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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운동회

| 조회수 : 767 | 추천수 : 29
작성일 : 2005-08-18 00:05:37

어느분의 운동회에 대한 글을 읽고 갑자기 오래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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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9.13


<< 운동회 >>


- 1 -

그날은 소풍 가는 날 다음으로 신이 났다.
흰색의 반바지와 상의 그리고 뒤집으면 파란색으로 변하는 모자를
흰쪽이 보이도록 쓰고 집을 나섰다. 주머니 속에서 엄마가 아침에
준 5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보곤 흐뭇이 미소지었다.

학교 입구는 커다란 리어커에 신기한 장난감을 늘어 놓고 파는 아저씨들,
솜사탕 아저씨등으로 어수선 했다. 학교 운동장엔 만국기가 출렁거렸고
운동장 앞쪽엔 커다란 천막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을 빙 둘러가며 설치된 얼룩 달룩 조잡해 보이는 천막 안에선
아줌마들이 음식 준비에 분주했다.


매년 그랬듯이 운동회날은 온 동네 잔치 날 이었다.
그날은 거의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고 10리, 20리 먼 곳에서 통학 하는
동무들의 부모님은 김밥이랑 사이다랑 찐 계란등을 싸들고 아침 일찍부터
걸어 오셨다. 그날은 높으신 분들도 모두 오셨다.
우체국장님, 경찰서장님, 소방서장님, 면장님, 보건소장님...

지금 생각 하면 운동회는 아이들 보다 동네 어른들이 더 좋아했던것 같다.
운동장 가장자리 천막에서 장국밥이랑 전이랑 막걸리등을 팔고 아저씨들은 흥에 겨워 하셨다.


애국가를 부르는데 귀빈석 옆에 앉은 엄마와 아빠를 발견했다.
운동회는 순서대로 시작 되었고 여기 저기서 함성이 터저 나왔다.
굳이 나 혼자 잘 하건 못하건 상관 없는 오재미 던져넣기 라던가
광주리 터트리기 등은 재미 있었다. 그러나 달리기가 싫었다.

달리기를 안 할 수만 있으면 안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엄마 아빠가 보고 계시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어쩔수 없이 주먹을 쥐고 출발선에 섰다.

출발 직전, 긴장의 순간. 선생님은 손을 땅에 대고 엉덩이를 하늘
로 쳐들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엉덩이를 앞으로 힘껏 밀고
나서 출발 호루라기를 부셨다.

담임선생님은 평소 말썽피지 않고 착실한 나를 유난히 귀여워 해주셨다.
평소에 달리기만 했다 하면 늘 꼴찌하는 것이 보기에 안되보였던지
남들보다 조금 먼저 출발 하라는 선생님의 특별 배려였던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냥 앞으로 냅다 뛰어갈 것이지, 선생님의 여망도 헛되이게
뛰어 나가려다 말고 돌아서서 선생님을 말똥 말똥 쳐다보며 물었다.

"선생님, 왜요?"

동무들은 저만치 달려 가고 있는데...
그래서 결국 그날도 꼴찌를 했다.


- 2 -

주이가 오늘 소운동회를 했다. 대운동회는 내일 이라고 한다.
소운동회, 대운동회라니... 아마도 운동회 최종 리허설을 소운동회
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주이는 지난 8월26일에 개학을 해서 그 다음날부터 운동회 예행 연습을 했다.
마스게임과 달리기를 한다고 한다.

"주이야, 운동회 어때? 재미있어?"
"아니이~ 힘들기만해요."

아내의 말이, 주이가 운동회 연습이 힘든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피아노 학원도
못 가고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잔다고 한다.

이젠 초등학교 운동회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것 같다.
그리고 마을 잔치도 아니며, 그저 교과과정의 하나로 어쩔수 없이 치루는 행사라는 느낌이 든다.

소운동회를 지켜본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그만 운동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서로 뒤엉켜 동시에 여러가지 종목을 한꺼번에 치른다고 한다.

물론 학생수가 많고 운동장은 협소해서 그렇겠지만 다들 자기가 하는 종목만
마지못해 하느라 전체 운동회의 즐거움은 사라진듯 하다.

학교에서도 엄마들에게 운동회때 오시라고 초대 하지도 않는다.
운동장에 학부모는 커녕 아이들이 앉을 공간도 협소 하기 때문이다.

"주이야 너 오늘 달리기에서 몇등 했어?"
"4등."
"몇명이 뛰었는데?"
"6명."
"와~ 잘뛰었네. 그럼 너보다 못 뛴아이가 두명이나 있단 말이야?"

아내가 시큰둥 해서 한마디 한다.

"잘뛰긴 뭘 잘뛰어. 너 뛰는거 보니까 하늘 보면서 춤추는것 처럼 뛰더라.
그러니깐 잘 못뛰지. 이렇게 뛰란 말이야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이렇게...이렇게..."

아내는 밥 먹다 말고 젖가락을 움켜쥐곤 벌떡 일어나 제자리에서 뛰면서
열심히 폼을 설명을 해 준다. 자기도 달리기엔 젬병 이면서...

"에이~ 뭐 어때. 그 정도면 잘 뛴거지."
"그래도 3등은 해야지 상을 받지이~~"
"그런가?? 음...상이라...주이가 오늘 4등했지... 음..."

잘 하면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달리기 해서 상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주이야 너 오늘보다 조금만 더 잘 뛰면 상 받겠다. 그치?
아빠가 뛰는거 갈쳐줄께 일어나바바. 머리를 앞으로 이렇게 숙이고
손을 이렇게... 이렇게... 흔들면서 뛰어야해.
그리고 출발할때 선생님이 깃발 들고 나서 뛰지 말고 깃발을 들라고 손이 조금 꿈틀하면
그냥 무조껀~ 냅따 뛰어나가는겨. 알았지?"

나도 벌떡 일어서서 수저를 손에 들고 뛰는 품을 열심히 설명했다.
주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주이가 아빠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3등~3등~


- 3 -

진이도 운동회를 한다.
진이는 주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다니므로 같은날 같은 운동장에서
같이 뒤엉켜 운동회를 치른다.


지난 봄 운동회때 진이는 씽씽 타고 반환점 돌아 오기를 했다.
주이가 타던 씽씽이 집에 있긴 있었지만 그때 진이는 씽씽 타는것이
무척이나 서툴렀다. 한쪽 발을 씽씽위에 얹고 두손으로 핸들을 잡곤
엉거주춤한 폼으로 씽씽을 탓다.

많은 연습을 했지만 막상 운동회에서 진이는 선생님들과 구경온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동안 웃음을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출발신호와 함께 다른 아이들은 반환점을 향해 뒤뚱 거리며 나아가는데
진이는 헨들 조작이 서툴러서 앞으로 못 나가고 옆으로 옆으로...
결국 큰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만 빙그르~ 도는 것이었다.


"진이야, 너는 오눌 운동회 재미 있었어?"
"응~ 쪼끔 재미 있었는데, 넘 덥구 다리 아프고 그래써여."
"진이는 소운동회에서 모했어?"
"압빠~ 음~ 나는~ 오늘 달리기 핸는데 그냥 달리는게 아니구 똥그란 훌라후프 이찌?
그거 이러케 들어가따 나와가꾸 마악~ 달려가서 그릇에 있는 사탕 하나 먹구 오는거 해써여.
근데 사탕 머글때 손대면 안되구 이러케~ 입으로만 머거야 되는거야 압빠."
"사탕 맛있데?"
"응~ 마시쩌써."
"너 그럼 내일은 사탕 먹을때 두개 먹어."
"안되에~ 선생니미 하나씽만 머그래써어."


- 4 -

우리의 아이들이 먼 훗날 운동회에 대한 추억을 어떻게 그릴지
사뭇 궁금하다. 자신의 자식들이 치르는 운동회를 보면서...


1996.09.13  

강두선 (hellods7)

82cook에 거의 접속하지 않습니다. 혹, 연락은 이메일로...... hellod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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