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조선무희' 리진은 허구…신경숙 김탁환이 낚였다?
[기고]팩션의 시대 누가 대중의 역사교사인가
2010년 10월 25일 (월) 14:19:47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media@mediatoday.co.kr)
요즘 역사 공부는 방송사에서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역사 드라마가 일반인의 역사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비단 드라마 뿐 만이 아니다. 역사를 소재로 삼은 소설과 다큐물들 역시 일반인의 역사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극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심지어는 역사 다큐 까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밀한 검증 없이 이를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일이 많아 일반인의 역사 인식을 오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역사콘텐츠학과)는 최근 면밀한 역사적 검증을 통해 신경숙 작가 등의 소설과 방송 다큐멘터리를 통해 개화기 때 비운의 궁녀로 대중에게 소개된 ‘리진(혹은 ‘리심’)이라는 인물이 사실은 전혀 허구의 인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파리의 조선 무희 리진의 역사성’을 발표한 주 교수의 기고글을 싣는다. 주 교수의 이 논문은 '역사비평' 2010년 겨울호에 실릴 예정이다.<편집자 주>
최근 들어와 팩션 (Faction)이라는 새 단어가 우리 삶에 친숙하게 되었다. 이제 대중들은 역사학자들의 저서나 논문, 역사 교과서를 통해 역사지식을 얻기보다 이들 팩션 작품을 통해 역사를 소비한다. 사실상 한국의 대중들의 역사교사는 작가나 방송국의 PD, 감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무관심하지만, 관심을 갖더라도 완성되어 방영되거나 잘 팔리고 난 다음에서나 비로소 개입하여 이미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가운데 처음부터 드라마임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의 추세는 교묘하게 사실고증을 철저히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더욱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리진, 역사적 인물이 되다
2006년 신경숙은 조선일보를 통해 ‘푸른 눈물’이라는 소설을 연재하였다. 그런데 그해 김탁환이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민음사)이라는 세 권짜리 소설을 출간하였다. 한편 신경숙은 ‘리진’ (문학동네)으로 제목을 바꾸어 두 권으로 펴냈다. 당시 두 소설은 각각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으며 모두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선전하였다.
사실 19세기 말 궁중 무희 출신의 조선 여성으로서 프랑스 공사와 결혼하여 파리로 가서 살다가 다시 조선에 돌아와, 다시 옛 신분으로 돌아가게 되자 결국엔 자살을 택하게 된 비극적인 그녀의 삶은 충분히 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여성의 존재에 대한 서술은 오직 2대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이폴리트 프랑뎅(Hippolyte Frandin: 法蘭亭)이 쓴 책 ‘En Coree’(코리아에서)에만 수록되어 있다. 프랑뎅이 유일하게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김탁환, 신경숙 두 작가는 현지답사를 비롯한 고증작업과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로서 흥미로운 소설을 접하면서, 그리고 두 소설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프랑뎅의 서술에 비약과 왜곡이 너무 많아 보였다. 도무지 그 시기의 역사상과는 너무나 많은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하나 면밀히 검토해 보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2007년 6월 23일 KBS의 <한국사 전(傳)-조선의 무희, 파리의 여인이 되다>(연출 김종석)편에서 리진을 실존 인물로 간주하여 방송을 한 것이었다. 오늘날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는 리진이 하나의 항목으로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2007년 방송된 KBS <한국사 전(傳)-조선의 무희, 파리의 여인이 되다>(연출 김종석)편.
프랑뎅과 ‘En Coree (한국에서)’
이폴리트 프랑뎅은 1852년생으로서 1924년에 사망하였는데 1892년 4월 8일 2대 프랑스 공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2년 정도 조선에서 근무하다가 1894년 3월 휴가를 얻어 귀국했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그의 외교역량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으며 외교관으로서 별다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집필한 책(명지대 LG-연암문고 소장)은 제목 그대로 프랑뎅이 ‘한국에서’ 겪은 사실도 있지만 일부는 간접적으로 들었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조선 인식은 지극히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는 조선을 중국과 유사한 나라, 폐쇄된 국가, 외부와 단절된 나라, ‘은둔의 왕국’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프랑뎅은 한국인을 미개하며, 수동적이고 노예근성이 있으며, 권력의 노예. 비합리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가 판단하는 조선의 문명화는 가톨릭의 전파에 의한 것이었다.
플랑시 공사는 누구이며 리진의 남자일 수 있는가?
프랑뎅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전임자로서 다시 조선에 부임한 사람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그에 해당하는 사람은 콜랭 드 플랑시 공사 밖에 없다. 따라서 두 소설 및 다큐는 ‘젊은 대리공사’를 플랑시로 단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는 1853년생으로서 1887년 말에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에 임명되어 1891년 6월 15일까지 서울에서 근무했다. 그 후 1893년까지 일본주재 프랑스 공사관의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1893~1894년 프랑스 외무성 본부로 전입되었다. 그 후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잠시 일하다가 1896년 4월 아관파천 이후 다시 한국에 전권공사로 부임하여 1906년 1월까지 10년간을 근무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진『직지(直指)』를 수집하여 프랑스로 가져간 인물이기도 하다.
우선 지적할 것은 프랑뎅이 분명히 그 대리공사가 리진과 결혼을 했다고 기록했는데 분명히 콜랭 드 플랑시에 대한 공식기록에는 그가 미혼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프랑뎅은 분명히 자신이 조선에서 리진을 보았고 다시 프랑스에서 만났다고 적었다. 그런데 프랑뎅이 1892년 4월 조선에 도착했을 때에는, 플랑시가 이미 1891년 6월에 일본으로 떠난 뒤였다. 따라서 두 사람은 함께 조선에 있었던 날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그가 리진을 만났을 가능성도 전혀 없었다.
리진, 과연 실재했던 인물인가?
나머지는 링크를 따라가 보셔요.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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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조선무희' 리진은 허구…신경숙 김탁환이 낚였다? [펌]
ㅋㅋㅋ 조회수 : 1,098
작성일 : 2010-10-26 00:25:43
IP : 112.155.xxx.26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ㅋㅋㅋ
'10.10.26 12:26 AM (112.155.xxx.26)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492
2. 역사의 진실과는
'10.10.26 9:16 AM (218.39.xxx.149)상관없이 신경숙 팬이었었는데 간만에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신경숙 팬하는 것 관두기로 했어요. 예전 신경숙이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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