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법개념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아낼 수 없다"
지난 6월 16일 한 IT 사업가가 구속됐다. 구속 혐의는 '저작권법 위반'이었다. 영화 등을 저작권자 허락없이 불법으로 유통했다는 것이다.
이날 구속된 사업가는 촛불집회 당시 '온라인 영웅'으로 추앙받던 아프리카(www.africa.com)를 만든 문용식 나우콤 대표였다.
문 대표가 구속될 시기는 촛불시위가 정점으로 타오르고 있을 때였다. 웹2.0 시대의 동영상 사이트인 아프리카는 당시 촛불 여론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 탓에 그의 구속을 두고 "촛불시위의 확산을 막으려는 표적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렇게 구속됐던 문 대표의 최종 심리(1심)가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됐다. 아래에 첨부한 글은 문 대표가 직접 작성한 '최후 진술'이다.
문 대표의 최후 진술문은 웹2.0시대의 인터넷 저작권과 관련된 여러 가지 고민은 물론이고, 한때 변혁을 꿈꾸다 IT사업에 매진해온 한 젊은 사업가의 꿈도 엿볼 수 있게 한다. 누리꾼 여러분들의 일독을 부탁한다.
참고로 문 대표의 1심 판결은 오는 12월 30일 예정돼 있다.
<문용식 대표의 최후 진술문>
제가 구속된 것이 지난 6월이었습니다. 구속 이후 6개월 가량의 기나긴 공방이 이제 대단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툼이야 어찌됐든 긴 시간 동안 이 사건에 관계했던 고소인, 검찰, 재판부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관계자 각각에게 한두 가지 요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1. 고소인에게 말씀드립니다.
과실과 착오에 의해 고소인의 영화저작물이 일부 침해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가 어려움을 겪고, DVD 등 영화 부가판권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 것이 오로지 웹스토리지 사업 때문이라는 영화계의 주장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전혀 새로운 뉴미디어의 등장에 대응이 늦은 영화계 내부의 문제점 또한 심각한 자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웹스토리지 서비스를 마녀사냥하듯 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기회의 파트너로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인식하에 과거 피해에 대한 보상과 아울러 미래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에 대한 합의가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얼마전 10월에 문광부 주최로 '서울 저작권 포럼'이라는 행사가 치뤄졌습니다.
거기에 미국 MPA(Motion Picture Association :미국영화협회)의 대표로 '프리츠 어터웨이'란 분이 참석했습니다. 그분의 발표말씀 중에 귀담아 새길 것이 있어서 그대로 전합니다.
"저작권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정부의 입법이나 사법부의 판결이 아닌, 업계간의 자율적인 타협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의 창출이다."
미국 메이저 영화사를 대표하는 분의 말씀입니다.
바로 얼마 뒤 11월에는 구글과 전미출판협회, 전미작가협회 간의 'Google Book Search Project'에 대한 기념비적인 합의가 있었습니다.
구글이 전세계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디지털로 스캐닝하여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게 제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대해 2004년부터 저작권을 지닌 출판사,작가들이 온갖 소송을 제기하여 오던 사건이 드디어 4년만에 타결을 보게 된 것입니다.
외신은 이를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합의라고 속속 보도를 했습니다. 저도 관심을 가지고 외신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합의의 기본골격을 말씀드리면..
- 독자 (이용자)들에게는 출판물에 대한 온라인 접근권을 높이고,
- 출판사와 작가(저작권자)들에게는 저작물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온라인 판매 등의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부여하고,
-구글(유통업계)은 전세계 지식정보의 제공이라는 꿈과 비전을 실현할 기회를 갖는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합의를 접하면서, 업계내의 경제적 이해 다툼에서 시작한 논의가 인류문명의 발전에 한 획을 지을 수도 있는 합의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전율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아름다운 합의! 우리 영화계와 인터넷 업계도 이런 아름다운 합의를 이루어내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2. 검찰측에 말씀드립니다.
검찰은 지난 6월에는 저를 저작권 위반 공동정범이라 하여 구속시키더니 이제서야 저작권 위반 방조죄로 공소사실을 변경했습니다. 지난번 구속 영장 청구가 분명히 무리한 수사였음을 검찰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징역 4년형을 구형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5년 넘게 징역을 살아봐서 잘 아는데, 징역 4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구형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검찰은 구속과 징역형을 남발해서는 안됩니다. 공권력은 공정하게 집행되고, 절도있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검찰의 공권력은 저작권자의 권리만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저작권자의 창작에 대한 보호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편리한 이용과 유통업계의 공정한 접근이 동시에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저작권자 위주의 저작권 단속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폐혜 또한 급증하고 있음을 검찰은 알아야 합니다. 저작권 파파라치 역할을 하는 일부 로펌이 등장하여 무분별한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4,7000만 대한민국 전부가 잠재적인 범법자화되어 가고, 급기야 지방의 어느 학생은 고소 협박에 못이겨 자살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사회적 폐해가 검찰의 일방적인 공권력 사용 때문임을 검찰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재판부에 말씀드립니다.
먼저 이 사건처럼 이해관계자도 많고 법리상의 다툼이 치열한 재판을 맡아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원만하고 성의있게 재판을 진행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재판부에는 3가지를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이 사건의 요지는 나우콤의 서비스와 행위, 저의 행위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 진행 과정에서 수많은 증거와 증인을 통해 입증되었듯이, 나우콤은 포탈, 웹스토리지, p2p, 기타 모든 인터넷 서비스를 통틀어서 국내 최고 수준, 아니 세계 최고 수준의 저작권 보호조치를 취해 왔습니다. 기술적 보호조치도 그렇고, 모니터링 등 운영상의 보호조치도 그렇고, 서비스 기능이나 마케팅 정책에 이르기까지 최고수준의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이런 나우콤이 유죄라면, 과연 저작권법으로 처벌받지 않을 업체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저작권법 조항중에는 일정한 기술적인 보호조치를 수행하면, 웹스토리지 서비스와 같은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사업자의 책임은 면책된다는 조항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의 기술적 보호조치를 수행한 나우콤이 이 법조항을 적용받아 면책이 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면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둘째, 검찰은 피디박스, 클럽박스의 서비스 내에 일부 저작권에 문제가 있는 이용자와 클럽이 있다는 이유로 나우콤을 처벌하자고 합니다.
일부 과실과 착오로 저작권 침해 행위가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문제있는 클럽이 있다고해서 그게 저작권 침해 정범이나 방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철학적인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부 이용자의 일탈행위가 있다고 해서, 모든 이용자, 모든 클럽을 범죄시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범지대가 있다고 해서 그 지역 내 모든 가구에 대해 일일이 안방까지 수색하고 들여다 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일 뿐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민주적인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클럽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서비스 운영자가 이용자의 클럽활동 내용까지 일일이 모니터링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저작권 보호보다 더 중요한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호나 민주적 기본권리가 침해된다면 그건 더 큰 문제를 낳기 때문입니다.
세째, 이번 재판의 의미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은 저작권 보호와 이용에 관한 발상에 혁명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인터넷이라는 전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인간의 생활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서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고, 노동을 하고, 여가시간에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등의 인간생활 기본방식이 근본에서부터 180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명사적인 전환이 이루어지는 한 시대의 초입에서 그 놀라운 전환을 다같이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지식,정보, 창작물 유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시기이고, 이런 점에서 이번 재판은 영화업계와 웹스토리지 업계간의 분쟁 차원을 넘어서 인류의 문명사적인 전환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예비하는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세상에는 저작물과 컨텐츠가 넘쳐납니다. 과거 컨텐츠가 희소했을 시절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 유통 채널별로 저작권 보호 체계를 세웠던 아날로그적인 법개념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디지털 문화 향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물론 단시간에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이용자, 유통업계, 학계, 법조계, 정치권, 행정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합의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21세기 지식정보 문명 시대에 대한민국은 전세계에 우뚝 서는 선진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대한민국이 세계 인류와 세계 문명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인프라와 국민들의 뛰어난 능력을 볼 때 반드시 해낼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재판의 판결이 저작물의 창작과 이용, 그리고 디지털 유통 간의 미래지향적인 질서를 구축하는 디딤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오마이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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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성지, '아프리카' 운영자의 최후 진술문
리치코바 조회수 : 321
작성일 : 2008-12-08 15:18:13
IP : 118.32.xxx.2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구름이
'08.12.8 4:19 PM (147.46.xxx.168)좋은 진술문이네요. 우리나라의 IT산업 미래를 좌우할 만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웹 2.0시대에 저작권 문제는 필수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분야입니다.
이 정부는 정보통신분야의 호퇴를 가져오는 여러가지 결정을 너무나도 쉽게 결정하고 있습니다.
정통부를 폐지할 때 부터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이정도로 미래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듣지 않는 것을 보면 나라의 앞날이 캄캄할 분입니다.2. 미친 쥐색
'08.12.8 5:19 PM (114.203.xxx.237)어떤 판결이 나올지 지켜보겠습니다
미친 쥐색 밑에있는 재판부가 어떤 판결이 내릴지 심히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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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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