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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옛 이야기

| 조회수 : 1,240 | 추천수 : 42
작성일 : 2008-07-17 13:25:28




  어젯밤, 더위 때문인지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옆에 아내를 보니 깊은 잠에 빠져 약하게 코까지 골고 있네요.

혹시 아이들 간식이라도 있을까 식탁엘 가 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고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하다가 그냥 안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귀찮은 일을 할 정도로 배가 고픈건 아니었으니까요.



문득,

총각 시절 배고팠던 어느날 밤이 생각났습니다.

군 제대하고 복학하여 녹슨 머리 때문에 고생하던 때였지요.

시험공부를 해야하는데 공부가 되질 않아 하숙방 친구와 안절부절...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배까지 고파오는 것이었습니다.

통행금지가 가까운 시간이니 동네 구멍가게도 문을 닫았을 테고

마음만 급해서 책을 보고 있지만 배고픔에 공부는 되질 않았지요.

게다가 신혼부부가 사는 옆방에선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 까지...

참다못한 우리는 책을 덮고 소리없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방문 밖이 바로 옆방 신혼부부의 부엌이었기 때문이지요.

약간의 소리가 나더라도 라디오 소리에 묻히리라 생각하고

손전등 하나 켜고 조심조심...

그리하여 우리는 먹다 남은 밥 반그릇과 김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방으로 가져와 몰래 먹는데 얼마나 맛있던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설겆이도 못하고 빈 그릇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다음 날 옆방 새댁을 어찌 봐야 하느냐 였지요.

뭐 그냥 사과하면 되겠지 하면서도 마음은 마주치면 어쩌나...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도,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던 그 새댁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사실, 그 새댁과는 마주치면 눈 인사만 겨우 나눌 뿐이었고

우리 공부에 방해될까봐 평소 매우 조심하는 분이었지요.

다만 한밤 중에 잠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는 셋방구조상

신혼부부로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다시 밤이 되었고, 또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밤이 이슥해지고 게다가 옆방에서 라디오 소리 까지 들려오니

이상하게도 또 배가 고파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심전심 마음이 동하여 또 방문을 열었고

이왕 한번 한 거, 이왕 버린 몸, 하며 여유롭기까지 하였지요.

조심스레 신발을 신고 손전등을 켜 몸을 돌리는 순간,

우린 그자리에서 '얼음'이 된 듯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방문쪽 부뚜막에는

아직도 따뜻한 밥 두그릇과 반찬들이

작은 두레반 위에 곱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삼십 여년 전

부산 대연동 모 대학 앞동네 허름한 셋방에서

동사무소 다니시던 남편과 어렵게 사시던 그 분,

우리와 비슷한 나이였으니 오십대가 되셨겠지요.

베푸신 만큼 복 많이 받으셔서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사시리라 믿습니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onion
    '08.7.17 1:42 PM

    모처럼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음 넉넉한 그 분들...분명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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