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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11)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지 기쁘게 받아들여라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기억하면 좋을 12가지)

| 조회수 : 2,211 | 추천수 : 154
작성일 : 2010-01-30 15:10:19
마흔 중반에 접어들은 엄마가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면서 배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은 나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외부의 심판관도 어려운 존재이지만 무엇보다도 내 안에 존재하는 심판관이 엄마에게는 더 힘든 존재였던 것같았다.
대학 입시를 공부하던 고3때에도 이보다 더 힘들지는 않았었던 것같다.
그땐 너무 어려서 그랬을까.
입시가 끝나면 뭘 하고 놀을까, 어딜 갈까 하는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고 흐믓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시험을 준비하면서는 이 시험이 끝나고 나면 무언가 하나의 장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압박감에서 오히려 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었나 보다.
입시란 끝이 아니고 시작인 것을 엄마는 마흔이 훨씬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LSAT 란 말이 로스쿨 입학시험이지 내용은 법률에 관한 내용이 아닌 어학능력과 논리능력시험이다.
수수께끼를 풀듯이 한국말로 보아도 알송달쏭할 것같은 문제들을 풀고 또 풀면서 회사 일과 집안 일, 그리고 너희들의 뒷바라지를 겸하면서 몸이 수 십 개라도 모자르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고, 그만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엄마에게 동기부여가 되도록 도와준 것은 그 무엇도 아니고 너희들의 얼굴들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공부가 그저 나의 유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지.
엄마로서뿐만 아니라 먼저 인생을 시작한 한 여자 선배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엄마는 너희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꿈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향해서 조금은 느린 속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앞으로 달려가는 것, 세상의 판단에 무너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내 인생만 생각하지 않고 내가 속해있는 사회에 무언가 나의 능력을 환원하는 것...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이루어가는지를 엄마는 남은 삶 동안 너희들이라는 관객들에게 아낌없이 보여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로스쿨의 입학전형절차 중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왜 법조계에 종사하고 싶은지를 쓰는 에세이였다.
엄마는 왜 늦은 나이에 변호사가 되고 싶었을까.
나름대로 지금 일하는 분야에서 조금씩 인정도 받아가고 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는데 왜 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걸까.
너희들과도 조금씩 나누었던 이야기들이지만, 엄마는 힘겨운 어린시절을 지나왔다.
7살 때 부모님이 불화로 이혼을 하시고 한창 사춘기이던 중학교 때 엄마의 재혼으로 또 한번 힘이 들었다.
알콜 문제로 언제나 어려움을 겪으시던 아버지로 인해 우리 집은 언제나 조용할 날이 없었던 어두운 날들이 엄마의 꿈많은 소녀시절의 기억이다.
가정폭력...엄마가 자랄 때만 해도 그런 단어조차도 낯설게 느껴지던 시대였다.
어느 집의 아내가 맞고 살아도 누구 하나 나 살기가 바쁘다는 이유로 편이 되어주고 도와주기에는 벅차기만 하던 그 시절, 엄마는 내 엄마의 힘없음을 나또한 힘없이 바라보면서 그저 나는 이다음에 저렇게 안 살리라 다짐하는 것만이 유일한 반항이었다.
그 힘든 시절이 지나가고 인생의 2막에 서있는 엄마는 인생은 알 수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단다.
어떻게 해서 이 곳에 이르렀는지에는 참으로 놀랍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엄마가 단 한 치도 비뚤어지지 않고 무사히 자라나서 이제는 내 엄마와 비슷한 삶을 살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여인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일하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마운 사랑과 도움이 있었는지 모른다.
자유와 평화의 나라 미국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 그늘에는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학대받으면서도 학대자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모른단다.
엄마는 나머지 인생을 그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대신 나서주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언어가 장애물로 막아서고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류 사회로부터 냉대받는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은 믿겨지지 않을만큼 처첨한 인생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은 때로는 학대자의 죄를 자기가 뒤집어쓰고 차가운 철창 안에서 삶을 영위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엄마는 그런 사람들에게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가는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늦깎이 학생이 되려고 한다.
엄마의 어린 시절 구비 구비마다 수많은 사랑의 손길이 있어서 지금 엄마가 이렇게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자란 것처럼 누군가 엄마처럼 힘겨운 시간을 지나가야 하는 가정들이 있다면, 돈이 없어서 법정에 변호인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혹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국선변호인도 요청할 수 없는 비참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꿈만 꾸어서는 안되고 일찍 낳았으면 딸 아들 뻘되는 젊은이들과 겨뤄 학교에 가야 하는 것이지.
꿈꾸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으니 말이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보면서, 그리고 시험결과를 받으면서 엄마의 자존심과 교만은 한방에 다 무너졌다.
그래도 이 정도는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마지막 기대는 점수를 받아 본 순간 다 무너지고 말았다.
동시에 어줍잖게마나 집 근처의 명문대 로스쿨의 문을 두드려보려고 했던 계획에도 전격적인 수정이 가해져야 했다.
내 아이들에게는 그다지 강요하지 않았던 명문대를 나는 왜 그리도 욕심을 내었을까.
그 실망감에 한동안을 좌절에 빠져 꿈을 포기하려는 생각이 다시 또 가슴 속에서 슬그머니 올라왔다.
기왕 가는 것인데 누가 들어도 알만한 좋은 학교엘 가는 것이 아니라면 안가는 게 나은 게 아닐까.
한동안을 헤매고 있을 때 아빠 회사의 변호사를 맡고 있던 오랜 지기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학교 선정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자마자 명쾌한 목소리로 지금 나이에 대형로펌에 들어갈 계획도 아니고 인권변호 쪽으로 갈 거라면 학교에 왜 그리 신경을 쓰냐고 했다.
한 단계 낮춰서 간다 해도 막상 현장에서 일을 하는 데에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니 들어가서 장학금 탈 각오로 낮춰서 가라고 권면을 해주는데 그 한 마디에 고민이 다 사라지는 것같았다.
그 분이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나요? 아니면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라는 미진함이 남는가요?"
"성적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정말 일생에 더 열심히 할 수 없을만큼 했어요. 물론 일하지 않고 공부만 했다면 더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내 상황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대답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오케이! 최선을 다했으면 기뻐할 자격이 있는 거에요 (You did your best and you deserve to be happy about it!). 난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그 분의 말을 듣고 그날 온종일 곰곰히 생각해보고 결국 엄마는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내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가지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아니라 기쁘고 당당한 마음으로 말이다.
내가 최선을 다한 것의 결과를 기꺼이 인정하고 나의 능력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그 다음 걸음을 옮기는 것을 엄마는 생의 반을 살고서야 간신히 마스터를 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딸들아,
어떤 일에든지 최선을 다해라.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하거나 미진하다는 생각이 올라오지 않도록 각 상황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절대적을 순복하여라.
운이 나빴다고 환경을 탓하지도 말고, 남을 원망하지도 말고,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허술한 변명도 하지 말아라.
바로 여기까지가 나의 능력이구나, 하고 인정하고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지혜를 움켜쥐어라.
그리고 나의 능력에 대해 한치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내가 가진 능력이 거기까지인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똑바로 바라봄으로써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분수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모습을 제대로 보고 인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앞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란다.

엄마의 지나간 인생에서 엄마는 늘 사다리의 끝까지 정신없이 안간힘을 쓰면서 올라갔었다.
다 올라갔겠지 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언제나 세 단 쯤 더 남아있고, 또 열심히 올라가서 보면 어느새 세 단이 더 생겨나 있고...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 했고 해도 해도 만족이 되지 않았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완벽주의자, type A personality 가 바로 그런 거란다.
무엇이든지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내 마음에 차지 않으면 기쁨이 없고 무언가 2% 부족한 것만 같은 그런 상태로 지금까지 만족없는 삶 속에서 살아온 것이지.
단순히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점점 더 각박하고 갑갑하게 하는 것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게지.
너희들은 그런 실수를 범하지 말면 좋겠다.
너희들의 인생에서 모자란 부분도 기꺼이 사랑하면서 감쌀 줄 알기를 바란다.
부족함이 있어야 꽉 참도 있는 거란다.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자랄 수가 없다는 말을 잊지 말아라.
최선을 다하고 난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거라.

엄마는 이제 몇 달 후면 지난 2년 간을 마음 졸이면서 준비하고 좌절하고 마음 졸이면서 뛰어온 결과대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시험에서 최선을 다했듯이 학교에 들어가면 또 그 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할 것이다.
엄마는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선영, 은선, 영은, 그리고 은영이까지 우리 다섯 모녀가 밤을 밝혀가면서 함께 한 상에 앉아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그 모습을 마음에  그려보기만 해도 벌써부터 뿌듯해진다.
우리 다섯 모녀를 앞으로는 열공모녀라고 불러볼까?

사랑한다, 딸들아.
너희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엄마는 먼 곳을 바라보면서 멀리 뛰어가려는 목표를 세워본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매일
    '10.1.30 11:04 PM

    최선을 다한 동경미님의 결과에 박수를 보냅니다.

  • 2. 보들이
    '10.2.4 1:31 PM

    꿈을 향해 도전하시는 모습 아릅답습니다

    저도 멀리서나마 마음가득한 응원보내드립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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