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밧세바를 범한 일 말고 다윗의 문제점을 지적한 설교를 교회에서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조차도 위대한 영웅의 단 한 번의 실수쯤으로 정리되고 맙니다. 마치 박정희의 아랫도리 이야기는 없애고 싶은 조갑제 류의 정치적 설교(political propaganda)처럼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는 우리 신앙의 모범일까요? 이스라엘 왕조전승을 기술한 신명기역사서(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에서는 그를 상당히 높이 평가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신명기 역사서는 사울을 폄하하고 다윗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다윗 왕가에서 나온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다윗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단락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다윗 왕실 사관들이 가졌던 일말의 지성적 양심을 그들이 처한 구조적 한계보다 더욱 깊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삼상 14:49-50).
사무엘기에는 또다른 아히노암이 나오는데, 그녀는 바로 다윗의 아내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서 도망다니던 중에도 세력확장을 위해 갈렙 족속의 명문가인 나발의 미망인 아비가일을 또 아내로 맞는데, - 다윗은 권력 확장을 위해서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다합니다. - 생뚱맞게도 아히노암의 이름도 함께 나옵니다.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 나귀를 타고,,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었더라"(삼상 25:42-43).
이부분을 웹에서 검색해 보니, 이스르엘 아히노암은 사울의 왕후 아히노암과 다른 인물이라고 간주하는군요.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이 둘이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고, 저 역시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삼상 25장 43절과 44절은 다윗과 사울 간의 아주 묘한 대립이 면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43절)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44절).
미갈은 사울의 막내딸로 다윗의 첫 부인이 됩니다(삼상 19장). 그런데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은 미갈을 딴 남자에게 줘 버리고 말죠. 그런데 44절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43절과 연계되면 행여 이해가 가능한 분노어린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자기 부인 아히노암을 사울의 부재 때 다윗이 빼앗아 강제로 부인으로 삼았다면? - 이런 행위는 비일비재했습니다. - 즉각적인 미갈의 처우 변화는 사울의 보복 조치였을 것입니다. 어차피 미갈을 돈 많은 사람에게 시집 보내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니 말입니다.
이는 큰아들 요나단이 자꾸 다윗을 싸고 도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한 사울의 감정 폭발과 연결해 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도 싶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느냐?"(20:30)
저는 사울이 필요 이상으로 미친 사람으로 폄훼됐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본문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사울이 대놓고 자기 부인을 욕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울 부인은 아히노암입니다. 그런데 왜? 패역무도한 계집이라? 오호... 어미는 어떤 벌거벗은 수치를 당한 것일까요? 혹시 19장[미갈과의 결혼]과 20장[요나단과 자기 부인에 대한 격렬한 저주]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요? 흥미롭게도 로버트 쿠트(Robert Coote)는 다윗이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을 자기 부인으로 훔쳐 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성서와 정치권력], 45쪽)
저는 사무엘기를 다시 읽다가 이런 생각을 지지해 주는 또다른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는데, 바로 사무엘하 12장 8절입니다. 나단은 밧세바를 범한 다윗을 꾸짖으면서 다음의 말을 남긴깁니다.
"네 주인(사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그런데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야를 치되 ... 그의 아내를 빼앗아.."(삼하 12:8-9).
하나님도 다윗의 성적 자유분방함을 모두 용납해 왔는데 이번만은 정말 못참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표현이 사울의 부인 아히노암을 범한 다윗의 행동을 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자신을 위해 사지 투입을 마다하지 않은 충신의 부인을 강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명백히 십계명 위반입니다. 그러므로 밧세바를 범한 사건 이후로 다윗은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심지어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도 배반당합니다.
만약 아히노암이 사울의 부인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부인이었다면? 다윗은 딸과 엄마를 함께 범한 천하의 저질 인간이 됩니다. - 만약 미갈이 아히노암의 친딸이라면... - 그럼 요나단은 어머니를 범한 다윗을 왜 끝까지 '사랑'했을까요? 요나단의 다윗 사랑은, - 그녀가 친모가 아닐 수도 있고, 아뭏든... - 저는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일종의 동성애 - 요나단은 자식도 있으므로 보다 정확히는 양성애.. - 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물론 생산적 결론과 합의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요.
그렇다면 신명기 사가는 왜 아히마아스의 딸 아히노암과 이스르엘 출신 아히노암 이 둘을 상정한 듯 서술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다윗이 사울의 부인을 취한 일은 정말 천인공노할 짓이기에 차마 대놓고 그 둘이 같다고 쓰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실 사관(Deuteronomistic Historian)은 이 둘을 연계시킬 수 있도록 실마리들을 여기저기 흩어 놓았습니다. 그는 왕실의 권위 앞에 차마 대역죄를 저지를 수는 없었지만 나름의 지성과 지략을 이용하여, 다윗의 광적인 성적 도착증과 과시욕을 수수께끼처럼 성서 안에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대개의 목사님들이 다윗을 찬양하기만 하는 만큼 다윗은 자신의 성적 탐욕을 제대로 숨기는 데 성공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면밀히 읽어(close reading) 그 안의 수수께끼들을 찾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다윗의 위선과 오도된 성욕이, 보다 정확히 말하면 권력의 마성들이 통렬하게 폭로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찬양되는 것만큼, 유부녀를 열렬히 탐한 것에 대한 폄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다윗만큼 남의 여자에 도착증을 보이는 성경속의 인물도 없습니다.
모든 권력은 그 본성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박정희건 전두환이건 독재자들은 성적으로 도착되어 있어서 권력으로 남의 성을 탐하며 또한 그 누설을 효과적으로 통제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고뇌하는 지도자 상, 농민과 함께하는 지도자 상 같은 허깨비로 백성을 속입니다.
다윗은 죽기 직전 솔로몬에게 살생부를 주어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들을 유언으로 거론합니다(왕상 2장). 그들 태반은 다윗과 함께 광야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던 개국공신들입니다. 권력은 이렇게 무상한 법입니다. 다윗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이 위선으로 빠지지 않는 또다른 개혁이고 삶의 방식일 것입니다. 모든 권력은 반드시 폭력을 수반하며, 자신의 욕심을 은폐하려 합니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다윗 제국의 그 어떤 것도 계승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오직 모든 권력을 폐하러 오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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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 이야기
餘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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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1
작성일 : 2008-07-14 00: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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