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와 진이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먼저 또, 본의 아니게 자랑을…….(죄송 ^^;;)
주이와 진이는 5-6살 무렵 어린 시절에도 항상 예의 바른 아이들 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들어가도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나오는 음식 조용히
기다리곤 했습니다.
식당 안을 뛰어다니거나 소리 지르는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는 일은 절대 없었지요.
그렇다고 저나 아내가 아이들을 강제로 윽박지르며 가만히 있게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식당에선 떠들거나 뛰면 안 돼' 라고 말 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자신들도 어른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 하는 듯 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그렇게 저절로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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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 주이가 태어난 날, 처음 만난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네 작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주이를 처음 보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돌 사진에서 튀어나온 아기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마 갓난아기 100명 중에서 찾으라고 해도 단번에 주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모든 아기들이 귀엽고 예쁘지만, 저의 눈에 주이가 유난히 예뻐 보였습니다. ^^
지금까지 누군가의 보살핌만 받고 살다가 이제 처음으로 내가 보살펴야 할 존재를
만난 것이지요. 아기와 함께 지내면서 사전에 육아에 관한 변변한 지식이 없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했습니다.
아기에게 어떤 증상이 있어도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어서 검색을 해 볼 수도 없었고
그냥 어른들께 주워들은 지식과 육아백과사전 펼쳐가며 우왕좌왕 키웠지요.
그래도 저의 마음속엔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는 생각이 은연중 확고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저의 육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슴속에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서서히 생겼습니다.
이 원칙이 주이와 진이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기를 키우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께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싶은 원칙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구구절절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 원칙을 말 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기도 한 사람의 인격체다.' 는 것입니다.
보통은, 아기는 아기로 생각하지 아직 완전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아기가 자라 아이가 되어도 여전히 인격체로 생각지 않고 소리 질러 야단치거나
매를 드는 것이지요.
저는 주이가 백일이 지나고 돌이 될 무렵 그 생각이 확고해 졌습니다.
그래서 누워 있는 아기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자세히 설명해주고 이야기 해 줬습니다.
제가 아무리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설명해도 아기는 당연히 못 알아듣지요.
하지만, 그 느낌은 아기도 압니다. 자신이 대우 받고 있다는 것을…….
돌이 지나 아장 아장 걷기 시작 무렵부턴 완전한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우하기 시작 했고,
아기 주이는 스스로 자신도 한 사람의 당당한 식구로 생각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잘못 하는 일이 있어도 혼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잘하고 잘못 하는 것은 어른들의 기준일 뿐, 아이는 그 행동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일겁니다.
사람은(당연히 아기도 사람)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하고 관심 받기 원합니다.
아기가 좋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야단치는 것 보다 부모가 싫어한다는 표정이나
말 혹은 무관심이면 충분 합니다.
사람은(당연히 아기도 사람) 누구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아기는 자연스레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부모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하려합니다.
좋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싫어하는 표정이나 무관심을 보이고, 좋은 행동을 했을 때
좋아하고 기뻐하면 그것으로 아이는 점점 사랑받을 행동을 하게 되지요.
두 돌이 지나선 식사를 할 때도 같은 상에서 같은 반찬으로 똑같이 먹었습니다.
아이만을 위한 별도의 반찬은 없었고 모두 같은 그릇에 똑같이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물론 아이에게 자극적인 음식은 피했지만 아이만을 위한 음식을 따로 만들진 않았습니다.
같은 상에서 먹다보면 손놀림이 서툰 아이는 음식을 이리저리 흘리고 난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손으로 집어 먹는 경우 없었고 꼭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했습니다.
아이를 위해 포크를 준적도 없었는데, 손에 잘 잡지도 못하는 젓가락을 자신도
엄마 아빠처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습관 덕분에 4-5살 무렵엔 집에서 담근 간장게장의 다리 한쪽 붙잡고
젓가락으로 후벼 파며 먹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지요. ^^
정말 아이들은 뭐든지 부모를 그대로 따라 합니다. 식성마저도 부모를 그대로
닮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비만이면 아이들도 비만이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하더군요.
간식으로 과자를 먹을 때도 그냥 봉지채로 먹게 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그릇에 담아서 먹도록 했지요.
외출을 할 때도 반드시 옷을 제대로 입혀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먼 거리의 외출은 물론이고 아파트 놀이터에 갈 때도, 동네 슈퍼에 간식 사러 갈 때도
반드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머리 단정히 빚고 신발 제대로 신고 외출 했지요.
주이와 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실내복 차림으론 현관 밖 한 발자국도 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내의 정성도 있었지만, 그보다 아이들 스스로 실내복 차림으로
머리도 단정히 빚지 않고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문에 아파트 놀이터에 한번 나가는 것도 큰 공사였지요. ^^
이런 것들은 아이들을 너무 과보호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의 원칙, '아이도 인격체' 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른들은 내복바람으로 외출하지 않으면서 아이는 아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좀 이상한 일이지요. 이러한 작은 시각의 차이가 아이는 아이니까
함부로 행동해도 된다고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행동하고, 식당에서 뛰거나 떠들어도 되는 특권을 가진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고, 그런 것을 나중에 바로잡으려 하니 아이를 윽박지르게 되고 야단치거나
물리적으로 제제를 가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주이도 가끔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 때를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통은 허용해도 될 만한 일은 아예 때를 쓰기 전에 미리 허용하였고,
허용되지 않는 일은 아무리 때를 써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우리 집에선 때 써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 것 같았고 3살 무렵이 되고 부터는 때 쓰는 것을 거의보지
못했습니다.
위험한 것만 아니면 가급적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엄마 아빠의 행동도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라는 말이 있지요.
이 말에 더하여 '백일 인격 평생 간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부모 자신들을 위해 꼭 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아일기'를 쓰는 것 입니다.
'육아일기' 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아이들의 귀엽고 사랑스런 행동들을 그때그때 메모 해 두는 것이지요.
그러면 육아일기가 어떤 면에서 좋으며
주이와 진이의 육아 일기는 어땠을까요?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