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아들과 딸
나도 며칠을 몸살로 누웠는데 친구도 감기로 목소리가 바뀌도록 아프다면서 기운이 하나도 없이 전화를 받는다. 서울에는 신종플루가 난리를 치니 조금만 아파도 더 걱정스럽다고 했다.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친구의 둘째 아들 때문에 두 어 달 내 마음을 끓이다가 전화를 한 것이었다. 얼마 전에 큰 아이가 친구들의 블로그를 뒤지며 놀다가 문득 친구의 둘째 아들의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 아이가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 여러 장을 보았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당장에라도 전화를 해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 문제는 예민한 부분인지라 선뜻 하게 되질 않았다. 나라면 우리 아이 문제를 듣고 싶을 거라는 생각 반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마음 반으로 고민을 하다가 어제 큰 맘을 먹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리 저리 말을 돌리다가 결국 친구의 아들 얘기를 꺼냈더니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면서 갑자기 목이 메인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내가 처음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어깨가 가벼워졌지만, 친구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아팠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마리화나도 장난삼아 해본 것을 알게 되어 가슴앓이를 했다는 친구는 둘째에 접어드니 이제는 마음을 어느 정도 비우게 되려나 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둘째의 흡연에 가슴이 무너져내리더라고 했다. 아직은 고등학생이고 엄마의 눈에는 아기처럼 보이는 아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야단을 쳤더니 자기 인생이라고 대꾸를 해서 더 기가 막히더란다. 이제까지는 엄마 아빠가 자기 인생을 주관했지만 앞으로는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 거라고 큰 소리를 치던 아들이 야속해서 며칠은 밥도 못먹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또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한국으로 나간지 두 해가 되어가는 아이가 엄마 아빠가 자기의 의사는 무시하고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한 것에 대한 불만은 토로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엄마가 해주는 밥이 아니면 맛없다고 투정을 부리고 엄마가 빨래를 해주고 챙겨줘야 입고 나가는 아들의 인생 선언이 밉기도 하다가 친구는 문득 친정 엄마 생각이 나더란다. 엄마 몰래 살그머니 이리저리 놀러다니던 여고 시절도 떠올랐고 그외에도 수없이 엄마와 숨바꼭질을 했던 철부지 시절이 다 떠올라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그런 저런 가슴 앓이로 며칠을 감기로 꼼짝도 못하고 앓아 눕자 야속하던 둘째 아들이 그래도 엄마 챙긴다고 학교에 가서 엄마 괜찮냐고 날마다 전화를 해서 마음으로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서 퉁명스럽게 받아주었다면서 헛헛한 웃음을 터뜨리는 친구의 아직도 쉬어있는 목소리가 안쓰럽기만 했다. 너는 딸들이니 얼마나 좋겠냐고고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며칠 전 큰 딸과의 접전을 얘기해주니 여고시절 작은 농담에 쓰러지듯이 웃어댄다. 그래도 말은 하지 않냐고, 아들이니 생전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말도 잘 안한다고 하는 친구에게 말땜에 늘 티격태격하는 우리 다섯 모녀 얘기를 해주면서 듬직한 아들이 부럽다고 했더니 부러울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아들이 엄마에게는 야속한 소리를 하면서도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온갖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다 하고 군소리없이 어른들을 돕는 것을 보고 툴툴거여도 제 나름대로 속은 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아들에 대한 별 수 없는 엄마의 사랑이 묻어났다.
오랜만의 친구와의 통화에 우리가 지나온 여고시절 얘기까지 나누면서 모처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새 세월을 타고 친구는 두 아들을, 나는 네 딸을 기르는 중년 여인들이 되었는지 세월이 참 야속하기도 하다. 같이 문예반에서 활동을 하면서 가을이면 시화전을 준비하기도 했고, 친구는 수필을 나는 소설을 쓰면서 문학도가 될 것을 꿈꾸기도 했던 그 시간들이 어디로 다 다가버린 건지 모르겠다. 알베르 까뮈와 헤르만 헷세를 읽느라고 밤을 지새우고 시험 날에도 빨리 시험이 끝나야 읽다 만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마음에 끝나는 종소리만 기다리던 참 아름다운 우리의 젊은 날이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는 담배를 피우겠다는 아들과 말대꾸를 한번씩 하는 딸을 기르느라 몸져 눕기도 한다. 친구의 아들들과 나의 딸들이 바라보는 엄마는 누구일까. 엄마들에게도 햇살처럼 찬란했던 젊은 날이 있었던 것을 이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그래도 우리 때랑 비교해보면 좀 순진한 것같기도 해. 우리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었잖니!"
목쉰 소리로 친구가 불쑥 던진다.
"하는 짓들은 아주 다 큰 척 하는데, 어제도 자는데 들어가보니까 덩치는 제 아버지보다 더 큰 녀석이 이불은 다 차내고 배는 다 내놓고...일곱 살 때랑 다를 게 없어라."
"우리 집도 마찬가지야. 아주 다 큰 아가씨인척 하는데 몰래 눈화장하고 나갔다 오는데 보니까 눈 주위가 다 번져서 너구리처럼 하고 오더라구. 삐질까봐 웃지도 못했어."
내 말에 친구가 까르르 웃어 나도 웃음이 터졌다.
"얘, 이렇게 아들 흉 보니까 속이 시원해지는 것같다. 이거 완전히 시어머니 흉보는 것보다 더 시원한 거 있지? 나 네 말대로 그때 딸하나 낳을 것 그랬어."
"나야 말로 듬직하고 제 아빠보다 더 다정하게 굴어줄 아들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 아들도 딸도 가슴앓이할 일 만들어주는 건 다 마찬가지야. 그저 이 시기를 잘 지나가기만 기도해보자구."
아들도 딸도 엄마 마음 몰라주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들도 딸도 엄마에게는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보물임에는 틀림없다. 듬직한 아들과 다정한 딸을 서로 부러워하는 친구와 나는 이제 마흔도 중반을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갱년기에, 마음대로 안되어주는 자식에, 경제위기에...갖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오늘도 가슴을 펴본다. 이리저리 반발하면서 엄마 가슴을 태우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 곁에는 엄마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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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ugar
'09.11.17 7:59 PM얼마전에 아이가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엄마,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길래 엄마두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더니 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엄마, 그건 아니지, 엄마는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야지'하더군요.
순간 할 말이 없어서 '그래, 그래, 그래야지...'하는데 가슴 한 켠이 싸해져 와요.
'그래, 나도 우리 아이의 엄마이고 우리 아버지의 딸이고 그렇지...'
다음날 아침,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가 3년전, 처음 공교육을 시작하던 날(이곳은 3살부터 공교육이 시작되지요)이 떠오릅니다.
제 손을 놓고 들어가는 아이는 막상 의연했는데 저 혼자 눈물바람을 하였지요.
언젠가는 성큼 성큼 제 갈 길을 가야할 아이
제가 할 일은 그저 그 아이를 묵묵히 응원해주고 아이가 지쳐 돌아오면 가만히 안아주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지만 제 소유인양 아직도 그 '내려 놓음'이 잘 안돼요.2. 동경미
'09.11.18 1:27 AMsugar님,
님의 아이의 얘기가 제 마음에도 와닿네요.
엄마들도 다 자식이지요...
자식 노릇 하는 것, 부모노릇 하는 것, 그리고 아내노릇 하는 것까지도...무엇 하나 쉬운 것은 인생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려놓는 연습을 부모가 잘하든 못하든 아이들은 조금씩 떠나가는데 기다려주고 놓아주고 돌아오면 지지해주는 부모가 되기 위해 저도 날마다 노력하고 싶어요.3. 델몬트
'09.11.18 10:33 AM마지막 글이 제 가슴을 울리네요.
이리저리 반발하면서 엄마 가슴을 태우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 곁에는 엄마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
오늘 새벽에 거실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딸을 보고
남편이 혼을 냈어요.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잠을 자라고요.
아침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별똥별 떨어질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대요.
별똥별 떨어질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수능대박을 기원하려고 했나봐요.
아침에 밥 먹으면서 대화를 해도 세대차이인지
말이 안통했어요.
전 아직도 그 세대를 이해 못하는 엄마인가봐요.4. 동경미
'09.11.18 2:03 PM델몬트님,
별똥별 보려고 기다린 따님의 얘기에 가슴이 짠하네요.
아이들 수능 스트레스가 참 많지요.
아이들 스트레스 받는 것 보면 한편으로는 누구나 지나가는 거다 싶으면서도 너무 안쓰러워요.
대신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중앙으로 점점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도 같이 힘이 들지요.
세대 차이 당연히 있겠지요.
그래도 엄마이기에 줄 게 사랑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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