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이완
조국 장관 일가의 무죄를 주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가족끼리 나눈 메시지가 조작되었다는 증거, 조민의 표창장과 봉사활동이 진짜라는 증거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국 장관을 옹호하는 사람 중 누구도 제대로 된 증거를 보여준 적이 없다.
주로 들고 오는 것은 검찰과 법원이 정치적인 기관이라는 점인데, 그 점은 수사와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의심할 작은 단서가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두 기관이 조국 일가를 음해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나쁜 사람이 매 순간 나쁘게 행동하리라는 법은 없고, 무엇보다 과거 행적을 근거로 누군가의 결정을 의심하는 것은 조국 장관 지지자의 자가당착이다. 지금도 조국 장관은 사노맹식 반제국주의 노동자 혁명을 바라고 있을까.
조국 사태는 너무 큰 사건이라, 검찰 뿐만 아니라 언론인과 시민단체까지 개입한 사안이다. 그 모든 사람이 죄 없는 조국 일가를 괴롭히려 했다고 판단하려면, 결정적으로 조국 장관의 무죄부터 증명해야 한다.
무죄추정은 사법기관이 따라야 할 원칙이지, 국민 모두가 매순간 따라야 할 원칙이 아니다. 그리고 조국 장관 일가는 그 무죄추정 원칙으로 보호받지 못할 만큼 많은 흔적을 남겼다.
이제는 조국 장관 일가가 부패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 요인에 주목하는 듯하다. 비슷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처럼 살기 위해서는 남들처럼 부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환경 요건은 조국 장관도 공정함을 위해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흔한 소시민이라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무엇보다 풍족한 환경 요건은 조국 장관의 무죄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
궁핍한 사람의 생계형 범죄는 이해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 사회적 자본을 모두 소유한 명문대 교수 부부의 생계형 범죄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게 억울하다면, 조국 장관 일가는 재심을 청구하거나 특검으로 검찰의 조작을 들춰낼 수 있다. 국회와 대통령실을 모두 차지한 압도적 다수당이 편들어 주는데 못할 이유가 없다.
조국 사태는 공감 과잉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조국 장관 일가의 고난에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객관적인 근거조차 들여다보지 않거나,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죄의 무게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공감이 부족한 곳이 아니다. 공감은 원래 특정 소수에게만 집중되기 마련이고, 우리는 특정 소수에게만 과하게 공감하며 살고 있다. 이제는 공감과 잠시 거리를 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