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던 유아원의 할머니 선생님에게는 교직 생활 20년 동안 변함없이 교실 벽에 붙여놓는 신조가 있었다. 9월이 되어 새 학생들이 입학을 하게 되면 언제나 변함없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It's not the end of the world. You get what you get, and you don't throw a fit!(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무너질 일이 아니다. 주는 대로 받고 그로 인해 화내지 말자)" 라는 것인데 처음에 들을 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보석처럼 느껴지는 말로 내 마음에 남게 되었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장 기본 원칙으로 이 말을 쓰고 있었는데 입학하고 한 두 달만 지나도 아이들은 세뇌가 되어 서로 서로에게 말을 해 줄 정도가 되곤 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아이들의 간식 시간에 초컬릿 쿠키와 바닐라 쿠키를 나누어 주게 되었다. 어찌하다 보니 초컬릿 쿠키의 수가 모자라게 되어 바닐라 쿠키만 남게 되었는데 한 아이가 자기는 초컬릿 쿠키를 먹어야 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간식 당번인 나의 등에서는 진땀이 나는데, 할머니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향해 눈을 찡긋하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다섯살박이 아이들 전체가 떼를 쓰는 친구를 향해 선생님의 신조를 외쳤다.
"It's not the end of the world(그건 하늘이 무너질 일이 아니야). You get what you get, and you don't throw a fit(주는 대로 받고 화내지 마렴)"
친구들의 '합창'이 끝나자마자 놀랍게도 그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머쓱한 얼굴로 쭈삣거리며 선생님의 품에 가서 안기는 것이었다.
눈 앞에서 마술을 보듯이 하도 신기해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따로 물었다. 어떻게 그 어린 아이들이 한 달만에 떼 부리는 친구를 훈계할 정도가 되냐고. 선생님은 은발에 가까울 정도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그게 뭐 그리 대수롭냐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애들도 다 안답니다. 애들이라고 어른보다 뭐든지 덜 알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애들도 진리를 얘기하면 다 알아듣게 마련이거든요. 난 그저 그 단순한 진리를 가르쳤을 뿐이고요."
10여년 전에 처음으로 접한 할머니 선생님의 교훈은 그후 우리 아이 넷을 기르는데 어김없이 사용되었고 우리 집 냉장고에 네 뒤퉁이가 닳도록 붙여져 있다.
시험을 잘 못 보았다고 마음 상할 때에도, 친구와 싸워 다시는 같이 안 놀겠다고 투덜거릴 때에도, 아빠가 같이 놀아주기로 한 약속을 못 지켜서 시무룩해졌을 때에도, 엄마 말을 잘 안들어서 저녁식사 후 후식을 놓치게 되었을 때에도...우리 가족은 할머니 선생님의 구호를 서로에게 외쳐주며 위로해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으니까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라고.
민족성이라고 할까. 할머니 선생님의 구호처럼 미국 사람들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대체로 침착함과 여유를 잃지 않는다. 아무리 생명이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유머를 끌어내서 웃어가면서 일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아도 어느 순간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여유를 부리며 위기를 넘기는 모습이 흔하게 나타난다. 짧은 역사에 숱한 위협과 위기를 넘기면서도 아직도 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어떠한 일에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결하겠다는 의지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본다.
내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고난과 갈등 모두를 부모가 다 나서서 해결하고 막아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어떤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하며 해결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이다. 단 한 가지의 문제도 만나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사람마다의 문제 해결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느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도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단 어떤 사람이 얼마나 덜 상처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가는 주목할만한 일이다.
꼭같이 주어진 상황 안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꼭같이 신용불량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도 어떤 사람은 그즉시 한강다리 밑으로 몸을 던져 유명을 달리 하는 방법을 택하고 어떤 사람은 제 발로 은행을 찾아가 해결책을 위해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쪽이 자신을 덜 상하게 하는 방법인지는 옆 사람들도 알 수 있다.
세상을 향해 나가기 전의 어린 시절에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하늘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기만 한다면 어른이 되어 겪게 될 수많은 어려움들 속에서도 쉽게 주저앉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세째가 시무룩한 얼굴로 "나 이제 내 짝꿍이랑 안 놀거에요"라고 했다. "왜?" 했더니 "내 팔에 털이 많다고 나더러 남자라고 놀렸어요." 하며 입을 삐쭉였다.
"나는 왜 아빠를 닮아서 이렇게 털이 많은 거에요" 하며 급기야는 눈물까지 보였다.
내가 뭐라고 위로하기도 전에 큰 아이와 둘째가 합창으로 외쳤다.
" 야, 그게 뭐 그렇게 하늘이 무너질 일이야. 내일 가서 네 짝꿍더러 '너는 남잔데 왜 그렇게 털이 없냐?'고 물어보면 되잖아."
저희들이 말하고도 우스운지 울고있던 세째까지 합세해서 커다란 웃음보따리가 터져나왔다. 언니들이 힘이 되어주니 좀전까지 무너지려던 하늘이 다시 솟아오른 모양이었다.
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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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무너지지 않아
동경미 |
조회수 : 2,149 |
추천수 : 173
작성일 : 2009-09-18 22: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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