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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수다,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

시 몇 편....

| 조회수 : 1,391 | 추천수 : 0
작성일 : 2014-11-21 12:57:51

  날카로운 첫 키스

눈이 펑펑 왔던 그 때 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죠
삭월세 방을 놓고 부모님은 맞벌이 나가셨고 동생은 눈싸움을 하러 나갔고 집엔 할머니와 내가 있었죠
셋방을 보러 당신이 왔고, 할머니께 물 한 잔을 부탁했고,

그 사이, 우리는 첫 키스를...
어린 나는 놀라서 당신의 혀를 깨물었죠
당신은 태연하게 나를 내려놓고, 당신의 그것을 꺼내서 한 번 만져보라며, 이거 좋은 거라며

십삼사년이 지나 대학생과 교수로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었죠
종강 파티에서 나는 과가 안 맞아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최소한의 알바만 하며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당신에게 물었고
당신은 이혼한지 오래라며, 돈 쓸 일이 옷 사고 책 사는 거 밖에 없다고
며칠 후, 신년 벽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선배가 견습 공무원 추천 때문에 성적이 필요하다며, 내 성적인 a-와 그 선배의 성적인 b+를 바꿔줄 것을 청했어요
공정하지 못하다는 나의 말에,
나도 20년 전 같았으면 불러서 싸대기를 때렸다고, 그치만 한 번 적선한 셈 치고 도와주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너희들 성적을 좋게 준 이유가 뭐겠냐고
세 단계씩 높게 줬는데, 원래대로 낮게 바꿀까
그게 공정한 거 아니냐고

나는 알았다고, 바꿔 드리겠다고 대답하고 며칠을 끙끙 앓아누웠어요
새벽 두 시에 문자를 보냈죠
'교수님, 성적 교환은 제가 손해였다고 말하면 됐었어요. 공정하지 못하다는 건 위선이었어요.'
괴로워하다 당신에게 전화했더니, 당신은 원래대로 바꿔줄테니,
내 수업도 듣지 말고 사람들하고도 어울리지 말라며 큰 소리를 쳤죠

나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에 울었고, 꽃이 아파왔어요
당신은 선배와 나에게 말했죠, 귤 먹어라.
근데 귤을 먹었으면 그걸 해야지.

이를 닦아야지.
굳어있는 내 얼굴을 보고, 당신은 얼굴 피라며.


  초생이 그믐에게

당신은 내게 말하셨지요
나처럼 살라고

나는 당신을 꿈꾸지만
당신과 다릅니다

그러나 망원경 속에서,
오늘도 어느 천체물리학자가 딸에게 선물한
망원경 속에서
나는 당신입니다

중학교 신입생 때,
천체관측동아리의 첫번째 모임에서 선생님이
맨눈으로 보는 달과 망원경으로 보는 달의
차이를 맞히면 문화상품권을 주겠다고 하셨는데요

제 자랑이지만,
제가 단 한번 망원경으로 달을 보고 맞혔지요
좌우가 바뀌어 보인다고

오늘도 지구의 그 많은 망원경 속에서
나는 당신입니다

언젠가 나는 당신이 되겠지만
그 모습은 과거와는 또 다를 것입니다
매일 다른 구름이 나를 입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눈이 내립니다
새벽녘에, 기온이 너무 낮아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길이 얼면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당신이 되었을 때
날씨는 어떠할까요
그 때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새 공책 (오래된 서적에 대한 오마쥬)

1.

다른 모든 그림자는 어두우나
간유리에 비치는
떨어지는 눈 그림자만은 하얗다

2.
나 항상 망각을 꿈꾸나
세상을 뒤덮은 눈은
세상을 없애지 못 한다

3.
밖에 나가면
쌓인 눈에 발자국을 찍고 다녀야 한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눈 위에 고스란히 남겨진다
내 걸음들은 떳떳한지

4.
오래된 서적이 나에게
눈싸움을 건다



저승 사자의 독백

손등에 세 개의 점

연한 시계중앙점과
시침점, 분침점
시계는 두 시 이십 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내 손으로 직접 그은 손목의 초침,
팔자에도 없는 칠성줄을 본다


전에,
엄마는 한약방을 하셨고
아빠는 그녀의 가족이였고
나는 저승사자였다
아빠는 죽을 만치 아팠고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미시(未時), 나는 아빠를 데려가지 못했다


저승사자 하나가 죽는다고 죽음이 사라지나


현대,
인간으로서의  처음 생에서,
존속 살해를 기도하면서까지 데려가야만 했던 그

나는 이제 그를 살아가게 두겠다
이번 생에는 저승사자가 아닌 인간으로 살기를 선택한다

저승사자 하나가 죽는다고 죽음이 사라지나

다시는 죽음을 위해 일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에게 다시 인연의 칼을 들이미는
내가 아닌 자가 있다면
나 기꺼이 상처 입겠다
저승사자가 아니므로

花芽 (vanillaholic)

절념 손 탈까 차마 만지지도 못하는 꽃눈을 쌓이지도 못하는 풋눈이 희롱하네 속절없어 속절없어 봄이 오고 개화한 목련은 그 풋눈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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