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박5일 봉하산 현장확인 결과
부엉이바위와 주차장(혈흔이정표)은 급경사 48보 거리로 붙어있었다.
이 장소는 최소한의 상식으로 경호차량(구급차)가 올 때까지 투신환자를 투신장소에 그대로 놓아두어야 안전하고, 바로 옆 밭에서 일하는 두 농부와 두 초소 경호원을 부르면 알아듣고 20초내로 달려올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언론들과 노통측근들은 이경호관이 노통을 황급히 어깨에 매고 달렸다는 경찰발표(노통이송장면재연)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노통측근들의 컴유서발견과 언론들이 부엉이바위와 주차장이 멀리 떨러어진 거리로 보도함으로써 경찰의 최종 투신자살발표를 사후추인 해 준 셈이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기우씨의 누군가 안는 장면목격 시간(06:20~25)과 이경호관이 노통을 찾은 시간(06:52)의 30분 차이를 보면서도 노무현 암살 후 투신자살 위장(가장)의 실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암살 후 완벽한 투신자살 위장(가장)이었다면 부엉이바위 밑에는 두부손상에 의한 다량의 피가 있어야 하는데 누군가 안는 장면은 있고, 피는 없다는 사실은 말그대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되고 말았다.
사실 봉하산 현장 확인 결과, 노통의 시신을 옮길 만한 장소는 부엉이바위 주차장이 아닌 정토원 찻길(지름길)이었습니다.
정토원주차장(공터)로 노통의 시신을 옮기면서 연막전술로 두 경호원을 부엉이 바위밑으로 보내어 안는 장면을 연출하게 한다.
이후 정토원찻길로 노통의 시신을 이송하면서 경호동에 연락하여 흰색경호차량을 부엉이바위 앞으로 출발시킨다. 이때 시간 06:56이다.
이런 연막전술에 맞추어 이경호관의 노통발견 시간은 06:52,
경호동출발(06:56) 경호차량은 06:59에 급하게 어디론가 출발,
1분 후 07:00를 사저비서실장의 사고직후 연락받았다는 시간으로 황급히 정한다.
세영병원근처 맞은 편 아파트에 살고 있다(6월15일 확인)는 사저비서실장은 경호차량보다 늦게 출발(07:00)하더라도 세영병원에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고 김비서관은 전화 인터뷰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통을 실은 경호차량에 사저비서실장이 타지 않았다는 경찰발표와 허접한 노통이송장면재연에 이의를 달지 않은 문재인비서관의 행동은 비난(의심)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2. 마늘밭 박씨의 진술
사고 당일 노통의 사고소식을 딸이 휴대전화로 연락해 줄 때 까지 주차장(부엉이바위)옆 마늘밭에서 마늘캐기 작업을 계속 했다던 박씨의 진술을 새롭게 확인했으며, 그는 흰색차량이 급하게 오는 것은 보았지만 환자를 옮기는 소리를 듣거나 옮기는 장면을 본 적 없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마늘밭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고추밭 이씨의 누군가 안는 장면도 흰색 경호차량이 오기 전에 필요한 하나의 연극(투신자살 가장행위)이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노통이송장소를 실제 확인해 보면 혼자 환자를 이송할 만한 장소가 아니었음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두 농부나 두 초소경호원을 불러서 환자를 이송하거나 경호차량이 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할 장소였습니다.
도움 요청하면(소리지르면)누구나 20초에는 달려올 수 있고, 고추밭 이씨가 가까이 보이는 장소(부엉이바위밑)에서 경호동 차량이 오기전에 두 명의 경호원을 보내어 안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장소로 적당했습니다.
혼자 옮기다보면 미끄러지는 위험한 장소에서 혈흔이정표(경호차량대기 위치)까지 혼자 48보를 옮긴다는 것은 암살을 투신자살로 가장하기 위한 경호원들끼리의 연극일뿐이라는 결론입니다.
이런 암살 후 투신을 가장한 자살 연극에 문사저비서실장의 역할이 컴유서작성은 아니었나 묻고 싶다.
3. 서거 당일 문재인 전청와대비서실장의 행적
http://segye.com/Articles/News/WholeCountry/Article.asp?aid=20090523001558&ct...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해들은 권양숙 여사는 이날 오전 9시25분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해 시신을 확인한 후 실신했다. ..... 권 여사와 함께 온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병원에서 사고 경위 등을 파악하고 있다.........
세계일보 기사입력 2009.05.23 (토) 16:24, 최종수정 2009.05.23 (토) 16:23
그동안 문모비서관이라는 경찰의 오리무중 전략때문에
위 기사들이 사고당일 2009.05.23 (토)에 있었는데도 "권 여사와 함께 온 문재인"과 문모비서관을 동일시하여 노무현전대통령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핵심키를 간과하였던 것입니다.
그동안 국민들이 이경호관이 사고직후(1차발표06:40) 문비서관에게 연락했다는 경찰발표때문에 헷갈렸던 것이죠.
문모비서관을 문재인비서관으로 착각하도록 수사발표한 저의는 무엇일까?
1차발표 06:40 사고현장 실제 출발 각본에 있는 공모자를 빼기 위한 오리무중 전략이었던가?
온라인(신문방송)에는 동일한 성의 문비서관으로, 오픈라인 장례기간 동안에는 문재인을 부각시켜서 설마 문모비서관이 문재인일까하는 의심조차 못하도록 만든 것인가?
4. 문모비서관의 실명 기사를 찾은 후부터
저는 문모비서관을 문재인으로 오해하였던 저는 문재인에게 향했던 그 비판보다 더 큰 비판인 분노와 의심으로 문사저비서실장을 컴유서작성자로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세대 문헌정보학과를 나온 문씨는 비서관 중에서 컴전문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사저비서실장인 문씨는 위급한 주군을 실은 경호차량에 탑승하여, 주군의 위급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당연 한데도 경호차량에 탑승 안했다는 사고현장 재연을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이말입니다
노통의 죽음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자타살(투신했는데 암살자가 추가범행) 이든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사저비서실장이 주군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는 질타에 앞서 노통측근들(아직 감옥에 안 간 측근들은 대부분 연대출신)이 경호처와 연대이사장 조선일보(기득권언론인의 대표)와의 공모(암살후 투신자살 위장)했을 가능성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6월5일경찰최종발표를 볼 때, 이경호관은 노통의 행방불명기간(30~40분)동안 문사저비서실장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여러차례 경찰발표때 "사고직후 무전 등"으로 연락했다는 이경호관의 진술을 곰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엉이바위에서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는 노통의 말에 눈을 돌리는 사이에 노통이 바위밑으로 떨어졌다는 서거당일 1차 경찰발표를 변경하면서 까지 보호하려는 대상은 누구인가?
무슨 일이 발생했길래 문사저비서실장에게 투신사고직후에 연락하는 시간(06:40)을 변개했느냐 이 말입니다.
서로 다른 정치이념에 따라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적을 죽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적을 시해한 후에는 알리바이라도 잘 맞춰서 전직대통령을 짐짝 매듯이 어깨에 매고 가는 어설픈 장면을 재연해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노통의 측근들과 현 야당 정치인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특히 노통의 투신으로 겉으로는 슬프고, 속으로는 열광하는 단세포 극렬노사모들에게, "어리석은 자여! 죽은 노통을 위하여 울지말고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난세에 왔다간 예수노무현의 피는 외치고 있다는 것을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사저비서실장은 노통환자 현장출발 후 겨우 1분 후 07:00시간을 할당받았다.
이것이 "사고직후 무전 등"으로 연락한 시간 인가?
그래서 위독한 상태인지 죽은 상태인지 사고현장의 주군의 모습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주군이 돌아가시면 자동적으로 비서관직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잘 아실 텐데 독재경찰 정권과 무슨 거래라도 있었단 말인가?
저는 모든 의심으로 문사저비서실장을 주시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여 주십시오.
아무튼 문사저비서실장은 사고직후 연락받은 시간을 07:00으로 정하면서부터 사저비서실장 문씨는 주군의 환자 경호차량에도 탑승하지 못하는 황망한 사건의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황망한 사건의 장본인이 되는 문사저비서실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찰청과 경호처가 연막을 쳐준 방법이 문모비서관인가?
노무현전대통령서거 애도기간동안 온 국민이 전혀 의심할 수 없도록 경찰은 의도적으로 익명(문모비서관)으로 거론하여 문재인을 떠오르게 했다는 말인가?
결코 아니다. 문씨는 사저비서실장으로 책임과 의무가 있다. 원래 각본대로 라면 사고직후 연락을 받고 노통이 투신한 부엉이바위 밑으로 가게 되었는데 갈 수 없는 돌발변수가 두 농부였는가 이말입니다.
--지금까지의 글과 앞으로의 글도 변경된 여러 수사발표의 모순점을 지적한 제 개인적인 감정과 상상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5. 경호처에 따르면
봉하마을 경호팀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사실을 23일 오전 7시10분쯤 청와대에 보고해 왔다. 김인종 처장은 7시20분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사실 ...
http://jeju.daum.net/news/total/to_view.html?co=jejusori&id=44814&part=A1&pn=...
청와대발 보도에 의하면 유서 발견(07:30)전에, 유서 메일전송(07:56)전에 유서내용(자살)을 귀신같이 알아냈다는 뜻인데 그 빨대악귀는 누구냐?
문사저비서실장이 07:00 이후 정신없이 세영병원으로 달려가는 시간에, 이경호관이 정신없이 5분안에 세영병원으로 가야는 경황 중에 둘 중 한명이 07:10에 경호처로 연락했을 가능성은 없는데 그러면 ??? 이 부분에 대해서 지금은 언급을 자제하겠습니다.
6. 경찰최종수사발표(6/5)
경찰은 "문 비서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아무개 비서관한테 전화하여 컴퓨터를 찾아보라고 했다'고 연락했다"고 밝혔다.
박 비서관은 이날 오전 7시 30분경 사저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의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크다"는 제목의 한글 파일을 찾았다. 박 비서관은 인쇄기가 없어 이날 오전 7시 56분경 자기 메일로 전송한 뒤 사저 사무실에서 유서를 출력했다.
출처 : "노 전 대통령 타살-유서조작 의혹 없다" - 오마이뉴스
7. 경호처처장
제주의소리 기사입력시간2008년 02월 01일 (금) 11:44:33
김인종 예비역 대장, '대통령 경호처장' 내정
제주출신 첫 청와대 경호책임자로 이명박號에 승선
국방장관 후보서 차관급 처장 “서운한 것 전혀 없다”
http://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2765
8. 조선일보 명예회장(수구기득권언론인의 대표)과 연세대이사장은 동일인
인터넷시대에 위기에 처한 신문방송언론인들에게 노무현암살세력은 동지였던 셈이다.
그래서 온갖 신문방송들이 노무현의 죽음에 한점의 타살의혹 없이 자살로만 보도해 주었던 것이다. 타살의혹을 취재하다 보면 수구언론은 노무현 암살 세력의 배후와 반드시 부딪치기 때문이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김구암살범 안두희의 배후에는 당연히 반민족 친미세력인 이승만이 있었는데도 반민족 이승만정권을 퇴진 시키지 못한 민중에게 6.25 전쟁의 화마가 찾아왔다.
김구암살 60년이 지난 오늘 2009년 5월23일 노무현서거를 접하면서 자살로만 믿도록 세뇌당한 민중들에게 또 다시 화마가 찾아올 것을 염려해 봅니다.
9. 숭례문(남대문) 전소로 미리 보여준 민족의 운명은
우리에게 전쟁의 화마를 피할 길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부손상으로 사망한, 민족주의자 노무현이 흘린 다량의 피가 부엉이바위 밑에 없다는 사실은 다른 장소에서 타살(암살)이 이루어졌다는 확신한 근거다.
그러나 친미세력인 측근들(연세대출신)의 컴유서공개와 수구언론(신문방송)의 타살의혹 제기없는 일방적인 투신자살 보도에 의해서 노무현의 암살은 투신자살로 매도되어 우매한 민중을 속이기에 적당하였다는 결론입니다.
이런 투신자살가장(위장)을 깨부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민중뿐이다.
기존의 야당과 시민단체들도 할 수 없다. 저들은 경호처(국정원)의 공포정치가 무섭기도 하지만 노무현의 죽음을 투신자살로 여겨야만 다음 대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중은 다음 대선을 기약할 수 없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현재와 동일한 정치 지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운 분이 김대중전대통령이다. 중임제 제한으로 차기대권에 아무런 욕심이 없으면서 노무현의 죽음을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은 유일한 민족주의자다.
이 분에게 노무현서거 진상을 맡겨야한다.
저는 그동안 수많은 유명정치인들의 보좌관(비서진)과 시민단체들을 만나고 통화를 해 보았다. 한 마디로 노무현의 타살의혹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일부터라도 김대중사저나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서 면담을 요구해야 한다.
10. 순수한 시민(아고라)의 힘으로 노무현서거 진상을 밝힌다면
이명박정권은 퇴진할 것이며, 전쟁의 화마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에 동참하실 분은 webshindoll@gmail.com으로 연락처를 남겨 주십시오.
우리의 1차 행동 목표는
경찰의 조작수사발표를 알려서 여론의 힘으로 경남경찰청청장을 파면시키고
이어 2차 행동목표는
분열된 한나라당내 개혁세력의 협조를 얻어 국회차원에서 "노전대통령서거진상규명특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특검으로 검찰을 살려주고 무혈혁명을 이루라는 하늘의 명령이 곧 피를 찾지 못한 노무현의 죽음입니다.
저는 이 글을 계속 쓰면서 울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흘린 피를 울면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어디엔가 쏟아진 그 분의 피는 우리를 향해 울부짖고 계십니다.
그분의 피를 찾아서 남북통일의 밑걸음이 되도록 고이 묻어 드립시다.
![](/image/2011_board_free_off.gif)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신문방송이 경찰의 최종 투신자살발표를 사후 추인 해 준 셈(펌)
ㅠ.ㅠ 조회수 : 470
작성일 : 2009-06-20 13:48:23
IP : 203.250.xxx.43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