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사춘기 시절 가장 좋아하던 시조예요.
이 시조의 작가가 고려말 문인 이조년이라는데 고려가 조선보다는 좀 개방된 사회였다고 해도 성리학을
공부한 신진사대부의 글 치고는 퍽 낭만적이지 않나요?
감수성이 말랑말랑하던 그 시절엔 별 거 아닌 것에도 눈물 글썽글썽하고 마음 졸이고 괴로워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 빛나는 시절을 왜 그렇게 사서 우울하게 보냈나 싶어요.
지나고 나면 다 그리운 추억 한 자락인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 전에 사랑 얘기 한 번 해 보고 싶어서 글 올려요.
뜨거운 여름날에는 진짜 찐한(?)하이틴 로맨스 외에는 사랑 얘기가 별로 안 땡기드라구요.
오히려 인내심을 요구하는 대하 소설류는 읽겠는데 여름에 사랑얘기를 눈물 흘리면서 읽은 기억은 가물
가물...
사실 누구나 가장 공감하고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는게 사랑 이야기, 멜로 드라마인데도 몇 천 번은 울
궈 먹은 듯한 그 뻔한 얘기에 읽기도 전에 질려 버린다는 분들 많으시지요?
요즘 케이블 tv에서 드라마 궁을 재방송해주던데 다시 봐도 너무 재미있어요.
신군과 채경의 달콤쌉쌀한 티격태격도 좋지만 역시 영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또 조연들의 코믹 연
기까지 더해지다 보니 자연 로맨스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죠.
그에 비하여 소설은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백배 추가 활용하여 읽을 수 있기에 더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공지영 소설을 처음 접한 게 90년 고 3때였어요.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 당시 제게는 너무나 획기적이고 근사한 제목이었답니다.
게다가 너무나 동경하던 y대 출신의 미모까지 갖춘 작가니 뿅갈만한 요소가 다분했지요.
내용도 제가 그 때 꽤나 심취했던 분야라(소위 운동권) 굉장히 집중해서 읽었어요.(그렇게 교과서와 참고
서를 팠더라면...)
데뷔 이래 공지영씨처럼 꾸준히 자신의 글을 발표하고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작가도 무척 드물더라
고요.(전업작가로 밥먹고 살기 참 힘든 나라지요, 우리나라가.)
책 목록을 쭉 훑어보니 동화와 몇몇 단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읽은 거 보면 말이예요.
사실 봉순이 언니때까지는 별로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였어.
mbc에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할 때도 왜 그 책을 선정했을까 했거든요.
근데 공지영의 재발견이랄까? 갈수록 착해지고 있는 공지영 문학에 제가 필이 꽂히기 시작한 거예요.
특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이 두 권은 공지영의 문학이 활짝 폈구나 하는 느낌
을 가득 받았기 때문이 여러분과 함께 얘기하고 싶어졌어요...(이책들은 베스트셀러이니 많이들 읽으셨지
요?)
먼저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전 개인적으로 번역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예요.
국내 작가들의 섬세한 표현과 잘 조화된 문장을 편애하는 이유도 있지만 아무래도 원작의 느낌을 100%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번역본을 살 때는 많이 신중을 기하죠.(제가 좋아하는 번역가는 영미쪽으로 공
경희, 장영희선생님, 프랑스쪽으로는 김화영 교수님)
그런데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섬세함을 자랑하는 일본인이 남자의 심리를 그리고 공지영님이 한국 여자를 그렸기 때문일까요?
국경을 사이에 두고 펼져치는 두 사람의 로맨스(홍이와 준고)에 푹 빠져 저도 21-22살 설레이던 그 시절
그 때 모습으로 잠시 회춘했답니다.
여기서 잠깐 자랑질~
얼마전 혼자서 일본에 잠시 다녀왔어요.
이방인이 되어 반나절을 마구 쏘다녔던 바로 그곳, 기치조오지가 홍과 준고가 같이 살면서 사랑을 나눴
던 곳이드라구요.(사실 일본 여행 계획하기 두 달전 쯤 이 책을 한 번 읽었어요. 근데 제가 워낙 속독하는
터라, 그리고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라에 지명이라 그냥 지나친 거죠? ㅋㅋㅋ덜렁거리는 성격 탓에 무
슨 책이든 두 번 이상 읽어줘야 해요.)
시부야나 신주쿠같이 번화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백화점과 쇼핑가가 줄지어 있는 곳였는데 비오는 평일
이라 그런지 정말 한산했어요.
고요하고 깨끗한 일본을 느끼기엔 딱이었어요.
예쁜 가게도 많고... 자랑끝~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헤어진 두 사람.
홍과 준고는 한국, 일본 각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한 사람은 출판사 직원으로 또 한 사람은 작가로서
의 삶에 충실하지요.(윤석호 드라마에서처럼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멋진 상대까지 있어 완벽한 4각 체제)
7년 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상대방을 잊지 못해 틈만 나면 달렸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오해를 풀고 재
결합한다는 아주 단순 명료한 스토리예요.
근데 줄거리를 떠나 다시 한 번 들여다 보면 이 책의 진가가 나타나요.
사랑에 관한 수 없이 아름다운 말들이 은하수처럼 점점히 박혀 있거든요.
고등학교 때 소개팅나가서 먹던 파르페처럼 쉴새없이 튀어 나오는 아름다운 언어의 유희에서 헤어나오
기 힘드실 거예요.
아직 짝이 없는 분들은 빨간 펜 하나 준비하셔서 죽죽 그으면서 읽으세요.
쨍하게 맑은 겨울날처럼 가슴 시린 투명한 사랑을 책에서나마 만날실 수 있을 거예요.
두 작가는 문화적인 관습과 사회적 통념이 이 둘을 갈라서게 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듯 싶지만 같은
나라 사람과의 연애도 결혼 적령기, 이른바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을 때 비밀 일기 속에만 남을 가망성이
크잖아요?(요즘은 그놈의 싸이때문에 헤어진 연인의 근황을 너무 상세히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동안 두 사람 모두 한결같이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참
연애 소설의 기본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여기서 사족 한 마디~
외로움을 잊기 위해 호숫가를 달렸다는 설정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일까요?
왕가위 영화에도 나오지만 근데 왜 전 실연의 아픔을 운동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술로 다스렸을까요?
달렸더라면 적지 않은 현금과 날씬한 몸매라도 챙겼을텐데...
각설하고, 작가가 처음 써봤다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가진 이 책을 잠시 사랑을 쉬고 있는 여러분께 권합
니다.
그리고 두번째 사형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킨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저는 이 책을 작가 공지영의 대 변신을 알린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위의 사랑후에 오는 것들이 에로스적 사랑이라면 이 책은 아가페적인 사랑(참 도덕 교과서도 아니고 왠
이분법이랍니까? 촌스럽게...)또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의 실천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줘요.
미움의 대상을 모른 척 하기도 싶지 않은 세상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한 진정한 용서는 불가
능해 보이잖아요.
하지만 용서를 통해 피해자인 자신 역시 분노와 미움의 고통에서 구원받아 진정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작가의 작지만 뜨거운 설득이 가슴이 와 닿습니다.(물론 실천은 늘 미약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분과 함께 읽으며 충분히 토론해볼만 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ps.
"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일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전 남편의 죽
음을 접한 작가는 “그것이 비참하고 쓸쓸하고 뒤돌아 보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현실만 남기고 끝났다 해
도 사랑이었다고 이름 붙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죽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의 그와
그때의 나를 이제 똑같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깨닫는다. 지금은 다만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정도로 치유됐다.
-공지영님의 신간에 관한 글인데요.
아직 이 책을 wish 목록에만 올려놓고 구입도 못했어요.
다음주 후반쯤 구입해서 읽은 예정이예요.
먼저 읽으신 분들 후기 올려주세요.
클라이맥스는 빼고요...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