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꾸 배시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머님이 저를 따라나오셨기 때문이랍니다.
'어디, 가게 가시게요?'
'아니'
'....'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지만
아파트 입구까지 어머님과 함께 걸으며
어쩜 이렇게 기쁘고 좋은지요.
홈쇼핑에서 주문해드린 스팀청소기를 시댁에 갖다드리고,
부모님과 두런두런 집안 얘기를 나누다가 나왔더랬습니다.
현관을 나서는데, 발이 아파서 못 신는다시는
어머님의 새 구두도 챙겨가라고 안겨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2003년 봄에 결혼했습니다.
어머님의 배웅은 처음입니다.
물론 남편과 나오는 길은 따라나오신 적이 많습니다.
당신이 유난히 아끼고 이뻐하시는 작은 아들이라,
손 꼭 잡고 못내 아쉬워하며 나란히 걸으십니다.
장성한 아들의 손을 잡고 걷는 어머님의 자그마한 뒷모습은
샘난다기보다는 차라리 무언가 짠한 느낌을 가슴에 남깁니다.
친정집에 다녀올 때, 친정 어머니도 저를 따라나오십니다.
저희 모녀는 서로 다정다감한 성격이 못 되어
몸을 밀착하는 표현 같은 것은 없지만,
어머니가 아쉬워하시면서도 함박 웃음을 지으며,
굳이 지하철역까지 따라오시는 그 길은 행복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시댁에 다녀온 어제의 밤길도
처음으로 같은 그 길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어머님이 같이 타셔서 일순 당황했습니다.
속으로 궁리했지요. 뭐 사러 나가시는 건가??
단지내를 걸으며 침묵이 흘렀습니다.
평소 곰살맞지 못한 성격에 어머님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기 좋아하는 형님의 애교를
언제나 속으로 부러워하곤 했답니다.
자그마한 키가 엇비슷한 형님과 어머님에 비해
저는 키가 커서 나란히 걷기도 더 어색하거든요.
'가게 나가시게요?'
'아니...'
'....'
어머님은 저를 배웅하러 나오신 것이었어요.
여기에서 바로 <이쁜 며느리 대사>가 나와야 하는 건데!!
'어머님 저 배웅해주시는 거예요? 아이 좋아라' 하고 말이죠.
아이구. 바보 같으니. 미련 곰탱이.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걷기만 합니다.
'그 무거운 청소기 들고 오느라 고생 많이 했다. 고맙다'
'아니에요, 어머니. 하나도 안 무거웠어요.'
지하철을 타는 내내 머릿속에서 즐거운 상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이 선뜻 저를 따라나오실 때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제가 예쁘게 보였을까 하는 상상 말이에요.
청소기 조립해드리자마자 바로 일어나지 않고
어머님, 아버님 말동무 해드리고 오길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말없는 큰 사랑을 돌려받은 듯한 그런 밤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이렇게 사소한 배려에도
쉽게 감동받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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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웅
나나선생 |
조회수 : 875 |
추천수 : 4
작성일 : 2005-10-07 13: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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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갯바람
'05.10.7 3:35 PM적령기에 결혼을 했다면... 내 딸 또래쯤으로 여겨지는데
일상의 작은 이야기가 듣기에 참 좋네요
흐뭇한 미소, 귀엽게 여겨지는 눈으로 읽습니다.
사탕 사주고 싶을 정도로...2. yuni
'05.10.7 4:01 PM저의 시어머님은 20년 묵은 이 며느리에게도 그렇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전 저의 시어머니를 본받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천이 잘 안되네요.)3. 라니
'05.10.8 8:26 AM참 좋은 며늘님이십니다. 어머님이 무지 좋으셨나봐요^^&
4. 맑은하늘
'05.10.8 6:19 PM마음이 참 따뜻해지네요.
진한 감동도 일구요.5. 들국화
'05.10.9 11:22 PM이 글을 읽은 오늘 밤 ,
저도 함께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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