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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전차종점

| 조회수 : 832 | 추천수 : 10
작성일 : 2005-06-29 22:57:45
2002-02-20


<< 전차 종점 >>


서울로 이사 갈 생각만 하면 신이 났다.
서울에서 살면 텔레비젼을 볼 수 있고, 높은 빌딩을 구경 할 수 있는것도 좋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신나는 일은 서울에 가면 전차를 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시절, 단양 읍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3층짜리 군청이었고 텔레비젼이 있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아니 설사 있었다 해도 전파가 잡히지 않아서 볼 수도 없었으리라.

어쩌다 방학이면 아버지 따라 서울의 큰아버지 집으로 나들이 가곤 했는데 그때의 즐거움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중앙선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을 가노라면 기차 안에서 끼니를 두번 먹어야
할 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12-3시간 정도를 타고 가다보면 몸이 베베 꼬이고 안달이 났지만
그래도 서울 구경 간다는 즐거움으로 꾸욱 참을 수 있었다.

큰아버지 집은 시골의 우리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딴 세상이었다.
텔레비젼도 있었고 전기 냉장고도 있었다.

그 때 본 텔레비젼 프로중에 작은 호리병 안에 살고 있는 요술쟁이 아가씨가 나오는 프로
'내 사랑 지니'는 아직도 생각난다. 매 주 토요일에만 했던 그 프로가 얼마나 재미 있었던지
금요일에 내려가야 할 일정을 아버지를 졸라서 하루 더 묵으면서까지 그 프로를 보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촌놈이 서울 구경을 가면 큰 아버지께서 시내 구경을 시켜주셨다.
버스를 타고 시내 구경을 다닐때면 차 창에 코를 들이 밀며 밖을 내다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번은 버스안에서 엄청나게 높은 빌딩을 보았다.
건물을 따라 눈길을 위로 올리던 나는 그 높이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큰 아버지는 그 빌딩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고 설명해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봤다는 자부심은 개학 후에 동무들에게 오랬동안 자랑거리였다.
그 빌딩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15층 쯤 되는 '조흥은행 본점' 건물이라는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서울 구경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전차였다.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찻길을 유유히 다니는 전차는 바라만 보아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막상 타 보지는 못했다.

이 모든 즐거움이 서울로 이사가면 누릴 수 있으리란 생각에 이사갈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사만 가면 구경만 하고 못 타본 전차를 실컷 타 보리라 벼르면서...

그렇게 기다려서 서울로 이사온 곳은 돈암동 전차 종점이었다.
돈암동 전차 종점은 미아리 고개가 시작되는, 어쩌면 지금도 있을 빵집 태극당 앞이었다.

이사온 집은 그 태극당 뒤의 산 비탈 입구에 있었다.
주인집 옆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큰 방을 가운데 미닫이로 나눈 우리집이 있었다.

서울로 이사왔어도 곧바로 텔레비젼을 보지는 못했다.
서울에만 오면 당연히 텔레비젼을 볼 줄 알았는데 못 봐서 실망스러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싫컷 타 볼줄 알았던 전차도 역시 타 보지 못했다.
우리가 서울로 이사온 그 날 부터 전차의 운행이 전면 중단된 것이었다.

서울 시내의 교통이 혼잡해지고 전차가 교통을 방해 해서 운행을 중단 시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너무나 억울했다. 일주일만 일찍 이사 왔었으면 타 볼 수 있었는데...

높은 빌딩 구경도 못했다.
서울에선 잘못하면 길 잃어버린다고 하도 겁을 준데다 마침 방학때 전학을 해서 학교도 못 가본채
동네 집 앞에서만 왔다 갔다 하며 지냈었다.

서울 생활은 시골에서 생각 했던것 만큼 즐겁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면 당연히 즐거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놀이도 재미있지 않았다. 시골에서 처럼 들로 개울로 뛰어다니며 놀 곳도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촌티가 줄줄 났던 나는 그래도 적응을 잘했다.
학급 동무들과 잘 어울렸고 동내 꼬마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왔던 그 해 겨울엔 산 비탈 골목길에서 미끄럼을 탔던 기억도 선하다.

그래도 그제서야 어렴풋이 느꼈다.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던, 읍내에 텔레비젼 하나 없던 그곳의 생활이 훨씬 더 행복했다는것을...
그리고 그때의 돈암동 전차 종점 시절도 이제와 생각하면 아련한 미소가 피어 오른다.

행복의 순간은 언제나 지금이라는 것을 지나봐야 아는 모양이다.


----강두선...
강두선 (hellods7)

82cook에 거의 접속하지 않습니다. 혹, 연락은 이메일로...... hellods7@naver.com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yuni
    '05.6.30 12:47 AM

    태극당 빵집 지금은 없어졌지요.
    건물을 새로 지어 몇년전까지는 빵집을 했는데 지금은 다른 가게로 변했더군요.
    그래도 아직 그 동네에서 길 설명 하려면 태극당 빵집 얘기를 빼놓을순 없죠.
    냉냉냉... 하며 지나가던 전차 저도 기억합니다.
    그 종점이 돈암동이었군요.
    전 동대문에서 몇번 타본 기억이 있어요.
    그러고보니 강두선님 하고 저하고 나이차가 별로 없나봐요. ^^*

  • 2. 강두선
    '05.6.30 10:38 AM

    태극당 빵집이 없어졌군요...
    고등학교때 여학생이랑 태극당 빵집에서 소보로 빵이랑 우유 마신 기억도 나는데...ㅎㅎ
    전차 못 타본건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yuni 님이 전차를 타 보셨다니 나이는 저와 비슷할테지요...

    에고, 아침 먹으라고 소리를 지르네요...
    그때 태극당에서 빵을 먹지 말았어야는데 그때 그렇게 얌전하던 여학생이
    요즘은 완전히 호랑이로 변해서리... 하루 왠종일 으르렁 거리네요.
    알았어~ 간다 가아~~
    후다닥~~

  • 3. 이규원
    '05.10.5 10:18 AM

    어제 돈암동을 갔다왔는데 너무 너무 많이 변했어요.
    다음에는 자세히 살펴보고 오려고 하는데 잘 될런지....
    돈암국민학교에는 아직도 깡통교실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다 변했는데 떡집위에 있던 계단은 아직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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