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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수다,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
덧재....^^
덧재가 있습니다.
해발 890 미터!
감아 도는 길이 꽤나 재미있는 고갯길입니다.
어쩌다 보니..그 곳을 오며 가며 두번을 넘게 되었는데...
되돌아 넘어 오기 전에...길가의 자그마한 식당에 들었습니다.
때는 이미 어두워진 후라...길가의 가로등조차 없는 후미진 산자락에서
밝은 외등이 켜진 식당을 만나는 느낌이 정말 좋더군요...더구나
외진 식당같지 않게 정갈한 입구와 바닥이..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홀써빙을 담당한 아줌니는 '추어탕'을 권하셨지만...
산초가루에 별로 친숙하지 않은 저는...'된장찌게'를 주문했습니다.
식탁에 읹아 테레비를 보니...
부는 바람탓인 지...화면이 지글거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유선방송이 안들어 오나요?'
'예'
짧고 간결한 대화가...금방 침묵으로 이어졌습니다.
'저기요~!! 지가 점심을 굶었걸랑요?...밥 쫌 꽉꽉 눌러 퍼 주세요!!...^^'
그제서야 주방에 계신 분과 쫌 전의 그 아주머니 얼굴에 미소가 돌면서...
어쩌다 밥을 굶고 다니는 거냐.....는 둥 대화가 이어지며
맘 푹 놓고서...먹고 모자르면 얼마든지 더 먹으라는 덕담이 건너 왔습니다.
시골찬이라기엔 제법 소담스런 반찬들이 쟁반에 담겨 나오고...
흑미를 섞어 지은 따끈한 밥과...보글거리는 된장 뚝배기도 따라 오더군요.
마침 시장하던 차라서...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퍼먹는 뒷모습을 보았는 지...
조용히 두 번째의 밥공기를 가져다 놓는 마음이...너무 고마웠습니다...^^
기억하기로는...
가지와 양파 볶음, 가죽나물 무침, 꼴뚜기 젓....
고등어 두토막에 통무를 넣어 조린 것, 배추 겉절이, 풋고추와 이름모를 어포 조림
그리고 역시 이름 모를 나물 등 이었습니다.
수저를 놓을 때쯤...커피 한잔이 어깨를 타 넘어, 제 앞에 놓였습니다.
기분이 대따 흐믓해진 바라미....^^
식사 도중에 들어 온 초로의 아저씨가...두 분 아줌니들과 방금 삶아 낸 옥시기를 먹으며
키우던 흑염소 다섯 마리가 울타리 밑으로 가출하여 분통 터진다는 이야기하며...
그렇게 가출해서 산속의 온갖 풀을 뜯어 먹은 염소가..맛도 좋고 몸에 좋다는 둥...
아줌니들의 위로와 담소가 이어지는 그 분위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이윽고 일어나 계산을 치루고 식당을 나서는 저의 머리 뒤로...
아저씨의 담담한 충고가 들려 왔습니다.
'고개 넘어 갈 때...속도를 절때루 내지 마세여!!
내 차가 사륜구동인데도...오늘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는...스베루 먹습디다!!
쳐 주길 공업사 넘들이...지들 먹구 살겠다고.... 위태로운 곳마다 폐유를 흘려 놔서...
기냥 차가 홱홱 돈다니께??...써글~!!'
고개를 돌려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먹다만 옥시기를 들고서 사람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아저씨를...제대루 보았습니다.
밖은 어둡고...바람 속에 빗줄기가 휘날렸지만...
한결 따듯해진 마음으로...
덧재를 넘었습니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듬뿍 느낄 수 있었던 곳.....덧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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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nn
'07.5.18 8:37 AM글만읽어도 따뜻함이 여기까지 오네요^^
덧재... 가보고싶어졌습니다~ ~2. 산.들.바람
'07.5.18 11:01 AM흑흑흑....T^T
덧글 하나 없어서...너무 섭섭했습니다.3. 조세핀
'07.5.18 11:08 AM사람 사는게 참 별게 아닌데, 큰 일만이 일이 아닌 것을 모르고 지나치곤 하지요. 이렇게 소소하고 작은 마음씀과 일상이 눈물겹게 느껴져요. 덧재, 저도 넘어가다가 따뜻한 밥상 받아보고 싶네요.
4. 다향그윽
'07.5.18 11:15 AM늦재인듯 한데....
5. 강혜경
'07.5.18 11:15 AM사람사는 냄새를 어쩜 글로...이렇게 멋지게 표현을 하셨는지
참...느낌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6. 산.들.바람
'07.5.18 12:08 PM다향그득 님/....^^
어쩌면 님의 말씀처럼 '늦재'인지도 모릅니다.
허위허위 그 길을 달려...예천에 돌아와서 쓴 글이거든요....^^7. 러브체인
'07.5.18 1:45 PM어머..오라버니.. 여기서 뵙네요..^^
저도 그곳에 가서 된장찌개 먹고 오고 싶은걸여..^^8. 해든곳
'07.5.18 1:51 PM제가 먹은듯 흐뭇하게 읽어 내려갔어요.
9. 김흥임
'07.5.18 2:10 PM - 삭제된댓글ㅎㅎㅎ
십여년 저렇게 정으로 장사하다 몸아파 그만두니 돈이 그리운게 아닌
그 손님들이 새록 새록 그립습니다 ㅡ,ㅡ;;10. 황영희
'07.5.18 2:52 PM정말 따뜻합니다..
마치 구들목에 뭉게적 거리면서 따뜻한 누릉지 긁어 먹는 맛이랄까요..11. 예술이
'07.5.19 9:49 AM가슴이 따뜻해요. 힘든 일이 있는데 왠지 위로가 되는 느낌입니다..
12. 강두선
'07.5.20 3:51 PM따듯한 글 이군요.
혹시나 글의 마지막에 반전이 있을까 해서 잔뜩 긴장을 하고 읽었읍니다. ^^;;13. 김정순
'07.5.22 3:05 PM'봉화'산길이라니... 고향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제가 그곳서 고향아지매를 뵌 듯 흐뭇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