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 번도 못 가본 분도 계실테고, 해마다 여행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때마다 그릇을 사오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거구요.
저도 해외여행에서 건진 그릇이 있답니다.
첫번째는 신혼여행, 무리해서 호주갔었는데 가이드 분을 잘 만나서 밤낚시며 카지노에 공원에서의 바베큐까지 정말 알차게 보냈구요.
두번째는 남편이 나몰래 주식하다 5천만원 날린 것을 알게된 후 격분해서 혼자 2주일간 프랑스 빠리!! 여행 다녀온 것.
세번째는 역시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같이 일하던 상사분이 다음 직장을 구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소개해주셔서 일본에서 3달간 연수받는데 따라간 것.
보시면 아시겠지만 명품 그릇 지를만한 상황이었던 적이 없었지요.
아마 남편이 잘하는 얘기로 홍콩에서 배 들어오면 모를까 그렇게 될 날이 올까 모르겠어요.
세번째 일본에서는 숙소랑 아침식사, 세탁은 해결되는데 차비랑 점심, 저녁 그리고 낮동안 계속 돌아다니는 비용이 수월찮게 많이 드는 바람에 빠듯했구요. 앞으로 상황이 어찌될지 모르는데 퇴직금 펑펑 쓸 수도 없고.
그래도 한국에서는 잘 못 가본 백화점 구경은 실컷 하고, 나중에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도 안 가본데가 없을 만큼 신나게 돌아다녔던 기억입니다.
겨우 접시 두 장 보여드리는데 사설이 길었죠.

2003년 제가 일본에 있던 여름, 세븐일레븐에서 6,7,8월 석달동안 즉석식품코너의 상품에 붙어있는 100엔당 1점짜리 스티커를 25장 모아오면 세계명작극장 그림접시를 한 장씩 증정하는 행사를 했어요.
확실하진 않지만 6월은 네로, 7월은 앤, 8월은 라스칼이었던 것 같네요. 그 후로도 종종 컵이니 접시니 행사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원래 유난히 앤 시리즈에 관심이 많거든요.
도시락 먹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세븐 일레븐에 올인해야 하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메뉴를 바꿔가며 한동안은 잘 먹었죠.
이론상으로는 스티커 50점을 모으기 위해서는 5000엔 어치를 먹으면 되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더군요.
때로는 단지 스티커만을 위해서 먹고 싶은 190엔짜리 슈크림(1점)을 포기하고 210엔짜리 푸딩(2점)을 선택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도 종종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맛있고 새로운 음식도 많은데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은 내가 이곳 직장인도 아니고 시간이 아깝더군요.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스티커가 잔뜩 붙은 도시락들을 예닐곱개 계산하는 일본 청년들을 가게 앞까지 따라가서 "스미마셍~"
일본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줌마의 습격에 무척 당황한듯 했지만 붙이다만 스티커 용지를 보여주고 나는 여행중이라는 것을 강조하니 별다른 설명 필요없이 흔쾌히 스티커를 얻어서 덕분에 세븐 일레븐 순례를 그만두고 기쁘게 접시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비오는 오후에, 아이가 낮잠자는 사이에 추억을 되새기며 사진 한 장.


사실 그닥 잘난 녀석은 아닙니다만, 저한테는 소중한 접시라서 모셔두기만 한답니다.
(한번만 쓰면 다 벗겨질 게 뻔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여요!)
실제로 보면 지름이 18cm가 못될 정도로 작아요.
이번에 이사하면서 새로 자리를 잡은 제 앤 책들과 피규어도 기념 촬영.


저는 피곤할 때 가끔 이 책들을 봅니다.
실제로 그런 마을에서 그런 삶을 살라 하면 일주일도 못 가 답답해하며 도망가겠지만
앤의 성장과 결혼, 육아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죄책감이 없던,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 이전의 잔잔한 삶을 꿈꾸곤 해요.
수다가 길었군요.
큰소리치며 웨지우드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가 정말 누군가 플로렌틱 터퀴즈 홍차잔 세트를 들이밀며 바꿀래 하면 바꿀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은 못바꾸고 말 것 같아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