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는 그때 두 돌이 채 안되었을 때였는데
감기라고 생각해왔던 게 감기가 아니었던 거였어요.
응급실에서는 그 조그만 몸에 주사바늘을 찔러넣고 피를 뽑고 갖가지 검사를 했어요.
열이 높고 해열제가 듣지 않아
뇌수막염? 등을 의심하며 척수검사도 했어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모로 눕혀놓고 등뒤 척추에 굵다란 침을 꽂아 척수를 빼내는데
그제서야 남이라고 생각해왔던 동생 모습에
제 눈에 주루룩 눈물이 흐르더군요.
이미 며칠 동안 앓아왔던 동생은
열에 들떠 입술은 새빨갛고 얼굴은 핏기없이 하얬어요.
곧 무슨 기계들이 드르륵 들어오더니
아이 가슴을 헤치고 기계들을 연결했어요.
심전도 체크하는 기계였는데
링거 줄에 심전도 체크에...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응급실에서 그러고 누워있는 동생 모습은 큰 충격이었죠.
가슴 속에서 울음이 꽉 차서 터질 것만 같은데
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엄마, 아빠의 당황한 모습 때문에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잡고 응급실에서 나왔는데 날씨가 왜그리 따뜻하던지...
이렇게 따뜻한 날,
병원 밖에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바로 그때!
마음 속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건 벌 받는 거구나!'
'나 때문에 아픈 거구나!'
그날 밤,
집에 온 후에 저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답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넷째가 아픈 것은 모두 제 탓이라는 생각만 드는 것이었어요.
모든 것이 다 제가 마음을 못되게 써서 그렇다는 생각만 드는데
저 스스로도 어찌해 볼 수 없이 몸이 덜덜 떨리고
무섭고 두렵우면서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어요.
매우 힘들고 아픈.. 밤이었어요.
넷째를 데리고 종합병원에 가게되었던 건
그 아이가 '가와사키 병'으로 의심되었기 때문이에요.
가와사키 병이란
다섯살 미만의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병으로
홍역처럼 앓고 지나가면 되는 병이지만
문제는 앓는 도중에 높은 열과 심장에 걸릴 과부하 때문에 쇼크로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 병이었어요.
초기증상이 감기와 같았기 때문에
계속 동네 소아과에 다니다가 소아과 선생님이 아무래도 가와사키인 것 같다고
심전도를 계속 체크할 수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신 거였어요.
'홍역처럼 앓고 지나가면 되는 병'이란 건 그당시 몰랐고
'심장에 쇼크가 생겨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 병'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된 거죠.
그다음날부터
학교가 끝나면 매일 병원에 갔어요.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올라간 넷째는 밥도 먹지 않고 입술이 빨갛게 들뜬채로 말라터지고 있었어요.
그제서야 제 눈엔 안쓰러운 동생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죠.
작고 어린 아이, 아파서 힘들어하는 아이,
바로 내 동생.
그러면서 다섯째를 임신한 엄마의 힘든 몸도 보이고
안절부절 걱정하시는 아빠와 할머니,
놀라서 어리둥절하던 어린 여동생들...
비로소 몇 년 만에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죠.
가족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자던 마음은
부끄러운 참회의 마음으로 돌아섰어요.
남동생이 입원하던 날,
순식간에 변한 기적같은 일이었지요.
막내 예정일이 오늘, 내일 하던 때였어요.
엄마 배가 그렇게 불렀던 것을 그제야 인식했죠.
넷째는 열이 심하게 올랐다가 내리면 손끝, 발끝부터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어요.
입술이 하도 말라서 글리세린을 발라주어야했고
밥맛이 떨어져 전혀 밥을 먹지 않았죠.
눈만 뜨면 몸이 힘들어 징징대는 아이를
엄마는 남산만한 배 위에 올려놓고 안은 채로
병원 복도를 서성이곤 했어요.
학교에서 병원으로 가보면
그렇게 힘들게 발걸음을 내딛던 엄마의 뒷모습이
병원 창문에 쏟아져들어오던 햇빛을 역광으로 받아
어둡고 쓸쓸하게 보였어요.
"나도 저렇게 키우셨겠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다들 두 사람 입원하게 생겼다고
엄마를 걱정했어요.
넷째가 입원해있는 동안 출산예정일이 다가왔는데 엄마는 내내 넷째 곁에 붙어있었죠.
일주일인가.. 열흘인가..
넷째가 가와사키를 물리치고 퇴원한 다음 날.
출산예정일을 며칠 넘긴 엄마는 다섯째를 낳았습니다.
넷째가 태어났던 병원이었는데
저는 이번엔 웃으면서 아기를 볼 수 있었어요.
한 생명이, 우리 가족이, 내 동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아픈 참회의 눈물과 함께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넷째 태어났을 때는 해줄 수 없었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축복을,
줄 수 있었어요.
"안녕, 내가 네 큰누나야."
"내 동생이 되어주어 고마워."
그렇게 태어난 녀석이 벌써 열 다섯살이 되었고
응급실 앞에서 망치가 때리는 듯한 깨달음을 얻게 해준 넷째는 열 일곱이 되었어요.
제 나이, 열 다섯, 열 일곱에 태어났던 소중한 제 동생들 말이에요. ^^
(이거 올리고 마지막 글 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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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열 다섯, 열 일곱 (4)
인우둥 |
조회수 : 1,534 |
추천수 : 3
작성일 : 2005-05-06 23: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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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여름
'05.5.6 11:48 PM줌인 줌아웃에 가서 이쁜 다섯남매 다시 보고 왔네요,
감동입니다.... ㅠ.ㅠ2. 름름
'05.5.6 11:50 PM저는요.. 딸 넷인 집에 장녀랍니다
아들에 대한 미련을 삼켜버린 부모님.. 외할머니.. 주변분들께
어미가 된 지금도 가시를 품고 있답니다
인우둥님의 글을 읽으니 저 정말 옹졸한 거 같애요.. ㅠㅠ3. 쵸코크림
'05.5.7 12:43 AM감동이에요...
글도 어쩜 늘 느끼지만 참 잘쓰세여..4. 코코샤넬
'05.5.7 6:52 AM인우둥님..마음이 넘 이뻐요, 그래서 제가 인우둥님을 좋아한다니깐요.
글 또 기다릴께요,
글을 참 잘쓰신다 했더니 신문반이셨다구용?? 우짠지..넘 잘 쓰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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