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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인간'을 보는 방식
어느40대 조회수 : 564
작성일 : 2010-04-09 17:33:08
언젠가 판사 생활을 30년 이상 했던 장인이 "검찰은 가서 물어 하면 무는 개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법원에서도 요직에 계셨고, 상당한 존경을 받는 분 입에서 "검찰은 개"라는 말이 나왔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속으로 설마 민주화 이후의 검찰은 그렇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검찰은 역시 개였습니다. 판사 생활 30년 동안 터득한 그분의 깨달음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깨닫게 됩니다.
이 말과 함께 장인은 "나는 30년 동안 실패한 인생들만 봐왔다"고 했습니다. 판사 생활 하면서 법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어서 거기 나온 사람들이니 한편으로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쩌면 그런 실패한 인생들만 봤기 때문인지, 그분에게서 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휴머니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판사다운 냉철함과 분석력은 있지만,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소박한 휴머니즘은 없었지요.
이번 한명숙 전 총리의 판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찰 역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있다는, 그들의 인간에 대한 인식은 밥먹으면 뇌물이고, 친한 사이면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이고, 골프숍에 가면 당연히 골프채를 선물 받는 것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후의를 베풀 수 있고(그것이 꼭 비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관심과 애정을 표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거나 아예 인식이 없다는..
검찰의 말도 안되는 짓거리 보다 제가 더 화가 났던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들게, 깨끗하고 덕망있게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을 저렇게 깔아 뭉개고 폄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니들이 과연 얼마나 도덕적으로, 모범적으로 살아가고 있나? 너희들의 삶이 과연 한명숙 총리의 삶보다 더 훌륭한 것이었던가?
그래서 다음의 글이 더 공감이 갑니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이었던 강기석님이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글을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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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 했던가.
지난 2일 결심 때, 한명숙 전 총리에게 5년형을 때린 검사의 입에서 내뱉어진 소리다. 딴에는 자신의 구형이 삿된 것을 척결하고 올바른 것을 바로 세우겠다는 결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자만심의 표현이렸다. 순간 화가 난다기 보다는 헛헛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먼저 말이 어지러워지는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알고 썼으면 거짓말이요, 모르고 썼으면 무식이 분명한 최고권력자의 말씀새에 하루가 멀다하고 복장이 터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배울 것을 배우고 따라 할 것을 따라해야지, 이런 재판을 해 놓고도 검사가 한 총리에게 ‘파사현정’을 운운한다? 지나가던 소가 듣고 웃을 일이다.
이해하려 들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곽영욱을 닦달해서 한명숙을 잡자고 나선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다. 다른 증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데다 한명숙 흠집내기마저 ‘여보세요. (당장 중단하세요)’라는 식의 재판장의 제지로 여의치 못했던 군색한 상황을 모면하려면 그 정도 위엄있는 단어의 힘을 빌려서라도 허세를 부릴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 하지만 이 시대 정치검찰에게서 ‘파사현정’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람은 미안하게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날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 할 최고의 관직에 있으면서 민간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점, 공직자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떨어뜨린 점, 뇌물수수 문제가 우리나라 현실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고질적 악행인 점 등을 감안하면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한 검찰의 말은 그대로 검찰 자신에게 한 독백으로 족한 것이지 결코 한 총리에게 할 말이 아니다.
검찰이 왜 그랬을까. 한 총리의 유죄를 입증할 희망이 점점 더 희박해지는 상황에서도 왜 검찰은 주눅들거나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가면 갈수록 집요해지고 뻔뻔해 졌을까. 나는 그 전날 한 총리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와중에 검사들이 던진 무수한 신문사항 중 아주 사소한 한 질문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피고인은 휴정 때 복도에서 곽영욱의 처를 만나자 손을 잡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 잘 될 것이다’라고 위로하지 않았나요?”
그렇다. 한 총리는 비록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이지만 그 처를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명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그러나 정치검찰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원수를 사랑하는가. 무언가 곽의 처와 은밀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남모르게 무슨 거래를 시도한 건 아닌가. 검찰의 생각은 그 정도인 것이다. 생각이 그 정도였기 때문에 한 총리를 끝까지 범인으로 확신했고 유죄를 받아 낼 수 있다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가벼운 이야기지만 진리의 한 자락을 품고 있다. 한 총리는 최후진술에서 “친절하면 돈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고, 식사를 하면 청탁과 이권이 오고 가는 관계로 발전한다는 해괴한 논리의 세계를 저는 사실 잘 알지 못합니다”고 말했지만 검사들은 그 ‘해괴한 논리’를 지극히 당연한 논리로 믿는다. 돈봉투를 받으면 허겁지겁 서랍에 넣거나 TV수납장에 훽 던져 넣는 정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추정해낸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실로 곽은 횡령수사 전까지도 인품이 훌륭하고 유능한 CEO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으로부터 후원과 점심대접 등을 받은 것을 갚기 위해, 마침 동창들끼리 모이는 점심자리에 그를 합석시킨 후의와 배려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청탁이 아니라면 그런 것 까지 신경을 쓰겠느냐는 것이 저들의 인생철학인 것이다.
한 총리는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하는 말에 보내는 그들의 날 선 적대감과 증오를, 그저 놀라운 눈으로 지켜볼 뿐입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렇다. 한명숙이란 ‘진보개혁세력의 구심점’을 거꾸러뜨릴 수 있겠다는 오판은 한명숙이 자신들과 절대 다르지 않다는, 다를 수가 없다는 오해에서 시작된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한명숙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뒤늦은 발견이 “꼭 잡아 넣겠다”는 오기를 발동시켰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언론을 이용해, 한 총리가 대변하는 가치관에 대한 흠집내기로 돌변한 것이다. 골프문제와 아들 유학문제가 그 수단이었다. 검찰은 청탁과 뇌물수수건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지만 두 사람 간 뇌물을 주고 받을 만한 친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면서 오래 전 골프채 선물의혹을 들고 나왔고 이 의혹에 신빙성을 더 하기 위해 한 총리가 골프를 친다고 주장했으며 여기에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한 총리가 거짓말쟁이라는 인상까지 덧씌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들은 한 총리의 골프실력이 90대라는 주장까지 내세웠는데 아마도 일반인이 그 정도 골프실력을 가지려면 골프장에 1백번 이상은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한 총리가 백 번은커녕, 열 번, 다섯 번조차 골프장에 나간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죽자사자 언론플레이에만 몰두했다.
한 총리 외아들의 유학문제를 헤집은 것은 가장 나중에까지 용서받지 못할 정치검찰의 잔인성으로 기록될 것이다. 뇌물의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미국대학의 학제와 학비수준마저도 모르는 무지는 연 5만달러도 안 되는 ‘호화유학’이라는 용감한 주장을 가능케 했다. 그 주장이 무모했던 만큼 그것은 정치인 한명숙이 아니라 한명숙이란 한 엄마의 가슴에만 깊은 상처를 주었을 뿐이다. 한 총리도 최후진술에서 “영문도 모르고 모진 일을 겪게 된 주위 분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었다”면서 특히 “학생의 신분으로 조용히 공부하며 지내는 아이가 마치 깨끗하지 않은 돈으로 유학 생활을 하는 듯 얘기되어지고, 홈페이지까지 뒤져 집요한 모욕주기에 상처받았을 마음을 생각하면 엄마로서 한없이 미안하고, 제가 받은 모욕감보다 더 큰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
재판은 끝났다. 한 총리가 겪은 상처와 고통은, 벌겋게 달구어진 채 수 백번의 달굼질을 거쳐 강철이 만들어지듯, 그를 강인한 정치인으로 변모시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검찰은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재판은 이미 시작때부터 진영간 대결-진보- 보수, 개혁-수구의 대결을 넘어 그것에 내재되어 있는 세계관, 역사관에서의 진실-허위, 正(정)-邪(사)란 더 근원적인 차원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표적수사, 부실수사 등등 온갖 비판과 오명속에서도 권오성 검사 등은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고 건재해서 개혁진보세력을 물어 뜯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적어도 이 정권이 지속될 때까지는…
그러므로 비록 시대를 잘못 만나 오용(誤用)의 불명예를 쓰고는 있지만 우리는 ‘파사현정’이란 좋은 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이 말의 쓰임새를 바로 잡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IP : 58.103.xxx.131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어느40대
'10.4.9 5:36 PM (58.103.xxx.131)http://www.knowhow.or.kr/bongha_inform/view.php?start=0&pri_no=999620770
2. 잘 읽었습니다
'10.4.9 5:37 PM (112.221.xxx.205)강철은 이렇게 단련되고 있습니다. 한 시장님, 꼭 대선에 나와주세요.
3. ...
'10.4.9 5:40 PM (118.32.xxx.144)한명숙이란 세글자에 우리의 미래를 의탁 해도 되겠지요..감사합니다 한명숙 총리님
4. 글
'10.4.9 5:53 PM (211.194.xxx.217)잘 읽었습니다.
질 나쁜 선민의식과 약간의 권력이 결합되므로써,
그저 그렇게 일생을 맞칠 수 있었던 평범한 장삼이사들이 이 나라와 사회를
우수꽝스럽고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었던 지는 오래되었지요.
게다가 더 질 나쁜 자의 등장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시절입니다.5. 슬퍼요
'10.4.9 5:58 PM (112.221.xxx.205)그리고 파사현정 뜻을 몰라서--;;; 네이버에서 찾아봤어요.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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