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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 조회수 : 1,598 | 추천수 : 19
작성일 : 2008-09-11 18:37:11





    목마와 숙녀




      박인환 詩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고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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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겜마
    '08.9.11 8:12 PM

    박인환님 시를 보면 EBS드라마 명동백작에서 박인환님과 김수영님의 관계가 까칠하게 나왔던 것이 생각납니다. 6.25때 수용소 경험도 있으신 김수영님이 박인환님의 낭만주의를 매우 싫어하셨었죠.
    시를 잘 모르긴 하지만, 박인환님의 시를 읽으면 격동의 시대를 완전 쌩까고 사진 천경자 화백의 공주풍 낭만주의 같은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다른데, 드라마를 보면서 김수영님이 왜 그리 야박하신지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박인환님이 명동의 막걸리집에서 '세월이가면' 시를 쓰시고 동석한 지인이 즉석에서 시에 맞춰 작곡을 하시고 나애심이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시를 마지막으로 지금의 광화문 교보문고 근처에서 시에 쓰신 나뭇잎처럼 쓰러져 돌아가셨죠.

  • 2. 앙팡망
    '08.9.12 12:04 PM

    저희 고등학교때 문학시간에 선생님께서 이 시를 읖조리시며 제목 아는 사람 물어보셨어요
    대답하는 사람 아무도 없더군요
    저는 알기는 했지만 큰소리로 말하지는 못했어요
    저희때의 시는..단지 입시를 위해 외워야하는 존재이고 줄귿고 뜻적고 그게 다였지요
    저도..친구들보다는 시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지 작품-시인정도 연결할 줄 아는거였구요

    여기 오면서 많은 님들이 올리시는 시들을 읽으며
    그리고 많은 님들이 댓글로 풀어내시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시에 대해서 많이 아실까...놀랍기도 하고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는 것 같아 참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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