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부모님을 원망할 때가 있어요.
왜 절 맏이로 낳았냐고요.
시행착오도 잦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 유난히 늦고 독립심도 없는데다가(가까운 사람들은 저를 마마걸
이라고 한답니다.)겁도 많고, 설상가상 눈치도 없어요. 학생 때는 1학기 내내 버벅 거리다가 6월쯤 돼야
친구도 하나 둘 생기고 성적도 어느 정도 나왔구요.
만화방에 갈 줄도 몰랐고, 너무나 유행하던 롤러 스케이트장에도 못 가봤고(학생 주임 선생님한테 걸려
서 혼날까봐 너무 겁이 났어요), 중학교 때 안 보면 간첩이라던 [백야]라는 영화도 보지 못했어요.
전자오락실 처음 가 본 것도 스무 살이 넘어서였답니다.(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서워요. 헥사라는 게
임 하다 죽지(?) 않아서 수업도 많이 빼먹었어요. 그래서 전 제 딸만은 적당히 방목하려고요. 그러면 안
된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게다가 귀도 얇아요. ㅋㅋㅋ)
고등학교 때까지 혼자서 버스를 타본 적 없고요,(멀미도 심하게 하는 편이고,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집
에서 아주 가까웠어요.)낯가림이 심해서 문방구나 슈퍼 심부름도 우리 막내가 저 대신 다 다녀주었어요.
(못된 언니지요?) 저희 집이 나름 지역에서 유지라(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는 분이 많다
는 의미입니다.)분식점에서 떡볶이만 먹어도 엄마에게 다이렉트로 알려져서 학교, 집, 독서실 삼각형을
벗어날 엄두를 못 내고 10대를 마감했답니다.
범생이들의 특징 아시죠?
자율성, 능동성 없는 거.
고등학교 졸업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부어라 마셔라 밤 새워 술 마시기, 조조 영화 보느라 자체 휴강
하기, 강의 빼먹고 도서관 열람실에 책 읽기,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걸으면서 노점 구경하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기행으로 대학 4년을 가까스로 마쳤을 때도 주위에서 따끔하게 조언하는 사람이 참 아쉽더
라고요.(아니면 제가 주윗분들 말을 안 들었을 수도...)
학교 졸업하고 27살에 결혼할 때까지 만 3년 일하면서 그야말로 너무 깨져서 전업주부로 사는 지금이 비
교적 마음이 편해요.(그래도 문득문득 치열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요. 어쨌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청춘기
라서...)
어렸을 때도 워낙 맹해서 주위 사람들, 친구들 말을 너무 잘 믿었던 저는 반에서 저를 왕따 시키려고 하
던 친구를 혼자 좋아해서 운적도 있고요,
가장 친한 친구한테 배신당하고도 나만 모르고 지나갔던 적이 너무 많아요.
맏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눈치를 보고 자라지 않아서라고 자위하지만 매사에 분명하고 현명하게 잘
처신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왜 난 언제나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호오가 분명하게 표정에 드러나는 걸까?
제 성격 정말 맘에 안 들어서 고쳐 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오늘은 제가 20대 미혼이거나 사회 초년생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소개해 드릴게요.
첫 번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책입니다.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확 끌지 않아요..(마치 싼 보세옷만 입는 전 날개없는 천사 같다는 느낌이 들잖아
요.ㅎㅎㅎ)
미국 [보그]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라는 사람의 어시스턴트 출신인 작가가 자신의 체험에 상상력을 보
태어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쇼퍼 홀릭]같은 책, [섹스 앤 더 시티],[프렌즈]같
은 시트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주인공과 같거나 지루한 구직 기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보신다면 눈물을 뚝뚝 흘
리며 가슴 아파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곧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될 거라는데 끝부분에 주인공을 괴롭히는 상사가 거꾸러지는 헐리우드 식 해피
엔딩은 없어요.
그저 슬픈 결말은 아니라는 것만 살짝 알려드릴게요.
책을 읽는 내내 럭셔리함에 휩싸여 대리 만족을 느끼면서도 주인공의 답답함이 내 일처럼 느껴지고, 벌
써 10년 전 일이 되어버린 사회 초년병 시절이 떠올라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더라고요.
도대체 돈과 권력(그중에서도 돈의 힘이 더 크게 느껴지는)이 뭐길래 인간이 이렇게 까지 처참해야 할
까, 상사라고 해서, 유능하다고 해서 지금 막 사회에 발을 디디는 이에게 이렇게 까지 인격 모독을 해야
할까 씁쓸했어요.
만약 사랑하는 친구가 다치지 않고 1년간의 계약 기간을 마치고 에디터로서 자리를 잡았다면 이런 가정
도 해 보게 되고요.
그렇다면 사악한 시어머니 밑에서 더 간악한 며느리가 나오듯,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공식이 들어맞아
상사보다 더한 여자가 되었을까요?
삭막한 직장에서 상냥함과 부드러움을 잃어가고 있는 후배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여자 생활 백서]예요.
이 책은 미국보다 더 삭막한 우리나라에서 당당한 여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일종의 처세술
책이에요.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친구, 연인, 돈 등 여자들의 관심사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대답과 바른 자세에 대
한 어드바이스가 실려 있어요.
100% 저자의 의견에 동감하진 않지만 주위에 좋은 선배를 가지지 못한 분들은 한 번쯤 빌려서라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잖아요.
하다못해 남자 친구와의 문제로 갈등을 겪을 때 술 먹고 동성 친구 괴롭히기 전에 이 책을 읽으며 스스
로 객관화 하는 작업을 거친다면 늘 한 박자 느려 손해 보던 저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
요.
그래도 내 멋대로 살겠다는 분들, 자세 좋아요.
터지든 밟히든 한 번 내 식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단,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세요.
그리고 성공했다면 혼자만 알고 계시지 말고 다른 분들께 노하우 전파해 주세요.
언니도 오빠도 없는 저 같이 맹한 사람의 멘토가 되어주세요.
참고로 두 책 모두 다 겉표지가 굉장히 얇고 약해요.(페이퍼백이라고 하죠)
소장용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유행에 민감한 책이에요.
구입을 신중하게 결정하시고 될 수 있으면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빌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