이
어서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보채는군요.
밤에 들어와서 표현주의 ,그리고 로트렉의 그림을 더 보아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