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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낡은 피아노 의자의 여행

| 조회수 : 3,108 | 추천수 : 5
작성일 : 2013-02-18 19:33:22

누군가 이사를 갔고, 낡고 무거운 피아노는 그 집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었나 보다. 피아노를 치던 그 집 아이는 피아노가 아닌 다른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 나이가 됐을 테고, 이삿짐 목록에서 빼는 것에 대해 동의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고물상 한쪽에 밀려나 있는 그 피아노의 사연이 그러했을 것이다. 알뜰한 장인어른은 신문, 박스, 병 등을 내다 파는, 고물상 단골고객이었고, 어느 날 고물상을 찾았을 때 그 피아노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천원, 5천원, 1만원…. 고물을 팔아 생긴 돈 전부를 자신이 만든 외손자의 통장에 넣고 있던 장인인지라, 피아노를 보자마자 어린 손자를 생각했을 것이고, 그 애가 이제 피아노 칠 나이가 되었겠다,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아내는 장인이 찍어둔 피아노를 살피려 그 고물상을 찾아야 했고, 우리는 장인을,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거 참 비싼 피아노 같아!” “다리만 쪼끔 이상하네” “옛날피아노가 지금 것보다 훨씬 좋네!”… 하고 떠들어야 했고, 그 자리에서 피아노를 우리 재산으로 등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날 하필, 고물상에는 할머니보다 박하다고 소문난 할아버지가 고물상 일을 맡고 있어, 5만원에 타협을 본 후 온전한 우리 것이 되었고, 엄청난 피아노 무게 때문에 지게차를 불러 2만원을 치른 후에야 집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었다. 피아노 학원에 “피아노를 한번도 배운 적이 없는데 베토벤 월광만 죽어라 연습하면 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볼 만큼 피아노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그날 즉시 두 딸의 피아노 강습에 들어갔는데, 내가 가르치는 음악이란 “눈 감고,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비오는 날을 생각하며 쳐봐라” “눈 감고, 숲 속에 들리는 소리들을 생각하며 쳐봐라” 식의 ‘즉흥연주’. 아이들의 실력은 치면 칠수록 월등히 늘어갔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에 피아노 의자는 진기한 물건이었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긴 의자, 전혀 다른 모양새의 의자. 뚜껑이 있어 그 안에 보물들을 숨겨놓을 수 있는 의자. 무엇보다 피아노 의자의 가장 큰 매력은 뒤집었을 때다. 네 다리에 쏙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차가 되고 배가 되고 우주선이 됐다. 아이들이 의자에 관심을 버릴 때는 아마도 그 네다리 안에 들어가지 못할 때쯤 될 것 같았다.그리하여 피아노 의자는 차에 싣고 다닐 이유가 생겼다. 바닷가 모래밭에 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으면 좋겠구나, 모래밭에서 뜀틀놀이를 해도 좋겠구나…. 그랬다. 낡은 피아노 의자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이들은 다이빙대가 필요했다. 피아노 의자는 지금 바다속으로 여행중이다.
-함평 돌머리해수욕장

 

 


혼인한 이래 부부는 늘 같이 일했다. 반복되는 고된 일 속에서 서로 역정을 내는 일이 많았다. 젊었을 적 부부는 이 논둑에서 심하게 싸운일이 있다. 못줄을 치고 모를 심을 때였다. 짠뜩 배고플 모꾼들 생각을 하며 아내는 부랴부랴 점심밥을 지어 담았다.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가는데 논둑길이 참 길었다. 아내 마음으로는 남편이 이만큼 걸어와 받아갈 만하다 싶었다. 남편은 멀뚱하게 보고만 있었다. 모꾼들의 식사를 논둑에 차렸다. 국을 뜨다가 아내는 국자도 그릇도 논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그 논둑이다. 평생토록 부부가 다녔던 논둑에서 부부는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아내는 남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담양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 당장에 깨부순다. 덧붙인다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다. 깰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믿는 이의 작업장. 피아노 의자 위 잠깐의 휴식. 그러나 장갑 한 쪽은 여전히 벗지 못한 석공.
-함평

 

 


‘백익일해(百益一害)’한 마늘. 냄새가 유일한 단점이라 한다. 그러나 마늘 농사꾼들은 말한다. “냄새가 안 나문 그것이 마늘이당가!” 피아노 의자는 마늘 냄새를 보듬고 사는 세 남자와 함께 하고 있다.
-함평 마늘밭

 

 


나이먹기, 삼팔선, 다방구….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저녁밥 먹고 나와깜깜밤중까지 온 동네 아이들 모여 떠들고 놀았던 마을회관. 이제는네 친구가 공터 귀퉁이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그나마 두 친구는 옆 마을 마산리에서 친구 찾아 원정을 나왔다. 곁에 선 저 아이가 한쪽 발을비스듬하게 놓은 각도를 보라. 허리에 얹은 손은 또 얼마나 어여쁜가. 굳이 넷이 나란히 앉아 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담양 유산리

 

 


함평 일대 집집이 부엌 살림살이들이 다 그에게서 장만해간 것이다.솥이냐 냄비야 다라이야 외는 대로 척척 찾아 내어주는 보람으로 살아온 생애. 갈수록 솥단지 작아지는 촌살림의 내력을 꿰고 앉은 이의웃음. 헛헛하다.
-함평 월야장

 

 


넓은 마당을 버리고 좁은 마당으로 이사왔다. 촌(보성)에서 도시(광주)로 이사 온 지 7년째. 남자는 본디 옥수수 감자 쪽파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이제 그의 직업은 아파트 경비다. 어머니 아버지 힘든 농사짓는 것 더는 못 보겠다는 딸의 무작정 투정에 광주로 올라와버린 부부. 부부는 딸의강권이 옳았다고, 백번 천번 잘한 일이라고, 아직 그 생각을 되풀이한다. 들려오는 고향 소식은늘 똑같다. 여전히 쪽파농사든 감자농사든 비료값 종자값 제하고 나면 남은 게 없다 한다. 그러나 부부는 아직까지 보성의 밭떼기를 팔지 못하고 있다. 동상동몽. 나란히 앉은 의자 위에서부부가 그리워하는 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주

달 (moon25)

안녕하세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살기가 폭폭해도,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도 조금만 화내고, 힘내기.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eniffer
    '13.2.18 7:51 PM

    너무 너무 멋진.. 감동이 뚝뚝 묻어나는.. 수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근사해요! 저런 사진 갖고 싶네요..

  • 2.
    '13.2.18 7:59 PM

    진짜요! 기분 대박! ㅋㅋ. 사진은 현상하면서 실수를 해서 좋지 않은데... 감사해요. 세상에 이런 칭찬을 받다니...

  • 3. 대해서
    '13.2.18 8:16 PM

    따뜻한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피아노 의자의 행복한 여행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 4. 신둥이
    '13.2.18 8:20 PM

    필름카메라로 직접 촬영하신 사진인가 봐요.
    마음으로 찍는 사진, 좋은작품 좋은글 잘 봤습니다!

  • 5. 18층여자
    '13.2.18 9:57 PM

    아! 사진도 글도 너무 좋습니다.
    피아노 의자의 여행, 계속 동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6. 이규원
    '13.2.18 10:16 PM

    흑백사진의 위력이 보이네요.
    잔잔한 수필 쓰고 싶어요
    제 영정사진은 흑백사진으로 하고 싶어요.

  • 7. 열무김치
    '13.2.18 11:00 PM

    아름다운 이야기와 사진 잘 보았습니다.
    제 친가가 함평이라 더더더 눈길이 갔네요 ^^
    피아노 의자가 계속 여행을 했으면 좋겠네요~
    따뜻한 이야기와 사진이 더 보고 싶어요.

  • 8. 사람
    '13.2.19 12:48 AM

    한장 한장 사진들이 소중한 값어치네요.
    저 결혼 전 본적이 함평이네요. 어렸을 적에 자주 간 함평인데 반갑네요.
    몇 년전에 함평나비축제구경 후 장에 가서 육회비빔밥과 고깃국? 먹었는데 또 가고 싳어지네요.

  • 9. 쓸개코
    '13.2.19 2:33 AM

    읽어도 부담없이 술술넘어가는.. 하지만 격있는 참 좋은글이에요.^^
    울아버지 고향이신 함평이라는 지명이 나와 더더욱 반가운 글이고요!

  • 10.
    '13.2.19 11:27 AM

    생각지도 못한 감사의 댓글, 신납니다.
    답변주신 분들 별칭을 보고나서 또 흐뭇해집니다. 열무김치, 18층여자, 사람... 얼굴 마주친 적 없지만, 친밀하게 다가오네요. 사람이란 게 묘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자기를 살짝만 보여주더라도 정으로 다가설 수 있는.. 쓸개코는 검색을 해봐야겠네요. ㅋㅋ. 감사해요.

  • 11. ♬단추
    '13.2.19 11:45 AM

    왠지 우리집 차에도
    저 의자를 실고 다녀야 할것 같은 생각이..

    너무 멋지고..
    의자 하나로 저런 삶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것이 감동입니다
    몰랐어요
    의자하나가
    다름 사람의 삶을...고스란히 보여줄줄은..

  • 12. 동동입니다
    '13.2.20 9:54 AM

    잔잔하게 마음에 감동이옵니다.
    다음번 피아노의자의여행이 기다려지네요...

  • 13. abbaccd
    '13.2.20 12:57 PM

    잘봤어요~

    고물상 피아노 얘기하실때부터
    심상치않은글이다 하면서ㅋ 몰입했는데
    첫사진보고는...

    다른사진들도 다 멋있지만
    첫번째사진... 저런사진을 가질수있는 두자녀분이 부럽네요^^

    다음에 글과사진 또올려주세요^^

  • 14. 한지
    '13.2.20 4:03 PM

    컬러 사진이 나오고부터 흑백 사진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촌스럽다고 생각했었죠 ㅋ이젠 추억과 향수를 느끼게 하는..잠깐동안이지만 피아노의자와의 즐거운 여행 감사합니다 ^^*

  • 15. 눈대중
    '13.2.22 3:10 AM

    어제 친구가 대학시절에 작품에 쓴 중고 문을 외국으로 이사나올때 들고오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몽환적이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이런 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 너무 좋네요.

  • 16. still
    '13.2.22 9:57 AM

    봄의 발걸음은 참으로 무거운가보네요,,, 새벽부터 다시 눈발이...

    이래저래 심란스러운마음이였는데 달님의 따스한글에 마음이 여유로와지는 기분이네요...감사합니다달님....

  • 17. 보리차
    '13.3.1 1:49 AM

    낭만이 삶에 스며들어, 뭔가 진득하게 음미하고 싶은 향이 납니다.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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