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3월에 개봉한 영화 ‘더 리더!’ 아름다운 멜로라인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스포일러라도 본론만 간략하자. 한나는 문맹이다. 열심히 일한 결과 사무직으로 승진되었지만 바로 사표를 낸다. 왜? 글을 읽지 못하니까.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nid=1680845&code=45298 (관련링크)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나치 친위대에 들어가서 유태인 학살에 가담한다. 전후에 재판이 열렸다. 자신이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 적은 형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에.
동료 5명의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받는다. 옛 연인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글을 배웠는데.. 글을 배우자 자신이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 서서히 알게 된다. 그래서 찾아온 실패와 비극.
각별한 부분은.. 한나가 문맹을 끝끝내 숨기려고 했다는 점이다. 연인 마이클은 뒤늦게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한나의 자존심을 존중해서 알게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정치적이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목숨을 내던질 정도로 창피하다고? 그런게 어딨어? 그렇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되는게 정치의 세계다. 정치도 자존심 문제다.
나는 이 영화를 정치관점에서 본다. 순진한 한나는 문맹이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지 못하지만 글을 배워서 자신의 죄를 깨닫자 비극이 일어난다. 던져지는 화두, 죄란 무엇인가?
전에 이야기한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나는 이 책의 공저자 6명도 일본의 무식함을 본질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일본 지식인 6명의 결론은 일본군의 ‘조직이 약해서’ 졌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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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내가 잘못한게 뭐냐’며 재판부에 대드는 한나를 연상시킨다. 일본은 문맹이라서 진 거다. 문맹이란 표현은 비유다. 총체적으로 수준이 낮았다는 말이다.
일본군은 병사 개개인의 자질이 떨어졌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맹훈련을 시키는 한편으로 복잡한 상층부 조직을 만들었다. 그래서 조직의 유연성이 약화되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이 패인.
자존심 때문에 인생을 망친 불쌍한 한나. 역시 불쌍한 부통령후보 세라 페일린을 연상시킨다. 세라 페일린에게는 확실히 동정의 여지가 있다. 그는 언론에 의해 난도질 당했다.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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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식의 논리라면 이명박이 더 불쌍하다. 이명박 역시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뭇매를 맞고 있다. 이명박 본인만 모르고 있지 5천만의 껌이 된지 오래다. 나같으면 창피해서 하야하고 만다.
무엇인가? 오바마는 흑인이지만 정통 출세코스를 밟은 엘리트다. 페일린은? 최악이다. 다섯아이의 엄마! 밑바닥 여인 출세기다. 영화에서 5명의 동료 전범들은 무식한 한나에게 덮어씌웠다.
노무현을 희생양 만든 이 나라 지식인의 비겁한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누가 나쁜가? 문맹 한나가 나쁜가? 문맹 페일린이 나쁜가? 문맹 이명박이 나쁜가? 아니면 뒤로 짜고 한나에게 덮어씌운 5명의 똑똑한 자들이 나쁜가?
선과 악은 딱 나누어지지 않고 이중으로 꼬여있다. 필자의 결론은 그렇다. 한나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물론 영화는 한나의 자존심을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정치를 이야기한다.
일본인들은 자기네들이 본질에서 형편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빌어먹을 자존심이 일본을 죽였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속의 한나는 전체주의 독일의 처절한 무식함을 비유한다.
“솔직히 말해봐. 너희 우두머리 히틀러부터 말단 병사까지 깡그리 무식했잖아. 학살지령을 내리는 자나 시킨다고 학살 저지르는 자나. 그게 문화가 야만한 증거가 아니고 뭐야?”
조직이 악마다. 다수 독일 국민은 선한데 히틀러 혼자 악마였던거 아니고 다수 일본국민 선한데 히로히또 혼자 악마였던거 아니다. 일본이나 독일이나 총체적으로 야만의 문화, 야만의 조직이 지배했던 거다.
독일국민, 일본국민 개개인이 발달된 20세기 현대문명에 적응못할 만큼 총체적으로 무식하니까 그런 야만의 문화, 야만의 조직이 만들어진 거다. 바로 괴물 탄생이다. 인정해야 한다.
페일린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점을 인정했어야 했다. 명박은 자신이 바보+천치+쑥맥+등신+축구(畜狗) 오합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비극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에서 얼른 내렸어야 했다.
한나는 예쁘고 착하고 순진하지만 인간은 때로 신 앞에 단독자로 선다. 신 앞에서의 어리광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무식하니까 무죄야!’ 통하지 않는다. 배우지 못하기로는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수용소 경비원이라 경비했을 뿐이고 풀어주는건 내 소관이 아니라는 한나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어리광을 받아들이면 비극은 재앙을 더할 뿐이다. 재앙의 폭주기관차 멈추려면 어리광을 잘라야 한다.
말단의 병사라 해서 학살이 용인되는건 아니다. 학살명령을 내린 대가리가 나쁘지 모르고 집행한 한나는 죄없다는 식의 변명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죽어간 사람은 한나보다 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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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옳고 그름의 판단은 결국 역사가 내리는 것이다. 한나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결국 역사가 결정한다. 그러므로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잘 보고 판단해야 한다.
모르고 친일했다거나 남이 하니까 덩달아 친일했다는 식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21세기다. 21세기는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조직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논리 통하지 않는다.
촛불시민을 구타한 경찰도 마찬가지다. 경찰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간은 똑똑해질 의무가 있다. 똑똑해질 기회도 있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명석하게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무면허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놓고 ‘나 운전할줄 몰라서 그랬어. 모르는게 죄냐?’는 항변은 먹히지 않는다. 모르는게 죄 맞다. 모르는 독일, 모르는 일본은 현대식무기를 손에 쥐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정치에 관심없어. 몰라.’ 통하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총알은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다. 유탄맞기 싫으면 눈 부릅뜨고 공부해야 한다. 알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의무가 있다.
개인의 책임 강조는 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 시대는 더 많은 자유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 인터넷에 야동이 범람하고 거리에 청춘남녀가 헤매고 있다. 이제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지식인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이 책임지지 않으면 사회의 진보는 없다. 일본은 자기네가 무식해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하는 짓이 2차대전 때의 일본군과 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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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문제는 자원의 질이 낮기 때문이다. 공동체 구성단위인 인적자원 말이다. 우리사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영역에서의 발전속도가 개인의 학습속도를 추월할 때 일어나는 구조적 문제다.
자원의 질은 조직의 구성단위가 되는 인자 개개의 결합력이다. 문제가 되는 연고, 정실, 학벌, 지연, 혈연, 기득권, 권위주의 이런 것이 다 ‘신뢰의 부재’라는 근원의 결함을 타개하려는 조직의 편법이다.
편법이 일시적 성과를 얻지만 조직을 경직시켜서 변화에 적응못하게 한다. 개인이 신뢰를 가질 때, 개인이 강해질 때, 더 정직해질 때, 공동체의 문화가 수준향상을 일으킬 때, 분자 개개의 결합력이 높아져서 문제가 해결된다.
이런 문제는 교육이나 계몽으로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공동체문화의 나무는 서서히 성장한다. 개인이 신뢰를 축적하는 시스템과 관행과 약속들이 장기적으로 축적되고서야 가능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4.19, 광주싸움. 6월항쟁, 촛불항쟁이 다 그 개인의 신뢰를 축적하여 가는 공동체문화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각성과 투쟁의 경험이 공동체의 집단체험으로 공유되어 신뢰의 자산 역할을 할 때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만들어진다. 500만 조문이라는 거대한 역사퍼포먼스도 49재에 모일 행렬도 마찬가지다.
http://gujoron.com
김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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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pp. 조회수 : 275
작성일 : 2009-07-07 23:35:18
IP : 211.176.xxx.169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pp.
'09.7.7 11:37 PM (211.176.xxx.169)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nid=1680845&code=45298
http://gujoron.com/xe/37197#10
http://blog.ohmynews.com/yookyung/287145
http://gujoron.com2. 좋은 글
'09.7.8 1:18 AM (114.204.xxx.43)좋은 글이네요
신뢰의 부재를 대신하기 위해 동원된 학연,지연 등 온갖 인맥들...
정직성, 신뢰구축, 공동체의 결합력 강화, 인적자원의 질...
애매하게 고민하던 문제들이 언어로 뚜렷히 표현되니 훨씬 선명해지는군요.
제게는 참 좋은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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