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인해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는 요즘, 가슴을 치는 한마디는 ‘만약에... 했다면’이다. 안전 규제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안전 훈련, 안전 교육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진행했다면이라는 후회가 그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불안의 요소들이 시민들에 의해 다시 점검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날릴 수 있는 최악의 위험 요소는 바로 원전 사고이다.
1억년에 한번 일어날 확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원전사고는 일단 발생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고 수백 년 간 오염된 땅을 쓸 수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정부가 공식 발표한 제염(오염제거) 대상지역은 8개 현에 걸쳐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8개 도인데 남한 전체가 포함된다. 제염이라고 해봤자 방사성물질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고 방사능에 오염된 땅을 깊이 5~30센티미터로 걷어내는 정도다. 걷어낸 흙은 방사성폐기물이 되는 것인데 보관할 장소도 없어서 집주변과 마을 주변에 쌓아놓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아서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인명피해가 크고 국토는 좁아서 5개 원전 지역(부산고리, 울산 신고리, 경주 월성, 경북 울진, 전남 영광) 어디에서라도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피난갈 곳도 없다. 원전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아무리 사고 발생가능성이 낮아도 사고는 일어난다는 것이 지난 60년 원전 가동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핵산업계는 확률론적 안전성평가로 원전사고 확률을 계산하는데 후쿠시마 원전이 사고 전에 격납건물까지 파괴되는 사고는 100,000,000년-원자로에 한 번이라고 평가되었지만 2011년 3월에 3기의 원전이 연달아 폭발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가동한지 30~40년 된 것들이었다. 특히 1호기는 사고 한 달 전에 추가 10년 연장이 결정되어서 가동 중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세월호 참사를 통해 확인했듯이 수명이 오래된 원전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 모든 원전이 중단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만 그러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사고발생확률이 가장 높은 원전부터 가동을 서서히 중단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2007년과 2012년에 30년 가동 수명이 다한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주)는 고리원전 1호기는 증기발생기를 교체하고 10년 수명연장을 신청해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36년째 가동 중이고 월성원전 1호기는 핵연료가 들어 있는 압력관을 교체하고 10년 수명연장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전 세계 원전 중에서 설계 수명인 30년을 다 채워 가동을 한 경우는 드물다. 2011년 현재까지 60년 원전 가동 역사 중에서 143기의 원전이 폐쇄되었는데 평균 가동연수가 23년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기계와 콘크리트 건물도 수명이 있기 때문에 30년 가동을 하고 난 뒤에 노후화로 인한 고장과 사고 발생확률은 높아지는데 원전은 더 심각하다. 원전은 핵분열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핵분열 시에 나오는 중성자선과 방사선, 고온고압과 화학적인 환경으로 인한 부식 등으로 노화정도가 더 심각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위조된 품질보증, 불투명한 수명연장 절차...그래도 안전?
더구나 원전은 수백만 개의 부품이 수명이 다한 뒤에도 멀쩡하리라고 보기 어렵다. 1000메가와트(MW)를 기준으로 배관길이와 케이블 길이만도 각각 170km와 1,700km에 이르는데 배관과 케이블이 30년 수명이 지난 뒤에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배관이나 케이블 파손은 냉각과 전기 공급 능력, 원자로 상황을 알려주는 신경계통 능력 등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서 중대사고를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대사고 발생 시에 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원전안전비리를 통해서 확인된 부품과 기기의 품질보증서와 시험성적서 위조 건을 보아도 노후원전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시험성적서를 전수조사했다는 것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의 자료들뿐이고 그 이전의 기기와 부품들에서 위조사건이 없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더구나 2000년대 들어 규제완화조치가 진행되면서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는 품질평가실을 폐지하고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자율 평가에 맡기는 결정을 하기도 했다. 규제개혁의 이름으로 사실상 안전성을 떨어뜨리고 사업자에게 미루면서 비리의 온상을 키워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원전 수명연장은 안전여유도를 줄이는 결정이다. 고리원전 1호기는 수명연장이 결정된 이후에 뒤늦게 알려진 원자로 취성화로 인해 지금도 불안하게 가동 중이다.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가 중성자선에 의해 매우 약해져 있다. 뜨겁게 달궈진 원자로에 갑자기 찬 냉각수가 끼얹어졌을 때 유리처럼 파손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측정 방법을 편법으로 바꿔서 수명연장을 허가해줬다. 월성원전 1호기는 체르노빌과 마찬가지로 핵연료가 있는 원자로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어서 세계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원전이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고 수명연장한 사례도 거의 없으며 종주국인 캐나다조차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폐쇄를 결정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월성원전 1호기를 2012년 점검한 뒤 “핵발전소의 안전 장기 운전을 따라 조직되어 있지 않고...중략... 모든 구조물과 부품들의 열화(degradation) 메카니즘과 노화(ageing)효과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는 월성원전측이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수명연장이 결정되는 과정도 투명하지 않다.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의 안전성평가 보고서는 지금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경제성 평가와 안전성 평가 모두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되어서 고리원전 1호기의 원자로 상태도 수명연장이 결정된 이후에 알려졌다. 경제성과 안전성평가과정이 공개되고 공청회도 거치는 해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주)가 수명연장 승인을 받기 전에 수천억 원의 비용을 들여 기기를 교체해 놓고 수명연장을 신청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사후적으로 승인해 주는 절차이다. 그나마 최근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을 하면서 과정을 공개하고 있지만 정작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중간보고서는 공개하지 않아서 빈축을 사고 있다.
나아가 원전사고가 발생한 후에 즉각적인 재난 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리라고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 증기압 폭발을 막기 위해서 방사성물질 방출 방침을 발표하기 전에 3월 12일 새벽 1시 10분에 주민 대피를 위한 60대의 버스를 확보했으며 수상의 지시로 인해 반경 10km 이내 주민들의 피난은 새벽 5시 44분에 시작했다. 방출되기 5시간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나마 일상적인 대피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방재훈련은 4년에 한 번이며 이마저도 자율참여라서 학생들이 참여하는 정도다. 주민들에게 나눠 준 방독면은 방사성물질은커녕 먼지를 거르는 수준이다. 또한, 국회에서 지난 4월 30일 통과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은 1차 대피를 실시해야 하는 예방적보호조치구역이 3~5km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 사고의 가능성은 높고 안전여유도는 줄어들었으며 사고 시 대비도 한참 부족한데 우리나라는 국토는 좁고 인구밀도는 높아서 고리나 월성 어디에서라도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피난갈 곳도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수명 다한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를 폐쇄하도록 조치하고 국회는 더 이상의 수명연장이 될 수 없도록 관련 법을 발의해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