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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 조회수 : 3,297 | 추천수 : 164
작성일 : 2009-11-14 03:29:30
오래 전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셋째가 받아쓰기 시험공책을 쭈삣거리며 내놓았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받아쓰기 시험 점수가 40점이었다.
전날에 시험공부를 시키려는데 갖은 애를 먹이며 공부를 하지 않으려하기에 "그럼 공부하지 말고 시험 봐" 했더니 좋아라고 책을 접었던 터였다.
제가 보기에도 너무 한 점수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눈도 못맞추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40점 맞은 애들 많으니?"
"아니, 별로 없어요."
"그럼 네가 제일 못했어?"
"아니에요. 내 짝꿍은 10점이에요."
화가 나려다가 10점을 맞은 짝꿍을 보고 위안을 삼는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에는 스펠링 테스트에서 하나만 틀려서 와도 조바심이 나고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못 가르쳐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까지 있었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조금만 공부를 소홀히하는 기색이 보여도 이 아이가 이러다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 안달을 했다.

둘째도 별 다를 바가 없이 안달을 했지만 다행히 늘 책을 달고 사는 아이라서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행스럽게 큰 아이와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내가 일러주지 않아도 저희들이 못견뎌서라도 숙제를 다 하고 공부도 알아서 하는 아이들로 자라주었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부족한 것이 보여도 저희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믿게 되었다.

그런더니 셋째에 와서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고지식한 언니들과 달리 꾀도 부리고 싫증도 잘 내는 셋째는 1학년에 입학하자 마자 바로 엄마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학교에 보내는 일부터 공부를 하게 만드는 일까지 모든 면에서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위의 두 언니들처럼 으름장만으로는 동기부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숙제든 공부든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안하려고 고집을 부렸다.

이 방법 저 방법 끝에 늘 그러했듯이 내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를 낼수록 아이는 반대로만 가는 것이 보였다. 아예 '장기전'을 예상하고 아무리 공부를 안하고 숙제를 안하려고 해도 내 감정에 별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숙제를 안해서 선생님꼐 꾸지람을 들으면 "저런, 속상하겠구나. 영은이가 사실은 잘할 수 있는 건데..."라고 위로만 해주었다. 공부를 안해가서 시험을 못보고 와도 야단을 치지 않고 "뭐 어때, 네가 제일 못한 것도 아닌데"라고 대수럽지 않은 척했다. 물론 내 마음 속에서는 온갖 할 말들이 부글부글 나올 기회만 찾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문제를 다소 떼어놓고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숙제를 안해가서 야단을 맞고 왔거나 시험을 못보고 왔을 때에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다름이 없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처음에는 그저 엄마한테 야단을 안 맞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하고 좋아하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같았다. 내가 해주는 엉터리 위로가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공부 못해도 괜찮아. 영은이는 노래를 잘하니까" 했더니 "아니에요, 저 공부 잘해야 되요" 하고 제가 오히려 화를 냈다. 왜냐고 물었더니 선생님한테 창피하단다. 거기까지 생각이 간 셋째는 받아쓰기 시험이 있다고 하면 시키지 않아도 제가 스스로 한 문장을 열번씩 쓰면서 연습을 하고 시험 좀 봐달라고 따라다니게 되었다. 엄마와 시험보고 아빠와도 시험을 보고 그래도 모자란 것같으면 언니들까지도 괴롭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여러가지 특수한 상황에 맞물려서 학교 성적에 많은 의미가 부여될 수 밖에 없다. 아이가 자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거나 결혼을 해서 부모 품을 떠나기 전까지는 공부에 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20 여년 간 어차피 해야 할 공부라면 그 공부때문에 부모와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20 여년의 세월 동안 아이와 부모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공부 문제로 부딪친다면 그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그 거리를 좁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 생겨나는 문제해결의 열쇠는 대부분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관계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면 대부분의 문제들은 수월하게 해결이 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관계가 좋은 아이들은 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그것이 공부라면 그때부터 아이와 부모 간의 공부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큰 아이가 "엄마,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요?" 하고 물어왔다. 이다음에 좋은 미래가 보장될 확률이 높으니까 라는 대답은 너무 진부한 것같아서 "지금은 그게 네가 가장 열심히 해야 할 임무니까. 넌 학생이잖아. 엄마는 직업이 있으니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하고 얼버무렸다.
"그럼 공부만 열심히 하면 이다음에 잘 살 수 있나요?"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아이의 질문에 한동안 대답을 찾지 못해 난감했다. 오랜 경험의해 나는 답을 잘 모르겟는 질문은 다시 아이에게 묻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지. 어떤 사람은 돈 많은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사람마다 다르잖아.너는 어떤 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니? 잘 사는 것의 정의가 무엇이든간에 공부만으로는 잘 살기가 어려워. 공부와 다른 게 합쳐져야 돼. 공부 밖에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보다는 공부 외에도 내놓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무래도 행복하게 살 확률이 높지 않겠니?"
그제서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한다.
"그럼 어쨌든 난 공부는 열심히 해야 되겠네요. 난 의사가 되고 싶으니까 우선은 공부를 해야 그 다음에 뭘 할 것인지도 결정이 되는 거네요."
고등학생 딸아이에게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학업성적만으로는 그저 난감하기만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일일히 다 말해줄 수가 없다는 생각에 난감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단순하게 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학업성적이란 그저 그때 그때 나이에 맞게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는가를 보여주는 척도 정도이고 막상 세상에 나오면 성적 이상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지를 아이는 세월이 가면서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수월하게 배워갈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며 몇년에 한번씩 열병처럼 시달리며 입시를 치뤄야 했던 나는 나름대로 좋다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졸업했지만 단 한순간도 공부를 즐기며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공부란 그저 어쩔 수 없이 남이 다 하니까 나도 안하면 안되는 그저 버겁기만 한 굴레였다. 대학도 대학원도 좋은 학점을 받아 취직하는 데에 도움이 되려는 게 전부였던 같다. 그때 배운 전공과목 중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좋아서 한 공부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결혼 후에 미국에 와서 아이 넷을 데리고 새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공부가 정말 재미있을 수도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나깨나 전공서적을 끌어안고 살았다. 교과서를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읽어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던 것같다. 공부하는 시간 외의 시간은 사람들에게 내가 뭘 배우고 있는지를 얘기하느라고 보내고 아이들을 보살피면서도 내가 배운 이론을 적용해보며 신바람이 났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고 밥하는 시간도 아깝고 설겆이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때에 내가 무릎을 치며 깨달은 것은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해야 제대로 된다는 것이었다.

환경 탓도 아니고 선생님 탓도 아니고 독서실이 멀어서도 아니고 참고서가 없어서도 아니고...공부를 못한다면 그것은 공부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로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곁에서 말리는 사람이 있어도 기를 쓰고 할 것이다. 언젠가 미국에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노숙자 여학생이 하바드 대학에 입학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여학생의 입학 후 애로사항은 학업이 아니라 기숙사에 적응하는 것이었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주말이 되어 역시 노숙자인 아버지를 찾아가 노숙을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공부 잘하라고 온갖 좋은 것 다 먹이고 입히고 최상의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정서로는 참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훌쩍 큰 중학생이 되어 시험 준비로 애를 쓰는 세째의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9시가 되면 공부가 다 끝나지 않았어도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살짝 눈을 흘긴다. 자기네 반 친구들은 하루종일 학원가고 공부하느라고 밤 12시가 되어야 잔다고 한다.
"엄마는 영은이가 공부 잘하는 것도 좋지만 잠 충분히 자서 안 피곤한 게 더 중요해."  
"엄마, 이제 그 말 안통해요. 엄마가 뭐라고 해도 나는 시험을 잘봐야 된다니까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공부 만으로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가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부 외에 아이의 인생에 필요한 대부분은 사실 부모로부터 배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에 꼭 필요한 여러가지 기술을 덜 가지면 가질수록 공부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선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것은 공부로 드러나게 되니 공부를 포기할 수도 없는 어려운 세상이다. 오늘도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중고등학생 세 아이의 방을 바라보면서 엄마의 마음을 비워내는 작업을 해본다. 엄마의 마음이 비워질수록 아이들의 마음이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sugar
    '09.11.15 8:11 AM

    아이가 왜 학교에 가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으면 저도 '각자 맡은 바 임무론'을 주장하곤 하는데요. 그럼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저는 과연 제 할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아이에게 요구하는 그런 마음 가짐으로 저의 본분을 대하는지 생각하면 거의 '바담 풍' 수준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기술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하는데 공부가 그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마음을 비우고 존중하고 들어 주고 기다려 주며 건강한 삶의 뒷 모습을 보여 주어야 겠다라는 다짐을 해 봅니다. 글 감사합니다.

  • 2. 동경미
    '09.11.15 3:00 PM

    sugar님,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일터에서 여러가지 상황에 처하면서 어김없이 느끼는 것이 학교에서 공부한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거에요.
    제가 일하는 곳이 이론과 지식만으로는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저 학생이니 자기 맡은 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정답이긴 한데, 사실 최선을 다해 공부해도 꼭그에 상응하는 인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니 엄마의 마음이 답답하지요.
    공부도 성실하게 해내면서 인격도 거기에 맞춰 잘 자라나는 아이로 키워야 할텐데 어깨가 무거워요.

  • 3. 델몬트
    '09.11.16 10:30 AM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저는 그런 다짐을 백번도 더 해본것 같아요.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될것을 자꾸 아이와 실갱이를 하고
    서로 감정까지 다쳐가면서 일을 크게 만드는지......
    엄마의 의욕에 아이가 지칠지도 모르는데도
    자꾸 방문을 열어보고
    잔소리하게되고
    아이만 밖에 나오면 날카로와져요.
    유난히 큰아이에게만은 기대를 저버리기가 힘든것 같아요.
    둘째는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뭔가 공부와 관련된 것을 저와 하자고 덤비지만
    전 너무나 느긋하거든요.
    큰아이와 작은아이.
    똑같은 내 자식인데 자꾸만 큰아이가 더 분발하기를 바라는 묘한 두마음.
    엄마라면 모두 그런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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