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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시인의 '느림과 비움의 미학'중에서 노통님에 관한 이야기

내사랑 조회수 : 351
작성일 : 2010-12-06 20:59:41
- * - 중략 - * -

장자는 말한다. "죽고사는 것은 운명이다. 밤낮이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하늘의 이치다.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이것이 만물이 처한 실존이다."(대종사)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밤과 낮이 교차하며 지나가듯 하늘이 정한 이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죽으려 하면 죽지 않고, 살려고 하면 살지 못하네."(대종사)  때가 되었는데 삶에 매달리면 구차해지고,
마음을 비우면 죽어도 죽지 않는 법이다.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십구재를 앞두고 마음이 다시 일렁이며 어지러울 때 '대종사'편을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
그날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종일 비통하고 애석하였다. 모란 작약의 붉은 꽃들은 슬퍼
보이고, 신생의 싱그러움을 내뿜는 청산의 녹음방초조차 시름에 젖은 듯 보였다.
내 마음이 비통했으므로 세상이 풍경들이 함께 비통했다.
검찰은 이쑤시개로 찬합 반찬을 헤집듯 전직 대통령과 그 주변을 파헤치고, '털어서 나오는 먼지들'을 근거로
윽박질렀다. 자존감이 드높고 도덕성을 강조하던 그이가 받았을 모멸감과 압박감이 얼마나 컸을지를
헤아리기 어렵다. 시골에 은거하는 전 대통령을 저 새벽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낸 것은 우리 안의 용렬함과
잔인함이 아니었을까.
큰 흠집이 작은 흠집을 닦달하고, 큰 죄악이 작은 죄악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 심판하고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권력의 유령들이 무섭다.

노무현은 '발칙한' 대통령이었다. 나쁜 정치관행을 없앤 것은 그가 한 '발칙한'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관행을 청산한 점은 '노무현의 정치자산'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정치는 의레 기업에서 뒷돈을 받아 하는 것으로 알고, 그 관행에 중독된 범정치권은 돈줄이 끊기자
극렬하게 저항했다. 돈줄을 끊자 그 금단현상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이가 대통령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과 권위를 반납했는데, 그 부지런한 실천도 대단한 업적이다. 어떤 권위도 빌지않은 그이의 직설화법은
소탈한 실천의 한 품목이다. 그 화법이 일부에서는 '막말'이라고 비난받았지만, 그것은 실체적 진실을 분식하는
권력자들의 '상징화법'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말의 실질적인 뜻에 기대어 정직하게 소통하려는 그 노력은 가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이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펼쳐낼 수 있는 논리의 일관성과 눈부신
표현력을 가졌던 분이었다. 그것이 남다른 자신감의 근거였겠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 노무현은 실패했다.
바로 말하자. 그 실패는 그의 무능 때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부도덕함과 뻔뻔스러움의 합작품이다.
우리는 퇴임뒤에 고향에서 환경운동을 하며 우아한 노후를 보내려던 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한 명은 강제로 하야하고 망명길에 오르고, 가장 오랜 세월 통치한 분은 심복의 총질에 운명을
달리하고, 두 명은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갔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으로 목숨을 끊는 대통령까지 나왔다.
전직 대통령들이 감당해야 하는 이 운명은 잔혹하고 참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은 이미 현직에 있을 때부터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벽에 부딪쳐 날개가 꺾이고 피를 흘렸다.  
집권 내내 그들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를 흔들고 압박했다. 올곧은 목표는 비난받고, 남다른 창의는 조롱받았으며,
정책은 펴기도 전에 저항에 부딪쳤다. 일손을 묶어놓고 또 한편으로 무능하다고 비방했다. 이 터무니없는 조롱과
비방의 절정은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였다. 민의로 뽑은 대통령의 대표성과 명예와 인격을 우리는 너무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닌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의 비리를 찾고 처벌하는 후환이 따르는 정치, 합리성을 잃은
복수의 정치는 당장에 그쳐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더 이상 이런 뺄셈의 정치가 계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건 정치 조의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노무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저 비바람 치는 삶의 여정에, 세상의 들끓는 시비와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역사의 뒤안길로 돌아갔다.

들에서 나고 자란 꿩은 조롱에 갇혀 살지 못한다. 노무현이 조롱에 갇혀 얻어먹기를 거절한 것은 그가 뼛속까지
들에서 나고 자란 들 사람인 까닭이다. 노무현은 진인이 아니었을까. 장자는 "태어남을 좋아하지도 않고 죽음을
거부하지도 않은"사람, "홀연히 가고 홀연히 올 뿐인" 사람을 진인이라고 했다. 노무현은 죽어서 진인이 되었다.
이제 그는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아울러 "잠에서 꿈을 꾸지 않고, 깨어나도 근심이
없고, 먹어도 달지 않고, 숨소리는 깊고 고요하다."(대종사) 노무현은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그이는 죽기 전에 이미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깨우쳤다. 노무현은 주나라의 세상에서 구차하게 연명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치욕으로 알고
수양산으로 들어간 백이와 숙제의 길을 따라갔다. 그이가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는 백이와 숙제가 선택한 수양산이나
다를 바 없다. 살아서 구차해지기보다는 죽어서 깨끗해지기를 바란 것이다. 오호라, 슬프다. 5월의 하늘과 초목들아!
죽어야 할 사람은 살고 살아야 할 사람은 빨리 세상을 버리는구나!

- 시인 장석주의 장자읽기 '느림과 비움의 미학' 중에서

IP : 221.165.xxx.201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공감100배
    '10.12.6 9:13 PM (122.37.xxx.145)

    이 분노는 어디다 놓아야 할지...

  • 2. 봉하소나무
    '10.12.6 9:23 PM (114.202.xxx.185)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어요. 특히 호접몽 이야기는 볼 때마다 신비롭네요. 진짜 내 인생이 나비가 꾸는 꿈의 한 조각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럼 쥐의 존재는 뭘까요?

  • 3. 해탈
    '10.12.6 10:20 PM (175.117.xxx.167)

    의 경지에 오르신 님..노무현,

  • 4. 소개해 주셔서
    '10.12.6 11:34 PM (123.214.xxx.122)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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