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사를 갔고, 낡고 무거운 피아노는 그 집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었나 보다. 피아노를 치던 그 집 아이는 피아노가 아닌 다른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 나이가 됐을 테고, 이삿짐 목록에서 빼는 것에 대해 동의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고물상 한쪽에 밀려나 있는 그 피아노의 사연이 그러했을 것이다. 알뜰한 장인어른은 신문, 박스, 병 등을 내다 파는, 고물상 단골고객이었고, 어느 날 고물상을 찾았을 때 그 피아노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천원, 5천원, 1만원…. 고물을 팔아 생긴 돈 전부를 자신이 만든 외손자의 통장에 넣고 있던 장인인지라, 피아노를 보자마자 어린 손자를 생각했을 것이고, 그 애가 이제 피아노 칠 나이가 되었겠다,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아내는 장인이 찍어둔 피아노를 살피려 그 고물상을 찾아야 했고, 우리는 장인을,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거 참 비싼 피아노 같아!” “다리만 쪼끔 이상하네” “옛날피아노가 지금 것보다 훨씬 좋네!”… 하고 떠들어야 했고, 그 자리에서 피아노를 우리 재산으로 등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날 하필, 고물상에는 할머니보다 박하다고 소문난 할아버지가 고물상 일을 맡고 있어, 5만원에 타협을 본 후 온전한 우리 것이 되었고, 엄청난 피아노 무게 때문에 지게차를 불러 2만원을 치른 후에야 집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었다. 피아노 학원에 “피아노를 한번도 배운 적이 없는데 베토벤 월광만 죽어라 연습하면 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볼 만큼 피아노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그날 즉시 두 딸의 피아노 강습에 들어갔는데, 내가 가르치는 음악이란 “눈 감고,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비오는 날을 생각하며 쳐봐라” “눈 감고, 숲 속에 들리는 소리들을 생각하며 쳐봐라” 식의 ‘즉흥연주’. 아이들의 실력은 치면 칠수록 월등히 늘어갔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에 피아노 의자는 진기한 물건이었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긴 의자, 전혀 다른 모양새의 의자. 뚜껑이 있어 그 안에 보물들을 숨겨놓을 수 있는 의자. 무엇보다 피아노 의자의 가장 큰 매력은 뒤집었을 때다. 네 다리에 쏙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차가 되고 배가 되고 우주선이 됐다. 아이들이 의자에 관심을 버릴 때는 아마도 그 네다리 안에 들어가지 못할 때쯤 될 것 같았다.그리하여 피아노 의자는 차에 싣고 다닐 이유가 생겼다. 바닷가 모래밭에 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으면 좋겠구나, 모래밭에서 뜀틀놀이를 해도 좋겠구나…. 그랬다. 낡은 피아노 의자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이들은 다이빙대가 필요했다. 피아노 의자는 지금 바다속으로 여행중이다.
-함평 돌머리해수욕장
혼인한 이래 부부는 늘 같이 일했다. 반복되는 고된 일 속에서 서로 역정을 내는 일이 많았다. 젊었을 적 부부는 이 논둑에서 심하게 싸운일이 있다. 못줄을 치고 모를 심을 때였다. 짠뜩 배고플 모꾼들 생각을 하며 아내는 부랴부랴 점심밥을 지어 담았다.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가는데 논둑길이 참 길었다. 아내 마음으로는 남편이 이만큼 걸어와 받아갈 만하다 싶었다. 남편은 멀뚱하게 보고만 있었다. 모꾼들의 식사를 논둑에 차렸다. 국을 뜨다가 아내는 국자도 그릇도 논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그 논둑이다. 평생토록 부부가 다녔던 논둑에서 부부는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아내는 남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담양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 당장에 깨부순다. 덧붙인다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다. 깰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믿는 이의 작업장. 피아노 의자 위 잠깐의 휴식. 그러나 장갑 한 쪽은 여전히 벗지 못한 석공.
-함평
‘백익일해(百益一害)’한 마늘. 냄새가 유일한 단점이라 한다. 그러나 마늘 농사꾼들은 말한다. “냄새가 안 나문 그것이 마늘이당가!” 피아노 의자는 마늘 냄새를 보듬고 사는 세 남자와 함께 하고 있다.
-함평 마늘밭
나이먹기, 삼팔선, 다방구….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저녁밥 먹고 나와깜깜밤중까지 온 동네 아이들 모여 떠들고 놀았던 마을회관. 이제는네 친구가 공터 귀퉁이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그나마 두 친구는 옆 마을 마산리에서 친구 찾아 원정을 나왔다. 곁에 선 저 아이가 한쪽 발을비스듬하게 놓은 각도를 보라. 허리에 얹은 손은 또 얼마나 어여쁜가. 굳이 넷이 나란히 앉아 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담양 유산리
함평 일대 집집이 부엌 살림살이들이 다 그에게서 장만해간 것이다.솥이냐 냄비야 다라이야 외는 대로 척척 찾아 내어주는 보람으로 살아온 생애. 갈수록 솥단지 작아지는 촌살림의 내력을 꿰고 앉은 이의웃음. 헛헛하다.
-함평 월야장
넓은 마당을 버리고 좁은 마당으로 이사왔다. 촌(보성)에서 도시(광주)로 이사 온 지 7년째. 남자는 본디 옥수수 감자 쪽파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이제 그의 직업은 아파트 경비다. 어머니 아버지 힘든 농사짓는 것 더는 못 보겠다는 딸의 무작정 투정에 광주로 올라와버린 부부. 부부는 딸의강권이 옳았다고, 백번 천번 잘한 일이라고, 아직 그 생각을 되풀이한다. 들려오는 고향 소식은늘 똑같다. 여전히 쪽파농사든 감자농사든 비료값 종자값 제하고 나면 남은 게 없다 한다. 그러나 부부는 아직까지 보성의 밭떼기를 팔지 못하고 있다. 동상동몽. 나란히 앉은 의자 위에서부부가 그리워하는 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