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살기가 힘들지만 죽고 싶을 만큼은 아니에요.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만 삶의 의욕이 없어요. 이 나이에 철없다 하셔도 바꿀 수가 없네요. ㅠ
첫 우울감, 무기력을 느낀건 유치원때 였어요.
가난하고, 초라하고 드센 부모님과 조부모와 삼촌, 고모가 같이 살면서 매일 돈 때문에 싸우는 걸 봤어요.
사업하려고 고향에 내려오신 아빠의 사업이 잘 되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삼촌, 고모들 무능한 할아버지 때문에 어렵게 살았지만 큰아빠와 아빠가 능력 있어서 동생들 다 공부시키고, 결혼 사키고 조부모 돌아가시기 전까지 뒷바라지 다 했어요. 그 사이에 전 정서적으로는 불행한 어린 시절과 경제적으로는 점점 풍족해지는 그 기로에 서있었죠. 예민한 기질이어서 지금까지도 그런 기억을 간직해요.
2살 차이 남동생은 이쁘고 착하고 얌전해서 누구든지 좋아하고 저절로 사랑받는 위치랄까?
저는 뭐든지 잘하고 싶고, 하고 싶은거 많고 주목받고 싶고 나서기 좋아했는데 한편으로는 항상 눌림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나서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 못해...이런 부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집에서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이라 애써 분위기 밝게, 밝은 척......
아버지의 무거운 책임감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중, 고등 시절은 행복하다고 느낄만 했어요. 오로지 우리 4식구만 살고 여유롭게 점점 잘살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재능이 많고 똑똑한 편이었지만 변두리 학교 안에서였고, 언제나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앞에 있으니 좀더 조력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고지식한 부모님은 항상 안되고 못하게 하시고 그런 상황에서 시내 명문여고로 진학하면서 주눅 들고 한계에 부딪쳤던 것 같아요. 잘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고지식한 부모님과는 늘 소통이 안되었어요. 자유를 제한당하고..여학생 같은 잡지를 보는 것도 우리집에서는 탈선같은 범주, 친구들과 외출도 못했고 반항도 해봤지만 부모님이 워낙 세시니 그렇게 눌려 살았네요. 대학때도 찬구들과 맥주 3잔 마시고 들어오는 길에 문앞에 기다리고 있던 엄마한테 따귀 맞았던 일은 잊혀지지 않네요. 그 모멸감, 모욕감.
원래 부모님 계획대로라면 대학 4학년에 선을 봐서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수순인데 결혼만큼은 아니 그렇게 끌려가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 끝까지 반항하고 거부하는 과정에서 자살시도를 한적 있어요. 죽고 싶을 만큼 시달리고 시달리다가 눈오는 어느 겨울 대관령에서 떨어져 죽고 싶은 생각에 달렸는데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그 무시무시한 생각을 멈출수 밖에없었던 일....
그래도 20대는 겉으로는 열심히 성실하게 인정받으며 잘 나가던 시절이었어요. 계속 공부해서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지만 내가 벌면서 마음대로 소비하는 재미에 빠져서 멋쟁이 소리 듣는게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아요. 깊은 내면에서는 계속 연구하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살아있어서 그에 대한 준비도 하면서 나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어요. 친구와 어쩌다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불호령에 한밤 중에 고속도로를 달려오던 일도 있었네요. 그래도 살만 했던건 너무나 비슷한 환경에 아니 나보다 더 센 부모님 밑에서 순종하고 지금까지 순종하며 사는 절친이 있었기에 붙어다니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며 지냈고 지금은 각자 좋은 남편 만나서 잘 살고 있어요.
돈은 없었지만 착하고 인성이 좋은, 능력있는 남편 만나서 잘 살아왔어요. 친정이 여유있었으니 시댁이 돈이 없는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어요. 순진하던 때였죠.
경제적인게 문제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별나서 시댁 문화가 정말 별나서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은 모두 잘살게 되었는데 내면은 너무 세속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문화랄까? 알고보면 우리 시대 훨씬 전부터 강남, 강북으로 계급이 나눠진 것을....
암튼, 어디 털어놓을데도 없는 어려움을 엄마와 나누며 경제적인 도움(첫집 살때, 소소한 살림살이 등)도 얻으며 그때는 마음이 잘 통했던것 같아요.
한마디로 마음에 드는 사위와 결혼함으로 부모님이 자녀에 책임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됐고, 저는 당당하게 독립적인 새생활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제가 직업을 갖지 않아도 남편 월급으로 아껴 살고 남편 공부나 직장 내 성공하도록 뒷바라지 하고 시댁이 뭐라 해도 때때로 친정부모님과 소박한 나들이나 여행다니며 소박하게나마 효도한다는 마음도 가져봤구요.
아빠가 사업하실때 돈이 쏟아져 들어와도 늘 마음은 불안했어요. 큰 사업 하면서 대출이라고는 없이 툭하면 터지는 부도 막으며 직원들 월급, 사업 대금 한번 밀리지 않고 제 날짜에 주려면 사업주는, 그 가정은 여행은 사치고 외식 한번 하기 힘든 바람 잘 날 없는 풍전등화 였거든요. 그래서 큰돈 아니지만 꼬박꼬박 모아서 집도 사고 아이 유치원도 좋은 곳 골라 보내고 책이며 예체능이며 적정선에서 교육시키고 아이 키우는 재미를 느끼며 그런 것들을 부모님과 공유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고 이런 것도 효도의 일부분이라고 느끼며...
그런데 제 복이 여기까지였나봐요.
저희가 산 첫집도, 그 다음 집도.. 항상 사고 나면 떨어지고 직장 발령때문에 손해나고 팔고 하는 일이 몇번 반복되고 나니 자산이 늘어나지 않았어요. 그래도 남편이 소위 잘 나가니 실망은 했지만 희망은 있었어요.
착한 남동생은 이쁘고 좋은 아가씨와 결혼을 잘했어요. 평소 부모님 말씀대로 몸만 와도 좋으니 교회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바램대로 정말 침대, 냉장고, 식탁만 들고 왔어요.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데다가 똑똑하고 고분고분하지 않는 저와는 달리 순종하고 착하고 배우 강동원 처럼 인물이 훤칠한 아들은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만 빼면 엄마의 모든 것이었어요.
엄마 옆 동네에 새아파트 분양받아서 대리석으로, 베란다에 예쁜 화단까지 인테리어 수천 들여서 신혼부부 살림집 마련해 주셨어요. 그때쯤 저도 첫집을 샀는데 지방의 동생집과 수도권의 저희집 값이 비슷한 정도에서 동생은 자기돈 한푼도 안들어간 결혼생활을 시작했어요.
베란다에 확장을 하고 싶어서 알아보니 2-3백 사이였나? 동생은 똑같이 베란다 확장에 화단도 꾸미면서 인테리어에 2천만원이 넘게 엄마가 해주는데 제돈으로도 할까 말까 하는 저보고 돈도 없는 것들이 그런걸 왜 하냐고 하실때 비로소 딸과 아들이 다르다는 차별받아왔음을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는 익숙한 멘트고 지역적으로 우리 집만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는 딸도 아니었으니까 그럴수 있다고 이해하며 살아왔는데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하더라구요.
그래도 경제적 어려움없이 자라 돈쓰기 좋아하는 딸이 남편 월급에 맞춰 아껴쓰고 부모님한테 잘할려고 때때로 양가 부모님 모시고 소박하게나마 여행다니고 맛집 찾아 다니고 할 만큼은 되었어요.
저는 자라면서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늘 제지하는 부모님때문에 교육에 대한 결핍이 있었나봐요. 아이 둘 욕심껏 뒷바라지 했어요. 그래봤자 책 사고, 운동, 악기 시키고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제가 교육을 돈으로 하려고 한다고 불만이 많았어요. 어느 정도 인정해요. ㅠ
몇번 집을 사고 팔았는데 빚 무서운거라 강조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남편은 부동산으로 투자하는걸 혐오하다시피 하는 사람이었기에 항상 좋은걸 못하고 물러서기를 몇번, 아이들이 커가고 이젠 정말 평생 살집을 사야겠다고 했던 그때 부모님께 부족한 6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만한 돈이 없는 분들이 아닌데...그때가 동생 앞으로 10억이 넘는 4층짜리 빌딩을 준비하고 계셨고 몇달 후, 전 형편에 맞게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집을 샀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집값은 그대로에요.
동생은 그때 부모님이 사주신 빌딩이 많이 올랐고 그거 팔아서 더 좋은 부동산 구매했고 계속 자산이 불어났어요. 매달 생활비도 2백쯤 받았구요.
저는 그 마지막 집을 사고 얼마 있다가 외국의 대도시로 발령이 나서 큰 변화를 겪었는데 여전히 그 집을 팔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사이 전세계에 부동산 광풍이 불었네요. 저절로 하우스푸어! 아니 그냥 50대에 집이 있으나 없는거나 마찬가지에요. 비싼 렌트비를 내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 와중에 저는 열심히 가정을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애들 교육 잘 시키고 물론 조금씩 도움을 받았어요. 정말 셋째를 혹시나 딸일수 있으니 셋째가 갖고 싶었는데 니네 능력에 무슨 애를 더 낳냐. 셋째 가지면 한국 땅에 발 디딜 생각도 하지 말라고. 어쩌다 좋은 살림살이 장만하면 넌 돈쓰기 좋아한다 월급쟁이 남편 힘들게....이런 소리도 듣고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사는게 품질도 좋고 실용적이니까 똑같은거 며느리 사주세요. 나중에는 저는 가지지 못하지만 엄마 멋부리기 좋아하셔서 유행하는 주얼리나 가방 사드리면 며느리 주더라구요. 제가 올케 것도 사줬었는데...
저는 동생보다 늘 더 능력이 있으니까 또 미래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이 더 있으니까 누나니까 항상 제가 많이 쓰고 인심이 후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랬던 제가 모지리같다가도 가족끼리 그게 얼마나 된다고 치사하게 그런 생각이 드나 싶고 괴롭네요.
그리고 동생네도 똑같이 아들 둘이었는데 동생은 세째 딸을 낳아서 아주 집안의 꽃이에요. 제가 어린 시절 어두웠던 집안 분위기에 꽃이자 활력소였던 것처럼, 조카가 사랑스러워요. 올케는 어려운 집 장녀였고, 생활력이 강해요. 직업정신이 있어서 눈치도 빠르고 사회생활을 잘해요. 능력도 있구요.
처음 결혼해서 부잣집에 시집오니 일 안하고 편하게 쉬고 싶다고 했고 이미 임신중이어서 자연스럽게 퇴직하고 아기 낳고 저희 부모님과도 서서히 정이 들면서 잘 지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저를 경계하더라구요.
전 정이 많아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너무 사랑했고 K장녀 노릇 다 했다고 생각해요. 또 매형을 따랐고( 저의 이상형이 동생에게 좋은 형이 될만한) 올케한테 난 누나랑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네요 ㅋㅋㅋ
사실은 동생이 하도 영어, 국어, 국사 같은 문과적 머리가 안돌아가서 제가 엄청 구박, 갈구면서 엄청 이해하기 쉽게 재밌게 잘 가르쳐 주고 대화 많이 했어요. 제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렸고 제 후배들도 동생한테 관심 보여서 동생 관리 하느라 신경 좀 썼네요. ㅋ
내성적인 동생이라 성향은 달랐지만 동생이 참 착해서 저도 동생을 사랑했는데 올케가 우리 가족이 저를 중심으로, 특히 제가 친정 식구들과 사이가 좋은게 이상하다고 그러더래요. 예상하기로는 자기는 없는 집에서 가족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며 자라서 억척인데 시누이는 고상하고 우아하고 찌든 모습이 없으니까 질투를 하는것 같다고 동생이 그러길래 나는 네가 결혼생활 잘하는게 중요하니까 네 보조를 맞추겠다 하고 이해한다고 했던 그렇지만 그때로부터 우리 관계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남편도 그 점을 매우 아쉬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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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어서 불편하셨죠. 저도 모르게 막 터져나왔.....밑에 글 삭제하고 2탄으로 나눴어요. 댓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