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
18일 오전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광화문 광장 농성장 앞. '엄마부대봉사단'이라고 적힌 붉은 색 조끼를 입은 여성 수십 명이 피켓을 들고 몰려와 막말과 고성을 쏟아냈다. 이들과 함께 온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도 세월호 특별법의 내용이 부적절하다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특별법 제정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 엄마부대봉사단 "세월호 희생자 의사자 지정 반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엄마부대봉사단과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나타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다"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의사자 지정과 대학 입학 특례 주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 유성호
대부분 60~70대 노인들로 구성된 이들의 피켓에는 "도가 지나치면 국민들이 외면합니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자식 의사자라니요", "유가족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의사자라니요" 등이 적혀 있었다.
마침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동조 단식 돌입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던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거세게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뒤늦게 출동한 경찰의 설득에 못 이겨 광장 길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유가족들을 향해 단식농성을 그만두라는 그들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세월호 때문에 국가 경제 죽어"... 겁 먹은 유가족들은 뒤에서 눈물만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 앞에 엄마부대봉사단,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 30여 명이 도착한 것은 이날 오전 10시 50분경. 10여 분 뒤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요구하며 종교·시민단체 대표들의 동조단식 선포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보수단체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난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기자회견은 계획대로 열리지 못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피켓에 적혀 있는 문구는 대부분 온라인상에서 유언비어처럼 떠돌고 있는 내용이었다. 보다 못한 일부 시민들과 기자들이 나서서 이들을 향해 "'의사자 지정' 등이 유언비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게 어떻게 유언비어냐", "기자가 공부나 더 하고 와라" 등의 답변만 돌아왔다.
반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이들의 기세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으면서 일부 시민들의 오해나 막말로 가슴에 상처를 입고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 상태였다. 그저 눈물만 흘린 채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대신해 현장을 지나가던 시민들과 1인 시위자들이 나서서 핏대를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몇몇 시민들은 이들 보수단체 회원들을 향해 "도대체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기는 하냐", "당신네들 부끄러운 줄은 아냐"며 거세게 질타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를 지원해주고 있는 황필규 변호사도 나서서 "(유가족들을) 더 이상 상처받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엄마부대봉사단 회원들은 "세월호 때문에 국민들 생업이 죽었고, 국가의 경제가 죽었다"며 막말을 쏟아낸 뒤, 기자회견을 강행하려고 했다.
▲ 엄마부대봉사단 "세월호 희생자 의사자 지정 반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엄마부대봉사단과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려하자 경찰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다"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의사자 지정과 대학 입학 특례 주는 것을 반대했다.
▲ 세월호 의사자 지정 반대에 울분 터트리는 시민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엄마부대봉사단과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모여 세월호 희생자들의 의사자 지정과 대학 입학 특례 주는 것을 반대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시민이 "뻔뻔하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다.
ⓒ 유성호
결국 황필규 변호사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위에는 3~4명의 경찰만이 지켜보고 있었다. 황 변호사는 경찰에게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서울시와 경찰에서 유가족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위나 기자회견을 광화문 광장에서 못하도록 관리하기로 했는데, 이런 사람들을 제지하는 경찰들은 왜 나타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10여 분 뒤 60여 명의 경찰들이 도착했지만, 현장은 이미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의 횡포로 아수라장이 된 뒤였다.
황 변호사는 뒤늦게 도착한 경찰을 향해 "충돌 가능 상황이 아까부터 감지가 됐는데 왜 경찰이 이제야 오냐"며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그제야 경찰은 엄마부대봉사단 회원들에게 "지금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곳은 이분들(유족)을 위한 추모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하고 있다"며 "조문객들이 오는 상황처럼 많은 시민들이 찾기도 하니 어머님들이 조금 협조해 달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엄마부대봉사단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옥순(61)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는 "언제까지 저들에게 양보해줘야 하느냐"며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 게 어디 허락받고 해야 하는 일이냐"고 반발했다. 송지현(65) 엄마부대봉사단 부대표도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 재산이 3조 원이라고 하는데 빨리 유병언을 잡아서 유족들에게 나눠주면 해결되지 않냐"며 "정부와 대통령이 약속을 했으니깐 약속한 것 이상 바라지 말고 기다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 마이크를 잡고 "석 달이 지나도록 유족들이 저래서 국민들 다 죽겠다", "그만 좀 해라" 등의 구호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길을 가던 시민들이 멈춰 서서 이들을 향해 야유를 보냈고, 현장에 있던 경찰들도 제지에 나섰다.
엄마부대봉사단은 경찰의 계속되는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광장 길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회견을 열었다. 길 건너편이라고는 하지만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에서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길을 가다가 이 광경을 지켜봤던 조항아(46)씨는 "지금 너무 분해서 말을 잃었다"며 "자기 자식들이 물 안에 있어도 저럴까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한 시민도 "저분들이(보수단체 회원들이) 뻔뻔하게 기자회견을 고집하는 게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종교·시민단체 대표 13명 동조단식 돌입... 보수단체 "농성 그만해!"
▲ 세월호 특별법 동조단식단 "재발방지 위한 골든타임 놓칠 수 없다"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조계종 노동위원회 도철 스님과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이 가족들과 함께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오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줄 특별법이라도 제정해서 죽어간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자 했던 유가족들을 대통령과 여야 정당이 끝내 외면했다"며 "세월호 가족의 마음으로 특별법 제정 제정하기 위해 가족들 곁에서 단식에 돌입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신승철 위원장은 진실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인 특별법 제정에 힘쓰지 않고 있는 정치권을 규탄하며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를 멈출 수는 없었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골든타임은 놓칠 수 없다"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 유성호
이들의 횡포와 방해로 인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동조단식 선포'는 예정된 시간보다 15분이나 늦게 열렸다. 이 동조단식에는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도철 조계종 스님, 박래군 인권재단 소장 등 총 13명이 참여했다. 또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백도명 의장 등 교육·문화·종교계 인사들도 릴레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세월호 가족의 마음으로 '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희생자) 가족들 곁에서 단식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총장은 "우리가 참사를 막을 수 없었지만 다른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성역없이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특별법을 제정을 촉구했다. 강다복 전국여성농회총연맹 회장도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단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묵살하고 있다"며 "특별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천만인 서명에 열심히 서명을 해 달라"고 호소했다.
단식농성 참가자들은 발언을 끝내고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곧바로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이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그 순간에도 길 건너편에서는 엄마부대봉사단의 기자회견이 계속 진행 중이었다. 특히 엄마부대봉사단 회원들은 "오천만 국민이 추모해준 만큼 (유가족들은) 그만 농성하라"고 외쳤고, 이들의 목소리는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날로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아버지들은 굳게 입을 닫은 채 먼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한편 주옥순 대표는 엄마부대봉사단에 대해 "그 이름을 쓰기도 하지만 나라지킴이여성연합, 탈북여성회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회원은 40여 명 정도 된다"며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곳이며 이번 세월호 참사 때도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7일에는 어버이연합 회원 30여 명이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에 난입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무산됐다. 이들 역시 "세월호 참사에 학부모들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극언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