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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빼 먹고 바다 갔다 왔어요.

하하 조회수 : 463
작성일 : 2009-10-18 22:55:54
하하... 학교 빼 먹고 놀러다니는 불량 학생이라고 야단 치실 건가요?

이번 학기 마지막 시험이 끝났어요.

마지막 시험은 생각보다 잘 보지 못했어요. 여기 시험은 무조건 서술식인데 답안 작성하다보니 시간이 부족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는 문제인데도 답을 못 적었죠.

감독 선생님께서 보통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주시는데, 이 날은 약속이 있으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도 30분이나 시간 더 주시고 본인 약속에 늦게 가셨으니 감사하다고 해야죠...


갑자기 참 마음이 갑갑하더라구요.

인생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어느 순간 그거 다 소용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다음 날... 학교 가려고 버스 타고 가다가

학교 앞에서 안 내리고 그냥 기차역까지 갔어요. 종점이 기차역이거든요.

제일 가까운 바다로 가는 표 끊어서...

친구들이 왜 학교 안 오냐, 아프냐, 문자 보내는 것도 답도 하나도 안 보내고

그냥 마냥 바다만 바라보다 왔네요.

가는 길에 슈퍼에서 귤이랑 오렌지를 한 바구니 잔뜩 샀어요.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수능 치기 얼마 전에. 방파제에 갔던 적이 있어요.

방파제 앞에 있는 새로 생긴 과일 가게에서 오렌지를 잔뜩 사서...

방파제에 앉아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오렌지를 까 먹었는데

바다 위로 둥둥 떠가는 선명한 주황색의 오렌지 껍질이 아직도 시야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여긴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겨울이 별로 춥지 않은 곳인데도 꼭 이맘때의 한국과 같은 날씨가 됐어요.

바다에 가니까 바람도 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바다에 반짝반짝 하는 햇빛이 꼭 한국의 바다 같은 것이...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몸 속이 텅텅 소리가 날 정도로 다 비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모르겠어요.

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고민할 필요 없다고.

내 능력 안에 해결 할 수 있는 일이면, 고민하지 않아도 곧 해결 할 수 있을테고

내 능력 안에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면, 고민하고 있어도 어차피 해결 할 수 없을테니 그냥 두자고.


이게 인생이 맞는 걸까요?





IP : 82.61.xxx.203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몇살이신지..
    '09.10.18 11:36 PM (121.124.xxx.45)

    사춘기이신가요?

    때때로 방황할 수도 있지만 너무 길게는 하지 마시고요.



    몇일전 본 "애자" 라는 영화내용이 생각나네요.
    그주인공이
    비만 오면
    학교 빠지고 바다로 간다네요.
    선생님한테 걸려서 혼나는데
    왜 바다가냐? 하니 시 써야죠. 하대요. 혹 님도 그런 예술하다 오셨는지요?^^


    하여튼 부럽습니다. 그런 젊음이... 앞으로 낭만의 하루로 기억되겠네요.

  • 2. 다시 글을 보니
    '09.10.18 11:39 PM (121.124.xxx.45)

    대학생이신가보네요.

    고등학생인지 알았는데...

    살다보면 답답한 일 많죠. 거의 시간이 해결하는 것 같더라고요.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힘 내세요!!!

  • 3. 원글
    '09.10.18 11:43 PM (82.61.xxx.203)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 원래는 학교 단 하루도 안 빼먹고 출석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랍니다...

    그런데 한 3, 4년에 한 번씩 딱 이런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래도 바다 보고 와서 기분 나아졌으니... 텅텅 빈 내 속에 새로운 걸 채워넣을 수 있겠죠.

  • 4. 허어~
    '09.10.19 12:53 AM (114.204.xxx.19)

    요산요수란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리 .... ㅎ
    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더니
    원글님은 바다를 자주 찾으시니
    젊은 나이에 벌써 세상이치를 깨닫게 되시나 봅니다~

    마지막 두 문장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군요...
    나이가 드니 젊은 사람들을 보면 단지 젊다는 그 한가지 만으로도
    너무 부럽네요...
    원글님... 인생의 황금기에 있으시니
    타국에서 외롭기도 하겠지만 부디 하고자 하는 일 다 해 보시고
    식지 않는 열정을 갖고 치열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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