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미국에서 한동안 유행하며 많은 아버지와 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노래의 제목이 "Butterfly Kisses(나비의 날개짓같은 입맞춤)" 였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내 기억에 의하면 한 아버지가 딸의 결혼식 날에 딸과의 삶을 돌아보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정말로 제대로 한 것이 있다면 그 딸의 아버지가 된 것이라고 고백하는 가사였던 것같다. 어릴 때 딸이 잠들 때마다 나비의 날개짓처럼 속눈썹을 아빠의 뺨에 대고 눈을 깜박대면서 아빠를 사랑한다고 했던 것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때때로 이성적 측면이 더 강조되고 냉정해보이기도 하는 미국 사람들도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지 참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때문에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감동을 받았다는 뒷 얘기로 화제가 되었었고, 나도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이 노래를 처음으로 라디오에서 듣고 가사에 감동이 되어 차를 한편으로 세워놓고 친정 생각에 눈물 지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버지들은 대체로 엄마만큼 표현력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가슴을 열어 보이는 일이 쉽지 않다. 더구나 맞벌이부부가 아닌 이상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들과 보내는 엄마들과 달리 늘 시간에 쫒기다 보니 아버지가 아이와 열린 관계를 맺어가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한 남자 아이가 소문난 말썽꾸러기로 알려져 있었다. 다소 엄격한 학교였던지라 누구든 조금만 무례한 행동을 해도 교장실에 불려가는 일이 예사였는데, 보통의 경우 아이에게 세 번의 경고를 주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부모를 불러 데려가게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두 번 정도만 경고를 주어도 바로 시정이 되었는데(이 학교가 엄한 면도 있지만 사실 많은 미국의 학교들이 성적보다는 예의범절이나 학습태도를 몹시 강조하는 추세이다) 이 아이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교장실에 불려가고 부모가 와서 데려가는 일이 계속되었다. 생각다 못해 교장과 담당 교사, 그리고 부모가 회의를 해서 내린 결론은 엄마가 날마다 일기 형식으로 아이의 하루 일과를 요약해서 기록하고 매 주 교장과 면담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베이비 오일 등으로 유명한 존슨 앤 존슨사에서 근무한지 13년이 되었다는 유능한 해외영업이사였고 아빠는 역시 큰 회사에서 재무업무 일체를 담당하고 있는 중역이었는데 그 아이는 결혼한지 10년 만에 생긴 외아들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다른 많은 학부형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 가정이 과연 아이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인지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던 아이의 아빠가 아이의 등하교를 맡아하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그럴 수 있어도 낮 12시에 아이를 데리러 평상복 차림으로 아이 학교에 나타나는 아빠의 모습이 하도 낯설어서 어찌된 일인지 물어 보았다. 이유인즉슨 아이의 일과를 기록한 내용 중에는 아빠의 퇴근 시간도 포함되었는데 거의 매일 8시 반 정도가 되어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학교 측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아이의 취침 시간이 9시인데 아빠가 8시 반에 귀가한다면 아이가 하루에 아빠를 만나는 시간이 겨우 30분여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엄마도 하루종일 일하느라 저녁식사 때에만 만날 수 있고 아빠도 하루에 겨우 30분밖에 만날 수 없다면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여러 갈등 끝에 아이의 아빠는 수입은 줄어들더라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회사를 옮기고 엄마는 13년 간 땀을 쏟았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후 그 아이는 여러 검사 끝에 정서불안 증세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부모의 뒷받침이 많이 필요한 아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절반으로 줄이며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많은 기회를 포기했던 그 부부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아이의 문제점들은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았고 초등학교 4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야 산만함도 많이 해결이 되었고 학교 진도도 나름대로 따라갈 정도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4,5년 동안 아이의 부모는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모든 일에 자원하여 봉사하였는데 부모의 노력과는 거의 무관할 정도로 말썽을 일으키고 다른 아이들보다 뒤떨어지는 그 아이를 보면 그것이 치맛바람으로 여겨지지 않고 내 마음이 더 아프곤 했었다.
얼마 전 이제는 서로 다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게 되어 헤어졌던 그들 부부와 만나게 되었는데 그간의 부모의 노력과 뒷받침 끝에 이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말썽을 부리는 횟수도 훨씬 줄어 들었다며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한국식으로 본다면 학교 성적은 아직도 하위권이고 교장실에는 한달에 한번 가는 것이니 크게 기쁠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그것도 감사할 일인 것이다.
아이가 제 딴에는 조금씩 철이 나는지 하루는 자기가 늘 말썽만 일으키고 공부든지 뭐든지 잘 하는 게 없으니 부끄럽지 않냐고 묻더란다. 아이의 아빠는 그 말에 하도 가슴이 저려서 네가 나와 같은 성을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해 주었더니 어린 아기처럼 좋아하더라고 했다.
제임스 답슨이라는 유명한 기독교 심리학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들을 위해 시골로 가서 평생을 모든 기회를 포기하며 살아온 것에 대해 늘 송구스러운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아버지의 희생때문에 오늘 날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의 아버지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기본적인 것이기에 누가 더하고 누가 덜하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자랑하거나 공치사할 일도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내리사랑이라 했는데도 부모를 올려다 볼 때에는 나를 위해 좀 더 희생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한없이 희생해야 하는 자식을 내려다 보면 내 마음먹은 대로 희생이 이루어지지도 못하는 걸 보면 자식을 위한 희생이란 누구에게나 어렵기만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리 노력하며 애를 쓰면서 사다리 끝에 올라가도 막상 그곳에 도달하면 꼭 세단 씩 더 남아 있는 듯한 미진한 느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이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리라.
오늘 하루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나의 모든 실수와 시행착오 그리고 어리석음 속에서도 천사처럼 잠든 네 아이의 비단결 같은 얼굴에 Butterfly Kiss 를 해 본다. 누가 뭐라해도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한 멋진 일은 이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이고, 엄마의 모든 부족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그들을 세상에 있게 한 조물주의 놀라운 계획에 의해 아름답게 자랄 것이라 믿어본다.
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Butterfly Kisses
동경미 |
조회수 : 1,740 |
추천수 : 164
작성일 : 2009-09-07 11: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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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빛과준
'09.9.8 10:06 AM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
제 친정어머니께서 늘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지금까지 한 것 중에 제일 잘한 것은 두 아이 낳은 것이라고.......
님의 글 늘 마음에 새기며
님 못지않게 아이들을 품을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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