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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라 마디간, 이케아, 스웨덴...

프리댄서 조회수 : 2,306
작성일 : 2009-09-17 08:06:52
아바, 볼보, 이케아의 나라. 스웨덴. 인구는 900만 명 정도로  한국의 수도권 인구보다도 적다는. 그런데도 국민소득은 5만 불이 넘고 국가경쟁력은 세계 3위인가 4위인가 그렇다는...

그레타 가르보, 잉그리드 버그만 같은 여배우들의 모국.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지. 발트해. 기나긴 겨울, 혹한, 눈보라. 초등학교 때 ‘부동항’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겨울에 바다가 어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아니 바다가 얼 수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뒤 우연히 잡지에서 보게 되었던 겨울 스웨덴의 어느 항구, 거기에 정말로 얼어 있었던 바다. 그리고 짧지만 찬란한 봄과 여름. 노벨상, 백야..... 그 백야의 끝에서 느끼는 신의 용서와 자비를 그린 영화 <처녀의 샘>의 무대. 그러니까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과 루터교의 나라.

그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어젯밤에 봤어요. 아, 좋네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저 영화를 그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여배우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들 속에서 펼치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시 말해 내용은 그저 그런데 ‘자연광을 이용해서만(어디선가 그렇게 주워들었던 것 같네요)’ 촬영한 화면이 예쁘고, 그 풍경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예쁜 여배우가 나오고 또 그런 화면과 여배우를 돋보이게 만들어준 배경음악 때문에 유명세를 탄 영화.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는 말이죠. 오우, 근데 막상 보니까 무엇보다 영화 내용이 참 괜찮더라구요.

뭐 하도 유명한 영화라 줄거리 등등은 생략하구요, 인상적이었던 게 그거였어요. 전쟁에 대한 비판. 군 복무 중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되어 탈영한 남자 주인공이 자신을 찾아낸 친구에게 사랑과 전쟁에 대해 그렇게 말하죠. 기억나는 대로 옮겨보자면,

네가 풀잎 하나를 보면 네 눈에는 풀잎만 깨끗하게 보이지. 그 밖에 다른 것들은 희미해져. 세상은 풀잎 없인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 풀잎 하나가 세상 전체, 전체의 세상이 되는 거지...... 총검이 너의 배를 꿰뚫으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나야 하는지 알아? 의학책에서 찾아봤어. 상피, 내피, 피하지방층, 근막층.... 근막층은 근육을 보호하는 피부 같은 거지. 그리고 근육들. 그것들을 일일이 다 통과하는 게 전쟁이야. 그 층층의 것들을 너는 모두 알아야 해.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거지..... 물론 네 말처럼 그녀가 나를 망치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을 통해 나도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 나는 그녀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어.....사랑이란 그런 게 아닐까? (대충 요런 대사였음)

결론은, 전 여자 주인공보다 오히려 남자 주인공에게 빠져 들었다는 거죠. 나약함과 부드러움, 어떤 갈망과 불안, 세상과 전쟁에 대한 회의, 냉소.... 그런 것들을 어머, 얼굴 표정으로 참 잘 표현하더라구요. 특히 그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 암튼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까지 영화의 여운이 가시질 않네요.ㅋㅋ

음... 그리고 스웨덴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요, 전에 <이케아 : 스웨덴 가구왕국의 상상초월 성공 스토리>라는 책을 봤더니 거기에 이케아의 성공이 스웨덴의 복지제도 정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192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유럽 변방의 후진 농업국에 불과했대요. 가진 것이라곤 자원 조금 있고 척박한 땅과 척박한 기후. 먹고 살기 힘든 데다 고용도 불안해서 노동자들은 파업도 자주 벌였구요. 그때 등장한 것이 페르 알빈 한손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이었습니다. 사민당은 ‘국민의 가정’이라는 슬로건으로 1932년에 집권하는 데 성공하죠. 좋은 가정이란 가족 간의 유대감이 튼튼하여 가족 구성원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가정이다, 나라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성과 계급, 소득과 학력수준 등등 때문에 차별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즉 좋은 나라는 좋은 가정과 같아야 하는 것이다....  

국가를 가정의 이미지에 비유한 사민당의 슬로건은 스웨덴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집권하여 약속대로 국가를 ‘국민의 가정’으로 만드는 데 힘을 쏟죠. 그 구체적인  내용이 세계 최초로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한 것이라고 하네요. 뭐 잘은 모르겠지만  실업자들한테 공공근로를 통해 일자리를 주고, 공공근로라 해서 푼돈을 쥐어주는 게 아니라  좀 넉넉하게 주고 (그래야 실업자 가정도 먹고 사니까...), 영세 상공인 및 영세 농민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실업보험을 도입하고... 그런 거였나 봅니다, 케인즈주의라는 게.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내비둔 다음 그 안에서 알아서 살아 남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그런 정책을 통해 대공황이 세계를 강타한 1930년대에도 스웨덴은 비교적 안정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니 당연히 국민들이 사민당 말에 좀 호응을 했겠지요. 그래서 1938년에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것을 이뤄냈다고 합니다.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해서 전국 방방곡의 사회 구성원 모두가 모여 어떤 합의를 했다는 게 아니라, 고용주단체(이를테면 전경련)와 노동자단체(이를테면 민주노총)가 한 테이블에서 만나 고용주는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성장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겠다, 대신 파업하지 마라... 노동자는 오케바리, 접수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파업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파업하는 거 힘들다... 이렇게 약속을 한 거죠. 그 과정에서 대기업 노동자들도 연봉이 깎이는 걸 감수했구요. 그래서 사오정 신세를 면할 수 있다면 우리 연봉의 일부를 새 일자리를 만들고 블루칼라들의 임금을 높이는 데에 양보하겠소. 뭐 나라에서 사교육 안 시켜도 대학 갈 수 있게 해주고, 무상 교육에 무상 의료 해준다니까 함 믿어보리다...

그런데 당시 유럽의 정세는 요상하게 돌아가서 전쟁이 발발하죠. 하지만 스웨덴은 ‘교묘한’ 중립정책을 통해 연합군이나 독일군 어느 편도 들지 않았습니다.--; 하여 폭격도 받지 않았죠. 전쟁이 끝난 후 유럽 주요 국가들의 생산 기반 시설이 대량 파괴된 상태에서도 스웨덴의 기반시설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안전하게 지켜진 생산 기반시설과 사회적 대타협은 1950년대 스웨덴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스웨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오죽하면 공지영의 소설에 ‘그리하여 스웨덴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듯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부유한 복지국가로 안착을 했습니다.

이케아의 비약적인 발전도 스웨덴의 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고 합니다. 사민당 정권이 ‘국민의 가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과감한 ‘하향평준화’ 정책들을 도입하죠. 사람이라면 적어도 먹고 잘 집이 있어야 하니까 주택들을 지어서 아주 싸게 공급하고, 그런데 사람이니까 그저 울타리만 둘러쳐진 것으로는 안 되므로 집도 좀 아담한 맛이 있어야 하고 그 집들 안에는 가구도 있어야 하고, 또한 20세기 인간들은 문명인이므로 가구도 그냥 서랍만 달려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이왕이면 디자인도 예뻐야 하고.... 그래서 사민당 정권은 ‘스웨덴 국민들을 몰개성한 획일적 인간들로 만들 것인가, 도대체 많은 국민들에게 엇비슷한 집에서 엇비슷한 가구들을 배치하고 살라는 게 말이 되냐’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싸면서도 아담한 집, 저렴하면서도 산뜻한 디자인의 가구들을 보급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국민의 가정에서는 노동자, 영세 농민도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필요한 만큼의 가구들을 들여놓고 살 권리가 있다는 기치 아래.

그때 이케아가 모던하고 경쾌한 디자인에다 저가라는 점을 앞세워 가구들을 많이 팔아치웠다는 거죠.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창업자의 타고난 장사꾼적 기질도 한몫 거들었고요.

그런데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입니다. 스웨덴이 복지강국이라는 이면에는 그만큼 국민들, 특히 고액 연봉자들의 만만찮은 세금부담이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케아...>에서도 보니까 그에 대한 게 언급되어 있더군요. 스웨덴에서 ‘국민작가’ 대접을 받는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970년대에 그런 칼럼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제까지 이 나라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으며, 그 길은 전 세계의 모범이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항상 이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고액의 세금을 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 나라에도 이제는 경직된 관료주의가 팽배해져 있는가. 내가 아무리 고액의 수입을 올리는 입장이지만 수입의 ‘85%’를 세금으로 내라고 하는 건 지나친 것 같아서 항의를 했더니 사민당 정권은 들은 척도 안 한다,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만 되뇌더라, 이제는 그들을 좀 정신차리게 해줄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는 저런 내용을 담은 동화도 발표하죠. 결국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니의 ‘불평’은 큰 힘을 발휘해서 1976년에 사민당은 재집권에 실패하여 40년 넘게 앉아있었던(정말 대단한 장기집권!^^)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 후 또 집권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유럽에 불어닥친 우경화 바람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그러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이케아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도 스웨덴의 ‘세계 최하의 부패지수를 자랑하는 복지강국’이라는 국가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하듯이, 이미 한 나라의 성장동력으로 검증된 시스템은 쉽게 갈아엎지 못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시스템의 안착은 그 시스템에 깃들어 있는 사상이나 철학 같은 것을 알게 모르게 체화했다는 것도 의미하니까요. 하여 정권의 성격에 따라 그 시스템을 ‘손볼’ 수는 있겠지만,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한다면서 크게 후퇴시킬 수 있을지... 뭐 두고 봐야 알겠지만요.

참고로, 이케아 창업주는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인데요, 제가 볼 때는 한국전쟁 때 맨손으로 월남하여 자수성가한 ‘지주 집안 출신’ 어르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케아 창업주도 빈털털이 출신이라는 게 아니라 성향이... 그 사람은 꽤 부유한 이민자의 후손) 아주 검소하고 부지런하고 신앙에도 투철하여, 저런 어르신들이 빨갱이라면 덮어놓고 증오하듯 사회적 낙오자에 대한 연민이 거의 없는 것 같았어요. 뭐 그래서 청년기 때는 나치에 협력했던 전력도 있더라구요. 마치 저런 어르신들 중에 서북청년단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 계시듯.^^ 그래서 결국에는 스웨덴의 아주 ‘빡센’ 세금을 피해 자기 주소도 스위스로 옮겨버리고 회사 본사도 외국으로 옮겨버렸다죠?          

그냥 스웨덴산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그 여운 때문에 아침부터 횡설수설해봤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IP : 218.235.xxx.134
4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프리댄서
    '09.9.17 8:10 AM (218.235.xxx.134)

    아래의 영상은 다음 TV팟에 올려진 <엘비라 마디간> 엔딩 장면이에요. 돈이 떨어져서 몇 날 며칠 굶은 바람에 여주인공이 힘이 없네요. 그리고는 어떻게어떻게 마련한 돈으로 소박한 최후의 만찬을 하고 '난 할 수 없어. 해야만 해요, 방법이 없어요.' 하다가 탕.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0&ref=search&clipid=6838676&pag...

  • 2. 여주인공의
    '09.9.17 8:14 AM (115.128.xxx.63)

    커다란눈망울이 아직도 기억나요...
    사슴같은 눈이였는데 ^.^ 전직 발레리나라고 들었던 기억이 얼핏~
    영화한편에 스웨덴히스토리까지 음~전이래서 82회원님들이
    존경스러워요~~좋은글 감사

  • 3. 잘읽었습니다~
    '09.9.17 8:40 AM (203.247.xxx.172)

    주제곡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급 보고싶어집니다...그래서 위에 엔딩도 안봤습니다ㅋ
    스웨덴의 사회대통합은 어디 다큐에서 봤었는데...이케아 얘기는 처음입니다...
    '월남하여 자수성가'같은 실감나는 해석에 고개가 끄덕끄덕...맨날 끄덕끄덕...해해

    요즘 '네이웃을 사랑하라' 막바지 보고 있는데
    제가 기자가 쓴 책은 처음이고 그 복잡함과 끔찍함을 내가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을까 했었는데...
    사회 안정층 보스니아 무슬림과 세르비아의 광기 또 영리한 밀로세비치...유럽과 유엔과 미국...의 윤곽이...보이네요...

    인용되는 레베카 웨스트의 책을 보고 싶어졌는데 번역된게 없군요...

  • 4. 가로수
    '09.9.17 8:41 AM (221.148.xxx.139)

    제가 고등학생일때 개봉했던 영화지요, 그 음악과 함께 한동안 우리들의 정서를 흔들었던...
    이케아에도 참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좋은 잡지에서 잘쓴 기사를 한꼭지 읽고난 느낌이예요
    그런데 개인적인 호기심...프리댄서님, 뭐하는 분이세요?^^

  • 5. ㅎㅎ
    '09.9.17 8:42 AM (122.43.xxx.9)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엘비라 마디간에 대한 저런 선입견이 있어서 저도 아직 안봤는데요.
    한번 봐야겠네요. ㅎㅎ 특히 남자주인공을 눈여겨 봐야겠군요.^^

    스웨덴의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수입의 85%를 세금으로 내라고 한다고, 이거 해도 너무하는거 아니냐고 항의한 인기작가
    (본인은 짜증 만땅이었겠지만 정반대의 현실에서 사는 제 입장에서는 놀랍고 참신할 뿐...^^)

  • 6. 윗님,,
    '09.9.17 8:45 AM (221.154.xxx.134)

    맞아요. 엘비라마디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였다구 했던거 같아요.
    저두 여주인공 얼굴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보니 남자 주인공이 꽤 멋졌었네요.

    근데 왜 이리 슬픈가요? 아침부터 눈물이 나네요.
    이 영화 극장에서 보던때가 저 스무살때쯤이었던거 같은데..
    그 땐 영화포스터 몰래 뜯어다 제방벽에 붙여놓는게 취미였었어요..
    영화포스터두 멋졌던걸 걸로 기억해요.

    아우, 여튼 프리댄서님 글 멋지십니다^^

  • 7. 저도
    '09.9.17 8:52 AM (220.75.xxx.217)

    저도 이 영화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영화라 그 충격이 한참 갔었던 기억이 있네요.
    원글님 덕분에 앤딩 다시봐서 너무 좋네요. 시간내서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십 몇년전에 봤을땐 여주인공 참 이쁘다 생각했는데 40이 다된 지금 다시 보니 이 둘이 왜 이리 어려보이나요?
    67년작이니 지금은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겠죠?

  • 8. 다아시부인
    '09.9.17 9:25 AM (119.196.xxx.66)

    흠 고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의 영향으로 클래식 무척 들었드랬죠.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음악 따라 영화도 쫓고.. 대입을 준비하면서도 망중한을 즐겼던 시절이었나봐요.

    제 남편이 스웨덴의 모 회사 부사장과 술을 마실 일이 있었나봐요. 차타고 가다 신호위반으로 걸렸는데 범칙금이 재산에 따라 300만원(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 4년 전에 들은 얘기라) 정도 ㅎㄷㄷ. 근데 일반 샐러리맨은 4~5만원.
    그래도 그게 당연하다 생각한답니다. 어떤 설치류가 보면 기가 막힐 현상이죠.ㅋㅋ.

  • 9. ...
    '09.9.17 10:05 AM (116.36.xxx.22)

    스웨덴 국민들 모두의 집, 가정을 위해 - ikea
    옷을 위해 - h&m
    차를 위해 - 볼보..
    교육, 의료 무료 지원... 감기 걸려 병원 가면 의사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많이 자라고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간 갈등이 많아요. 워낙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라라..
    한국 입양아들은 스웨덴 사람이 될 수 없죠. 평생.. 그 국적이 따로 있을 겁니다.
    그래서 중동 지역 정치, 종교, 경제 난민들, 이민자들과 갈등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데
    이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범 유럽의 고민인 것 같아요.

  • 10. 강산맘
    '09.9.17 10:22 AM (121.185.xxx.68)

    스웨덴 좋은 나라죠.. 대학때 1년간 교환학생으로 갔었는데 국민성은 별로였어요. 칼같고 철두철미하고(이건 장점인가..) 한번 뒤돌아서면 피도 눈물도 없는..저는 차라리 이탈리아 스페인 쪽 사람이 더 잘맞더라구요.. 그냥 스웨덴 관련 글이 나와서 야릇한 기분에 몇자 써봅니다.

  • 11. ....
    '09.9.17 10:42 AM (121.124.xxx.45)

    책을 부르게 만드는 글 솜씨,

    잘 읽었습니다.^^

  • 12. 감사
    '09.9.17 11:20 AM (124.28.xxx.208)

    엘비라 마디간은 보고싶지만 볼수 없어서 글도 잘 보고 동영상도 보고 눈물 찔끔했네요.
    근데 제가 알기로는 스웨덴 면적이 꽤 넓은데.. 남한의 5분의 1이라는건 오해같네요.

  • 13. 프리댄서
    '09.9.17 12:11 PM (218.235.xxx.134)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우선 <엘비라 마디간>, 어쩜 뻔한 이야기인데도 그걸 이렇게 저렇게 이끌어간 시나리오도 좋았고 예쁜 여배우와 멋진 남자 주인공도 좋았고 투명한 북구의 봄과 여름을 배경으로 한 화면도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배경음악으로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 ‘안단테’도 좋았구요. 와... 근데 이 영화를 학창시절에 보신 분들도 꽤 있으시네요.^^ 만일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저 영화를 봤다면 여운이 더 길게, 더 오래 이어졌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엘비라 마디간> 감독이 처음에 평론활동 먼저 시작했는데 평론으로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을 호되게 비판했었다네요. ‘지금/여기’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신화적 세계에만 머물러 있다면서.^^

    음... 서유럽이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서 몰려든 이민자들 때문에 갈등을 겪는 걸 보면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도 싶어요. 아무리 똘레랑스 어쩌네 해도 솔직히 내 울타리는 모두가 안전하기를 바라게 되니까요. 또한 이민자들 중에는 분명 ‘위험한’ 부류도 섞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저한테 외국인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마을에 가서 집을 얻어라, 하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저는 장담할 수가 없어요, 솔직히.

    그렇기 때문에 이웃이 ‘못 살지 않는 상태’인 것이 참 중요한 듯싶어요. 내가 잘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건 두말할 건덕지가 없죠. 그러면서 동시에 이웃들이 나만큼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못사는 상태가 아닌’ 환경. 그래야 나도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거창한 인류애의 발로나 정치적 신념에 따른 생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보자면요. 나 혼자만 잘 살면 남미 국가들처럼 울타리에 고압전류 흐르게 하고 저잣거리에 나갈 때는 총을 찬 경호원을 대동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필요한 게 복지시스템이고, 복지란 한 마디로 잘 사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므로 수입의 85%는 정말 심한 거고^^, 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종부세나 진보신당에서 주창하는 부유세 정도는 낼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 이런 말씀을 드리는 저는 종부세 대상자가 아니네요. ㅎㅎ)

    부작용이 적지 않네 어쩌고 해도 현재까지 인류가 고안해낸 제도 중에서 인간을 인간적인 상태로 제일 잘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복지제도 같으니까요.

    또 그것처럼 이웃나라들도 최소한 못살지는 않는 상태. 그래서 과거에(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그랬듯이 아이들을 친척들에게 맡기거나 자기들끼리만 살게 한 뒤 부모는 일본으로, 한국으로, 미국으로, 잘 사는 서유럽으로 불법체류를 감내하면서까지 돈 벌러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흐... 거창하게 흘러가네요.^^) 저런 게 어쨌든 해결되어야 서유럽의 이민자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텐데....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참 어렵게 꼬이고 꼬인 문제라서.--;

    암튼 결론은 내가 잘 살기 위해 이웃들이 ‘못살지는 않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진보 쪽에서 잘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강해져요. 다시 말해 진보쪽 프레임에도 이제는 성장을 담아야 하고, 그 선명성도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압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한 성장,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 틀로 복지를 재단하지 않는 성장 내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뭐, 진보신당 지지자의 입장에서 잘 할 거라 믿습니다만.^^ (에구, 이거 흰소리를 넘 많이 늘어놓은 것 같네요.--;)

    그리고 ‘잘읽었습니다~’님.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읽고 난 후에 문득 ‘참, 슬로베니아 학파도 구유고 연방 출신들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라보예 지젝이 혹 보스니아 사태에 대해 쓴 글이 있을까 찾아봤더니 <향락의 전이>라는 책에서 그에 대해 언급을 했다더군요. 근데 인터네 서점에 올라온 서평을 보니 번역이 안습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생각 중인데, 아직은 생각으로만....^^;;

  • 14. 프리댄서
    '09.9.17 12:30 PM (218.235.xxx.134)

    앗, '감사'님. 맞아요. 막 브래태니커 사전 검색해보니 스웨덴 면적 '450,295㎢', 대한민국 면적 '99,221㎢'... 헉! 더 넓은 나란데 제가 혼동을 했습니다.;;;;;;;;;;;; 흐.. 그래서 수정했어요. 제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님, 북유럽이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북유럽 신화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네요.^^ 정말로. 혹 그것에 대한 책 재밌게 읽으신 분들은 제게 제목 좀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페르귄트> 꼭 읽어보겠습니다. 새로 개안할 정도라...대단한 표현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셔서 <페르귄트>가 정말 확, 땡기네요.

    그리고 전에 어떤 책에서 보니 유럽 쪽에서는 예술작품을 비평할 때 '이케아처럼 단순한'이라는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인다고 하네요. (그쪽에 거주하시는 분들, 정말 그런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그러니까 작품의 주제나 플롯, 무대장치 등이 시원찮을 때 저 표현을 사용한다는 걸 얼핏 본 기억이 납니다. 또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소설에서 여주인공 한나가 출감하자 남자주인공이 한나가 살 집을 구하고 거기에 이케아 가구를 채워줘요. 이케아 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혼자 사는 한나가 쓰기에는... 그러면서. 그때는 독일과 이케아라..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케아..> 책을 보니 이케아 창업주가 독일계 이민자 후손이라 비교적 독일 진출이 수월했고, 마침 이케아가 독일로 진출할 때가 70년대 초, 다시 말해 68혁명의 여파가 남아 있을 때라 더 잘 먹혔다고 하네요.

    그 전까지는 가구라면 마호가니 가구 같은, 대를 물려서 쓰는 중후한 가구를 선호했는데 68혁명의 영향으로 모던하고 날렵한 이케아 제품이 인기를 얻었답니다. 이케아 가구를 마치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듯한 기호로 받아들였던 모양이에요. 암튼 그것도 생각나서 끄적여봤네요...

    아 그리고 강산맘님. 제 생각도 비슷한데요, 아무래도 우린 라틴계 쪽과 기질적으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도 특히 개신교권 국가들은 더더욱 깍쟁이 같고 칼 같은 무언가가 있는 듯싶고. 거리도 정말 헉 소리가 나게 깨끗하구요. 그런 나라들에 비하면 이탈리아는 지저분하고^^ 막 빨래도 내다 널더라구요. 목소리 좀 높이면 꼭 싸우는 것 같은 광경도 우리랑 비슷하고.^^

  • 15. *
    '09.9.17 1:14 PM (96.49.xxx.112)

    오, 오늘 운이 좋네요.
    프리댄서님의 주옥같은 글을 읽게 되었어요.
    이번 주 시간이 좀 많아서 82자게를 열심히 읽었는데, 잘 한 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16. 쟈크라깡
    '09.9.17 2:02 PM (118.32.xxx.67)

    아 82에서 잉마르 베르히만을 듣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내용과를 별도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름을 보니 감격스러워서.

    영화를 미친듯이 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디오 가게에 가서 사장님이랑 (김갑수씨) 영화얘기하다가
    <산딸기> 달라고 하니 가게 안에 있던 남자 아이들이 킥킥대서 좀 무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말한 산딸기는 잉마르베르히만의 산딸기 였는데.......

    엘비라 마디간,모짜르트 너무 좋았는데 인생경험이 없는 어린시절에 봐서
    디테일은 잘 생각이 안나네요. 다시 보면 좀 다르게 볼 수 있을것 같네요.

    전 스웨덴하면 도자기 생각이 많이나요.

  • 17. 프리댄서
    '09.9.18 8:33 AM (218.235.xxx.134)

    자크라깡님. 그 비디오가게 사장님이 그러니까 배우 김갑수 씨였다는 말씀인가요? @.@ 아님 시인 김갑수? 어쨌든 <산딸기>는 저도 봤어요. 그러게 <산딸기> 하면 선우일란 나오는 시리즈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죠.^^ 저는 재작년인가 <명화극장>에서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 특집해줄 때 봤답니다. <처녀의 샘>은 그보다 조금 먼저 EBS 통해서 봤구요. 그 전까진 저 감독 영화는 왠지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아서 보지 않았었어요. ㅋㅋ <산딸기>에서는 그 과거를 회상하는 씬에서 치마에 한가득 딴 산딸기가 뭉개져서 사촌여동생이 “어떡해, 산딸기가 다 뭉개져버리고 치마에 물이 들었어...”하고 울먹이던 장면이 참 인상적이더군요. 그렇게 뭉개져서 기억 속에 진한 물을 들여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는 시간들, 관계들. 하지만 역시나 제일 강렬했던 작품은 <처녀의 샘>이었구요. 그 작품에는 참 다층적인 주제가 담겨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언제 한 번 <처녀의 샘>에 대해서도 말해보고 싶네요.... 근데 Ingmar Bergman라는 이름을 잉그마르 베르히만, 잉마르 베르히만, 잉마르 베리만 중에서 어떻게 표기해야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저 세 가지 발음이 다 쓰이더라구요. 누구 아시는 분이 명쾌하게 알려주시면 좋으련만....--;

    그리고 스웨덴 도자기! 오, 찾아보니 Hoganas네요. ㅎㅎ 움라우트 때문에 ‘회가네스’라고 해야 하려나요?(아닌가?^^) 그러고 보니 회가네스인지 호가네스인지 한번 들어본 것 같기는 같은데, 헉 아니구나... 호가든 맥주 때문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거였구나. 커거걱.^^

    그리고 저도 아바 되게 좋아해요. 그치만 땅 속 3천 키로미터 밑에 묻혀있던 중3 때 심정은 마이클잭슨 노래 들을 때 땅을 쩌저적 가르며 솟구쳐 오른다죠?^^ (근데 아바 노래 듣고 있는 중3 소녀를 떠올리니, 참 귀엽네요.^^) 마이클 잭슨 죽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 정말 프레디 머큐리가 죽었다는 소식 들었을 때만큼이나 충격 받았었어요...

  • 18. faye
    '09.9.18 10:07 AM (216.183.xxx.71)

    볼보주의라고 하는데요.
    케인즈주의하고, 사회주의 그런게 적당히 섞여서 만들어진게 이른바 볼보주의입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사람을 잘르는 대신에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고용을 지켜나가는 방식입니다. 기술적으론 컨베이어, 자동화장비 비율을 축소하고, 그 부분의 필요 노동력을 인력으로 대처하는 겁니다. 회사입장에서는 설비투자는 줄고,인권비는 늘고 셈셈은 아니지만, 그런데로 할만한 방식이죠. 덕분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단순반복작업이 복합노동으로 바뀌면서 일이 좀 재미있고, 할만하게 바뀝니다. 자동차의 품질은 콘베이어에 비해 월등히 상승합니다. 덕분에 볼보가 유명 자동차 메이커가 되었죠. => 고가, 고품질 상품 생산,

    미국의 포드주의에 대항해서 유럽에서 나온게 볼보주의,
    그리고 그 볼보주의에 대항해서 나온게 일본의 도요타주의입니다. 생산방식은 포드주의하고 같이, 품질은 볼보주의만큼....=> 저가 고품질 생산 경쟁력 강화...

    결국 일본의 도요타주의에 밀려서 볼보주의는 망하고 말죠. (현대도 비슷) 볼보, 사브 다 망하고, 결국 거대 M&A를 통해서 신자유주의로....

    북유럽의 이민이 대두된것은, 신자유주의로 향하면서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 시작합니다. (우리도 비슷하구요.) 북유럽이 신자유주의로 직행하게 만든데는 일본이 주 역할을 했지만, 우리도 한 몫 했죠. 우리가 칭송하는 북유럽의 복지제도를 박살나게 한데는 우리가 많이 기여했습니다. 우습죠....

    아바의 등장은 유럽의 복지제도가 박살나면서 생긴 침체된 사회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제도는 좋게 말하면 부의 재분배, 사회 안전망의 확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폭동방지'용 입니다.

  • 19. 프리댄서
    '09.9.18 12:27 PM (218.235.xxx.134)

    흐...faye님. 핵심정리 강의를 들은 기분입니다. 당케 쉐입니다.^^
    댓글을 읽다 보니 볼보주의, 도요타주의에 대해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숙련도'라는 용어도 등장하는 것 같던데... 현대차가 벤츠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 숙련도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라나? 근데, 이건 좀 딴말이지만, 전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굴삭기가 거의 볼보제품이라는 것에 놀랐었어요. 저는 그냥 볼보 하면 좀 고급스러운 승용차일 것 같았는데 웬 포크레인? 했었죠.ㅋㅋ 차라리 포드와 포크레인이었다면 그렇군,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성싶은데.^^

    아바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_- 제가 20대 시절에 EBS에서 아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준 적이 있답니다. 그런데 글쎄요, 아바가 데뷔한 것은 1973년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듬해에 열린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Waterloo'라는 노래로 우승을 차지하면서였습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은 항복을 선언했고 나도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됐다는, 즉 당신이라는 워털루를 만나 항복하게 됐다(당신을 사랑하게 됐다)는 가사에 경쾌한 리듬, 발랄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워털루'의 인기는 유럽을 넘어 호주, 아시아에로까지 뻗어가게 되죠. 머지 않아 아바는 미국에서도 그 파워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이 아바에게서 느낀 점은 그저 막연하게 부유한 북유럽의 복지강국으로만 알고 있었던 스웨덴이 저렇게 생기발랄하기도 하구나, 였습니다. 정작 스웨덴 사람들은 아바가 자국어를 배신하고 영어를 노래를 부른다는 점, 그리고 너무 상업적인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스웨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면서 싫어하기도 했다지만 어쨌든 아바의 성공은 대외적으로 '젊고 활기찬, 생기 넘치는 스웨덴'의 이미지를 전파시키는 역할도 수행했죠. <이케아 : 스웨덴 가구왕국의 상상초월 성공 스토리>에서도 보면 이케아의 독일 진출에 큰 공헌을 한 것도 아바라고 합니다. 독일에서 아바가 인기를 끌자 아바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아바처럼 젊고 경쾌한 이미지의 이케아 가구도 큰 저항없이 받아들였다는 거죠. 실제로 아바가 한창 활동했던 1970년대는 스웨덴의 복지제도가 잘 나가던 때입니다. 당시 독일의 한 저명한 정치인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요. 서독의 미래가 '작은 미국'이 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큰 스웨덴'이 되어야 하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일 초도 망설임 없이 '큰 스웨덴'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기세를 올리며 신자유주의가 창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것은 본격적으로 개화를 하게 되죠. 말씀하신 대로 한국에도 90년대부터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구요... 암튼 제 말은 아바의 등장이 꼭 유럽의 복지제도의 박살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거랍니다.^^

    근데 그 점은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70년대에 유럽의 복지제도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기는 했었죠. 더 넓게는 유럽식 볼보주의에 대한 냉소랄까. 너무 비대해진 복지정책, 비효율적인 공기업들, 권력화된 노조, 그로 인한 국가 재정의 위기 등. 특히 IMF에 구제금융까지 신청해야 했던 영국은 유럽식 볼보주의의 폐해를 상징하는 것으로 통했구요. 그래서 그때 한쪽에서는 사회비판적이고 묵시론적인 가사와 사운드를 자랑하는 록그룹들이 큰 인기를 얻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우울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아바의 경쾌함에 도취됐던 것도 같아요. 제 생각에 비틀즈는 그 중간지점쯤에 자리 잡고 있었던 듯 싶고. 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걍 제 생각이지만요^^;)

    하지만 유럽의 복지제도가 '박살'났다는 것에는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네요. 유럽에서도 신자유주의가 득세를 한다고는 하나 그래도 박살까지는..^^; 아직도 여전히 복지 하면 유럽(북유럽+서유럽)이고, 유럽하면 유구한 역사(거기에 담겨있는 학문과 예술적 전통)와 복지 아닌가요?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헉! 며칠 전에는 꿈에 저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더군요.-_-)의 소설에도 보면 그걸 좀 알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영화감독 임상수도 미셸 우엘벡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하여 어떤 인터뷰에서 그랬더군요. 우엘벡의 소설을 읽다 보면 프랑스의 복지제도가 잘 발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암에 걸리고 장애가 발생해도 일단 병원비 걱정하는 얘기가 안 나온다, 왜냐? 다 무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에는 세금 얘기가 종종 나옵니다. 수입이 늘어서 이제는 세금을 50% 내게 생겼네... 그러다 연봉이 더 올라가게 되자, 연봉이 올라서 좋긴 하지만 세금을 60%나 내야 돼...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유럽에서도 세금 문제는 '보이지 않는 뇌관'인 것 같아요. 제가 저 위에서 언급한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가 '소득의 85%를 세금으로 내라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내용의 칼럼을 쓴 것은, 그러므로 스웨덴 체제의 급소를 건드린 거죠. 복지제도의 발달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걸 익히 경험했기 때문에 군소리는 안 하지만 내심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에는 한 번씩 불만이 생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툭, 건드린 겁니다. 그 전까지는 그 장점이 너무 탁월한 탓에 공개적으로 입밖에 낸 사람이 없었을 뿐.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는 분 가운데도 영국에서 지내다 오신 분이 있는데 영국에서 지낼 때 자그마한 수술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무료로 했다는. 유학생의 아내인데도.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장점만큼 단점도 있다, 한번 치료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은 외국으로 날아가서 치료받고 온다고. 그 말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비 걱정 때문에 아파도 아예 병원에 갈 수조차 없는 것과 좀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병원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고로, faye님께서 말씀하신 복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폭동방지용'이라는 정의에, 애들 표현을 빌자면, '캐공감'^^ 합니다. ㅎㅎ 오래 기다린 끝에라도 무료로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열 번 일어날 폭동이 최소한 아홉 번으로 줄어들 수 있겠죠.^^

    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절거려 봤는데요... 근데 참 촌스럽게(제가 원래 촌년이라서...) faye님이 뭐하시는 분일까, 더 궁금해지네요. 저처럼 댄서도 아니신 듯하고..^^;

  • 20. 프리댄서
    '09.9.18 5:46 PM (218.235.xxx.134)

    이제 보니 저 위에 hoganas에서 움라우트 표시가 다 생략됐군요.--;
    h 다음에 있는 o와 맨 마지막 모음 nas의 a 위에 점 두 개가 찍혀 있더라구요.
    구글 검색해보니..

  • 21. faye
    '09.9.18 10:30 PM (216.183.xxx.71)

    전 넷상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좋은 정보를 많이 접한것 뿐입니다. 제 얘기는 거의가 주어들은 얘기입니다.

    "유럽하면 유구한 역사(거기에 담겨있는 학문과 예술적 전통)"

    =>17세기 이전까지 유럽은 미개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제 얘기가 아니고, 영국 켐브리지 교수였던 니이담의 얘기입니다.
    역사가 없으니, 그리스, 로마 족보를 훔쳐다가 자기거라고 우기고 있지요.
    "Last Legion" 이란 영화보면, 로마 케이사르의 후손이 로마멸망때 X칼리버를 가지고 탈출해서 영국에 정착하는데, 그가 아더왕의 할아버지라고 그리고 있습니다.

    날조 치고는 좀 약하긴 하죠... ㅎ

  • 22. 프리댄서
    '09.9.19 8:28 AM (218.235.xxx.134)

    음.. 미개 그 자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그런 식으로 따지면 근대 이전에 미개하지 않은 나라, 대륙, 문명은 없었다고 해야 할 거예요. 물론 근대 이전에 유럽에서는 국가라는 기반이 아주 허약했었습니다. 국가라기보다는 특정 가문(왕조)들이 자잘하게 바톤터치를 하며 명멸을 거듭했다고 해야 하겠죠. 그러다 영국과의 백년전쟁을 거치면서 프랑스와 영국에 서서히 중앙집권적인 ‘국가’라 할 만 것이 들어섰고 카스티야, 아라곤 등등으로 나뉘어있던 스페인도 스페인이라는 단일대로 정비가 됩니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개념과 같은 국가의 탄생이라 할 수 있겠고, 중국이나 조선과 비교하면 그 부분은 참 그렇죠. 오늘날 선진국인 네덜란드 사람들은 나폴레옹한테 점령당하기 전까지 이름만 있고 성(姓)이 없었다고 하니 그것도 좀 그렇고요.

    근대로 들어왔다고 확 달라질 수 있나요? 산업혁명 시기에도 농촌에서 올라온 도시 빈민들은 집안에서 돼지와 함께 먹고 자고 했다는데... 그런 식으로 미개한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영향은 아직까지도 뿌리 깊게 남아서 아직도 영국의 스코틀랜드 시골 사람들은 무교양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경상도 남자들은 무뚝뚝하고 성질이 급해’ 라는 식으로 그들이 가진 어떤 성향을 가리키는 것이겠죠) 그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정착한 곳이 주로 텍사스를 위주로 한 남부라고 하더군요. 오늘날 ‘redneck'이라 불리는, 남부의 무식하고 꼴마초에 정치적으로는 공화당의 골수 지지자인 육체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의 후손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납니다. (흰 피부를 가진 그들이 햇볕 아래서 일을 하다 보면 목이 벌겋게 타게 되죠. 거기서 레드넥이라는 용어가 유래했다는...) 즉, 조상들이 지녔던 무례하고 지저분하고 꼴통적인, 다시 말해 미개한 습성을 물려받았다는 얘깁니다. 학력수준이 높지 않다 보니 그것에서 벗어날 기회도 적구요. (저건 미국의 보수 경제학자가 한 말인데, 저는 저런 식의 논지 전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런 시각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 언급해봤어요)

    얘기가 좀 장황해지긴 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암튼 그렇다고 해서 근대 이전의 유럽이 미개했다고 싸잡아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니이담 교수의 본뜻은 유럽의 오만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혼자 뛰어난 척, 잘난 척하면서 타 문명을 싸잡아 미개하다고 했던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자문화중심주의를 씹어주려고 했던 거죠. 우리가 미개하다고 하는 곳도 알고 보면 얼마나 뛰어난 줄 아느냐, 대표적으로 중국에 대해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알아봐라... 이런 식으로요.

    유럽을 필두로 한 서구문명에의 맹목적인 경도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걔네도 알고 보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라는 식의 평가도 바랍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17세기 이전의 유럽에선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것만 해도 르네상스 운동이 펼쳐졌었고, 대항해시대가 전개됐었고(그것이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든 어쨌든 간에요), 이런저런 학문과 사상적 논의들이 치열하게 이루졌었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한국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정치적, 사상적 혼합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공자왈 맹자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그들에게 그리스, 로마는 문명의 원류임에 분명합니다. 당연히 그걸 중요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우리도 조선시대 때 문헌을 보면 지침으로 인용되는 것들은 온통 중국 고사, 신화, 전설, 그곳 성현들의 말씀인 걸요, 뭐.^^

    조선이 중국을 따라하는 걸 문명화이자 개화라고 했듯이 그들이 그리스와 로마제국에 요만큼이라도 가까워진 걸 문명화, 개화라고 한 거죠. 또한 그러면서 우리가 중국이라는 커다란 후광 안에서 ‘우리만의 것’이라 일컬을 수 있는 신화, 전설, 말씀들을 따로 또 개척해왔듯이 그들도 그 커다란 후광 안에서 개개 민족이나 부족들의 신화, 전설, 말씀들을 개척해왔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로마가 기독교라는 유일신 종교를 받아들이면서 뭐랄까, 그 영향력을 더 절대적으로 행사하게 됐죠. 기독교가 없었다면 저는 유럽이 저렇게까지 일체화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연합의 탄생도 글쎄... 어땠을지 모르죠.^^

    함석헌 선생이 어떤 책에선가 그러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복과 잠옷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침실과 주방의 구분도 없다. (밥도 그냥 방에 앉아서 밥상 받아서 먹으니까..) 화장실도 마당 한 구석에 고랑 판 게 다다. 목간실이 따로 필요하다는 개념도 없다. 그에 비해 서양은 일복과 잠옷이 구분되어 있고, 침실과 주방의 구분이 있으며 ‘화장실 및 욕실’이라는 공간을 별도로 개발할 줄 알았다. 그건 마땅히 우리보다 앞선 거고, 우리보다 문명화되어 있다고 할 만한 것이다....

    저는 저 말이 사대주의의 발로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유럽의 역사는 오래됐죠. 어쨌든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출발하니까요.^^ (이집트가 아랍의 지배를 받고 그 이후 몰락하면서 ‘야만의 땅’으로 통하게 된 바람에 이집트 문명을 제외하긴 하나 때에 따라선 그것까지 포함시키죠...) 그런 뜻에서 말씀드린 거였고, 쓰다 보니 에고 또 쓸데없이 장황해졌네요...^^;;;

  • 23. faye
    '09.9.20 8:16 PM (216.183.xxx.71)

    몇가지 반론할게 있는데.... 담에 기회있으면 하도록 하죠.... ^^
    댄서님.. 님은 지금 유럽의 비명이 들리지 않으세요?
    전 들리는데....ㅎ

  • 24. 하늘을 날자
    '09.9.21 10:19 AM (121.65.xxx.253)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리댄서님 글이야 언제나 흥미롭게 읽고 있지만, 특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스웨덴이라... '사회적 대타협'이라...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꽤 되었습니다. 이미 김영삼 정부 후반에 노사정 위원회의 전신이 만들어졌었고,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실제로 노사정 위원회가 가동되기 시작했었지요. 그런데, 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늘 결국 민주노총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으로 논의가 마무리되고 말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민주노총을 비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통분담'을 말하면서 결국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시키는 정부 및 사용자측의 입장에 분통을 터져 민주노총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이리라고 '선해'(善解)하고 있습니다. 제가 답답해하는 부분은 왜 항상 이렇게 마무리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찌기 1953년에(!) 이태영 변호사님께서 가족법 개정운동에 나서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생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어찌하여 공생활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사생활에서 평등권을 향유하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공법상 평등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어늘 신분법에서 평등권을 향유하지 못하는 한 헌법상의 남녀평등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1953년의 이 말씀은 (한인섭 선생님의 말씀처럼) 지금 봐도, 언제 봐도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에서처럼 언제나 '모든 일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우리 주변을 돌아봅니다.

    제가 요즘 제일 관심있게 공부하는 분야는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분야는) 노동쟁의 조정제도입니다. 개별 사업장에서 노동쟁의 조정제도가 활용되고 있는 현 실태가 어떠한가. 현재 노동쟁의 조정제도의 활용률은 점차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노동쟁의가 발생했을 때 대략 절반 정도는 노동쟁의 조정제도를 통해서 해결이 되는 듯 합니다. 파업이라는 '파국'에까지는 이르지 않고요. 하지만, 실제로 노동쟁의 조정제도가 '정착'되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리 긍정적인 답변은 하기 힘듭니다. 조정위원들 특히, 공익위원들(노사 양쪽의 추천을 받아서 임명됩니다.)이 노사 양쪽 모두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조정제도를 통해서 단체협약까지 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답체협약이 실질적으로 그 사업장의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 기능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노동자 쪽에 불리하게 단체협약이 체결된 경우, 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집행부 불신임 의결을 거쳐 답체협약 자체를 무효로 돌리려는 시도도 가끔(혹은 종종?) 행해지며, 반대로 사용자 쪽에 불리하게 단체협약이 체결된 경우(가령, 정리해고를 하려면 반드시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조항이 단체협약에 들어가 있는 경우), 사용자 쪽에서 막상 '경영혁신안'을 내놓으면서 노조에 일정한 규모의 해고를 단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도 종종(혹은 가끔?) 있습니다. (게다가 사용자 쪽의 이런 '통보'는 법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다뤄지기까지 합니다. 현재 대법원 판례는 위와 같은 해고'동의'조항의 효력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개별 사업장에서조차 '타협'이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그러니 '사회적 대타협'은 아직 멀고도 먼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가끔 보이는 '파행'들(도대체 대의원대회에서 폭력사태를 일으키면 어쩌자는 것입니까.)까지 떠올리면 참으로 착잡해집니다.

    저는 일단 가장 구체적이고 작은 곳에서부터 '타협'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걸음은 역시 노동쟁의 조정제도를 잘 활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사가, 그리고 (정부에 비교할 수 있는) 공익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파국을 막을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별 사업장에서부터요. 그리고나서 이를 점차 확대시켜 나갈 때 '사회적 대타협'이란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입법 또는 법개정운동에서도 이런 '타협적'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태영 변호사님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저는 이태영 변호사님의 가족법 개정운동이 정말 여러가지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그 운동방식입니다. 내용상으로는 대단히 급진적인데요. 1960년대 초반 우리 민법이 제정되기 전 상황을 돌아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해방 직후 여성의 처지라는 게 참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후진적이었으니까요. 당시 여성들은 법적으로 한 명의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었고, 어쩌다 생긴 재산이라도 아버지 또는 남편의 동의 없이는 '처분'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1953년에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위와 같은 법개정운동은 그야말로 급진적인 내용의 것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 운동방식이 참 특이합니다. 입법청원, 또는 법개정청원 운동 등 여러 방식을 동원해서 운동을 했었는데요. 중요한 것은 그 운동방식이 참으로 '온건한'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내용적으로는 매우 급진적인데도요. 뭐, 그 때문에 40년이나 걸렸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태영 변호사님의 위와 같은 운동방식은 오늘날의 활동가들에게도 참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야 할 점도 무척 많다고 생각하고요. 이태영 변호사님의 삶이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일부 여성운동가들을 제외하면) 그 분에게서 배우려는 시도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외국 사례는 물론 중요합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세계적 경향 또한 물론 중요합니다. 당연히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시급한 것은 먼저 우리 주변을 잘 둘러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랑방탕 허접하기 짝이 없는 제가 혹시라도 양창수 교수님께 배운 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현재 있는 법'에 대한 충분한 음미.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며,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프리댄서님의 글에 반론을 제기하려고 쓴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꿈 같은 세상'에 살 수 없는 것이냐. 어떻게 하면, 도대체 그 '사회적 대타협'이란 것이 가능하냐. 하는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던 차에 스웨덴에 관한 글을 보니 불쑥 그냥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뜬금없는 댓글인가 싶기도 하고, 쓸데없이 노동법 이야기는 왜...하는 생각이 들어서 올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올려봅니다.

    근데, <이케아...> 책은 참 읽어보고 싶어 지네요.^^ <엘비라 마디간>도요.^^
    댄서님 늘 건강하세요.~~~

  • 25. 하늘을 날자
    '09.9.21 10:55 AM (121.65.xxx.253)

    혹시 이태영 변호사님의 삶에 관해서 언급하신 한인섭 선생님의 글이 궁금하실까 생각해서 링크를 걸어봅니다. (음냐. 별로 안궁금하실 것 같기도 하지만요.;;;)

    으... 위 댓글도 뜬금없는 것 같기도 한데, 링크는 더욱 뜬금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근데, 글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워서요. 여러 번 읽어도 참 좋더라고요. 하긴 저야 워낙 한인섭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요.;;;

    http://jus.snu.ac.kr/~ishan/bbs/zboard.php?id=board3&page=1&sn1=&divpage=1&sn...

  • 26. 프리댄서
    '09.9.21 12:17 PM (218.235.xxx.134)

    노동법이라니, 진짜 뜬금없는 내용이네요.............. 라고 할까요?^^
    저야 잘 모르는 걸 이런 기회를 통해 조금이라도 알게 돼서 좋죠.
    제가 지금은 무지하게 급한 일이 있어서, 제대로 된 답글은 나중에 달게요.
    근데 지금 비가 오네요. 아주 차분한 가을비가. 아침엔 빗줄기가 제법 세차더니...
    그 때문에 저도 뜬금없는 댓글 하나 남기려구요.^^

    지금 듣고 있는 음악. ㅎㅎㅎㅎ
    J.J. Cale이라는 기타리스트의 연주곡이고 제목은 <Cloudy Day>입니다.
    음악적 기본은 블루스, 성향은 내추럴. 무심한 듯 연주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죠.
    에릭 클립튼을 위시한 유명 아티스트들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 '나대지'는 않고 무림의 고수들처럼 언더그라운드 무대에 은둔했던 아저씨.
    http://blog.naver.com/yamaedancer/90069332614
    (다음 뮤직샵보다 네이버 뮤직샵에 음악이 훨씬 더 많아서-_- 여기저기 유령의 집을...)

  • 27. 프리댄서
    '09.9.22 8:16 AM (218.235.xxx.134)

    음.. faye님.
    한 번 더 답글 씁니다.^^ 저는 그냥 그런 생각입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그 이면까지 볼 줄 아는 것은 중요하죠. 그런데 그게 그 현상까지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faye님 말씀을 듣다 보면 가끔 ‘극단적 부정’이라는 말이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저는 일본의 정치체제가 후지다고 해서 일본 사람들 수준이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게 단칼로 잘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것처럼 기독교에 대해서도, 저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인간의 정신을 긴장시키는 담론을 형성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기독교가 야바위로 탄생했느냐 성서가 구라냐 아니냐 하는 문제하고 또 다른 거죠. ‘어쨌든’ 하나의 튼튼한 체계를 구축한 뒤로 기독교는 정신의 근육들을 팽팽히 긴장시키면서 나름대로의 관능을 발산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면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바로 그런 것처럼, 유럽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지가 ‘박살’났다고는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평가하는 것과 현상을 올바로 파악하는 건 다르지 않을까. 뭐 그런 뜻에서 장황한 말씀들을 드렸던 거랍니다.^^

    음... 그리고 하늘을 날자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스웨덴 영화라서 관련 내용을 한번 써본 것인데요(개인적으로 아바와 이케아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스웨덴 하면 저절로 저 두 기호가 저절로 연상되곤 하죠), 하늘을 날자님 글을 보고 한국에서의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글쎄요,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결국 이 댓글도 어쭙잖은 내용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간 한국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하려는 노력들은 꾸준하게 이어져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YS정권 때 노사정위원회가 태동하면서 최초로 이 나라에서 그 시도의 깃발이 올랐구요(제가 대학생 때였는데 저때 ‘노사정’이라는 축어를 신기했던 기억이 있네요. 저 세 주체가 하나로 묶일 수도 있구나 하는 경이로움 같은 것... 고통분담이라는 용어도 저때 등장했었구요. 암튼 저때까지만 해도 이인제가 나름 괜찮았었는데..--;)

    그리고 DJ때로 오면서 실제로 첫 ‘타협’이라는 게 성사되죠. 저 타협안의 핵심이 노동계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받아들이는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아닌가?^^), 제 생각으로는 노동계(혹은 민주노총 지도부)에서 DJ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해서 많이 양보한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요.--;

    참여정부 때로 오면 또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대타협이 많이 거론됐던 것 같아요. 우선 대통령이 그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었죠. 그리고 노통이 생각했던 대타협은, 본인이 구시대의 막내가 아니라 새시대의 맏형 역할을 하고 싶다는 염원을 품고 있었던 사람답게 좀더 구체적이었던 듯싶구요. 그때 네덜란드식 모델이니, 아일랜드식 모델이니, 스웨덴식 모델이니 하는 말들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왔었죠, 아마? 그 중에서,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서를 읽어보지 않아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노통이 생각하고 있었던 모델은 아일랜드 쪽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당연히 그에 대한 조중동의 맹폭격이 있었죠. 제가 어쩌다 인터넷을 통해 읽은 기사, 칼럼들에서도 그에 대한 날선 비난이 제법 됐었어요. 요약을 하자면 뭘 잘 모르는 386들이 이상주의에만 도취되어 한국을 이미 실패로 귀결된 스웨덴식 복지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다, 였던 것 같아요. (아, 그 쓰레기 같았던 동아일보의 김순덕 칼럼이 또 생각나네요--;) 노통 재임 중에 스웨덴 사민당 정권이 선거에서 중도우파연합에지는 일도 있었고 해서 그런 목소리가 더 높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중도우파연합이 선거에서 이긴 뒤 부유세 폐지를 선언하며 ‘스웨덴도 이제 보통국가로 갈 것이다’고 했던 말이 참 재밌었죠...^^)

    근데 참여정부 당시 정권 측에서 대타협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됐던 것이 DJ 때 노동계 쪽에서 합의를 해주고는 많이 당했던 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역시 뭘 잘 모르는 제 생각에서는요.

    하지만 정권에서 대타협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방향이 어느 쪽인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B정권도 대타협에 대해 많이 말을 하고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죠. 신임 노동연구원장인가요? 헌법에서 노동3권을 빼는 게 신념이라는 말에 저는 정말이지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늘을 날자님께서 말씀하신 개별 사업장에서의 노동쟁의 조정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에도 정권의 의지,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방적인 비즈니스프렌들리를 주창하는 정권 하에서는 사용자측이 테이블에 나오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들고 나올 경향성이 짙어진다는 거죠. 쌍용차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합의를 했다 해도 소용없어지게도 되고, 삼성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재벌들이 여전히 참 거시기하니까요.

    즉 작은 단위, 구체적인 현장에서부터 ‘타협’을 해나가야 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해요. 결국 하늘을 날자님께서는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런 식으로 사회적 대타협이 성사될 수 있는 여건을 차곡차곡 형성해가는 것이요. 근데 그 환경의 조성에서 정말이지 정권의 의지를 좀 균형잡힌 것으로 강제하는 것도 참 필요한 듯싶다는 거죠. (어느 쪽이 더 우선인가, 하는 점에 대해선 뭐라고 답할 수 없지만요.) 일례로,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보수 쪽에서도 많이들 우리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아일랜드가 지금은 어렵다고 하지만 어쨌든요..) 개방을 통한 적극적인 외국기업 유치, 그러면서도 IT 위주의 전략적 선별, EU에의 적극적인 가입시도 등 그들이 아일랜드에서 주목하는 점은 ‘개방’ 쪽에 있죠.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거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과 일찌감치 화해를 했던 점도 많이 거론하구요. 그런데 아이랜드에서 ‘사회연대협약’이 체결될 당시 노동계 대표를 맡았던 사람이 공무원노조 출신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우리하고는 참 많이, 정말 많이 다릅니다.

    하여 솔직한 심정으로는 잘은 모르겠으나, MB식 마인드 아래서는 잘 나가던 노동쟁의 조정제도조차 좌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근데 노동부장관으로 임태희가 내정됐죠. 그 사람이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하던 시절에 장하준 교수 불러다가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강연회도 열심히 열었던 사람이죠. 국방부에서 <나쁜 사마리안인>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을 때 임태희 애독서가 그 책이라고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었고. 따라서 위장전입 등의 문제와는 별개로, 현 이영희보다는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드네요. 한편으로는 좌파들 내에도 사회적 대타협을 마치 카고 컬트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구요....

    그래도 거기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 해도 이태영식 투쟁의 힘을 믿으면서 더딘 걸음이나마 내딛으려고 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빈말이 아닌, 경의의 뜻을 하늘을 날자님께 보냅니다. (흘리지 말고 잘 받으시길...^^)

    그리고 제가 몇 년 전에 이집트 상형문자를 공부해보려고 했던 적이 있답니다. 시작은 참말이지 창대했는데, 워밍업으로 상형문자를 포함한 이집트 역사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고 나서 본격적인 상형문자 세계로 진입할 즈음에는 좀 쉬었다 하자, 고 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면서... 나중은 미미하게 됐죠.--; 뭐 지금은 알았던 것도 마이 잊어버렸구요.

    근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은 것 중에 그런 게 있어요. 크리스티앙 자크(소설 <람세스>의 저자)가 쓴 <이집트 상형문자 이야기>에 나왔던 것 같은데, 고대 이집트인들의 무덤을 보면 이런 문장이 많이 새겨져 있답니다. “우리 마을에선 누구든 단 하룻밤도 굶게 할 수 없다.” 정말 많은 무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문장이라는군요. ‘너그러운 사람’을 가리킬 때는 ‘손 큰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구요.

    한인섭 교수의 홈페이지 가니 아일랜드의 대기근과 북한의 기아 문제를 연계해서 쓰신 글이 있더군요. 그걸 보다 보니 저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근데 저 분은 글을 어디 발표했던 걸 거기다 올리신 건가요? 그렇다면 해당 신문사, 잡지 등의 교열자들이 맞춤법을 바로 잡아준 것일 테고... 아니라면 정말 감탄입니다. '지, 데'와 같은 의존명사들을 띄어쓴 것 보고 어머~ 하면서 놀랐어요.^^)

  • 28. 하늘을 날자
    '09.9.22 9:28 AM (121.65.xxx.253)

    항상 정성스럽게 댓글을 다시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제 댓글은 댄서님 원글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라서... 말씀하신대로 정부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개별 사업장에서 '타협'의 성과를 만들어내도 그런 성과들이 순식간에 '거의' 무용한 것이 되어버릴 수가 있으니까요.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요.

    이영희 노동부장관에 관해서 잠깐 이야기가 나와서 추가로 조금 언급하고자 합니다. 그 분은 원래 노동법학자셨는데요. 저도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만, <공익과 인권> 시리즈 <단체행동권>이라는 책을 보면, 이흥재 교수님(제가 무척 존경하는 분입니다. 아주 멋진 분이시죠. ㅋ 가을에는 항상 화려한 머플러를 와이셔츠 안에 하고 다니시는.)께서 <단체행동권의 법적구조>라는 논문을 쓰셨는데요. 거기서 이영희 장관의 노동법 교과서가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쟁의행위의 정당성'이란 커다란 주제 아래 논의되는 여러가지 작은 주제들 중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정치파업이 가능한지 여부입니다. 가령, 비정규직법의 개정을 위해서 파업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파업은 단체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본질상 파업은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파악하게 되면, 정치파업은 허용될 수 없고, '불법파업'이란 딱지를 받을 수 밨에 없습니다. "나(사용자)에게는 입법에 관해서 아무런 권한이 없는데, 법개정을 위해서 파업을 하면 도대체 내가 어쩌란 말이냐. 임금을 올려달란 것도 아니고, 휴가 일수를 늘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입법을 해달라니..." 뭐, 이런 식의 주장이 성립합니다. 이런 식으로 단체교섭권을 중심으로 한 '종속적'인 권리로 단체행동권을 파악하는 입장을 단체교섭권 중심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바로 단체행동권 중심설인데요. 노동3권이란 것이 결국 노사의 실질적인 힘의 대등을 꾀하고자 마련된 것이고, 노조의 힘을 증대시켜주는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한 장치는 단체행동권인 이상 노동3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는 바로 단체행동권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단체행동권의 '독자성'을 긍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위에서 본 정치파업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노사의 힘의 대등을 위해서, 입법이야말로 그런 '힘의 대등'을 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니만큼 정치파업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해지죠.

    현재 대법원 판례는 단체교섭권 중심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법원의 일부 반대의견 및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단체행동권 중심설을 따르고 있는 점입니다. 게다가 지금 대법원장이신 이용훈 대법원장께서는 대법관 시절인 1995년에 단체행동권 중심설에 기반한 의견을 반대의견으로 개진하신 바 있어서 더욱 주목됩니다.

    음냐... 너스레가 너무 길었는데요.;;; 이영희 장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에공...;;;

    아무튼 이영희 장관은 그의 노동법 교과서에서 노동3권의 구조에 관해서 단체행동권 중심설을 취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게다가 정치파업에 관한 그의 서술을 보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정치적 단체행동에 대한 사용자의 수인의무는 ... 근로자의 단체행동에 정당성이 있다면, 더구나 근로자의 기본적 인권의 행사로 본다면, 사용자는 이를 마땅히 경영 위험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정치파업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십니다.

    나아가 연대파업에 관해서도 "단결은 본질적으로 근로자들의 연대적 행동도 포함해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가 입는 손실은 사용자로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사회적, 연대적 피해라고 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밝히십니다. (연대파업의 경우에도 정치파업의 경우와 비슷한 문제가 생깁니다. 단체교섭권 중심설을 따르게 되면, 연대파업의 경우, "아니 내 사업장도 아니고 이웃 사업장의 임금인상을 위해서 우리 근로자들이 파업을 한단 말이냐? 내(사용자)가 이웃 사업장의 임금을 올려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차라리 자기들 임금 올려달라고 하면 모를까...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는 식의 주장이 가능해집니다. 이웃 사업장에 관해서는 사용자에게 처분권한이 없으니까요.)

    노동법학계의 다수설과는 꽤나 다른, 어찌 보면 굉장히 과격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장관이 되시면서 평소의 소신을 다 접으신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장들만 자꾸 하시더군요. '100만 해고대란'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그 단적인 예이지요. 정말 저는 깜짝 놀랐었습니다. 저 분이 제가 알던 그 분이 맞는지... 정말 동명이인인지 다시 살펴보기까지 했어요.

    그래서 신임 임태희 장관이 과연 이영희 장관보다 더 나을지에 관해서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장관'이란 자리가 그토록 사람을 바꿔놓는 자리인지...하는 생각도 사실 많이 들구요. 하지만, 제발 신임 임태희 장관은 좀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으면...하는 간절한 바램은 있습니다. 에휴... 맨날 좌절만 하게 되네요... ㅠ.ㅠ

    저는 아직 한인섭 선생님 홈페이지의 모든 글들을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심심할 때 그냥 하나씩 읽어보는 터라서... 그래서 북한 기아 문제에 관한 글도 제목은 봤는데... 내용은 몰라요.;;; 근데, 참 멋진 문장이네요. "우리 마을에선 누구든 단 하룻밤도 굶게 할 수 없다."라니... 게다가 그 문장이 흔히 만날 수 있는 문장이라니...

    아... 글고 맞춤법에 관해서는 법률가들이 사실 굉장한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판결문 같은 경우 특히 맞춤법이 강조되기 때문에 법원도서관에서 따로 두꺼운 맞춤법 책도 펴낸 적이 있을 정도지요. 사법연수원에서도 교수님들께서 맞춤법을 엄청 강조하시고요. 물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법이 아마 맞춤법일 것이다."라는 말씀도 덧붙히시면서요. ㅋ 아마 한인섭 선생님께서도 맞춤법에 관해서 굉장한 집착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알진 못하기 때문에 여쭤보진 못했지만요. ㅋ

    와... 근데, 이집트 상형문자까지 공부하려고 시도하시다니... 정말 깜놀(!!!)입니다. 헉!!! 완전 파인만이신데요. 역시 댄서님은 '인생의 달인'의 경지에 서서히 오르시고 계신 듯. @..@

    늘 댄서님의 글을 보면, 너무나 즐겁답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꾸벅

  • 29. 하늘을 날자
    '09.9.22 9:37 AM (121.65.xxx.253)

    아, 글고 아일랜드에 관해서는 처음 들어봤네요. 음냐. 아일랜드에 관해서도 공부를 해보고 싶어지네요. @..@ 음냐. '난학'도 공부해야 하고, 시나리오도 써야되는데... 역시 시간이... ㅠ.ㅠ 아무튼 참여정부 시절의 '대타협' 추진 시도에 관해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의 자살 이후, 참여정부에 관해서는 전혀 기대를 하질 않게 되서, 참여정부에서 구체적으로 뭘 하려고 했었는지에 관해서 전혀 알아보지도 않고 있었어요. 참 바보였지요. 에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알아봤어야 하는데... (뭐, 바보같은 행동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요. 헐;;;)

    다시 생각해보니 참여정부 시절 '노사관계 로드맵'이니 하는 게 한참 어지럽게 발표되곤 했었던 것 같군요. 다시 열심히 공부해야지...하는 결심을 새삼 해봅니다. 댄서님, 감사합니다.

    아... 근데, 벌써 정말 가을이네요. 이럴 수가...

  • 30. faye
    '09.9.22 10:18 AM (216.183.xxx.87)

    '극단적 부정' 음 충격적인 말이네요...ㅎ

    유럽의 복지가 박살났다는 데서 출발했군요...

    현상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유럽의 복지가 박살났다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 정확히 말하면
    "예전엔 좋았는데, 이미 많이 박살 났고, 앞으로 더 박살날것이고, 붕괴가 임박했다..."

    그게 지금 우리나라랑 비교해서 어떠냐... 그런 부분은 전혀 의미가 없구요. (우린 더 개판이니까..)
    유럽의 복지제도나 경제사를 보다보면, 현재의 문제가 보이고, 그 원인이 보이고, 결국 그렇게 될거라고 밖에 예측을 못하겠습니다.
    제가 딴지를 거는 것은 이미 붕괴가 저 앞에 뻔히 보이는 그 모델을 그냥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야할, 배워야할 길로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

    그런 유럽 사대가 우리보다 더 심한 일본에 대해 비아냥을 한것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위기랍니다.)

    ...............

    저도 오늘 들은 뜬금 없는 댓글 하나 남깁니다.

    드라마 '이순신'은 친일적 사상을 심어주는 내용이다...

  • 31. faye
    '09.9.22 12:00 PM (216.183.xxx.87)

    시간이 좀 있어서 좀 더 씁니다.
    극단적 부정이라고 들으니 좀 그런거 같기도 하네요.
    제가 아직 사춘기라 철없이 반항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구요...

    1)일본의 정치체제가 후지므로 일본사람들의 수준이 낮다...
    2)일본의 정치체제가 후지더라도 일본사람들의 수준이 낮은것은 아니다...

    위 두가지 명제에 사실 인류사의 많은 부분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항상 예외는 있다 라는 엉터리 명제를 들고 나오면 할 말은 없지요...

    시스템과 개인의 문제를 놓고 볼때, 대체로 승자는 시스템이 차지하였습니다.

    근대의 문제도 결국은 그런 시스템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구요.

    수준이 낮다, 아니다의 기준도 가지가지이니까, 제 기준만을 말하면, 거창하게 인류어쩌고 하긴 뭐한데, (많은)사람들이 (다같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시스템에 가까와 지는가 아닌가로만 판단합니다.

    2)번의 논리는 시스템보다 개인의 문제에 더 치중하는 것인데요.
    문제는 악용의 소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마치 신자유주의 시대에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돌리는 식으로요.
    (거기에 수많은 심리학, 사회학 등이 동원되죠. 자본의 앞잡이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1)번의 논리대로 가면, 답이 뻔하게 전개됩니다.
    일본정치는 후지다 -> 일본인 수준이 낮다 ->수준이 낮은 이유는? -> 일본정치가 후져서
    -> 일본이 잘되려면? -> 일본정치를 후지지 않게 바꾸면 된다.

    2)번의 논리를 전개하면
    일본 정치는 후지다 -> 그렇다고 일본인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 일본정치하고 일본인 수준하고는 상관 없다 -> 정치에 상관없이 개인이 잘하면 수준이 낮아지지는 않는다
    이런식으로 가든지... 아니면 사회제도내에서의 개인성이 어떻고 하면서 비비 꼬다가...
    결국은 너만 잘하면 돼... 아니면.... 너만 욕심을 포기하면 행복해져.....로 귀착..


    간단히 정치를 언급했는데...
    그냥 시스템이라고 하면 쉬울거 같습니다.
    어떤 시스템이 나은가 하는 문제는
    평등하고 공평하게 기회가 보장된 시스템 정도로 말하면 될거 같구요.
    그러기 위해선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확립되어야 하고,
    봉건적 잔제가 없어져야 겠죠.

    참고로 참여정부 시절은 그나마 있었던 조금 평등한 시스템을 무참히 박살내는 시절이었습니다.

  • 32. 프리댄서
    '09.9.22 12:05 PM (218.235.xxx.134)

    헉. 이영희 장관이 그랬던 사람인가요? @.@ 정말 웬일이야, 제가 보기엔 군사 정권 이후 저렇게 반노동적인 노동부장관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 거기다 그 복지부동적인 처세하며.-_-

    암튼 그건 그렇고요, 고대 이집트나 이집트 상형문자는 재밌어요. 알면 알수록. 한 가지 아쉬운 건 상형문자에 대한 책 번역이 미미한 실정인데 그나마 번역된 것들도 번역이 좀 그렇다는 것. 용어들도 통일이 안 됐구요.. 흠, 그래서 첨에는 내가 이담에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것과 그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다룬 책을 정말 재밌게 써보리라, 생각도 했었는데 변덕이 팥죽이라.... -_-

    그래도 이왕 말을 꺼낸 김에 조금만 해보자면요, 이집트 상형문자를 최초로 해독한 사람이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라는 프랑스 사람이에요. 그 사람에게는 띠동갑의 형이 있었습니다. 형 이름은 자크 조제프 샹폴리옹. 형도 언어학자이자 고고학자였어요. 근데 이 형이 동생이 하는 꼴을 보니 ‘언어천재’인 거예요! 장 프랑수아는 10대 시절에 이미 그리스어, 라틴어를 비롯하여 히브리어, 고대 페르시아어, 고대 시리아어, 아람어, 고대 중국어 등을 거의 마스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더랬습니다. 콥트어도 익혔죠.

    콥트어는 고대 이집트어의 하나로, 고대 이집트 제일 마지막 시기에 쓰였던 언어입니다. 고대 이집트 마지막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에 그리스어가 지배층 언어가 되면서(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 부하가 열어젖힌 왕조임. 즉 마케도니아 출신들이 왕권을 잡았던 시기로, 그리스는 자기들 북쪽에 자리 잡은 마케도니아를 야만인 취급을 했으나 마케도니아는 자신들을 범헬라계로 ‘자처’하면서 문명인 그리스 후손이라고 주장함. 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을 그리스계 왕들이 다스린 시절로 규정하기도 함. 그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어가 지배층 언어로 쓰인 것임.), 이집트 상형문자가 그리스 문자의 영향을 받게 되요. 알다시피 그리스문자는 알파벳이죠. 소리글자. 이집트 상형문자는 100% 뜻글자일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뜻글자와 소리글자가 혼합된 양식이고, 소리글자의 비율이 훨씬 높은 문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스문자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기 쉬운 ‘소리글자’로 전면 재편되게 됩니다. 콥트어 시절에 쓰였던 이집트 상형문자는, 따라서 오리지널 상형문자와는 달리 전면 소리글자인 것이죠. 아직도 이집트 콥트교회에서는 예배의식을 콥트어로 진행한다고 해요. 당근 콥트문자로 기록된 문서들도 있구요.

    암튼 장 프랑스아는 그런 콥트어에도 능통해서 이십대 초반 시절에는 콥트어로 일기까지 쓸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참 후에 어떤 학자가 그 일기를 발견하고는 콥트어 시대의 문헌을 발견했다며 야단을 떤 일도 있었다고 하구요.

    장 프랑수아의 형, 자크 조제프는 자신의 막내 동생이 이다음에 분명 그 이름을 높이 빛낼 거라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유명인이 되면 보통 패밀리네임으로 불리게 되잖아요? 그럴 때 자기도 어쨌든 언어학자이므로 자기와 동생이 혼동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의 이름은 ‘자크 조제프 샹폴리옹-피작’으로 바꿔버립니다. 성 뒤에 고향 이름 피작(Figeac)을 덧붙인 거죠. 그러다 혼동의 소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성에서 샹폴리옹을 아예 떼어버립니다. 자크 조제프 피작으로.^^

    형의 예상은 들어맞아서 32살이던 1822년에 역사적인 로제타스톤을 해석해, 그때까지 침묵 속에 갇혀있던 이집트 상형문자를 일깨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때도 맨 처음으로 학사원 학자로 일하는 형한테 달려가서 “내가 해냈어! 형 내가 해냈다구!”를 외친 뒤 졸도해버렸다네요.--; 암튼 그 일로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즉 샹폴리옹이라는 이름은 불멸성을 얻게 되었죠. 만일 형이 이름을 양보 안 했다면 오늘날 그저 ‘샹폴리옹’이라고만 부르는 그의 이름을 번번이 풀 네임으로 불러야 했을지도...^^

    샹폴리옹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집트 상형문자는 뜻글자라는 관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에요. 소리글자로 쓰인 글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가 콥트어에 능통했기 때문이었죠. 콥트어에는 당연히 오리지널 상형문자의 흔적도 많이 스며들어서, 콥트어를 읽고 쓰고 뜻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오리지널 상형문자 해독에도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샹폴리옹이 처음 해독했던 파라오 이름 중의 하나라 람세스였는데 저거 읽을 때도 콥트문자 도움을 받았죠.

    근데 샹폴리옹에 앞서 이집트 상형문자에 소리글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외과의사였던 토마스 영이 그 주인공이었어요.
    로제타석 탁본이 유럽의 학자들에게 배포된 뒤 많은 학자들이 그걸 해독하기 위해 매달렸는데 토마스 영도 그 중 한 사람이었죠. 그 사람은 언어 쪽으로도 재능이 있어서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할 줄 아는 언어가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야심차게 로제타스톤 해독에 몰두하다 순전히 ‘직관’만으로 이집트 상형문자와 그리스알파벳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버렸습니다. (로제타석에는 같은 내용이 세 가지 문자로 씌어 있는데, 맨 위는 흔히 ‘성각문자’ 혹은 ‘신성문자’라 불리는 오리지널 상형문자(hieroglyph)가, 두 번째 층에는 그 히에로글리프를 좀 내갈겨 쓰기 쉽게 만든, 말하자면 영어의 필기체와 유사한 ‘민용문자(demotic)’가, 마지막 층에는 그리스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어요. (‘이집트 상형문자’는 신들과 파라오에 관계되는 내용을 기록할 때 사용하는 히에로글리프와 그걸 필기체처럼 만들어서 서기관들이 문서기록을 할 때 사용하는 ‘히에라틱(hieratic, 신관문자 혹은 승용문자)’, 또 그 히에라틱을 더 필기체처럼 다듬은 ‘데모틱’ 세 가지 체계가 있었습니다. 그 중 로제타석에는 히에로글리프와 데모틱이 새겨져 있었음.)

    로제타스톤에 그리스어로 새겨진 걸 해석해보니 그 돌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었어요. 당연히 거기에는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토마스 영은 또 순전히 ‘직관’으로 상형문자가 뜻글자로 쓰이기도 했다면 먼저 ‘외국계 이름’을 적는 데 사용됐을 거라는 걸 알아차립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정통 이집트 왕이 아니라 외국계, 즉 범그리스계 왕조라고 했잖아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조지 워싱턴이 조선 왕으로 등극해 한자로 그의 이름을 ‘화성돈(華盛頓)’이라고 표기했는데, 저때 한자들은 뜻글자로 쓰인 게 아니죠. 한자들이 지닌 뜻과 상관없이 워싱턴이라는 음과 비슷한 것들을 뽑아다가 배치한 것일 뿐. 즉, 저때 화성돈은 순수하게 알파벳, 한글처럼 소리글자로 쓰인 것이죠.

    그런 것처럼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도 소리글자로 쓰였을 것이다, 고 판단해서 시험해봅니다. 신과 파라오의 이름을 찾아내는 건 쉬워요.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카르투슈(cartouche)’라는 패널 안에 따로 표기하기 때문에. 따라서 카르투슈 안에 있는 것 중 그리스어로 ‘프톨레마이오스라’라고 표기된 지점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을 뽑아서 시험해보니, 오마이갓!!! 정말로 알파벳 방식처럼 프톨레마이오스라고 읽히지 뭐겠어요!

    근데 토마스 영은 거기서 더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왕과 신들의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도 그런 방식으로 쓰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데다(이집트 상형문자가 뜻글자라는 관념이 그만큼 강하게 이어져왔음) 결정적으로 콥트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 전적인 영광은 샹폴리옹에게 돌아갔던 것이죠.

    샹폴리옹은 절대 토마스 영의 이름을 언급한 적이 없어요. 그가 토마스 영에게 불 같은 질투를 느꼈을까? (물론 나이는 샹폴리옹이 훨씬 어립니다. 경제사정도 토마스 영이 더 나았고. 샹폴리옹은 형의 지원으로 근근이 생활...) 저는 당근 그랬을 거라 짐작하지만 제가 접한 문헌들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안 나와 있더군요. 더구나 프랑스와 영국은 앙숙지간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쪽에서도, 샹폴리옹이 가졌던 토마스 영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은폐 내지는 일부러 피해가는 것 같구요. ㅋㅋㅋ(순전히 제 느낌...)

    쓸데없이 예전에 들춰봤던 내용들이 떠올라 함 써봤어요.

  • 33. 프리댄서
    '09.9.22 12:09 PM (218.235.xxx.134)

    맞다. 하늘을 날자님. 일본의 근대 형성과 관련해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책이 킹왕짱이래요. 치밀한 논리와 방대한 사유, 독자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개념들... 제 주위에서 가라타니 고진을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칭송하기에 바쁘더군요. 저한테도 막 읽어보라고 했는데 팥죽인 변덕을 부리다 보니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_-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도 많이 언급하는 학자고, 김윤식 선생의 책이 저 사람을 표절했다는 이른바 ‘김윤식 표절논쟁’도 한창 불붙었던 적이 있습니다. 암튼 그것도 생각난 김에... 글고 전 그저 아직도 방황 중인(농담이 아니라...) 날나리라는...--; (흐흐 faye님은 사춘기시라네요^^)

    그리고 faye님. 저 저런 식의 '뜬금없음'을 아주 좋아합니다 ^^
    실없는 장난 같은 거 되게 재밌어해요.^^ (그렇다고 faye님께서 실없는 장난을 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음... 말씀하신 바는 잘 알겠습니다.
    예, 제가 말씀드린 '일본 정치체제는 후지나 일본 사람들 수준은 낮지 않다'는 faye님의 지적처럼 시스템의 문제와 개인의 문제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봐요, 저도. 글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을 가다듬어봐야겠네요. 일본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구요...

    그리고 중앙집권제라.. 현대는 오히려 권력집중보다는 분산 쪽에 더 무게를 두는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뜬금없는 댓글 하나 더 남기려구요. ㅎㅎ
    점심으로 오뚜기 짜장파티를 끓여먹을 생각입니다. 농심 짜파게티와 삼양 짜짜로니와의 차이점을 따져봐야지...^^

    모두 즐거운 오후 되시길...

  • 34. 프리댄서
    '09.9.22 12:18 PM (218.235.xxx.134)

    아 그리고 아일랜드는, 정말이지 이거 개괄적으로만 주워들은 것들을 읊으려니 참 뭐하네요.-_-
    '아일랜드의 기적'에 대해서는 많이 회자가 됐죠. 지금은 디폴트 위기다 뭐다 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국민소득 4만 불을 넘어섰더랬습니다.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은 일찌감치 제쳤구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본드 역할을 맡기도 했던 아일랜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예전에 그런 인터뷰를 했었어요. 아일랜드에서는 너무 가난하게 살았다, 그런 다음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1970년대에 런던에 왔는데 거기서는 또 더럽고 가난하고 게으른 아일랜드인이라며 차별을 받았다... 그랬던 아일랜드가 영국을 제친 거죠.

    그 원인으로 내세워졌던 게 '사회연대협약'이었어요. 1980년대 심각한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이대로 있다간 아일랜드가 쪽박차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정부의 중재 아래 노사농이 만나 사회적 협의를 했습니다.

    근데 재작년엔가 MBC에서 '한국 교육의 대안을 찾아서'였나, 뭐 그런 제목으로 아일랜드 공교육에 대해 보여줬던 적이 있어요. 그때 나레이션을 신동엽이 맡았다는. 그리고선 MB지지를 했군요, 그 사람이. 그때 아일랜드 교육부장관 및 복지부장관 등을 인터뷰했는데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게 그거더군요. 아무리 경제가 어려울 때도 최우선 순위는 복지였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회복불능 상태로 접어들기 때문에 복지를 후퇴시는 일을 제일 나중순위에 두었다고...

    보수 쪽에서는 말씀드린 대로 '편협한 민족주주의'의 틀을 벗어나서 적극적인 개방으로 나갔기 때문에 아일랜드 유럽의 신흥 부국으로 떠올랐다고 주장하고 있구요. 저도 깊이는 모르고 딱 거기까지만. 참여정부 때 아일랜드 총리가 방한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언론에서 제법 아일랜드 기적과 그 바탕인 사회연대협약에 대해 다루었었죠..

  • 35. faye
    '09.9.22 12:31 PM (216.183.xxx.87)

    자꾸 딴지만 거네...^^

    아일랜드의 기적을 말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영국과의 비교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 였기때문에 비교하는 것이지만...
    영국은 이미 회생불능입니다. 우리보다 더 심각해요...

    작년 위기가 터졌을때 가장 휘청한 나라중 하나가 아일랜드입니다.
    아직도 살얼음 판이구요....

    한나라가 바로 서려면 최소 한세대 이상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아일랜드가 나름대로 교육에 투자한것은 맞는데...

    금융이란 허상에 너무 많은 것을 걸었죠.

    제조업없이는 힘이 듭니다.
    영국이 무너지는 이유이기도 하죠.

  • 36. 프리댄서
    '09.9.22 12:47 PM (218.235.xxx.134)

    앗. 나가기 전에 잠깐 또 들렀더니 그새...
    예, 아일랜드 사례는 현재가 아닌 지난 시기에 자주 언급된 배경을 설명하느라 그랬구요...
    저도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아일랜드와 함께 유럽의 신흥 부국으로 많이 언급됐던 아이슬란드도 위기를 겪고 있구요.

    그러니까 바로 그겁니다.
    faye님께서 말씀하신 위기를 현재 가장 크게 겪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닐까요?
    세계 경제 전반도 미국이 어떻게 회생하느냐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구요.
    유럽에서 영국이 저렇게 무너지게 된 것도 대처시절을 거치면서 재빠르게 미국식 경제모델을 재빠르게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금융업 비중이 지나치게 커졌죠.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가 눈부신 성장을 해놓고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도 사실은
    그 내부에서 은근히 미국을 많이 따라가느라 그랬던 것 같구요...
    특히 아이슬란드가 더욱 그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구요.
    저기서 정말로 폭삭, 무너지는지. 아님 다시 일어서는지...
    (저는 후자 쪽에 배팅합니다^^)

    그나마 버티는 유럽국가들은 어쨌든 유럽식 모델을 힘겹게나마 고수하려고 하는 나라들인 듯합니다.
    프랑스도 아무리 휘청이네, 맛이 갔네... 해도 영국만큼 맛이 간 건 아니니까요.

    아고, 저는 이쯤해서 이만 나가봐야겠네요.^^

  • 37. 하늘을 날자
    '09.9.22 3:44 PM (121.65.xxx.253)

    안그래도 요즘 가라타니 고진을 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댄서님께서 언급을 하시니 무척 반갑네요. 그리고, 정말 꼭 읽어봐야지...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그보다 정말, 훨씬, 엄청 중요한 것은... 헉!!! 이집트 상형문자 이야기네요. 헉!!! 정말 재밌는데요. @..@ 샹폴리옹의 형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헉!!! 동생을 위해서 이름까지 바꾸다니... @..@ 게다가 드디어 로제타스톤을 해석해낸 동생이 맨처음으로 형에게 달려가 "형!!! 내가 해냈어!!!"라고 외치고 졸도해버리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네요. ㅠ.ㅠ 아... 아마도 승전소식을 전하기 위해 마라톤 평원을 달리던 고대 그리스 병사만큼이나 열심히 달려가지 않았을까... 아... ㅠ.ㅠ

    갑자기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오늘날 진실로 결정적이고 유용한 업적은 항상 전문적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내는 일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수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조롱을 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는 수천 년이 경과할 수 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어떤 일을 하십시오."

    아... 샹폴리옹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는데, 앞으로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꼭 나중에 책 한 권 써주세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선물용까지 포함해서) 여러 권 사겠습니다.

    와... 로제타스톤이라... 갑자기 마스터 키튼도 생각나고 그러네요. 와... 정말 멋진 사람들이 그렇게 있었구나... 그리고, 그 질투심. ㅋ 정말 일부러 토마스 영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도 같군요. 겉으로는 무심한 듯 하면서 속으로는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는 그 모습. ㅋㅋㅋ 그래요.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잠깐 그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천재'의 질투라...

    전에 DNA구조를 해명한 (두 명 중 한 사람인) 왓슨이 쓴 <이중나선>이란 책을 본 적이 있었어요. 중학교때인가 고등학교 1학년때인가 아무튼 제가 아직 '과학소년'의 꿈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 읽었었지요. 지금 그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나는데, 마지막 부분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군요. 왓슨과 크릭이 함께 공동작업으로 구조를 해명했었지요. 근데, 크릭이 워낙 엄청난 허풍쟁이였던 탓에 (평소에도 "나는 언젠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과학자가 될 사람이라구! 잘들 알아둿!"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던 사람으로 묘사됐었던 듯.) 주위에선 크릭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었나 봐요. 왓슨도 당시엔 정말 25살인가 밖에 안되는 애송이였는데, 둘이 짝짜꿍이 맞아서 공동으로 연구를 했던 것만 봐도요. (근데, 크릭은 정말 그의 허풍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지요. 이쯤되면, 허풍이 아니라 '예언'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네요. 헐.;;;)

    당시 DNA구조에 관해서 '당대제일검'은 라이너스 폴링이었는데(이 사람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요. 엄청난 반전주의자로서 아인슈타인과 비견될 정도로 치열하게 반전운동을 펼쳤고, 그 공로로 결국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합니다. 생애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사람이지요. 한 번은 화학상, 한 번은 평화상.), 점잖은 폴링은 그 기질상 '허풍쟁이'를 꽤나 싫어했고, 당연히 크릭을 엄청 싫어했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연구소(폴링은 미국, 왓슨과 크릭은 영국 캐븐디쉬 연구소)가 달라서 마주칠 일이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라이너스 폴링의 연구를 토대로 해서 결국 왓슨과 크릭이 DNA구조를 해명하게 되었는데, 각국의 연구소에서 연구결과를 좀 상세하게 알려달라는 전화가 빗발치지만, 폴링은 전혀 궁금하지 않은 듯 절대로 캐븐디쉬 연구소에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에 폴링이 당시 캐븐디쉬 연구소장(이 사람도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였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 ㅠ.ㅠ)에게 전화를 걸어서 점잖은 말투로 "당신네 연구소의 그 애송이들이 해냈다는 그 연구결과가 무엇인지 내게 알려주시오."라고 했다지요. 그 짐짓 무심한 척 하는 모습이라니! ㅋ 속으로는 정말 너무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을 텐데도요. ㅋ 하하하.

    아무튼 이집트 상형문자 이야기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글고, 나중에 꼭 좀 책으로 더 상세하게 써주세용~~~ !!!

  • 38. 하늘을 날자
    '09.9.22 3:55 PM (121.65.xxx.253)

    음냐. 막상 써놓고 보니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서... 혹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드네요. 폴링이 과연 크릭을 싫어했었는지, 마지막에 캐븐디쉬 연구소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 폴링이었는지 불분명해요. 다시 생각해보니 왠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영국 내 다른 연구소장이 전화를 건 것이었나...?

    아... 책이 옆에 없어서 확인해 볼 길도 없고... 집에 가서 확인해 볼 수도 없고... ㅠ.ㅠ 결혼하면서 제 책들의 일부만을 신혼집으로 가져다 놓고 상당수를 본가에 내비두고 왔는데, 책을 집에 가져올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지금도 집 평수에 비해서 책이 너무 많은 터라서... ㅠ.ㅠ 아... 답답해라... ㅠ.ㅠ

    아무튼 위 댓글의 내용은 진위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퍼뜩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냥 제 머릿 속에서 마음대로 각색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ㅠ.ㅠ 에공. 죄송해요... ㅠ.ㅠ

  • 39. faye
    '09.9.23 12:02 PM (216.183.xxx.87)

    요즘 읽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중에 위에서 말한 콥트어에 대한 얘기가 나와 옮깁니다.

    ..................

    최초의 기독교는 물론 유대인 공동체의 한 운동이었다. 예루살렘성전멸망 이후, 그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나일강 델타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이 나일강변의 유대인들은 물론 이집트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상당 부분 이집트 사람들과 동화되어 갔다. 그리고 이들 중 지식인들은 대부분 히브리 말보다는 희랍어에 능통했다. 희랍어는 당시 로마세계에 있어서 가장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국제공용어였다.

    기독교가 점차 이집트 토착민들에게 전파됨에 따라 이집트 말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풍유로운 희랍어 어휘들을 이집트 말 속으로 차용하면서 이집트 말 자체를 희랍어 문자로 표기하는 일종의 이두문자를 고안하기에 이른다. 이 이두문자를 콥틱(the Coptic language)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학계에서는 콥트(Copt)어라고 통용하고 있다. 이 콥트어는 희랍어로 표기되지만 어디까지나 이집트 말이다. 이 콥트어는 함족과 셈족의 혼합언어(Hamito-Semitic language)인 고대 이집트어 발달사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언어이다. 콥트어는 이미 AD1세기부터 서서히 발전해 나갔지만 이집트인들이 자신의 언어를 ‘콥트어’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애굽을 희랍어로는 ‘아이깁티오스(Aigyptios)’라고 불렀는데, 7세기 아랍 사람들이 애굽을 정복했을 때 애굽을 그냥 ‘쿠브트’(qubt)라고 부른 데서 기원한 것이다. 아이깁티오스->애굽부트 -> 쿠브트 -> 콥트로 와전되어 간 것이다. 그러니까 7세기에 이집트인들이 쓰던 언어를 아랍인들이 통칭해서 ‘이집트 말’ 이라고 규정한 단어가 곧 ‘콥트어’였다. 이집트 역사를 쓸 때에는 서로마제국의 통차가 종료된 395년부터 이슬람이 이집트를 정복한 641년까지를 공식적으로 콥틱시대(Coptic period)라고 부른다. 이 시기야말로 이집트의 기독교전성시기(Christian period)였으며 비잔틴시대(Byzantine period)에 해당한다.

  • 40. 프리댄서
    '09.9.23 2:26 PM (218.235.xxx.134)

    예, faye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전에 읽었던 거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어서 좋네요. 음 하지만 저기 나와 있는 설명은 좀 (순전히 제 생각으로는) 혼동되게 서술된 것도 같아요. '이집트 말 자체를 희랍어 문자로 표기'했다는 건 자칫하면 콥트어가 그리스문자를 본떴다는 것으로 혼동할 수도 있죠. 제가 알기로는 콥트어는 기존에 내려오던 이집트 상형문자를 그리스문자처럼 알파벳화시킨 겁니다. 저 시기에 이르면 상형문자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요. 없었던 자음이 추가되기도 하구요. (이집트 상형문자에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음) 가령, 사자 모양의 자음은 상형문자 말기에 추가된 겁니다. 그런 식으로 추가도 이루어지고 민간에서 사용했던 데모틱은 더 간소화되어가요.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알파벳화'라는 궁극적인 변화가 도래할 수 있었던 거죠. 물론 이건 제 추론입니다만.^^

    암튼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하자면, 콥트어는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지배층의 언어'와 역시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던 기독교의 영향으로 탄생한 '이집트 상형문자'의 마지막 체계이자 그와는 별개로 존재했던 이집트 기독교인들의 고유 알파벳.^^

    그리고요 어제는 급히 나가느라 댓글도 급히 달았는데 중앙집권제에 대해 말씀하신 거요.... 현대에도 그게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기론 근대국가가 형성될 때는 ‘중앙집권’이 실현됐느냐, 아니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이 이뤄졌다는 건 왕권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고, 그에 비례해 지방 영주들의 세력이 약화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의 국가’로 기능하기가 훨씬 수월해지죠. 유럽에서 근대국가는 그런 과정을 통해 수립이 됐고, 근대의 길목에서 이른바 강대국이 됐던 나라들은 중앙집권제라는 공통의 절차를 거쳤더랬습니다. 백년전쟁 이후 서서히 중앙집권으로 나가다 루이 14세에 이르러 절대왕정의 정점에 이르렀던 프랑스가 그랬고, 종교가 개입된 ‘피의 내부 투쟁’을 거치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이르러 안정됐던 영국이 바로 그러했죠. 엘리자베스 여왕은 성공회와 가톨릭을 차별하지 않는 중용정책을 펼침으로써 안정화를 꾀했고 그것은 중앙(왕권)으로의 집중을 가져왔습니다. 그 힘이 유럽의 제해권을 손에 넣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해가지지 않는 제국’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도 비슷한 양상을 거쳤죠. 반면에 근대의 길목에서 이탈리아, 독일 등이 뒤처졌던 까닭은 중앙집권이 안 이루어져서 그만큼 ‘통일’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대국가가 탄생한 이후는 사정이 다릅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근대국가란 지방 영주(토호)와 중앙 군주와의 힘의 대결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봉건시대의 정치체제가 그 두 세력(+종교세력) 간의 갈등에 기반해 굴러갔다면 근대는 ‘국민’이라는 새로운 주체가 전면에 등장하여 투표권을 행사하는 시대입니다. 거기서는 봉건시대와는 다른 갈등이 나타나게 되죠. 그 새로운 갈등의 양상에는, 오히려 지방마다 중앙과 동등한 대우와 권리 행사를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근대의 이성은, 강화된 시민들의 입김은 권력의 부패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는요.^^ 따라서 권력의 부패를 낳을 수밖에 없는,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걸 도리어 경계합니다. 포스트 모던이라 일컬어지는 작금에 이르러서는 제일 후진적이라고 평가받는 것 중의 하나가 ‘제왕적’이라는 타이틀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에 대해서도 얼마나 말이 많은가요?

    제가 faye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잘못 이해했는지 몰라도(다른 뜻으로 말씀하신 걸 제가 저렇게 받아들였을 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또 댓글을 달아봅니다.^^

    그리고 지금 아바 노래 듣고 있는데, 들으면서 드는 느낌이 아바에는 유럽의 쇠퇴가 투영되어 있는 게 아니라 스웨덴의 전성기, 유럽의 좋았던 시절이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아바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Thank You for the Music>에 ‘I've been so lucky, I am the girl with golden hair...’라는 가사가 나와요. 저 가사에서 ‘금발’을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나는 운이 좋았어. 스웨덴(유럽)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냥 뜬금없음 시리즈를 이어가보는 거예요.^^;;

    암튼 여러 모로 감사합니다. faye님.^^

  • 41. 프리댄서
    '09.9.23 2:30 PM (218.235.xxx.134)

    그리고 하늘을 날자님. 각색의 본좌는 아마도 저일 걸요?^^ (아.. 그래서 백용호 국세청장이, 정말로 책 보관할 곳이 필요해서 집을 4채 샀던 건가?^^)

    저 위에서 또 잠깐 콥트어 얘기가 나왔는데, ‘이왕 말을 꺼낸 김에’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해 얘기를 조금만 더 하죠.--; (저도 간만에 저 얘기를 하니까 재밌네요.ㅋㅋ)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나폴레옹이에요. 나폴레옹은 1798년에 프랑스군을 이끌로 이집트 원정을 떠나죠. 어렸을 때부터 동방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데다 슬슬 알렉산더 대왕의 재림을 구현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게 된 나폴레옹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이루어진 원정이었습니다. 저때 이집트는 터키의 한 주로 전락해 있었어요. 찬란한 고대 문명 말기에 이르러 페르시아, 그리스(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 클레오파트라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끄트머리에서 활동했음.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이고, 그 뒤를 이은 프톨레마이오스 15세가 그녀의 아들임.), 로마의 지배를 차례로 받던 이집트는 7세기 무렵부터는 아랍의 수중에 들어가게 돼요. 그러다 17세기에 오면서 바통이 오스만터키 제국으로 넘어간 겁니다.

    당시 프랑스가 내세운 이집트 원정의 명분은 이랬습니다. 1) 전제적인 술탄의 지배 하로부터 이집트 민중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2) ‘과학과 예술’의 탄생지에 다시 (유럽 본토에서 발전시킨) ‘과학과 예술’을 돌려주기 위해. 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영국을 향한 선전포고였습니다. 그 어떤 나라도 영국의 앞 바다를 넘어서 영국 본토 침략에 성공한 예가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영국과 싸우고 싶었는데도 싸울 수가 없었어요. (그때 영국은 프랑스 혁명에 맞서는 주위 군주 국가들의 동맹에 참여한 상태였음. 프랑스 민중들이 혁명을 일으켜 군주를 처형하자, 인근 국가 군주들이 자기네 나라 민중들도 따라할까 봐 잔뜩 겁을 먹었음. 그래서 동맹을 맺어 프랑스에서 혁명세력을 몰아내고 왕정이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며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음. 그 전쟁을 ‘혁명전쟁’이라고 부르는데 그 전쟁에서 차례차례 승전보를 올린 게 나폴레옹이었고,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 정신’의 수호자 및 전파자로 비쳐지는 계기가 되었음. 처음엔 ‘방어’ 차원에서 수행된 프랑스의 혁명전쟁은 점차 ‘영토의 확대’, 즉 ‘전쟁을 위한 전쟁’으로 변질되었음. 이집트 원정도 그 중의 하나.)

    그런 상황에서 이집트가 ‘대영국전’ 장소로 활용된 이유가 당시 영국이 이집트 앞바다를 동방(인도)에서 가져오는 물자들의 교역로로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를 침공하면 저절로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프랑스 상인들의 이집트 앞바다를 이용하고 싶다는 요청도 있기는 있었구요)

    어쨌든 원정의 성격이 그랬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이끄는 원정대에는 군대와 더불어 일군의 ‘학자 및 예술가’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겉으로는 ‘과학과 예술’의 탄생지에 도로 그 ‘과학과 예술’을 돌려주기 위해서. 실질적으로는 말로만 듣던 찬란한 이집트 고대 문명의 흔적을 ‘직접’ 탐사할 목적으로. 징글징글할 정도로 오랫동안 이집트가 아랍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이집트는 기독교권인 유럽 국가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습니다. 하여 유럽의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흔적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길이 없었죠. 이집트 원정은 그 야만과 매혹이 야릇하게 뒤섞여 있는 땅을 직접 탐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 기회에 맞춰 프랑스에는 ‘이집트 연구소’가 설립되었고 학자와 예술가가 대거 원정대에 포함되었죠.

    로제타스톤도 그 원정대 병사에 의해 발견된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군과 싸우게 되고, 결과적으로 참패하면서 프랑스군은 로제타스톤을 영국군에 빼앗겨요. 현재 로제타스톤이 있는 곳은 대영박물관.^^ 뭐 프랑스도 그에 못지 않은 유물들을 ‘약탈’해서 루브르 ‘이집트 전시실’에 보관하고 있구요...

    암튼 그랬는데, 샹폴리옹이 이집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였답니다. 그때 샹폴리옹의 형이 원정대에 포함됐다가 막판에 취소가 됐거든요. 그의 나이 아홉 살 때의 일. 그러다 동생이 똘똘한 걸 안 형이 샹폴리옹을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프랑스 남동부 대학도시 그르노블로 데려갑니다. 그리고는 거기 있는 동양어학교에 입학시키죠. (저때도 프랑스에는 이미 사어가 된 동양의 고대 언어들을 가르치는 전문학교가 있었다네요...)

    거기서 이집트와의 인연이 다시 한 번 발생합니다. 당시 그르노블이 소속된 지역의 지사가 하루는 동양어학교 시찰을 나갔는데 한 학생과 짧은 토론을 벌이게 됐어요. 근데 그 학생이 상당히 똘똘했던 거죠. 그게 바로 샹폴리옹.^^ 그 똘똘한 학생한테 반한 지사는 자기 집으로 그 학생을 초대한답니다. 샹폴리옹이 열두 살 때. 그래서 샹폴리옹은 형과 함께 지사네 집으로 갔는데, 그 지사가 누구였냐면 바로 수학자 푸리에였어요. 그는 수학자이기도 하면서 이집트학자이기도 해서, 이집트 원정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죠. 하여 그의 집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_- 물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푸리에 지사는 집안에 전시실을 만들어두고는 전시해둔 그 신비로운 물건들을 똘똘한 어린 학생한테 구경시켜줬어요.

    그때 샹폴리옹이 돌 하나를 가리키면서 푸리에한테 물었습니다.
    “저기에 새겨진 건 뭔가요?”
    “아, 그거? 그건 이집트 상형문자라고 하는 글자란다. 옛날 이집트 사람들은 저 문자를 사용해서 기록을 남겼지.”
    “저건 어떻게 읽나요?”
    그러자 푸리에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답니다.
    “저걸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단다.”
    “이집트 사람들도요?”
    “그래, 이집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은 아랍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으면서 고유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거든.”
    어린 샹폴리옹은 그 돌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이렇게 외쳤다는군요.
    “그렇담, 저건 제가 읽고 말겠어요!”

    그 이후 샹폴리의 생은 한 마디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겠다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된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고대 페르시아, 칼데아어, 고대 시리아어, 아람어 등 사어가 된 고대 동방어들을 하나하나 독파한 것도 혹시 이집트 상형문자와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 신기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외모가 동방 사람들에 가까웠던 샹폴리옹은 커갈수록 더더욱 동방사람들을 닮아갔다는군요. 피부는 점차 거무스름해지고 머리칼은 더더욱 검어지고. 그래서 이집트에 미쳐 있고 외모도 이집트인을 닮았다 하여 생긴 별명이 ‘이집트인’.^^

    그런데 토마스 영은 샹폴리옹처럼 어렸을 때부터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기 위해 준비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직관이 딱 눈뜨면서 ‘이집트 상형문자가 소리글자처럼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해버린 거죠.^^ 암튼 그거야 어쨌든 간에 나중에 샹폴리옹이 콥트어 지식을 이용해 람세스, 토트모세와 같은 ‘외국계’ 파라오가 아닌, 순수 이집트인 파라오 이름도 알파벳 방식으로 표기됐다는 걸 알았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졸도할 만하죠.^^

    에고, 감기 기운 때문에 막 두서없이 내갈긴 느낌이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 42. faye
    '09.9.23 11:07 PM (209.240.xxx.75)

    똑 극단적 반항이라고 말할지도...^^

    민주주의, 특히 시민 민주주의는 사기입니다.
    정확히는 시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가 민주주의입니다.

    투표권의 시작부터 발달을 보면, 이른바 민주주의의 탄생이란게 시민을 위한게 아니라 신흥 상공업 자본가세력을 위해서 였죠.

    과거 봉건영주의 역할을 현대의 자본가들이 하고 있습니다.
    현 대기업 총수정도가 과거 지방 토호정도의 세력이지요.

    4년제, 5년제의 투표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투표때문에 바꿀수 있다는 착각아닌 착각과 위안을 삼죠.

    참여정부의 배신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결론은 그참에 깨질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 거라고 밖에....

    대통령, 상원, 하원제의 미국의 정치제도를 보세요. 구조적으로 바꿀 수 있는게 가능한 구조인가... 대통령 바뀌었다고 좋아해봐야 하원에서 법률안만들면 꽝,... , 하원에서 만들어봐야 상원에서 인가 안하면 꽝....
    하원, 상원 다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 12년....
    상원, 하원 법률만들고, 승인해봐야 대통령이 거부하면 꽝...

    왜 훌륭한 민주제도가 정착된 미국이 저렇게 길을 잃고 헤메일까요....?

    답은 쉽습니다. 미국 민주제도가 사기이기 때문이죠.


    근대와 현대로 가면서 권력이 분산되어서 보다 발전한 민주주의로 변했다는 말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권력획득 사실을 숨기는 기만이지요.

    근대에서 현대로 가는 과정은 거의 모든 나라의 변화과정...

    통일 - >초기 중앙집권 -> 신흥 권력층 대두 -> 권력확대 -> 봉건세력의 토착화 -> 봉건세력끼리의 경쟁 -> 붕괴

    의 과정과 거의 동일합니다.

    봉건세력을 현재 자본가 세력과 치환하면....

    문제는 현대는 그 와중에 사람들이 속고 산다는 거죠... (과거도 그랬을까?)
    그 속이는 선봉에 역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참...(심지어 도올같은 이도)

  • 43. faye
    '09.9.24 12:50 AM (209.240.xxx.75)

    하나더....

    위 님의 댓글에서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연합해서 프랑스를 공격했는데...
    나폴레옹이 이를 막아냅니다.

    어떻게 막아낼 수 있었을까요?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중앙집권과 증기기관인데...
    중앙집권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교육, 과거제 그리고 가장 중요한게 바로 군대 징집제입니다. 강제 징집된 시민군의 위력은 막강해서 다른 나라들의 봉건군대들을 박살냅니다. 결국 다른 나라들도 나중에 다 따라하면서 다시 평준화 되죠..

  • 44. 프리댄서
    '09.9.24 8:07 AM (218.235.xxx.134)

    아, 저 사춘기적 반항!
    아유, 뭐 좋습니다.^^

    걍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나폴레옹이라는 탁월한 지휘관 2) '혁명정신'에 대한 프랑스군의 자긍심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이집트 원정대의 평균 나이가 25세였다고 합다. 당시 프랑스 젊은이들은 나폴레옹에 무척 열광했는데, 그 일면을 소설 <적과 흑>, <전쟁과 평화>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죠. 샹폴리옹의 형 자크 조제프 샹폴리옹(혹은 자크 조제프 피작)도 <적과 흑>의 쥘리앙 소렐처럼 나폴레옹을 새로운 시대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네요.^^ (당시 자크 조제프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죠)

    암튼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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