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무렵 조계사로 가다가
계동 현대 사옥 근처에서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경찰들을 보았습니다.
현대 사옥 앞에서 사기분양 관계로 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경찰 대열 사이를 헤치며 지나오다
요즘 들어 경찰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촛불집회에 갔을 때도 집회 참여자들보다 더 많은 경찰에게 애워싸여야 했고
아침 출근을 하면서도
수없이 지나다니는 전경 버스의 행렬을 보아야 했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사기분양에 항의하는 집회 참여자를
가득 둘러싼 경찰의 무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섬찟했던 이유는
불과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런 광경을
너무나 익숙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몇 개월 전이라면 매우 신기해하고 의아하게 여겼을 일들에 대해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970-80년대를 살아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하게 경험하셨던 일이겠습니다만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저는
아침에 등교를 하다가
또는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거나
가방을 열어 볼 것을 요구받은 경험을
숱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순순히 신분증을 보여주고 가방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요구가 이상하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20여년간의 변화 덕분에
이제 누군가 저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
그 이유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며
끝끝내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을 배짱 정도는 생겼습니다.
하지만 거리를 떼지어 누비고 다니는 경찰의 모습을
거의 당연하게 여기게 된 요즘의 변화를 생각해 본다면
앞으로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리 자신이 없군요.
경찰로 가득 찬 거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면
그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는 것도 점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고
가방을 열어 보여주는 일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바뀌게 되겠지요.
조금 더 지나면
이유없이 나를 때리고 붙잡아 가더라도
그저 내가 잘못한 탓이겠거니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활개치고 다니는 사복경찰들을 염두에 둔다면
경찰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그냥 다짜고짜 두들겨 패더라도
지레 겁을 집어 먹고 잘못했다 빌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조계사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테러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뉴라이트가 배후라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가해자가 도망을 가다 잡혔지만
앞으로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피해자를 훈계하는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완장찬 사람들의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며
혹여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야겠지요.
어제의 끔찍한 사건이
제가 우려하는 상황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아닌가 싶어
그저 답답한 마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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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답답한 마음입니다.
정 조회수 : 395
작성일 : 2008-09-10 13:12:52
IP : 116.122.xxx.89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저도
'08.9.10 1:16 PM (211.173.xxx.198)답답합니다, 이나라의 현실이...
제가 살고있는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맞는건지....2. 그렇게
'08.9.10 1:33 PM (125.178.xxx.15)경찰이 많은데...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나....3. 면님
'08.9.10 3:21 PM (121.88.xxx.28)폭력과 폭압으로 짓밟히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지금이 누가 현실이 아니라 말해주셨으면 조계사의 일은 없던 일이라고 누가 말해줬으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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