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밤에 서울에 모임이 있어 다녀오다가 그만 추돌사고를 당했습니다. 동부간선도로에서 갑자기 뒤 차가 제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쿵하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데 재차 쿵하며 차는 멈췄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려서 보았더니 뒷 차는 차량앞부분이 부서져있었고 운전하는 젊은 친구는 연신 “죄송합니다”, “괜찮습니까?” 하며 머리를 숙이며 당황해 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야근을 하고 이제 퇴근하는데 깜빡 졸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서로 명함을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집에 오면서 연신 후사경을 보는 제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래도 혹시 뒷 차가 또 들이받지나 않을까 노파심에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아침 100번째 월요편지를 쓰면서 문득 오늘도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99번의 편지가 대부분 정치적 사안에 대한 글이고 그러다보니 비판과 평가, 단죄하는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게 되면서 숱한 배신과 위선 그리고 경제적인 고통까지 겹치면서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증오와 불신과 원망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그것이 내 말과 글과 눈빛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되어있으니까요. 편지 100통을 쓰는 동안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내일을 위한 정돈을 하면서 감사로 100번째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상대를 죽이고 단죄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한국의 정치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너무 약해진 탓일까요?
전두환 시절 이 세상 모든 걸 버려도 민주주의만은 찾겠노라 달려들던 패기는 그냥 젊음 탓이었나 봅니다.
현 정부와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얼마나 괴롭고 맘에 안 드는 삶을 살았겠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지금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30%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죽어도 좋아!”에 속하는 지지자들입니다.
사실 이것을 인정하고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30%를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하고 원망하고 단죄하는데 시간을 보내다가는 내 인생이 값없어 질 것 같습니다. 또 그 30%가 저를 볼 때는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아니 답답하겠지요. 그래도 30%밖에 안 되는 것에 감사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머지 70%가 잘 마음을 합치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지금 민주당의 지지가 10%도 안 된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이유는 민주당이 더 잘 알고 있을테니까요.(이 문제는 다음 편지에 쓰겠습니다.) 게다가 많은 국민들이 좌절감에 빠져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56년 만에 개통한 경의선 열차를 1년도 안 걸려 중단하도록 한 우리의 현실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면 좌절감을 느낄 만도 할 것입니다. 노대통령의 형이 감옥신세를 질지도 모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극적인 화려함 뒤에는 그것에 맞먹는 비참함도 준비되어 있다는 세상사의 진리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래도 아무도 동정하거나 역성들지 않는 게 그들은 더 섭섭하겠지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지금의 권세자들도 언젠가는 또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만을 명심하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권력의 속성은 대중의 환호를 그리워하고 스스로 환호 받지 못하면 역적을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우월함을 보이고 싶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 가운데 끼어있지 않은 요즘의 내 처지가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의를 외치다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랑스럽겠지만 권력의 떡고물을 먹다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랍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온갖 비리를 색출해서 발본색원할 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정치적 반대자는 각오해야할 것입니다. 기득권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 싶으면 모두 뒤질 것입니다. 당신의 통장, e-mail, 휴대폰, 아파트 CCTV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고 당신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떳떳하십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무력함에 감사하십시오. 험한 세월을 살아내는 지혜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무력함입니다.
아, 내가 너무 시니컬했나요? 여러분 우리가 잠시 무력하게 있다 해도 이 나라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좌빨들 때문에 10년간 나라가 다 망했다고 소리 높이던 사람들이 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들도 이 나라를 치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새삼 느끼는 요즘이리라 믿습니다.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현 정권의 지지자들은 지난 10년간 절대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가 유지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국민의 30%는 현 정권을 절대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나머지 40%의 지지를 받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면 ‘죽어도 좋아’ 30%에 40%를 더하면 70%의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정권이 70% 지지를 받으면 무슨 일이든 해도 됩니다.
5공으로 회귀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박정희 시절이 그리우면 그리해도 되고, 아니면 처음부터 이승만식으로 해도 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열이면 아홉은 인사가 ‘어렵다’입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과 증오와 불신입니다. 대화를 나누면 이는 전염병처럼 번집니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회복해야합니다. 원망과 불평과 증오와 불신의 끝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나라든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보통 현실에 없는 일이 90%, 당장 필요한 일이 10%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정치인들끼리 서로 재묻었다, 똥묻었다 하면서 싸우면 나중엔 재묻은 개, 똥묻은 개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서로 물로 뜯고 싸우다 둘 다 죽는 거지요. 그래도 그들은 계속할 것입니다. 그것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심지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틈만 나면 우상을 세워놓고 숭배합니다. 그 때마다 야훼는 직접 벌을 주기도하고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기도 하고, 메시야를 보내 그마저 희생하면서 까지 그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小慧 大愚한 존재입니다. 작은 것에는 지나치게 지혜롭고 큰 것에는 자신이 죽음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들판의 풀들은 바람 부는 대로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를 반복합니다. 그것이 그 풀들의 생존양식입니다. 그러나 그 풀들이 땅을 지키고 그 풀들은 모두 뽑아 버릴 수 없습니다. 그 풀들만이 누대를 거쳐 그 들판에 누가 지나갔는지 알고 있을 뿐입니다.
100번째 월요편지를 써왔던 시간은 제 인생에서는 지난날 4년 8개월의 감옥만큼이나 힘들고 많은 생각을 하게한 시간이었습니다.
화려한 당선, 배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간첩소동, 말도 안 되는 선거법재판,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중국에서의 방황, 신체적 고통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지난 4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 때마나 원망도 해보고 낙심도 하였고, 때로는 저주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순간에도 하나님은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다 견디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구름처럼 몰려들던 사람들이 다 떠나도 한결 같이 옆에 있어준 친구들도 있었기에 행복합니다.
오늘도 그 친구들과 100번째 월요편지를 자축하는 저녁이 될 것입니다. 4년 8개월 동안 매일 한통씩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때의 일기였지요. 지난 4년 월요편지는 제 일기였습니다. 오늘이 있게 한 하나님께, 그리고 모두가 떠나도 곁에 있어준 벗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며 행복한 한 주일 되십시오. 101번째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2008년 12월 1일
경기북도 한탄강가에서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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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유리성 조회수 : 139
작성일 : 2008-12-01 14: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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