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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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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위한 귀

| 조회수 : 1,576 | 추천수 : 166
작성일 : 2009-09-09 23:44:19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모든 대화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말만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하는 데에서 주로 비롯되지 않는가. 주위를 돌아 보면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많아도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부족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자 아이만 넷이다 보니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 집은 그야말로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 간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반복하기 일쑤인 어린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중간에 대신 결론을 내 주고 빨리 내가 하던 일로 돌아가 마치고 싶은 욕구와 꾹 참고 들어줘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늘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 보면 제 나름대로는 얼마나 애를 쓰며 유일한 청중인 엄마의 관심과 흥미를 자극하려고 애를 쓰는지 모른다. 형제가 많다 보니 엄마 아빠의 관심을 얻는 것도 서로 경쟁이 되는구나 싶어 하던 일을 포기하고 들어 주면 미안할 정도로 좋아하는 걸 보면 들어 줄 사람에 대한 필요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관심도 다르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우리 아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얘기를 가장 재미있게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일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누구든지 대화 중 상대가 자신의 얘기를 잘 듣고 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무의식적으로 했던 이야기를 자꾸만 반복해서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럴 때에 얼른 얘기를 잘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면 그제서야 다음 얘기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고개를 끄덕이거나 말로 맞장구를 쳐주거나 "그러니까 xx란 말이지요?" 하고 중간 요약까지 곁들여주면 금상첨하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 얘기 또 하고 반복해도 반응이 없을 때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크기로 거절감의 상처를 받고 만다.

결혼상담의 대가 하빌 헨드릭스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어린 시절의 거절감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신혼여행지에서 축 쳐진 어깨를 하고 석양을 바라보는 아내의 뒷모습을 무심코 보게 된 그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좌절이 느껴지면서 이 결혼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왜 갑자기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결국 10여 년 후에 그들은 이혼하게 되었는데 결혼 상담을 전공한 자신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파서 한동안 전문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중, 신혼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떠올랐고 그 이유를 파헤치다가 최면요법을 쓰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던 중, 만 두 살 때의 기억을 재생하였는데, 어린 9 남매와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 앉아 놀고 있었다. 무언가 물어보려고 어머니를 불렀는데 그의 어머니는 창밖을 내다 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더 부르고 싶었지만 한없이 처져 있는 어머니의 어깨를 보니 그러면 안 될 것같았다. 그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때의 어머니의 어깨로부터 느낀 어린 아이로서의 단절감과 거절감이 그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었고, 신혼 여행지에서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위식중에 그때의 거절감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거절감의 기억으로 시작된 결혼이다보니 결국에는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내 일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하루 하루 내가 해내야 하는 일들은 벅차기만 하지만 오늘도 나에게 들려 줄 얘기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새카만 여덟 개의 눈동자들에게 가장 먼저 내 가슴을 열기로 한다. 험한 세상에서 곳곳에서 받게 될 수많은 거절감의 덩어리 속에 최소한 엄마로부터 느낀 것은 덜 있다는 마음을 주고 싶어서이다.

"엄마는 네 얘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
"에에, 거짓말, 언니한테도 그랬잖아." 눈을 흘기고 입을 삐쭉거리면서도 아이들은 나의 어설픈 거짓말을 정말로 좋아한다.


[출처] 꽃밭에서 (5) 듣기 위한 귀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호수맘
    '09.9.11 5:42 PM

    많이 생각하게 하는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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